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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칠성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해모수가 마지막 아홉 번째 단계를 설명했다.
“마지막이 순천인데요, 인간의 모든 욕망과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이 이 단계에 도달하면, 그를 가히 성인聖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칠성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지극한 감동과 감격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아, 그러니까, 호흡기도를 통해, 바로 그 감동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닮아서 성인聖人이 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성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에 들어가 평생을 그 안에서 살게 되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거죠.”
그 때 기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과 깊이 교통할수록 자기 내면의 추악함을 느끼게 된다고 제가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 자신을 너무나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고 애통스럽게 하고 부끄럽게 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깊이 교통할수록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기를 목마르게 사모하는 거죠.”
설이매와 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내일 일을 잊어버리고 천제님과의 교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화의 바다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때 군사들이 저녁식사를 가져왔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네 사람은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 호흡기도에 들어간다. 해모수는 삼신일체 천제님을 부르자마자 곧장 가슴에 감동과 기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도 삼매경에 빠져들기 위해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온통 마음을 집중했다. 바깥의 한풍은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환화궁의 대시전에는 고열가 임금이 높은 보좌에 좌정하고 문무백관이 그 앞에 도열해 있었다. 맨 앞의 수석에는 어전친위무사단장, 황궁시위대장 겸, 진국상장震國上將 삼조선부흥군 진군총대장 중부여후中夫餘侯 해로운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아래로 삼정승과 오가대신들이 서 있다. 백악산아사달의 욕살 고수리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설이매 공주 일행을 먼저 보내고 불안감을 참지 못해, 바로 뒤따라 온 것 같았다. 무관들도 서열대로 위풍당당하게 기립해있다.
문무백관의 열 밖 앞쪽 우측에는 설이매 공주를 비롯한 황자와 공주들이 횡으로 도열해 있었고 해모수와 기진, 삼칠성주, 그리고 웅심산성의 몇몇 문관과 무관들이 맨 뒤쪽의 중앙에서 임금의 보좌를 향해 서 있다.
문무백관들은 일제히 입의 포문을 열어, 웅심산성의 욕살을 살해하고 웅심산성을 찬탈한 해모수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열거하며 그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기비가 번조선 군대를 동원해 해모수를 도운 것은, 예부터 해모수가 기비와 함께 꾸며온 역모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성토하며 해모수를 엄히 다스리라고 주청했다.
중부여후 해로운은 시종일관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해모수는 고유기가 어떻게 피살되고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 일을 수습하며 웅심산성을 안정시켰는지 사실 그대로를 임금 앞에 담담하게 진술했다. 웅심산성의 몇몇 문무 관리들도 해모수의 말이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힘주어 그를 변호했다.
임금도 보좌에서 아무 말 없이 조용한 태도로 뭇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가끔씩 필요할 때는 질문을 던졌다.
“번조선의 군대가 장당경에 도착한 의도는 어디에 있는지 기진 공주가 명확히 말해주게.”
임금이 기진을 바라보며 하문했다.
“폐하, 그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의인이 악인들에게 억울하게 핍박을 받고 목숨이 경각간에 달려있으므로, 그 의인을 구하기 위해 악인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굴혈을 포위한 것이옵니다.”
그 때 문관 중 한 사람이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
“폐하, 그건 명백한 거짓이옵니다. 장당경에 온 것은, 나라를 뒤집어엎어 국새를 찬탈하려는 의도에서였음이 분명하오니, 통촉하소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 군대가 장당경에 핍근했다가 다시 백리 밖으로 물러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장당경 수비대가 우리를 백리 밖으로 쫓아내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장당경 수비대장님은 말씀해보소서.”
그녀가 무관들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무관들이 잠시 두런거렸지만 장당경 수비대장은 아무런 해명을 하지 못했다.
“우리 군대가 물러난 것은, 자칭 의군이라 일컫는 악인들의 부대가 의인 핍박하기를 멈추고 웅심산성에 대한 포위를 풀고 물러갔기 때문입니다. 그 군대가 장당경 쪽으로 철수해올 때 우리 군대는 그들을 막지도 않았고 그들과의 충돌을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본국으로 회군하지 않고 장당경 밖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소? 그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오?”
무관 한 사람이 물었다.
“신변의 안전에 대한 약속을 보장받기 위해서입니다. 의인이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의인의 안전을 돕는 것은, 열혈지사의 뜻이 아니더라도 우리 삼조선 백성이면 누구나 해야 될 본분이요 의무가 아니겠나이까?”
기진 공주는 의외로 차분하고 강경한 어조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지만, 의인은 맹호처럼 담대하다고 스승님께 배웠습니다. 만일 해모수 공자가 죽어 마땅한 죄악을 저질렀다면, 이 자리에 감히 출두하지도 못했을 것이옵니다. 이것이 그의 떳떳함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가의 대신이 다른 면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폐하, 그러나 우리 의군이 웅심산성의 대악大惡을 진압하러 갔을 때 적시에 번조선의 군대가 장당경을 에워싼 것은 무어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전에 아무런 모의도 없이 다만 정의감 하나로 행동했다는 것은 어설픈 변명에 불과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사전협약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진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악인들이 서로 맹약하고 나라를 팔아먹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책임은 의인들에게 있습니다. 악인들은 함께 언약하고 갖은 추태를 부리고 있는데, 의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한 사람씩 악인들의 결집된 세력과 대항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해서야 어찌 악을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의인이 한데 연합해 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의인들이 악을 막기로 서로 굳게 맹약했다면, 그건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할 일이지, 그게 무슨 흠이 됩니까? 대인께서도 냉철한 오성이 있다면 대답해보소서.”
기진의 말은 확실히 논리 정연해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문신들도 만만치 않았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이란 말입니까? 자기는 의인이고 남은 다 악인입니까? 누가 의인이고 악인인지는 낱낱이 파헤치고 조사해보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외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이번 웅심산성의 사태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자초지종을 세밀하고 공공연하게 수사해야 할 줄 압니다. 그 수사가 공명정대하다면, 누가 의인이고 악인인지는 대인 말씀처럼 그 때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천제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고 또 본인들의 양심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 동안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잠자코 있던 임금이 백악산아사달의 욕살 고수리에게 물었다.
“경이 보낸 편지에 의하면, 은퇴하고 조용한 곳에서 여생을 평안히 지내기로 작정하셨다는데, 그 편지는 경이 내 딸아이를 통해 보낸 것이 확실하오?”
“폐하, 그건 확실하옵니다. 소신小臣이 자필로 써 올린 서한이옵니다. 신의 은퇴를 윤허해 주시고, 속히 백악산아사달의 욕살을 임명하시어 백성을 위한 업무에 조금이라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조처해 주소서.”
“충신들이 모두 내 곁을 떠나면 난 누굴 의지하고 나라를 이끌어야 한단 말이오? 조용한 곳에 가서 살 수 있는 경이 부럽고, 백성을 등지고 떠날 수 없는 내 신세가 한없이 괴롭소.”
임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탄식하듯 말했다. 해모수와 삼칠성주 등은 속으로 안타까움과 한탄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임금은 문무백관을 훑어보며 말을 잇는다.
“경들 가운데 적임자 한 사람을 천거해 주시오. 내가 그를 알아보고 백악산아사달 욕살로 임명하리다.”
잠시 좌중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으나 추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때 삼칠성주가 입을 열었다.
“폐하, 저도 한 말씀 여쭙게 하소서.”
“경은 속히 말하시오.”
“고수리 대인의 장남 고승高昇이 훌륭한 인재라고 사료되옵니다. 그는 지금까지 일체 관직을 거부하고 초야에 묻혀 농사를 짓고 있으나, 신이 만나본 바로는 학문과 무예가 탁월하고 넓은 지역을 경영할 만한 도량과 헌헌한 기개가 있었사옵니다. 그를 지명하시면, 그도 폐하의 어명을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 사람 얘기는 일전에 나도 전해들은 바 있소.”
임금은 고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토록 훌륭한 자제를 두고 있는 경이 부럽소. 내게도 그런 아들이 있다면······.”
임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 천정을 바라보다가 고수리에게 말했다.
“오늘 이 시간으로 고승에게 백악산아사달의 욕살을 제수하니 경은 자제인 고승에게 삼가 어명을 받들도록 전하시오. 인수인계는 부자가 협의해서 처리하시오.”
이어서 임금은 좌측에 시립해 있는 내시들에게 물었다.
“환관 강씨는 어디 있는가?”
“폐하, 소인은 여기 있사옵니다. 명을 내리소서.”
뒷줄에서 한 늙은 내시가 앞으로 나와 부복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짐의 조서를 만백성 앞에 낭독하시오.”
임금이 느닷없이 조서 얘기를 꺼내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임금은 망치로 탁자를 두드리며 장내를 진정시켰다.
“경들은 모두 짐의 칙서를 읽고 그대로 준행하도록 하시오.”
환관 강씨가 부복한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삼조선의 백성은 삼가 들으라.
환웅임금과 국조성군께서 전하신 수천 년 제업이 밖으로는 외적外敵의 공갈위협을 받고 안으로는 내적內賊의 분탕질을 이기지 못해, 바야흐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백척간두 위에 있듯 위태롭도다.
이 나라를 세우신 선조 영령들과 백의민족 배달겨레를 한결 같이 우조佑助하신 천궁天宮의 상제님 앞에서, 짐은 부끄러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겠노라.
이에 짐은 오랫동안 고뇌하며 하나님께, 국가를 흥왕하게 할 인재들을 주십사 빌고 힘들여 물색하던 중, 새롭고 유능한 한 인물을 발견해 중직에 앉히니 문무백관과 만백성은 삼가 어명을 준행할지어다. 어명을 거역하는 이는 삼조선의 터전에서 영원해 추방하고 그의 집을 거름터로 삼으리라.
웅심산성 성주이자 대부여평국상장인 해모수에게 동북부여후東北夫餘侯를 제수하노라.
해모수는 엄숙히 어명을 받들고 근신하여 천제님과 짐이 하사한 직위를 십이분 완수함으로써, 동북의 조선 신민들뿐만 아니라, 대부여 백성 전체를 평안하게 하도록 힘쓸지어다.
동북부여의 만백성은 그의 다스림에 순종하고 삼조선의 모든 사람은 그를 옹위 후원하라.
신유 섣달 스무이레
대부여 천자天子 고열가
환관 강씨의 조서 대독이 끝나자 좌중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문무백관은 임금의 기습적이고 돌발적인 인사 발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로운은 조용히 서서 얼굴의 희로애락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설이매 공주와 기진 공주, 삼칠성주 등의 얼굴에는 놀람과 기쁨의 빛이 가득 했다.
임금의 조서는 해모수를 이미 웅심산성 성주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동북부여후에 앉힘으로써, 그에게 엄청난 실권을 실어주고 있었다. 이것은 국가 관직 상 중부여후인 그의 장형 해로운과 동등한 서열이었다. 하지만, 동북부여 지방은 중부여보다 땅이 너 넓으므로 어떤 면에서는 그가 더욱 막강한 실권을 쥐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백악산아사달을 중앙 기점으로 해, 북으로 흘러내려가는 아리하를 따라가 그 너머 흑수(흑룡강)에 닿기까지, 그리고 남으로 아리하의 발원지인 민족의 성산聖山 태백산(백두산)에 이르기까지를 경계로 삼고, 그 동북부 사방 수천 리 땅이 모두 해모수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웅심산성을 포함해 백악산아사달과 아사달, 영고탑 등 선조들의 유서 깊은 발상지와 고도古都가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다.
해모수 자신도 분에 넘치는 임금의 선물에 일순간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삼칠성주가 얼굴을 돌려 해모수를 바라다보았다. 해모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즉시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아뢰었다.
“폐하, 폐하의 성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사오리이까? 하오나 신은 불학무식한 범속천재凡俗淺才라. 폐하와 만백성의 기대를 저버리고 질곡에 빠질까 심히 두렵사오니, 청컨대 어명을 거두어 주소서.”
이것은 단순한 예의상의 사양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해모수는 자신의 연소함과 무능함을 생각하면서 그 큰 중책 앞에 두려워 떨고 있었다.
“경은 그런 말을 삼가게. 이미 조서가 발표되었으니 누구도 변개치 못하리라.”
임금은 한 마디로 못을 박고 조서를 해모수의 손에 넘겨주게 한 후, 자리에서 곧장 일어서서 퇴장하고 말았다. 내시들이 모두 줄을 지어 임금을 따랐다.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임금의 조서는, 해모수의 무죄에 관한 무언의 증명서이었을 뿐만 아니라, 해모수를 향한 임금의 전적인 지지였던 것이다.
그 때 해로운이 해모수에게 다가왔다.
“아우, 축하하네.”
해로운은 한 마디를 하고 다른 신하들과 함께 총총히 자리를 떴다.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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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2. 24. 봄이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