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신불립(無信不立) ◈
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낙천은 여러모로 이례적이지요
무엇보다도 박용진은 지난 대선 경선, 전당대회에 모두 출마해
연달아 2위를 기록한 민주당 비주류의 상징적 인물이지요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는 “박용진 의원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화합을 강조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박용진이 비주류의 상징성만 지닌 것도 아니지요
국회의원이 받는 상 중에 권위가 높은 축인 백봉신사상
베스트10을 3년 연속 수상할 만큼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도 좋았고
지역 기반도 튼실했어요
반면 박용진을 꺾은 나꼼수 출신 정봉주는 박용진과 여러모로 대조적이지요
거친 언사, 탈당과 복당, 여러 기행(奇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인 데다가
해당 지역에 특별한 연고도 없어요
심지어 나이도 열 살 이상 더 많아요
하지만 정봉주는 친명 강성 당원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 덕에,
민주당 공직평가위가 박용진에게 매긴 감점 30% 덕에 공천장을 따냈지요
박용진에 앞서 임종석, 노영민, 홍영표, 박광온 등 지명도 있는 인물들이
줄줄이 낙마했지만 이 사태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민주당 소장 개혁파의 대명사였던 ‘조·금·박·해’ 중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격이기 때문이지요
민주당이 그래도 중도화·외연확장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은 8년 전,
지난 20대 총선 때였어요
원내 1당을 차지했고 국민의당 녹색 돌풍에 호남을 내줬지만
수도권과 충청을 석권했고 영남에서도 약진했지요
그때 국회에 처음 등원한 이가 여럿이지만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네 사람이 초반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대구에서 태어난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다가
최순실 정윤회 부부의 문제점을 일찍 경고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조응천,
엘리트 검사였지만 피의자의 권리에 대한 글을 썼다가 옷을 벗었고
안철수 돌풍의 축으로 활약했던 금태섭,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풀뿌리 정치인 경력을 갖고
민주당에 합류한 박용진,
흙수저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부산에서 문재인과 같은
로펌에서 일했던 김해영은 고향과 정치적 뿌리, 연배도 제각각이었지만
곧장 두각을 나타냈지요
해야 할 말을 하는 소신파로 주목받으면서 ‘조·금·박·해’라는
집단적 별칭을 얻었어요
이들은 당에서도 대변인, 법사위 간사, 전략위원장 같은
괜찮은 보직을 받으며 중용됐지만 그 기간이 길진 않았지요
‘조국 사태’가 분기점이었어요
“이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던 네 사람은 집중적 공격을 받기 시작했지요
그중 첫 타깃은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의 사과를 요구하고
그의 장관 임명 반대를 선언했던 금태섭이었어요
이번에 박용진 자리를 꿰찬 정봉주가 4년 전 경선에선
금태섭 자객 노릇을 했지요
성추행 논란이 불거져 그가 낙마하자 김남국이 나섰다가
양지에 전략공천을 받고 빠지자 다른 인물이 바통을 이어 받아
금태섭을 눌렀어요
금태섭이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은 직후였지요
그 이후에도 민주당은 금태섭에게 공수처 법안 표결에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렸고 그가 제일 먼저 당을 떠났어요
넷 중 막내로 얌전한 축인 김해영은 선출직 최고위원에도 당선됐지만
조국 사태, 민주당의 1차 위성정당 창당 과정에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드러내 역시 강성 지지층의 타깃이 됐지요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도 검수완박 반대,
이재명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는 등 분명한 다른 목소리를 낸 끝에
지역위원장 직도 사퇴하고 지금은 다둥이 아빠로서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 역시 백봉신사상 베스트10 수상자 출신이지요
문재인이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역시 비문으로 낙인찍힌 조응천은 이재명과 사법고시 동기라는 인연으로
대선 캠프에서 상황실장이라는 주요 보직을 맡았어요
하지만 김해영과 더불어 대선 패배의 장본인인 이재명이
보궐 선거에 출마하고 전당대회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다가
겉은 푸르고 속은 빨간 ‘왕수박’이라는 별칭을 얻었지요
그리고 결국 민주당을 떠나 금태섭과 함께 개혁신당에서 분투하고 있어요
아무튼 2021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
이재명 대표에 맞섰던 비명계 박용진 의원이
4·10 총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됐지요
박 의원은 경선 결선의 여론조사와 권리당원 투표에서
모두 상대방을 앞섰으나 의원 평가 ‘하위 10%’에 포함돼
30% 감점을 받아 탈락했어요
같은 날 대장동 사건으로 기소된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변호를 맡았던 김동아 변호사는 공천됐지요
김 변호사는 원래 청년 오디션에서 경선 후보 3위 내에 들지 못해 탈락했으나
하루 만에 최고위에서 이를 번복, 경선에 나간 뒤 승리했어요
두 개의 경선 결과는 이번 민주당 공천을 관통한
‘비명횡사·친명횡재’라는 원칙을 재확인해주었지요
‘시스템 공천’은 명분일 뿐이었어요
박용진 의원을 비롯해 김영주 국회 부의장, 박광온 전 원내대표,
김한정 의원 등 민주당 내에서 의정 활동이 뛰어나다고 평가돼온
비명계 현역들이 현역 평가 하위 10%, 20%로 분류되는 불이익을 받았고
그것이 친명계 도전자들과의 경선에서 패배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지요
이 의원들은 대부분 친명 극렬 지지층으로부터
작년 9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때 찬성표를 던졌다고
의심받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경선 기회라도 부여받은 것은 그나마 괜찮은 경우였지요
임종석 전 의원, 홍영표 의원은 아예 컷오프 당했어요
현역이나 중진들만 불이익을 당한 게 아니었지요
친명계 김남국 의원이 국회에서 코인 거래를 한 사실이 알려진 후
쇄신을 요구했던 민주당 청년 정치인 8명은 ‘개딸’ 등에 의해
‘코인 8적’으로 낙인찍힌 끝에 총선에 나서려던 7명은
모두 컷오프되거나 경선에서 패배했어요
반면 친명계나 이 대표에 대한 충성이 검증된 사람들은 대접을 받았지요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등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맡은 변호사 6명도
출마했는데 현재까지 2명 공천이 확정됐고 2명도 순항중이지요
방송에서 이재명 대표를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꼽은 친명계 여성 도전자는
행정 구역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지역구에 단수 공천되기도 했어요
정말 기가막힐일이 아닐수 없지요
거기다가 비명을 배제하고 친명을 밀어넣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남발하다 보니 공천 심판 격인 공관위 관계자 중
두 명은 불공정에 항의하다 사퇴했고
한 명은 불공정에 노골적으로 가담하다 물의를 일으켜 물러나게 됐어요
승부 조작에 동원됐다고 의심받은 여론조사 기관이 중도 퇴출되기도 했지요
민주당 국회의장, 총리 출신의 원로들이 “공천이 불공정하다”며
이 대표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러니 민주당이 이재명 사당이 됐다는 소리를 들을만도 하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던 이 대표의 다짐은 이뤄졌어요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공천 과정에 대한 국민의 평가이지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어요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지요
정치인과 유권자, 위정자와 국민 간에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어요
▲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왼쪽)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 조·금·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