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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행운의 법칙 스크랩 정조를 보필했던 번암 채제공
김박사 추천 0 조회 26 08.04.24 09: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조를 보필했던 번암 채제공


TV연속극 때문에 정조 시대의 이야기들이 생각됩니다.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된다”(家貧思賢妻 國亂思良相)라는 말이 있듯이 어질고 능력있는 재상 한 사람은 어려운 나라를 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정조 때 어진 재상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번암 채제공이었습니다.

정조 2년인 1778년에 채제공은 진주사(陳奏使)로 북경에 갔습니다. 그런 사이에 홍국영의 누이가 빈(嬪)으로 들어와 숙창궁(淑昌宮)의 주인이 되어 오빠 홍국영과 함께 궁중을 쥐락펴락하면서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의례대로 번암은 귀국한 뒤 대전(大殿)에 문안을 아뢰고 곤전(坤殿)에도 귀국인사를 올렸는데, 그동안 없던 숙창궁에도 인사를 올려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홍빈(洪嬪)과 홍국영의 세도로 궁궐이 공포분위기에 싸여 있을 때, 어진 재상 채제공은 “숙창궁의 내시라니, 숙창궁의 내시가 무슨 말이냐!”라고 호통을 치고는, 노기어린 목소리로 “절목이 무엇이냐. 하늘에는 두 해가 없는 것인데 승통(承統)의 빈궁(嬪宮)이 아닌데 어떻게 문안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이행을 거부했습니다.

오만방자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던 숙창궁, 오빠의 위세를 믿고 궁중에서 칼바람을 일으킬 때, 오직 채제공만은 그 위세에 당당하게 맞서 대감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어진 재상의 모습을 떨쳤습니다. “이날 번암이 홍국영의 누이 숙창궁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떨며 두려워 얼굴빛이 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라고 다산은 그의 글「번옹유사」에서 자랑스럽게 기록했습니다.

“숙창궁 내시가 무슨 말이냐?”라고 번암이 외치자, “곁에 있던 재신(宰臣)이 번암의 옷깃을 끌며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가만히 말해주기를 새로운 절목이 있다고 했다”라는 대목에서 번암의 기개가 어떠했는가를 그냥 짐작하게 해줍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권력의 위세에 눌려 있을 때, 정의롭고 굳센 어진 재상은 두려움 없이 옳지 않음을 밝히고,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펴야 합니다. 요즘 TV에 채제공은 지당정승처럼 자신의 의견 없이 그냥 따라다니는 것으로만 나오는데, 역사적 사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험악한 정치적 분위기에서도 당당하던 번암은 영의정까지 오르며 정조의 치세를 보필하고 다산같은 후배들을 키워준 탁월한 명정승이었습니다. 요즘도 그런 재상이 그립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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