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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부문 |당선작
사랑, 고독, 죽음의 연결고리, 아름다운 슬픔
-허영자 시세계의 한 부분
양희진
I
허영자 시의 키워드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쓸쓸하고 때로 담담하게 번지는 한 겨울의 추위 같은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그 정체를 탐색하기 위해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간다.
독일계 미국인인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된 채 세상에 나왔으므로 근본적으로 분리에 대한 고독, 즉 절대적인 고독에서 인간은 완전한 해답으로서, 끊임없이 합일하려고 하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 본성은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통해 그 사랑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허영자 시에서의 사랑은 사랑과 고독 그리고 죽음이 함께 맞물려져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루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통과 고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철학자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으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라고 말했는데, 수 백년전 그가 한 말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 그의 말처럼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원천인 고독을 견디며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더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허영자 시에 나타난 고독의 의미를 볼 때, 그 말은 매우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고독은 분명 외로움과는 차이가 있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 즉 사회적 연결이 부족하다는 인식과 관련된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말하고,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혼자만의 시간 -지적성장과 자기이해를 위한 필수요소로서 자기성찰이나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 혼자있는 긍정적이고 의도적인 경험임을 비추어 본다면, 허영자 시는 외로움보다는 분명 고독의 시라고 볼 수 있겠다.
*허영자) 시인은 1938년 경남 함양군 출신으로 경남여중과 경기여고,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1962년 박목월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1963년 여성동인 <靑眉청미>회 창립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50여년이 넘회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60년대 서정시를 이끌어 온 주요 여류 시인으로서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허영자 시를 현상학적으로 접근하면, 그의 시에서의 죽음은 담담하다. 그래서 허영자 시는 죽음에 대한 무도곡이다. 죽음 자체를 삶의 보편적 일상으로 보는 중세유럽의 풍속처럼, 죽음의 보편성과 삶의 덧없음을, 해골과 같이 춤을 추는 무도곡으로 그는 표현하고자 하는 지도 모른다. 모든 계층이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숙연함과, 죽음이라는 것도 결국 삶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임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허영자 시에 나타난 죽음은 실존적인 고독의 모습이다. 존재의 소멸 즉 모든 것의 없음과 존재의 부재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고독과 죽음의 모습은 같은 것일까? 나는 허영자 시를 보면서 사랑과 고독과 죽음이 한 편의 그림처럼, 그의 시 전 편에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 모든 것이 시 속에 다 녹아 있다고 생각했을까? 의문을 품으면서 본론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의 시를 먼저 심도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Ⅱ
허영자 시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모티프는 사랑이다. 여기서 '사랑'을 다루고 있는 시 <백자>, <친전>, <찔레꽃>, <긴 봄날> 4편의 시 중 사랑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 <백자>를 먼저 본다.
불길 속에/머리칼 풀면/사내를 호리는/야차 같은 계집//그 불길 다스려 다스려/슬프도록 소슬한 몸은/헌신하옵신 관음보살님/-이조 항아리
-<백자> 전문
<백자>에서의 사랑은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스스로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온전한 존재로 완성되어가는 사랑의 본질, 불길 속에 머리를 풀고 사내를 호리는 험한 몰골의 귀신같은 계집이지만, 그런 불길의 가혹한 통과의례를 지내고 나면 관음보살의 온전한 은혜로움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능의 불길, 즉 욕망의 불길을 안으로 다스릴 줄 아는 절제와 극기를 통해 '슬프도록 소슬한 몸으로 헌신한 관음보살님처럼 자비와 연민이 깃든 모성성을 구현할 때만이 그는 예술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시의 의미가 매우 놀랍기도 하고 표현 방법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이 시는 불교적인 의미에서 보면, 현세적 사랑의 '자비로움'이다. 사랑의 또 다른 모습에 '자비'의 모습도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야차같은 여자 속에서도 관세음보살님을 닮은 불성이 깃들어 있고, 그 매끄럽고 차갑고 유연한 백자 또한, 몇 천 도의 불가마 속에서는 벌겋게 달았던 불덩어리가 아니었겠느냐"고 허영자 시인은 말한바 있다. 그러므로 <백자>에서의 사랑의 본질은 현세적인 사랑의 열정과 완성 그리고 자비라고 볼 수 있겠다.
<친전>이라는 시를 보자. 봉투에 적어서 수신인이 직접 펴보라는 뜻을 지닌 친전은 화자의 몸이 바로 사랑의 편지인 것이다. 몸에 새긴 사랑의 언어는 사랑하는 이에게 직접 고백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이다. 이 사랑의 맹세는 슬픔과 아픔을 동반한다.
그 이름을/살 속에 새긴다/ 암청의 문신/불가사의의 윤회를 거쳐/마침내/내 영혼의 고개 숙이는 밤이여/무거운 운명이여/절망의 눈비/회의의 미친 바람도/숨죽여 좌선하는 고요//사랑합니다//참으로 큰/슬픔일지라도/어리석은 꿈일지라도//살 속에/그 이름 새기며/이 봄 밤/눈 떠 새운다
- <친전>전문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시어는 '새기다'라는 동사이다. 마음에 새기다, 명심하다는 그 사랑의 기억과 그 사랑의 맹세는 프랑스의 철학자 크리스테바의 지적대로 마음이 아닌 몸에 새기는 암청의 문신과도 같은 상처일 것이다. 마음에 깊게 각인 되는 것, 사랑이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불가에서의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의 사유방식처럼 사랑은 운명이며, 그것은 살결과 영혼 위에 신비한 사랑의 문양이 각인 되
어 있으며 땅 속에 묻혀서도 썩지 않을, 저승에 가서도 지워지지 않을 영원성을 간직하게 된다. 본래 사랑의 본성이란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을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열정과 차가움, 순간과 영원, 세속과 신성, 구속과 자유라고 하는 모순과 갈등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모순적인 사랑의 본질은 허영자 시집 《모순의 향기> (1913. 만해사상실천양회추천.) 속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그 마음속에/얼음과 눈보라를 지니고 있다/그러기에/사람은 누구나/타오르는 불꽃을 꿈꾼다"라는 시 <얼음과 불꽃>에서는 그 사랑의 이중성을 한恨으로 풀어놓고 있다.
시집 《모순의 향기》에 실린 <찔레꽃>을 살펴보자. 이 시에서도 그러한 사랑은 운명적이며 또한 상처이므로, 그래서 사랑은 양쪽의 칼날을 지닌 모순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가시와 꽃이/위태롭게 나란히//적의와 관능이/부딪칠 듯 나란히// 울음과 웃음을 한 가지에 머금은//모순의 향기/하얀 찔레꽃
-<찔레꽃>전문
찔레꽃은 꽃이라는 부드러운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가시를 지닌 점에서 적의와 관능, 울음과 웃음의 양가적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통합하는 것이 바로 향기인 것이다. 대립된 개념이 해체되고 통합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이처럼 허영자는 노장적 사유로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지닌 꽃의 본질을 통해서, 사랑의 이중적인 본질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외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는 시 <긴 봄날>에서는 흡사 박목월의 <윤사월>을 연상케한다. <윤사월>에 나타난 '눈먼 처녀'의 모티프를 사용해서 한걸음 더 진전된 사랑의 안타까움과 기다림의 애절함이 탁월하게 발현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어여쁨이야/어찌/꽃 뿐이랴//눈물겹기야/어찌/새 잎 뿐이랴/창궐하는 역병/죄에서조차/푸른/미나리 내음 난다/긴 봄날엔-//숨어 사는젊은 정부/난쟁이 오랑캐꽃//외눈 뜨고 내다본다/긴 봄날엔-
-<긴 봄날> 전문
봄날의 그 강한 생명력으로 인해 오히려 고통스러운, 소멸과 생성, 죄의식과 강한 생명력의 욕구가 동시에 공존하는 이 시 <긴 봄날>은 삶의 숙명 혹은 생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숨어사는 서러운 정부' 그 보잘 것 없는 '난쟁이 오랑캐꽃같은 존재에게도, 생동하는 봄에 내장된 생명의 욕구가 외눈 뜨고 내다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더 길게 느껴지는 봄이 참으로 서글프다. 참된 진실은, 참된 사랑은 드러난 것, 보이는 것, 상식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랑은 끝없는 기다림과 서글픈 안타까움인지도 모른다.
또한 사랑과 더불어 허영자 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제는 바로 ‘고독’이다. 허영자 시에서의 특별한 고독의 정체가 잘 드러난 시는 <가을날 2>, <완행열차>, <감>, <두엄> 등이다.
먼저 고독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는 시 <가을날2>를 보자. 시작과 결미에 "쓸쓸하나 조용히 살기로 했다"고 하는 "인간의 절대적 고독이 이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허영자 시는 '고독'이며 또 한편 '사랑'이기도 한 것이다.
쓸쓸하나 조용히/살기로 했다//밤 사이/세상은 변하여/퇴락의 빛에 싸이고//그 한때/ 골돌히/죽음을 생각하던 때//속삭여/혼을 흘리던/유혹의 소리......//사랑하며/미워하며/너무 젊었었느니//오늘에야/한 밤중에 눈떠도/울지 않는다// 벽수 넘어 까물치던/마음아 잠 자거라/그지없이 고요한 미소의 강물//한폭 그림으로/추억의 무지개/걸어두고//쓸쓸하나 조용히/살기로 했다
-<가을날2> 전문
오늘에야 한 밤중에 눈떠도 울지 않게 되는 고독을 넘어선 고독의 경지를 이 시는 잘 보여준다. 그 경지는 가만히 삶을 바라보며, 쓸쓸하나 조용히 살기로 마음을 다지는 경지인 달관의 경ㅇ지이다. 이처럼 허영자 시에서의 고독은 인생을 달관한 관조의 경지이다. 시인은 "밤사이/세상은 변하여/퇴락의 빛에 싸이고” “그 한때/골돌히/죽음을 생각하던 때“찾아오는 '유혹의 소리'을 극복할 때 찾아지는 경지일 것이다. 이것은 절제와 극복을 통해서 시의 뒷부분에 이르러 "그지없이 고요한 미소의 강물"이라고 지극히 절제된 고요한 고독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모든 인생의 폭풍우를 지난 뒤, 그 고요한 강물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인의 미소를 보는 듯하다. 이 미소의 경지가, 실로 모든 것을 달관한 고독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이와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경지의 시 <완행열차>는 느림의 미학이다. 급행열차를 놓치고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라고 시인은 인식한다. 빨리 달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가야 지나가는 새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울고 있는 소녀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잘 된 일이다/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완행열차를 탄 것은/잘 된 일이다/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거기항시 기다리고 있거니천천히 아주 천천히/누비듯이 혹은 흠질하듯이/서두름없는 인생의 기쁨/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 전문
'올라갈 땐 보지 못한 그 꽃도 내려갈 땐 보이는 것처럼, 급행열차를 탔으면 놓칠뻔한 애틋한 아름다움을, 완행열차를 타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서두르면 놓치는 것이 꼭 있기 마련인 것을, 서두를 것 없는 인생의 기쁨을, 고독하지만 쓸쓸한 아름다움이라고 인생을 오래 살아온 현명한 철학자처럼, 노시인이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서두를 것 없는 '인생의 쓸쓸한 아름다움' 이것이 허영자 시의 고독의 정체가 아니겠는가.
<감>이라는 시도 보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허영자 시의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내적 성장을 가져오는 고독이라 한 바 있다. <감>이라는 시를 보면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맑은 가을햇살 속에선/누구도 어쩔 수 없다/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 밖에는/젊은 날/떫고 비리던 내 피도/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 밖에는
-<감>전문
이 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도 어쩔 수 없이 붉은 단감처럼 익을 수 밖에 없다. 제한된 현실의 규범 속에서 빚어지는 고뇌의 현실을 스스로 내적 성장으로 혹은 온전한 존재로 성숙되어 감을 보여주는 감처럼. 그리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신의 섭리 속에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깊은 깨달음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시는 색체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가을햇살 속에서 붉게 익어가는 단감처럼 철이 들 수 밖에 없는 인간, 원숙하게 철이 드는 과정을, 철이 들어 붉은 단감으로 익어간다고,
풍요가 소멸로 가는 과정으로 비유해서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허영자 시에서 고독의 정체는 쓸쓸하나 삶을 바라보는 내면의 단단한 성숙함이다. 이러한 허영자 고독의 절정은 시 <두엄>이다. 두엄더미를 꽃으로 인식한 이 시는 아름답기 보다는 처절하다.
아, 어쩌면/꽃처럼 살고싶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잎처럼 지고싶었는지 모른다//
붉디붉은 그 향기가 아니라면//푸르디 푸른 그 숨결이 아니라면//두엄더미두엄더미//아지랑이 질펀히/젖어 오는 봄 들판//문둥이처럼 썩고 있는/두엄더미!
- <두엄>전문
이 시는 삶의 하강을 보여 준다. 삶을 통찰하는 눈의 깊이와 넓이가 깊고 넓어지면서,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두엄'과 '그늘'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엄은 스스로를 썩혀 새로운 생명을 밀어 올리는 삶의 자양분이 된다. 즉 썩어서 다시 생명으로 피어나는 것임을 시인은 쓸쓸히 삶을 통찰하고 있다. 꽃이 피고, 잎이 지고 난 다음에, 아지랑이 질펀히 젖어오는 봄 들판, 문둥이처럼 썩고있는 두엄더미라니. 삶은 이토록 허무하고 고독한 것인가. 이 시에서 삶과 죽음이 그리고 질펀한 고독이 같이 들판에 던져져 있는 듯해서 참혹하지만 아름답다.
IV
허영자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의 의미는 허영자 시인의 시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려한다. 죽음에 관한 선험적인 묘사는 시에서는 보이지 않고,
최근에 쓴 시조들에서 많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시조<무제>, <노년의 뜰>, <여생>, <길>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무제>를 보자.
살려줘 살려줘요 마지막 안간힘으로 그 사람 눈감으며 입술을 달삭였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시조 <무제>전문
이 시조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안간힘'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는 결구로 끝을 맺는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초탈의 시선은 고통과 외로움으로 번민하는 자아를 정화시키기에 이르른다.
시인은 또한 <노년의 뜰>에서 변형된 시조의 형식을 빌려 노년의 허무함을 담담히 말하고 있다. 즉 삶이 마감된 것은 아닌 생의 끝'뜰' '마당'에서있다.
아리고 사무치던 슬픔을 삭혀내고 싸늘코 서러운 허무를 다스리면 조요로운 따사로움이 깃들이는 마당일까
- 시조 <노년의 뜰>전문
그 마당에는 '조요로운 따사로움'이 깃들이는데 조락하는 가을의 따사로운 햇발에 자신의 내면을 고즈녘하게 내비치고 있다. 그 노년의 뜰에는 서늘하고, 서러운 허무도 있고, 사무치지만 삭혀진 서글픔도 있지만 '조요로운 따사로움'이 있어 따스한 공간임을 시인은 인식하며 행복에 젖는다.
문학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현실을 직조하는 일이다. 시인은 상상을 통해서 시의 세계를 건설해 나가는 건축가이며 그래서 또한 우리들 모두 공모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들의 내밀한 음모가 가능한 것은 '싸늘' '서러운' 같은 현실의 불만에서 기인된 것이리라. 이러한 연유로, 이 우주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문학은 끝까지 남아 우리를 위안해주고 그 뜰처럼 감싸준다. 그 일을 영원히 계속 할 것이라 확신한다. 시조 <여생>에서 시인은 삶을 꿈이라고 혹은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이 지는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우뚱' 걸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강물은 흘러 흘러 바다에 다다랐고 기우뚱 지는 해는 서천에 걸리었다 농익은 흥겨움으로 타올라라 저녁노을
-<여생>전문
이제 해가 곧 서천에서 사라지겠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순간은 '흥겨움이다. 그 순간 시인은 명령한다 '타올라라 저녁노을' 3음보의 부드러움도 아닌, 4음보의 경직됨도 아닌 강한 힘이 느껴지는 4.4조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 삶이 바다에 다다라서 서천에 걸리었지만, 나의 인생은 타올라야 한다. 그것이 설령 마지막일지라도, 시인은 명령한다. '타올라라 저녁노을', 실로 여장부다운 기백이 넘치지 않은가. 저녁노을은 소멸하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시인은 이 시에서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 듯하다.
허영자의 시인으로서의 긴 인생이 한편의 그림으로 단촐히 담긴 시조 <길>은 '신발'과 '옷'이라는 표상적인 사물로 노래된다. 시인은 이제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한 생애 동안, 길동무가 되어준 문학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신발은 다 닳고 걸친 옷은 남루로다쑥굴형 가시밭길 몇 만리나 걸었던고시 하나 의지 삼아서 동무하여 왔구나
-<길>전문
자아에 대한 사랑이 외부로 투사되면 구도의 길에 한발짝 가까워지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일생과 반려가 되어준 시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다. 다 떨어진 신발과 의복은 남루가 되고,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쑥굴형의 가시밭길'이었다고. 하지만 그 가시밭길은 또한 시의 길이었음을, 자존감 높은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결국 허영자 시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닌, 삶의 또다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허영자 시는 사랑과 고독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된 아름다운 슬픔이다. 하이데거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주의 삼라만상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동일하다. 자연에서 계절의 순환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삶과 죽음이라는 생의 순환이 있다. 인간은 정해진 시간을 가로지르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망연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때 무상의 감정을 갖게 된다.
20세기 초 한국 현대시는 험난한 시대를 정화하며 '서정'이라는 시정신으로 시대를 관통하며 승화해 왔는데, 1960년대에 이르러 서정시가 주류로서 우뚝 서게 되고, 허영자는 1960년대의 주요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허영자의 시편들은 생의 기쁨과 슬픔을, 사랑의 열정과 상처의 모순된 본성들을, 고독과 죽음을 아우르는 서정적인 시 편으로 드넓은 삶
V
이라는 우주를 '얼음과 불꽃'(한영옥 '내가 만난 허영자', 시와시학, 1994 가을호)의 이미지로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인은 1972년 성신여자대학에 부임하여 35년간 후학을 지도해오다 정년을 맞이했으며, 선생의 온유함과 냉엄함이 어우러진 인품의 높은 향기로,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시집들(시집 11권, 시선집 9권, 동시집, 시조집 산문집등)을 내고 목월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시인협회라는 회장직을 맡아 업적을 남기고, 대학교수로서 정년퇴임도 한 시인이, 60년대 시인으로서 비교적 주목을 덜 받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세영은 허영자의 “<휘발유>라는 시에서 그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하며, 다른 여성에겐 발견할 수 없는 어떤 순결한 열정같은 것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참나무가 무성한 언덕 아래 시인이 손수 지었다는 불광동의 아담한 단층 양옥집에 초대되어 방문했을 때, "작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의 감성과 차가운 얼음같은 이성이, 큰 바위와 같은 사유가 있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진실로 이 세계의 아름다움이란 인간들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라고.
또한 한국시문학사에서 최초로 여성 시인들만이 모여 만든 시동인 회인 <청미>의 창립회원으로, 1963년 첫 동인지 <돌과 사랑> 1집을 발간한 이래로, 1993년 동인회 30주년 기념집으로 <청미>21집, 1998년 35주년 기념 <청미>동인시지 집 2권을 발간하는 등 동인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창립동인으로는 김선영, 김숙자, 김혜숙, 김후란, 박영숙, 추영수, 허영자이며 그후 임성숙, 이경희가 같이 하여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청미>의 시사적 의미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동인지', '가장 오래된 동인지'로 문인들의 단순한 우정 모임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청미>동인의 30여년의 역사는 근대이후 상실된 세계, 즉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동일성을 이루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지향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한국서정시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같은 동시대의 60년대 시인으로, 유안진, 신달자, 김후란 등등의 시인들 보다는 다소 덜 알려진 점이 없지 않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시풍이 비교적 부드러워서, 단숨에 눈을 확 끄는 돌풍을 일으키는 센세이셔널(sensational)한 시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스승인 김남조 시인의 명성에 가려져 있어, 그림자처럼 나서지 않아서일까. 허영자 시인의 시를 가슴으로 담아 읽으며, 잔잔한 감동의 물보라에 적셔진나는, 내내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점이 아닐 수 없다.
허영자는 2003년 6월 본인의 교수연구실에서 '허영자의 삶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하였는데, 거기서 "인간의 삶을 이끄는 것은 정신의 지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자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정신보다는 그것이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진호(문학평론가)와의 대담에서 말한 바 있다. 즉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완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자궁은 삶이요 생명의 양산이고, 그래서 본질적으로 허무한 것이라고. 그래서 허영자 시인은 평생 사랑과 고독과 죽음의 허무함을 시로 고요히 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지적이면서 충동을 숨기지 않는 시들은 지성과 열정을 아울러 품고 계신 허 선생님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러한 기질적 양면성은 허선생님의 시가 지닌 개성이며 특색이기도 하다. 세련된 감수성과 현대성을 지녔으면서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우아함과 격조를 지닌 시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사랑과 인연의 의식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열찬 삶의 에스프리라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라고 조창환(시인, 아주대교수)은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어느 후배 시인이 <내가 만난 허영자>라는 짧은 인상기에서 허선생님을 일컬어 '얼음과 불꽃'이라고 쓴 것을 읽으면서 속으로 공감한 적이 있었다"라고 허영자 시를 평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시는 대담한 단순화를 통한 명징함과 강렬함이 특징인데 그의 사람됨 역시 단순하리만큼 분명하고 강렬하다. 그의 작품 역시 분명함과 강렬함이 맑음과 매움과 상통한다."라고 김종길(시인, 전 고려대교수)도 말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시인같은 시인' '온화함과 단아함의 절묘한 조화''지적교양과 인간적 매력이, 우아한 언어와 뜨거운 감정으로 고독한 정신과 아련한 꿈꾸기'라는 향기를 던져주었다고, '봄날의 온유함과 가을 하늘의 냉엄함을 갖춘 시인이라고 많은 선후배 문인들이 극찬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문인들이 존경하고, 뛰어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시인들보다 주목 받지 못한 부분은, 두고두고 연구과제로 남을 것이다. 허영자 시인에 대한 평론도 거의 없고, 자료도 거의 없어서, 우리나라 평론가들이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섭섭한 마음까지 드는 지경에 이르른다.
이처럼 허영자의 시는 '얼음과 불꽃'의 시 '사랑과 모순의 시', '목마름과 절제'의 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시에는 사랑의 모순과 이중성이, 삶의 기쁨이 짧기에 허무한 고독과 생명과 연계된 죽음이 복합적으로 담겨진, 슬픔의 미학이라고 감히 정의하려고 한다. 즉 사랑의 어원이 아모르(Amor), 즉 죽음에 대한 항거의 노력을 의미하므로, 사랑이란 인간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징표이고, 동시에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 그래서 허영자 시가 사랑의 문제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바로 그의 시가 존재 문제에 대한 주된 관심을 두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이 부분에 주목하여, 허영자 시를 철학적인 기반과 불교 철학적인 접근으로, 더욱 심도있게 풀어 나가고자 한다.
양희진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 <인간과문학>시등단. 2024 <수필과비평>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봄마루시회/아침문학회원 2023년 5월 뉴욕카네기홀 자작시 시낭송콘서트 동서문학상맥심상/구리문예대학금상/제1회다산문학상
2017 첫시집<접속>/2020 시집<샤갈의 피안 없는 시간>jasmin1125@naver.com
-수상소감-
부족함투성이라 아찔
어떤 시인이 말했습니다.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그 시인의 마음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보여지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꺼내 그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평론의 시작일까요?
시를 쓰고 사랑하다, 시로 담을 수 없는 긴 문장을 쓰고 싶어 수필을 썼습니다. 그러다 만난 평론은 견고하고 높은 닫힌 문이었습니다. 들어가려는 엄두도 못냈는데, 인생이 원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지, 그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그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족함 투성이라 아찔합니다.
남쪽의 어느 시인이 "팔순 어머니의 방은 정갈한 문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제 나만의 문장으로 정갈하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 어머니처럼 오랜 세월을 다해 삶에 녹여내는 나만의 정갈한 문장을 갖고 싶습니다. 부단히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함을 알기에 무척 두렵습니다.
느리지만 저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마음으로, 다양한 목소리로 발표되는 작품들과 소통하고, 보이지 않는 것 까지 볼려고 애쓰는 작고 낮은 섬세함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신인작품상의 영예를 안겨주신 유한근교수님과 인간과문학사』에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감사 인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