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참지 못한 아리안족 B.C 2360년경
쑥과 마늘의 시련을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 나간 호랑이로 표현된 부족은
과연 어떤 민족일까?
그들은 곡의 땅에 안주하지 않고 환웅을 따라온 마대 가문의 일부로
노아의 막내인 야벳(백인종)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시베리아에서 쑥과 마늘을 먹는 고난을 참지 못하고 중앙 아시아로
남하한다. 환웅을 사랑하는 야벳족의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이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후 그들은 중앙 아시아에서 내려와 인도로 진입하여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사치와 향락에 찌든 드라비다 문명을 멸하고 갠지스 문명을 건설한다.

채색 토기는 토기에 채색을 하고 물고기 문양을 한 것인데.
엘람족들이 주로 썼는데. 엘람족들과 같이 이란에 사는 야벳족들이 이어 받았다.
야벳족은 주로 바닷가에 사는 민족으로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백인종의 조상들이다.
야벳족들은 그리스와 유럽 일대에 주로 살며 이 채색 토기의 문화를 퍼트렸다.
이 채색 토기의 북방,동방으로의 이동을 살펴보면 첫째로 환웅을 따라간 야벳족들이
아라랏산을 넘어 모스크바로 가다가 마곡의 자손들과 남아 거기에 정착한 것인데.
그래서 흑해 지방에는 채색 토기가 많이 분포해있다.

모든 야벳족이 러시아 땅에 주저 앉을 때 오직 야벳의 마대 가문만이
여전히 환웅을 따라 우랄 산맥을 넘어 갔다.
그들은 노아의 예언인 '야벳은 셈의 장막 안에 거해야 창대해지리라'를 굳게
믿은 것이다.
지도를 보면 그들은 채색 토기를 쓰지 않아서 우랄 산맥을 넘어서의 시베리아까지의
이동 경로에는 채색 토기는 발견되지않고 빗살무늬토기만이 발견되는데.
채색 토기는 토기에 채색을 하고 문양도 넣어야 하므로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의
문화에는 적합치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베리아를 가는 마대 가문은 환웅의 셈족들같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내하며 가는데 많이 지쳐 있었다.
아마 그들 중의 일부가 대이동에서 중도 하차했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무씨사 벽화와 단군 신화에서 '호랑이'로 비유되는 것이다.
이 후 채색 토기의 이동을 살펴보면 알타이를 포함한 중앙 아시아에 대규모의
채색 토기가 밀집되어 있다가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그 곳은 바로 인도 쪽이었다.
마대 가문이 남하할 때 그들을 따라간 다른 부족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인도에는 '힌두쿠쉬' 산맥이 있는데.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의 가문에는
장자인 구스의 가문이 있다. 구스인들이 천산 산맥을 지나 힌두 쿠쉬 산맥에서
야벳의 형제들과 헤어져서 타림 분지로 들어섰기에
야벳을 의미하는 '힌두'와 구스를 의미하는 '쿠쉬'가 서로 헤어졌다는 뜻에서
힌두 쿠쉬라 불린 듯 싶다.
무씨사 사당 벽화의 환웅의 역사를 그린 그림의 맨 밑의 층에는 말을 탄 환웅이
대이동에서 중도 하차하는 호랑이 부족들을 보는 장면이 있다.
싸움에서 패한 호랑이가 사람의 등에 업혀 실려 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중 특이한 장면이 호랑이 뿐만 아니라 소도 사람의 등에 업혀 가는 모습이다.
노아의 장자 셈의 장자인 엘람은 소의 머리 '신농(神農)'으로 불렸는데.
이는 엘람 사람들이 소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 또 소를 농경에 최초로
사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엘람인들이 남긴 토기들을 보면 소,양이
많이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중국의 서북방에는 자신들을 신농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강족(羌族)들이 산다.
이들이 왜 서북방에 거주하는지는 역사에 실려있지는 않지만
역사를 보면 원래 엘람은 마대와 같이 이란과 자그로스에 거주했던걸 알 수 있다.
그들은 한 때 자신들과 같이 살던 형제들이 혹시 다른 곳으로 가다가 위험한 일을
당할까봐 그들과 같이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엘람에서 일부가 갈라져서
마대를 따라간다.
그래서인지 인도 사람들은 소를 좋아한다.
마대 사람들이 힌두 쿠쉬 산맥을 넘어 인더스강에 진입했을 때 그 땅은 그들이
기대하던 빈 땅이 아니었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미 그 지역에는 '드라비다족'이 먼저 와서 '인더스 문명'을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비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
이 드라비다 사람들은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이고 드라비다어의 어휘에는
'나(I)','너(You)','엄마','아뻐지' 등의 한국어와 비슷한 어휘들이 많다.
('멀고 먼 힌두쿠시' 김병호 저 42p)
드라비다는 그 언어의 구조로 보아 분명 셈에 속하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유적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생활 습관은 모두 비(非)셈적이다.
그들의 가족 제도는 셈족과는 달리 여자를 중히 여기는 모계 사회적 유풍이 있고
그에 걸맞게 그들의 종교는 바빌론이나 가나안처럼 함계의 복잡한 신들의 계보를 가진
여신 중심의 종교였다. 또 드라비다족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로 전해진다.
"인도의 토착 인종(드라비다)은 검은 피부에 얼굴이 넓적하고 코가 낮으며
키도 작은 인종이다. ..."(인도사 108 장면 박금표 지음 민족사출판 29p)
이들이 검은 피부라는걸로 보아 이들은 수메르가 앗시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했을 때
수메르인과 혼혈한 가나안 사람들이 피난해온 걸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수메르인들같이 구운 벽돌로 대규모의 신전과 창고 목욕탕들을 건축하여
모헨조다로나 하라빠같은 거대한 도시 문명을 일구어 냈고 수메르인들이 즐겨 쓰는
홍옥수 목걸이나 여러 각종 신화,전설을 담은 그림이 있는 수메르식 도장을 사용한 것이다.
세계사를 보면 이 인더스 문명이 사치와 향락의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 '아리안(Aryan)'이라
불리는 종족이 인더스 강에 출현한다.
"아리안족은 대체적으로 폴란드에서 중앙 아시아에 이르는 커다란 늪지대에서 원래
살았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스피해 유역과 남 러시아 늪지대에서 살았던 이들이
목초지를 찾아 유럽 소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퍼져나갔다."
(조킬태 '인도사' 40p)
이 아리안족들이 바로 우리가 아는 그 마대 가문이다.
원래 마대(메디아) 사람들은 자그로스 산맥의 우르미아 호수에서 말을 타던
유목 민족이다.(위키 백과)
중앙 아시아에 거주하던 아리안족이 인더스 강 유역으로 넘어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B.C 2000년경부터이다.
그들은 처음에 침략자가 아니라 가축과 가재도구를 가지고 평화적 이주민의 형태로
들어왔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신앙과 생활 습관이 드라비다족과
갈등을 일으켰다.
아리안족은 비록 야벳의 혈통이지만 환웅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문화는 오히려
셈의 전통을 따라서 가부장적인 문화였고 그들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겼으며
셈의 전통을 따라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여성들은 부정을 탄다고 하여 제사에
참여를 금지하였다.
아리안족에서는 남자에게만 재산 상속권이 있었고 특히 장자 상속제가 확립되어 있으며
철저하게 일부일처제를 지켰고 간통과 도둑질을 한 죄는 반드시 사형으로 다스렸다.
그들은 처음에 유목민으로 들어왔으나 인더스강 유역에 정착하여 차츰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정착 생활에 들어갔으나 드라비다의 음란스럽고 사이비적인 종교와 문명을
증오하여 강력한 기병과 철제 무기로 드라비다를 멸망시키고 갠지스 강에 그들의
세력권을 확고히 잡아 놓고 갠지스 문명을 건설했다.
아리안족은 드라비다의 음란한 종교와 풍습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그것을 영구화하기 위해서 계급 제도(카스트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노아가 '가나안은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리라'고 예언한 말씀을 훌륭히
지킨 것이었다.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창세기 9장 25절 KJV)
이 카스트 제도를 살펴보면 최고 계급은 제사장이고 아래는 정치적 지도자로
정치가보다 제사장이 우월했음을 알 수 있는데.
왕이 즉위할 때에는 반드시 제사장의 의식을 거쳐야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농공 상인의 평민 계급이 있고 그 다음은 최하층으로 수드라(Sudras) 계급인데.
이들은 모두 드라비다족이다.
하지만 제사장 계급이 후에 타락하고 카스트 제도에 반발하려는 철학자들의
움직임이 있자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경전 '베다(Veda)'를 만들어
드라비다의 다신교적인 요소를 받아들이고 카스트 제도는 영구하다는걸 증명하기위해
인간은 계급 안에서 윤회할 수 밖에 없다는 윤회론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힌두교이다.
하지만 사제 계급의 독선에 반발하여 여러 저항들은 끊이지 않았고 자이나교 불교 등의
종교들이 튀어나오다 결국 인도는 수억의 신이 산다는 잡신의 천국이 되어버린다.
이제 그들이 만주까지 온 환웅의 후예인 우리 민족으로부터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A.D 40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도마로부터 그들은 복음(福音)을 받아들였고
만주와 한반도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중국에게서 '군자의 나라'로 불리던
고구려,백제,신라,가야에게 인도의 공주 허황옥이 도마가 전한 복음을 전했다.
이제 우리가 그 복음을 다시 전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