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삼성서울병원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병원문을 나서는 내 마음이 어찌 그리 가벼웠던지 나도 의심을 했었다. 불치란 곧 시한부 인생인데도…. 너는 아비의 병을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비치더구나. 그날 달리던 고속버스 차창에 어른거리던 너의 아련한 모습, 멀리 떠가는 흰 구름 한 점도 품위 있게 보이고, 지나온 내 인생 역정(歷程)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가슴에 시린 바람, 혼자 떠는 문풍지의 울음까지도 고통이었다. 불치란 말 한 마디를 두고, 회억(回憶)에 눈물짓는 나약한 사내의 몸부림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단다. 병원문을 나올 때는 마음 후련했던 내가 집에 돌아와 우는 아이가 되었으니, 참 부끄럽더구나.
불덩이 같은 젖먹이 너를 업고, 눈발 흩어지던 밤길을 헤매며 병원문을 두드리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네가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인생 칠십 문턱에 들어선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인과(因果)였다. 명확한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삶의 미분화(未分化)는 어려움을 부딪칠 때마다 내 귀에 대고, "삶과 죽음은 하나이니 초월해야지" 라고 속삭여 주었다. 인간의 삶이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단다. 내 몸, 내가 잘 못 다스려 얻은 병(病), 어찌 순명(順命)으로 받아 들이지 않으랴.
사랑하는 진아, 눈만 감으면 와락 달려드는 선연한 그리움인 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내가 떠 안고 떠나고 싶단다. 나는 이제, "무위(無爲)뿐이다" 하는, 생각이 밀려 올 때면, 꼭 너를 떠올리며 남은 날을 새겨 간다. 잡다한 미혹의 불씨. '나'를 얼른 불태우고 싶고, 때론 인생을 마음껏 치장하고 싶은 환상에서 훨훨 벗어나고 싶다. 진아. 이 아비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병을 앓아야 천국행 공부를 한다"던 구상(具常) 시인의 말도 있지 않더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죽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안 했더냐. 죽음이란 삶의 또 다른 표현이겠지.
진아. 넌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네가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을 내어 도서관에 들른다니 너무 반갑다. 깨어 있는 영혼에는 세월이 스며들 틈이 없단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자기 인생에 월계관을 씌운 사람들은 설움의 자리마다 현명한 자기 공부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네 삶의 영광은 너 자신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진아. 나는 어제 밤 촛불을 밝혀 놓고, 유서를 썼단다. 천길 절벽 앞에서 내 생애와 대화를 나눠 본 것이다. 그런데 유서를 쓰는 마음이 부끄러움 범벅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맑게 울리는 물결 한번 되어준 일 없고, 길을 잃은 자를 위해 내 몸 한번 태운 적이 없으니 사실 낯 뜨거운 유서가 될 수밖에…. 인생을 낭비한 죄가 너무 커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사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땐 마음이 참 편하더구나. 도연명(陶淵明)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쓸 때,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인데도 벼슬살이보다 마음이 편하다" 했다는데 오늘 내 마음이 그 경지쯤 되었던 모양이다. 마음 속의 때를 칼칼히 씻어 비우고 썼던 유서여서일까. 골 깊은 죄의식에서 오는 허심탄회한 참회요, 고백이었을 뿐, 안개빛 원망은 한점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떠난 후, 눈물일랑 아예 거두고, 유서를 꺼내 읽는 것으로 이 못난 아비를 머리 속에서 지워 버려라.
진아. 며칠 남은 인생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주어진 삶을 후회 없이 알차게 마무리하고 싶다. 끝까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에겐 반드시 새로운 의미의 부활이 약속된다. 나는 이 순간도 스스로 눈을 뜬 완전체(完全體)이고 싶다. 이성과 지성을 통해 내 마음의 운행을 지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오늘도 범사를 잊고 플러스 발상을 부추긴다. 선현(先賢)의 빛나는 말씀이 이끄는 원력(願力)의 길을 가련다. 또한 내 투명한 비원을 사랑한다. 그리고 눈만 감으면 와락 달려드는 선연한 그리움인 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내가 떠 안고 떠나고 싶단다.
진아. 어버이날에 네가 보내준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도 사고, 과자도 사고, 빵도 샀단다. 그런데 어제는 스승의 날이라 하여, 한 제자가 정갈한 동양난 한 폭을 보내 주었다. 꽃의 향기도 좋으려니와 그 문향(聞香)이 더 좋더구나. 내 나이 문향을 알만한 나이 아니냐. 꽃송이 앞에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듣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그 꽃 속에 네 얼굴이 사뿐이 와 앉더구나. 허나, 며칠 후면 저 꽃도 곧 지겠구나. 내가 저 꽃과 무엇이 다르랴. 인연의 대해(大海)에서 부녀(父女) 천륜의 정이야 망각의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는 법, 허나 피멍을 들게 하는 고통들도 시간 속에 뜨고 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세월의 물때가 묻어서 무디어 진다니 내 병을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 아비, 나를 정복하고, 나를 복종시킨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불치(不治)와 완치(完治)가 마음 한가운데 있는 것을….
진아.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아픈 과정이야" 중풍을 앓고 있는 옆집 아저씨의 말이 세월의 테잎에 감겨 있다가 잔잔한 음악처럼 흐른다. 이 편지가 이승에서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천진한 아기 웃음 같은 꽃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마른 고독 이야기만 늘어 놓고 말았으니 미안하다.
진아. 이 못난 아비 걱정에 눈시울 붉어진 너의 망운지정(望雲之情)을 사랑하고, 고독한 미완(未完)의 내 흰 머리칼을 사랑하면서, 남은 날들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 가련다. 참, 너의 집에서 떠나오던 날, 버스를 기다리며, 네가 사준 호박죽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시골집에 와서 마구 자랑을 했단다. 그 푸짐했던 단맛의 향수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극심한 소화불량으로 한 수저도 먹질 못했다. 어느 날, 눈물이 핑돌게 하는 햇살 같은 밝음 속에서, 우리 다시 만나 그 호박죽 또 먹어 보자꾸나. 그리고 귓속말 늘어놓고 진하게 웃어 보자. 살아 있음에 눈부신 오늘, 너를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랑하는 내 진아. 보고 싶다. 내 그리운 자유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을 것 같아서다. 여름감기가 더 무섭단다. 감기 조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