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서원
안렴사공파 9세 송정공(松亭公) 최응룡(崔應龍)과 11세 인재공(訒齋公) 최현(崔晛)을
제향한 서원이다.
1647년(인조25년) 해평리에 사당으로 세웠으나 1656년(효종7년) 창림리로
이건하면서 서원으로 승격되고 병암 김응기(金應箕), 신재 김진종, 주청 강유선등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5년)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고 그 후 사람들에 의하여
송산서당(松山書堂)이 세워졌는데 지금은 동재(東齎) 와 서재(西齎) 그리고 사당(詞當)
건물은 없어지고 서당 건물인 강당과 서당출입문인 사주문만 남아 있는데 서당으로서의 기능도
완전히 상실하여 지금은 폐허화 되어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 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御間)의 두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이며 전면에는반칸 규모의 퇴칸(退間)을 두었다.
가구(架構)는 종량위에 원형 판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오량가(五梁架)
구조이다.
9세 송정공은 청렴한 관료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인재공은 유능하면서도
강직한 기술 관료로서 후세에 그 이름이 크게 전해졌다.
송정공이나 인재공의 발자취를 살펴 볼 때 서원을 다시 복원하여 그 뜻을 길이
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주덕제 (전주최씨 문선공 후손모임) 카페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1983년10.23일 송산서당의 모습
아래(2011.7.21일)
첫댓글 애구 관리릏 하지않아 엉망이 되었네요
다녀온 그날 저녁 안타까운 여운에 잠을 설쳤습니다.
길을 다듬고 주위의 나무를 베어내면 되겠네요.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