5.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잠깐 한때 배낭 메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학 때면 배낭을 꾸리기 바빴다. 그곳은 워낙 치안이 허술하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기로 소문난 나라였던지라 당시 방영되던 60% 넘는 시청률을 자랑하던 주말드라마에서 (주요 등장인물이 그 나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는데, 친인척 등 주위 사람들이) 거기 가면 곧 죽기라도 할 것처럼, 혹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곳으로 가는 것 마냥 묘사해서 제작진이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있던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화장해야 하는 법률이 철저하다고 알려진 나라였다(팩트는 아니었다. 예외적인 허용도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치기(稚氣)였을까? 패기(覇氣)였을까? 방학만 되면 그곳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쌌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 주변 정리를 하고,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기분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다음에’ 혹은 ‘나중에’가 없을 것이므로, 상대에게 남을 나의 마지막일 것이므로, 마음을 다해 대하려 애썼던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되풀이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만두긴 했지만 여파가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과 물건에 대한 애착이나 가치관,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때 그 마음이 새삼스럽다. 오래 잊고 살았다. 까마득한 전생 이야기인 듯하다. 당시처럼,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이 ‘플랜75’나 ‘보타락도해’ 결행 선상이라면… 현재 내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김호성 선생은 이 ‘보타락도해’ 주제의 토사일기26—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이노우에의 소설 「보타락도해기」를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국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고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또한 진정한 관음신앙은 무엇일까? 보타락가를 구한다는 것의 의미는? 극락이나 보타락가를 구하는 신심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것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 이런 많은 화두를 주고 있는 이야기였다. (2013년 5월 23일, 코치/高知)
감동적인 말씀이다. 나의 불온(不穩)한 생각들―‘보타락도해’ 단락의 소제목을 「plan 61」이라고 고쳐 쓰고 싶었던 충동—을 꾸짖는 훌륭한 법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의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는 곧 ‘어떤 현재를 살 것인가’와 직결되는 물음일 것이다. 삶의 자세와 형태, 현재를 결정하는 화두이며 명제일 것이므로!
글이 장황해졌다. 정면승부를 피하려다 보니 투구 수만 쓸데없이 늘어났다. 버거운 상대─안락사와 자살, 그와 관련된 생명윤리 문제와 종교(불교)의 역할과 한계,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였다. 끝까지 도망가는 피칭으로 마운드를 내려가고자 한다.
떠오르는 장면(scene) 하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올해 6월에 끝난 드라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장터할망 강옥동(김혜자 분)이 아들 동석(이병헌 분)에게 말한다.
“느 아부지는 좋은 데 갔을 거여. 동희도…”
“그걸 어떻게 알아?”(퉁명스럽게 어머니의 말을 받는 동석)
“안 오잖어. 둘 다 한 번 가서, 다시 안 돌아오잖어. 좋은 데 갔응께, 거그가 좋으이 안 오겠제.”(대략 이런 말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제주 방언을 몰라 워딩 그대로를 옮기지 못함을 용서하시라.)
배 타던 남편을 젊은 날에 풍랑으로 잃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몸으로 자식들과 살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물질을 나갔다. 바다가 무섭고 싫다는 딸 동희(동석이 누나)를 물질 끌고 갔다가 그예 잃었다. 동희 나이 19살이었다. 어디 첩살이할 데가 없어서 남편 친구의 첩실로 들어가 남들 손가락질받으며, 운신 못 하는 본처 병수발이나 하는 어망이 꼴 보기 싫어서 가출해서 떠돌던 하나뿐인 아들이다. 삶의 종착역에서 겨우 화해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퉁퉁거리는 그 아들과, 독백이듯 나누는 대화였다. 머릿속에 남아서 ‘보타락도해’와 겹쳐진다. 옥동삼춘 말이 맞을 거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그 모진 세월의 바다를 어찌 건널 수 있었겠는가? 그 풍파를 어찌 견뎌냈겠는가? 우리가 아미타부처님을 부르고, 관세음보살님을 믿고 기도하는 이유일 것이다.
* 부기(附記)
1. 인명, 지명 등 일본어 표기는 한글맞춤법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어두(語頭)의 청음은 그대로 살려서 표기하고, ‘つ’ 또한 ‘쓰’가 아닌 ‘츠’로 자의적으로 표기하였다.
“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말, 아무리 난해한 발음도 다 표기할 수 있다고 자부심 가지면서, 너네는 왜 일본어 청음, 탁음 표기는 구분이 안 되니? 얼마든지 청탁 따로 표기 가능한 한글 두고 왜 그러는 거야? ‘티벳’을 ‘디벳’이라거나 ‘캐나다’를 ‘개나다’로, ‘칠레’를 ‘질레’로, ‘터키’(지금은 ‘투르키예’지만)를 ‘더키’, ‘토론토’를 ‘도론토’라 하지는 않잖아. 그러면서 왜 유독 일본어만 語頭 청음을 탁음처럼 쓰니? 너무 이상할 때가 많지 않니?”
언젠가 외국인 친구가 한 말이다. 한국에서 유학하며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한 이력이 있는 그 서양 친구는 거짓말 좀 보태면 한국어 발음과 문법 실력이 나보다 정확했다. 한글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그러게, 네 말이 맞다. 동감이야.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 발음을 왜 ‘외래어 표기법’ 규칙에 따라 표기하라는 건 좀 웃기지? 특히 일본어는 청탁의 변별력이 얼마나 큰데…’
그 친구 지적대로 語頭의 청음을 마치 탁음처럼 표기할 때 어색하고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일본어에 한해서는 부조리한 표기 방식이다. 그 친구 말대로 이 글에서는 ‘외래어 표기법’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다지 설득력 있는 논리는 아니지만 독자 제위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츠노타니(⟵쓰노타니角谷), 하야카와 치에(⟵지에), 쿠카이(⟵구카이), 쿠마노(⟵구마노), ‘카모노 쵸메이(⟵가모노 초메이鴨長明), 쿠로시오(⟵구로시오黑潮) 등등의 표기 방식을 취했다.
2. 관세음보살님의 정토, 보타락가산으로 향하는 도해선(渡海船)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 쓴 깃발을 달고 간다.
3. 우리나라에서 ‘보타락도해’와 유사한 신앙이나 관습을 찾는다면 제주도 남쪽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이상향인 ‘이어도’ 관련 전설(혹은 설화)이 그에 해당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