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촛대 (금등잔)
출애굽기 25장 31절 - 41절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금등잔은 성소 안 왼편에 있는 것으로 금 한 달란트를 망치로 쳐서 일곱 가지가 나오고 살구꽃 모양의 등잔으로 감람유로 불을 키고 있는 등잔입니다.
금 34 KG으로 망치로 쳐서 늘여서 만든 금 등잔입니다.
1 별칭 금등대(대상28:15)
2 재료 정금(正金)
3 무게 등대와 모든 부속기 총중량 : 정금 한 달란트
4 부속기구 등잔7개, 불집게, 불똥 그릇
5 놓는 위치 성소의 남쪽
6 목적 성소(聖所) 안을 비추기 위함
7 영적의미 세상의 생명이요 빛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요8:12,9:5)
8 제작방법 금을 녹여 형틀에 부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덩어리를 쳐서 만들었음 (높이, 폭등 칫수에 관한 계시가 없다)
휘장으로 가려져 어두운 성소를 밝게 하는 역할을 한 등대는 바로 우리 마음을 비추시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림자입니다.
1. 꽃받침
등대는 정금 한 달란트로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이어지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였는데, 가지마다 살구꽃 형상의 잔과 꽃받침이 있게 하였습니다.
살구꽃 형상의 잔을 만들 때 꽃보다 꽃받침을 먼저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31절에서 40절까지 계속하여,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되…” 하고 말씀하십니다.
꽃받침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아니하고 숨겨져 있으면서도, 꽃이 아름답게 피어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밑받침이 되는 일을 합니다.
출애굽기 25장 31절 이하에서 정금으로 된 등대를 만들 때, 하나님은 꽃받침에 관한 말씀을 왜 그렇게 많이 하셨는가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주고 있는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만, 구약에서는 여러 가지 사물을 통해 그림자와 모형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물을 통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지만 꽃이 지탱되도록 뒷받침해 주는 꽃받침은, 바로 우리 신앙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꽃이 아름답고 예뻐도 그 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이 떨어지거나 없다면, 그 꽃의 꽃잎은 한 잎 두 잎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같이, 아름답고 귀하고 놀라운 믿음과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남들보다 잘나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들 뒤에 보이지는 않지만 꽃받침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교회에서 꽃이 되기보다는 꽃받침이 되는 성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면서
꽃받침으로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살구꽃 형상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오는 세 가지마다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살구’라는 단어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전도서 12장에는 살구나무에 꽃이 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창세기 30장에는 야곱이 자기 외삼촌 라반의 양을 칠 때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껍질을 벗긴 그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물을 먹으러 온 양들이 그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민수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고, 믿지 아니하였을 때, 그들이 인도자에 대해 불평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각 종족을 따라 매 지파에서 지팡이를 하나씩 취하여 각 지파의 두령의 이름을 적고, 그 열두 개의 지팡이를 성소에 두게 하셨습니다.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썼는데, 이튿날 성소에서 지팡이를 꺼내 보니 아론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열렸습니다.
그 열매가 살구임을 보면, 아론은 살구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카드(shecad)라는 말인데, ‘살구’라는 말과 ‘내가 지킨다.’는 말의 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살구’라는 말 속에는 ‘지킨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자가 그 지팡이로 양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디와 꽃봉오리가 달린 각가지의 살구꽃송이 형상을 가진 세 잔들은 부활 생명 안에서 부활 생명과 더불어 개화하는 부활 생명을 상징합니다. (출 37:9-10).
각가지마다 세 개의 꽃송이가 있고, 이것은 부활을 가리킵니다.
아론의 살구나무 지팡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등불을, 새 생명의 빛 된 삶을 말합니다.
성막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방법이 나타나 있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생활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살구꽃의 의미는 언약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금등잔에는 살구꽃 형상을 새기고 꽃받침과 꽃과 잔이 있게 하였습니다.
왜 많은 꽃 중에 하나님께서 살구꽃을 택하였나를 살펴보겠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피는 살구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부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봄철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살구꽃이고 살구꽃은 부활의 생명을 예표합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죽은 나무토막이었지만, 밤새 이 죽은 나무토막에 싹이 났습니다.
그 열매는 사과나 포도가 아닌 살구였습니다. 이것은 그 지팡이가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싹이 나고 자랍니다.
아론은 하나님을 섬기는 싹이 난 지팡이, 부활의 생명을 가졌으며 하나님을 위하는 초대
제사장 입니다.
우리 모두는 단지 죽은 나무토막에 불과하지만 이 죽은 나무가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싹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마른 막대기 같은 사람이지만 부활하여 살구 열매를 맺듯 우리가 이러한 은혜를 하나님을 만난 자, 성소 안에 들어 온자가 받을 은혜를 예표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뤄진 교회 안에서 성도가 되려면 싹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부활의 생명으로 싹을 내야하고 살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죽은 나무토막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은 나무가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싹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나의 믿음의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나무가 아니라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 같이, 새 생명이, 부활의 생명이 이곳에 이른 믿음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의 빛에 나온 사람에게 살구나무 꽃이 피는 새 생명의 싹이 나오는 사람이 됩니다.
3. 등대 가지
등대 곁에서 나온 가지 여섯은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을 의미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지만,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우리 생각에는 선하게 보일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악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나아갈 때, 우리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악한 모습만 보고 실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6 이라는 인간의 숫자에다 1 이라는 주님을 합하여 7 이 되었을 때는 절대로 6으로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6 이라는 불완전한 숫자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더하여져 완전한 7 이 되었는데도,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모습이 6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은 사람의 수요 7은 하나님의 완전한 수입니다.
우리 인간이 예수님과 합하여 졌을 때에는 7이 되어 완전하게 됩니다.
4. 우리를 지키는 빛
성막 자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이 성막에 있는 등대도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없다면, 어떤 환난이나 위험이나 문제가 닥칠 때 우리 마음은 금방 두려움과 염려 속에 빠집니다.
우리가 두려움이나 염려 속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하게 믿는다면, 또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지켜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안다면, 우리가 염려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주님이 항상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고 실제로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난도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가 없습니다.
등대, 곧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지키시는가요?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빛의 권세 아래 있든지, 아니면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든지 둘 중의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고통과 번민 속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어두움의 권세에서 우리를 지키는 것은 총이나 칼의 능력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빛만이 우리를 지키며, 그 빛이 우리 마음속에서 밝게 비치면, 어두움의 세력이 우리 마음에 침범해 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우리 마음속에는 죄악 된 생각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하게 채워졌을 때, 악한 생각이 사라지고,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누구를 미워하거나
욕하거나 음란한 마음을 가지거나, 거짓되고 악한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가 없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마음과 어둡고 더러운 생각은 같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이나 근심 속에 빠지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 마음에 어두움이나 근심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가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등대가 빛을 발할 때 성막 안의 어두움이 다 물러가는 것처럼, 우리가 사단의 유혹이나 죄를 이기려고 애쓰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을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 마음속에 있던 어두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 빛이 우리를 지킨다는 것은,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빛을 쳐다볼 때 어두움으로부터 지켜집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악한 생각, 곧 음란, 살인, 탐욕, 속임, 교만한 마음이 차지하고 있다면,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소안의 금 촛대, 금 등잔은
가. 빛 되신 예수를 나타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10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향한 여러 가지의 의미 중에 떡은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빛은 인도하시는 예수님, 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계시가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내 지식만을 의지하는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 나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를 때에 하나님을 보게 되고 우리가 고침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완전한 신앙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나. 성소 안을 비추는 유일한 빛입니다.
성소에는 창이 없습니다. 모두 외부와 차단되어 외부의 빛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오직 금등잔에서 비추는 빛이 성소 안의 유일한 빛입니다.
지붕은 네 겹의 앙장과 덮개가 있고 벽은 황금으로 싼 송판임으로 빛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자연의 빛을 따르고, 자연의 영광을 받는 자는 주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오직 주님의 빛만 의지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오직 주님의 빛만 의지하고, 주님의 음성만 듣고, 세상의 빛과 내 생각을 버리고 살아
갈 때에 성령 충만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빛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그 말씀만 의지하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영과에 이르는 성도가 됩니다.
세상적인 내 사고 방식이나 다른 학문, 지식을 의지하는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인도하고 나의 모든 생활을 결정하는 사람이 될 때에 능력 있는 성도가 됩니다.
다.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빛을 비추게 합니다.
정결한 기름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의 기름이 준비되어 공급되는 사람만이 빛을 비추게 됩니다.
등은 있지만 기름이 없는 사람은 신랑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다고 마태복음 25장에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도 믿어야 하고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기름을 항상 공급받아야만 등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기름은 아침저녁 제사장들이 보충하고 간검하였습니다.
라. 금촛대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요한 계시록 1장 10절 - 16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금촛대의 가지는 금등잔의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옆구리에 창에 찔림으로 교회를 탄생시키었습니다. 신부는 교회입니다.
아담의 옆 갈비뼈에서 신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말씀하시며 극히 교회를, 신부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교회를 금등잔으로 나타내시었습니다.
금촛대의 용도는 빛을 발하는 것이 등잔의 목적입니다. 교회도 역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보여 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수가 빛 되심을 증거 하는 것도 교회의 사명입니다.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회는 실패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의 빛 되심을 전하는 복음 증거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를 걱정하여 주고 있습니다.
마. 심지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등불 관리 (레 24:1-4)
불집게(Wick trimmers)와 불똥 그릇 :
출애굽기 25장 38절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금등잔의 도구로서 불집게와 불똥 그릇이 있습니다. 이것도 정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불집게'는 등잔의 다 탄 심지를 자르는 가위(왕상7:49)를, '불똥 그릇'은 타고 남은 심지를 모아두는 그릇 (출25:38,민4:9)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27장 20-21절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안 1)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제사장들은 그것을 회막 안의 등불을 항상 켜 두어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서 꺼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길이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등잔에는 반드시 심지가 있어야 기름을 빨아 올려 불을 피우고, 심지가 불을 오래 켜게 되면 불똥이 생기고, 끄름이 나는 것은 등잔을 켜고 살아 온 옛 사람들은 다 아는 경험입니다. 심지가 바로 알맞게 조정되어서 타야 불이 밝고,
끄름이 안 생깁니다.
기름을 보충하고, 심지가 크면 잘라 주어야 끄름이 안생기고, 불이 밝아지고 심지가 작으면 불이 약하니 심지를 돋아 올려 주어야 합니다.
이 직무는 아침저녁 제사장들이 하여야 하는 직무입니다.
교인들 중에 심지가 너무 커서 끄름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내가 제일이다 하고 휘젓고 다니는 사람은 교역자가 심지를 잘라 주어야 할 사람이고, 너무 풀이 죽어 있는 사람은 심지를 돋아 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교역자, 제사장이 하여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는 불집게와 불똥의 기구로 나를 조절하고, 자르고, 불똥을 끄집어 내고하여, 항상 최상의 빛을 발하는 내가 되도록 겸손과 다듬는 관리, 간검이 있어야 합니다.
금등잔은 항상 제사장들이 아침저녁에 불을 간검 하였습니다.
기름을 보충하고, 성령의 불이 거지지 않고 약하거나 끄름이 나거나 하지 않게 교역자는 보살펴야하고, 교역자들의
인도에 복종하면서 나를 다듬으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 둘 등대를 만들 때 불집게와 불똥 그릇을 함께 만들어 관리하라 하셨습니다.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출25:38~39).
제사장이 매일 등대의 일곱 등잔에 있는 심지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여 등불들이 어두운 성소 안을 환히 밝힐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밤새 등대가 빛을 발하다 보면 등잔에 가득 부어놓은 기름이 다 닳아서 그만 실로 된 심지가 타들어가 숯같이 된 불똥이 생기고 맙니다.
이 불똥이 그대로 있으면 불을 켤 때마다 그을음이 생겨 성소 안을 더럽히고 불의 밝기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불집게로 일일이 등잔 심지에서 불똥을 떼어 그릇에 담아놓아서 등대 불이 언제나 그을음이 없이
깨끗하고 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불집게로 불똥을 떼어내라
우리도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심령에 불똥이 생기고 그을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얼굴이 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의 활력도 잃습니다. 불똥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사람에게서는 항상 불평불만이 나오기에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받습니다. 빨리 그 사람에게서 불똥을 떼어내야 그 주위도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서 불만불평의 끼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아, 불똥이 생겼구나. 하고 그 부분을 불집게로 떼어내야 합니다.
정금(正金)으로 만든 불집게는 하나님 말씀을 상징합니다.
신구약 말씀을 중심으로 선포하는 설교 말씀은 성도의 신앙 심지를 조절하고 불똥을 떼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여 불똥과 그을음을 제거하고, 설교 말씀을 듣고 성령이 충만해야 그때부터 온전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불똥을 떼어서 그릇에 담으라는 말입니다.
심지가 올라가지 않게 잘라줘야 합니다
등잔 심지에 불똥이 생기는 또 다른 원인은 심지가 너무 많이 나와서입니다. 너무 높게 올라간 심지는 내려줘야 합니다. 심지가 높이 올라가 있으니까 불꽃이 커져서 천장까지 닿아 그을음이 생기고 불똥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심지가 올라와서 불꽃이 커지면 옆에서 볼 때는 밝은 것 같지만, 끄트머리에 그을음이 생겨서 성소 안을 새까맣게
만듭니다.
교우 중에도 등잔 심지가 너무 올라간 것처럼 의욕이 넘쳐서 전도도, 충성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는 이가 있습니다.
이런 이는 대부분 절제를 못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봅니다.
우리는 내게 그을음이 생겨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지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잦습니다. 그래서 절제하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불똥을 제거하고 심지를 적당히 내려야 천장에도 그을음이 끼지 않고 전체가 빛으로 환해집니다.
성령 충만과 절제의 균형을 맞춰라
신앙생활은 성령 충만과 함께 성령의 열매인 절제가 필요합니다(갈5:22~23).
충만과 절제라는 두 가지를 잘 안배해야 인격적으로 흠이 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이 주신 분량, 범위를 넘어가지 않게 절제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남이 상처를 받고, 교회 안팎에 지장이 있다면 즉각 절제해야 합니다.
등잔 심지에 생긴 불똥을 떼어내듯, 신앙생활에 나쁜 습관과 타성이 생기면 즉시 떼어내야 합니다.
등대의 용도는 오직 성소를 밝힐 빛을 발하는 데 있기에 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전부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의 빛을 발하는 데 방해하는 일, 복음의 빛을 발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는 모두 없애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내 인격과 내 지식을 성령의 기름을 공급받아 예수 안에서 밝게 나타나야합니다.
등대가 성소를 밝히듯, 우리도 복음의 빛을 발해 세상을 밝히는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등대로 만드시는 대장장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고 싶으신 대로 만들어져 복음의 불을 밝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출27:20~21)고 하시면서, 이 등대의
불이 항상 꺼지지 않게 간검하라고 하셨습니다.
‘간검(看儉)’이라는 말은 ‘두루 살피어 검사하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만일 빛을 발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어둠이 더욱 짙어질 것이요, 갈 바를 모를 것입니다. 성도는 빛을 발해서 먼저 자신이 갈 바를 깨달아야 하고, 이웃이 그 빛을 보고 전부 다 갈 길을 깨달을 수 있게 이정표로 삼을 만한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바. 성도가 성소에서 제일 먼저 행할 일이 금등잔의 일입니다.
등불이 없으면 떡상을 찾을 수 없고, 향단의 향불도 피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신앙인이 된 후에 금등잔의 일을 먼저 행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의 믿음의 단계로는 번제단, 물두멍, 금촛대, 떡상, 향단, 지성소에 이르는 순서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뛰어 넘는 일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법입니다.
우리 성도는 먼저 성령을 받으면 빛 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복음 전도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를 항상 돌아보면서 겸손하게 교역자의 지도를 잘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때에 금촛대의 일을 잘 행하는 성도가
됩니다.
사. 등대의 영적 의미 : 성도들의 빛 된 삶을 상징
브사렐(출37:1)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식양대로 성소를 밝히는 기물인 등대와 그 부속 기구들 (불집게, 불똥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등대는 순금 한 달란트(등대와 부속 기구들의 무게를 합한 총중량)를 사용하였는데, 금을 녹여 형틀에 붙는 주물(주물)방식이 아니라 덩어리를 쳐서(이것을 공학용어로는 단조=鍛造라고 한다)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등대가 수공(手工)으로 순금을 두들겨가면서 완성된 것은 등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점(계21:21-23)에서 참 빛이신 예수께서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비추시기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상징합니다. (요1:5-11).
그런데 이 등대는 중앙의 수직 줄기를 중심으로 여섯개의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 줄기에 달린 여섯개의 가지에 달린 등이 빛을 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민8:3). 이러한 식양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되어 있는 오늘날의 성도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고 하셨습니다.
한편 이 등대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감람유(올리브유)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슥4:1-6).
그러므로 성도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사60:1,행2:3)
정리:
오늘 본문은 성막(tabernacle)의 성소(the Holy Place)내에 위치했던 등대(lampstand)의 등잔불에 관한 규례입니다.
성소 안에는 세가지 것이 있었습니다.
분향단과 진설병상과 등대입니다. 등대는 남쪽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등대는 7개의 등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등잔은 언제나 불이 켜져 있어야 했습니다.
등대를 통해 주신 영적인 원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절을 보면, 등잔에 ‘불을 끊이지 말고 켜 놓아라’ 고 했습니다.
레위기 24장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켜라고’ 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주요 의무입니다.
제사장은 성소의 등대에 끊임없이 불을 켜 놓아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막안은 칠흑같은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안에는 창이 하나도 없습니다.
위의 천정도 4개의 덮개로 덮어져 있어 빛이 전혀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캄캄합니다. 만일 등대가 없다면 성소는 어두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계속해서 불을 켜 놓아야 했던 것입니다.
성소 안과 성소 밖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소 밖은 낮에는 밝지만 밤에는 빛이 없기 때문에 어둡습니다.
그러나 성소 안에는 밤일지라도 언제나 불이 켜져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소 안에 있는 사람(믿음의 사람)과 성소 밖에 있는 사람(믿음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소 밖에 있는 사람은 낮에는 그런 데로 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문제입니다. 온통 캄캄하기 때문에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밤이 오면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밤이 오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소 안에 있는 사람도 밤이 오지 않는 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성소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도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소 안에 있는 사람은 밤이 와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비쳐주는 밝은 빛이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다는 것은 소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고통스러운 밤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고후 1 : 8-9 에 보면,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이 얼마나 컸던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다고 했습니다.
마치 사형 선고를 받는 듯한 심한 고생으로 고통이 밀려 왔지만 그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생명의 빛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빛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빛이 되셔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8절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이 귀한 고백이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절, ‘등잔불을 정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3절-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장 앞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등잔불을 정리하라는 것은 등잔불을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은 등잔불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가져오도록 해야 했습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투명한'(transparent) 또는 '빛나는'(bright),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이물질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기름이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순수함을 원하십니다.
기름을 짜려면 으깨지고 늘려지고 쥐어짜져야 기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루시고 훈련시키고 으깨셔서 순결한 기름을 뽑아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신부로 세우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순결한 감람유로 등잔불을 붙일 때 그 불은 온 성소 안을 어두움이 전혀 없는 밝은 빛으로 환하게 비취게 되는 것
입니다.
제사장은 이 순결한 감람유를 금 촛대에 붓고 불이 잘 탈수 있도록 심지를 잘 조절하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잔불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이 촛대를 교회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여 어두움 가운데서도 여전히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세상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정리해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사명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밝히고 전달하는 귀한 역할이 주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같은 빛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빛은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빌2: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소안의 불을 관리하는 제사장으로서,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그 불이 꺼지지 않고 밝히 빛이 나도록 애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