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나는 말로 하든 글로 쓰든, 줄거리 요약으로 시작하는 영화평에 그리 식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약된 줄거리는 그 사람이 영화에서 뭘 봤는지, 뭘 보는지 둘 다 말해주기 때문이다.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퀴즈쇼에서 엄청난 상금을 타게 된 자말은 경찰들에게 끌려가 고문당한다.
속임수를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콜센터 차심부름꾼"chai wallah" 따위가 변호사와 군 장성 들보다 더 똑똑할 수 있지? [경찰이 묻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자말, 그의 형 살림, 자말이 사랑하는 라티카의 이야기다. 셋은 극우 힌두 조직들의 학살극으로 어머니를 잃는다.
고아가 돼 앵벌이가 되고, 궁지에 몰려 좀도둑질과 다른 작은 범죄들로 연명한다. 몇몇 비참한 장면들은 정말 생생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낙관주의가 투영돼 있다. 이 이야기는 현대적인 동화다.
대니 보일 감독은 무명 배우들, 실제 슬럼가 출신 아역들과 뭄바이에서 촬영했다. 뭄바이는 초스피드로 배출된 극소수 백만장자들과 함께 발전해온 도시다. 동시에 수백만 명의 가족을 해체하고, 나락에 떨어뜨리는, 초대형 규모 판자촌의 도시다.
자말이 묻는다. “왜 다 여기(‘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 퀴즈쇼) 미쳐있지? ” 라티카가 대답한다. “ 탈출할 기회잖아. 다른 인생 안으로 걸어 나갈 기회야.” 퀴즈쇼에서 자말은 바로 그 기회 앞에 서게 된다.
이 영화는 애초부터 냉정한 리얼리즘을 넘고자 한다. 그래서 리얼리즘의 세계와 소재의 진지함이나 무게감에서 주저하고, 이탈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의 결과는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새로운 관객층에게 [인도] 사회 문제들을 던져주는 것이다. 해피엔딩은 결국 감독[ Director ]이 쓴 것[ “ D : It is written ” ]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 잘 알듯이.
이 포스터의 광고문구도 그렇고 국내 영화관 자막도 "How did he do?" 에 대한 정답 "D : It is written" 을 " 운명이다 "로 해석했다. 그러나 중의적인 표현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과 비교했다.
확실히 현대의 뭄바이와 19세기 런던은 아주 흡사하다. 탐욕과 잔인함이 손쉽게 폭로되는 취약한 구조의 사회다.
찰스 디킨스와 동시대의 영국을 살았던 혁명적 공산주의자 칼 맑스는 찰스 디킨스를 이렇게 평했다. “프로페셔널한 정치가들, 정치평론가들, 도덕주의자들 그들 모두가 발언한 것들을 모두 다 합친 것들보다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진실들을 세상에 보여줬다” ― 이 영화는 당신에게 그럴 수 있다.
실제 이야기들 : 인도, 뭄바이, 카스트, 학살, 그리고 야만에 맞선 저항.
인도의 권세가들은 뭄바이를 경제 기적을 이룬 곳으로 자화자찬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슬럼(빈민가)이 존재한다.
도시 인구의 49%가 슬럼독이다. 무슬림들은 힌두 우익들의 공격 때문에 고향을 떠나 왔지만, 뭄바이에서도 상습적인 습격에 시달린다.
뭄바이는 쉬브세나라는 강력한 파시스트 운동이 존재한다. [1995년 뭄바이 시장으로 쉬브세나의 지도자가 당선되기도 했다] 이들은 뭄바이의 마라티 종족이 외지 출신 주민들을 증오하게 만들면서, 힌두교도들이 무슬림들을 증오하게 만들면서, 중간 카스트들이 하층 카스트들인 달릿Dalit (불가촉천민)을 증오하게 만들면서 성장해왔다.
카스트제도는 자본주의 전의 것이지만, 현재 인도 권력자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목적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서구의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다.
농촌의 달릿들 : 상위계급의 횡포와 테러(살인과 강간까지)가 남녀노소에게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남성들은 호신용 나무막대기를 들고 다닌다.
달릿은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 마치 한국의 여성/비정규직/이주노동자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의 법 조항은 무용지물이다.
2004년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인도 구자라트주 암다바드. 인도 인구 3.5%인 브라만 계급이 25%의 불가촉천민 달릿의 생존권을 빼앗아버린 흉포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사진 속 12살의 여자애 이름은 혜탈이고 샤이레시는 15살의 남자애다. 샤이레시가 말했다. "학교폭력이 너무 무서워요. 우린 학교에 가면 다른 계급과 다른 자리에 앉아요. 달릿 분리정책이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달릿에게 다른 계급 아이들과 같이 놀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솔직히 전 다른 계급 아이들이 부러워요. 선생님은 다른 계급 아이들을 만지지도 말라고 하시거든요."
공업화 과정에서 달릿들이 도시로 몰렸다. 그들은 도시에서도 최하층의 일을 했다. 똥을 치우고 바닥을 닦았다. 인도의 상층계급은 자기 화장실과 방을 직접 치우는 일이 없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형 살림이 자말에게 자랑스레 보여주는 고층 빌딩들은 도시의 남녀 달릿들의 육체노동으로 쌓아올려진 것들이다.
오늘날 뭄바이 빈민가에는 힌두교도, 기독교도, 무슬림이 이웃해 살고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자말이 아니라 람 모하마드 토마스다. 힌두+이슬람+기독교식 이름이다!
하지만 16년 전만 해도 뭄바이에서 쉬브세나가 폭동을 일으켜 수천 명의 무슬림들을 학살했다. 쉬브세나 무리는 거리를 활보하며 다른 남자들의 바지를 벗겨 그가 할례를 했으면 [무슬림이면] 죽여버렸다. 무슬림 여성들은 보이는 대로 강간 당했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같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장됐었다.
2001년 미국의 9.11 이후로 인도 정부의 탄압은 더 극심했다. 무슬림들은 ‘내부의 적’ 취급을 당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어린 자말과 살림이 대학살극을 경찰들에게 알리지만, 경찰은 포커게임을 하고 있다]
2003년까지 인도의 집권 정당이었고 현재 제1야당[오늘이 총선]인 극우 힌두 정당 BJP는 집권하는 주마다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증오의 정치를 부추겼고, 2002년 구자라트 주에서 발생한 3천 명의 무슬림들에 대한 학살을 기획하고 배후 조종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8년 11월 뭄바이에서 경찰 최고위직을 노린 테러가 발생했다. 경찰 최고 책임자이자 반테러 담당 최고 책임자가 암살됐다. 그리고 80명 이상이 사망하고 25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의 보복 테러도 계속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종교 갈등이 아니다. 인도 정치는 뿌리 속까지 부패했다. 정치세력들은 서로 다른 사회 집단 사이의 갈등을 부추겨서 분열을 조장하고, 권력 유지와 확대에 활용해왔다.
그러나 뭄바이에는 힌두 극우세력이 동료 이슬람 노동자를 습격할 때 일부 힌두교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동료를 헌신적으로 보호해준 역사도 있다. 종교의 차이를 넘어선 단결의 역사도 영국에 대한 독립운동 시절부터 계속돼 왔다.
2004년 세계사회포럼WSF 이 인도 뭄바이에서 열렸다.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집회와 행진에 수십 만 명이 참여했다. 힌두교인들, 무슬림들, 기독교인들, 12~14살의 아동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행진해온 불가촉천민들이 참여해 전쟁과 신자유주의, 아동 노동, 카스트 차별에 반대했다.
2004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이 끝나고 치러진 인도 총선에서 BJP는 패배했다.
첫댓글 보고픈 영화~~
콜~~
이 영화는 사회 현실, 지고지순한 사랑, 스릴, 갱 등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다 나옵니다. 영화를 보는 매 순간 왜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 8개 부분은 휩쓸었는지 알만했지요. 결국 흥행을 노린 뻔한 해피엔딩이지만, 정말 아는만큼 더 보이는 흥미진진한 영화랍니다.
이 영화는 정말 동화가 맞군요. 어제 MBC <W>에 살람과 라티카의 아역 배우였던 두 아이가 나왔는데 여전히 슬럼의 흙바닥, 천막집에서 배곯며 살더군요.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혀 세우더니, 헐리우드의 억만장자들은 위선적인 미담 만들기로나마 이 애들에게 기부하는 그런 일조차 않하는군요. 인도 백만장자들도 마찬가지고. 과연 현실은 Slumdog Millionairer 가 아니라 Sclumbag Millionairer (쓰레기같은 놈 백만장자)입니다.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책 읽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인도 자체를 오해 하고 있는지 알수 있어요
ㅎㅎ....건이가 사업가적으로 변신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사회를 향한 날선 시각은 여전하구만...ㅋㅋ...느므 좋아~
작년에 이 영화 보면서..... 평소 인도인들은 요가, 명상, 아유로베다를 따르네. 참 신비로운 나라네. (카스트가 있지 않어? 하면)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야. 어떻게 물질적인 것으로만 행복을 따져? 라고 반문하는, 요가 족벌 재벌들이 운영하는 아슈람 테마파크를 다녀와서 이렇게 말하는, 한국이나 미국의 요가하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요가의 기원국 인도에 살든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결국 사회 문제에 눈감고 자신의 평화만 찾는 요기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그런 평화는 귀먹은 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