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이 애연가 라고 불리울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애연가라는 단어는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애연가 라는 단어에는 멋이없다.
머리속에 애연가라는 단어를 떠올릴때면 항상 뿌연 연기의 영상과 함께 떠오르곤 하기도 한다.
그건 뭔가 답답하다.
그리고 용납할수 없다.
하지만 역시 담배라면 좋다.
여기 한 남자가 어떤 일이있어 철야를 하게 됐다.
철야를 해가면서까지 일을 하는 그 남자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그는 멋지다. 세상에는 일생이 걸린 아주 중요한 일도 '내일하지 뭐.' 등등으로 미루다가 인생을 말아먹는 한심한 인간도 존재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에 비해 그는 맡은바 임무를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철야를 하면서까지 그 일을 수행해 내고 있는것이다.
아무튼 그는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몹시 피로해 졌다.
밤새 전자파를 토해내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충열된 벌건 눈으로 앉아 넥타이는 벗어 버리고 셔츠의 단추는 2~3개쯤 풀어해치고 그렇게 앉아있다.
그는 지금 양말 까지 벗고있다. 머리는 물런 헝크러져있다.
그의 아내는 막 정성스레 깎은 과일 접시와 따끈한 헤이즐럿 커피 한잔을 타와 그에게 전하고는 달콤한 입맞춤과 함께 힘내라는 말을 한다.
그에 몸에선 아침에 그녀가 뿌려준 다비도프 향수가 은은한 향을 내고 있었다. 그건 우리까지 음미할수 있는 향이었다.
그는 아내의 키스에 힘입어 헝크러진 머리를 쓰다듬고는 피곤해진 눈두덩이를 천천히 문지르고 신선한 사과를 몇 조각 먹더니, 아내의 사랑이 담긴 커피를 마시며 남은 일을 강행하였다.
역시 멋있다. 이쯤되서 우리들은 그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왜냐면 철야와 커피는 굉장히 어울리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양말도 신지 않아 무좀걸린 그의 발을 횡하니 드러내놓고 있어도, 셔츠가 사방으로 풀어해쳐져 아마존 밀림에 버금가는 그의 가슴털이 우리들의 눈을 괴롭게 하고 있어도, 그건 그의 매력을 느끼는데 조금도 방해가되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유럽풍의 고급 문양이 새겨진 커피잔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직도 김이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커피잔을 내려놓고 타이핑을 한다.
엔딩곡이 흐른다.
그건 이 남자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엔딩곡으로는 역시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 나왔던 '문 리버'가 흘러나왔다.
멜로디도 감미롭고 우리들에게 비춰지는 그의 뒷모습 또한 어딘지 모르게 듬직해 보였다.
우리는 일제이 환호를 하며 휘파람을 불고 큰 소리의 박수를 쳤다.
장내(場內)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우리중에는 소매나 마후라로 감동의 눈물을 찍어내는 사람도 보였다.
우리는 그에게 모자와 꽃을 던져 주었다.
이젠 나다.
내 차례가 온 것이다.
여러분은 역시 그 남자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방긋이 웃으며 여러분들의 호응에 응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철야는 시작됐다.
물런 피로는 밀물처럼 밀려왔다.
서랍을 열어 봤다.
여러 종류의 담배와 라이터가 가득했다.
담배는 종류별로 잘 정돈되 있었고 라이터는 반질반질 빛이나는 새 지포(Zippo) 라이터 에서부터 싸구려 성냥까지 다양했다.
나는 늘 이것을 멋진 광경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말보로 레드(Malboro Red)와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히고 한모금 깊숙히 빨아들여 나의 폐 속으로 들이마셨다.
곧 니코틴이 나의 체내로 퍼져서 세포 하나하나 마다 정착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은 인생에 참 진리를 느낄수 있게 해주는 순간이고 자유의 뜻깊음을 온몸으로 체험할수 있게 해주는 순간이라 할수 있겠다.
참고로 나의 모니터 색은 노란색이다.
보통 시중에선 팔지 않는 기묘한 색이다.
단, 나의 모니터와 동일한 색의 모니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종종 있는 편이다.
그 사람들을 일단 두 부류로 나누자면,
'애연가와 폐인'.
그런것이다.
그럴수 밖에 없다.
페인은 청소같은 걸 할리 없기때문에 모니터가 더러워 졌다해서 손수 닦을리 만무했고, 애연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무한량에 담배 연기를 뱉어내기 때문에 모니터는 애연가가 내뱉는 담배 연기속의 니코틴이 점차 묻어 나면서 색이 노랗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담배가 떨어져 금단현상에 시달릴 적에 '모니터를 핥아볼까?'하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도 그렇다.
일단은 금단현상은 무척 괴롭기 때문이다.
손이 떨려오며 불안하기 까지 하다. 누군가 나를 째려보는것 같고 성질은 날카로워 진다.
차라리 그럴바엔 '눈 딱 감고 모니터를 한번 핥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점점 논리가 정연해져갔다.
혹시라도 모니터 사방에 주둔하고 있는 니코틴들이 나의 체내로 흡수되 나의 금단현상이 말끔히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성공한 것이다.
더이상 담배한갑 사기위해 음침한 새벽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나는 니코틴 모니터를 만들어낸 공로로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그것이 불가능 하다면 적어도 특허를 따내 전세계 유명 컴퓨터 제조 업체에다가 고가(高價)로 니코틴 모니터 제조법을 팔아넘길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 앞에서 모니터를 핥는 다던지 하는 추한 행위는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의 나에게는 담배는 충분했다.
눈이 감겨온다.
철야의 첫번째 고비가 다가오는 것이다.
수마(睡魔)가 온통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잠들어 버리면 가문 대대로 망신을 안겨주게 된다.
평생 여러분에게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가면 다시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일종에 자기 암시었다.
담배를 손에 들고 잠이 들어버리면 600도를 훌쩍넘는 담뱃불은 순식간에 내 주위에 모든것을 태워버릴 위험이 있고, 그렇게 되면 본의아니게 나까지 타 죽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혹시 운이좋아 담뱃불이 나만 남기고 주위에 있는 물건들만 태워버렸다 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난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할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했다.
그건 우울한 상상이었다.
재떨이에는 어느새 담배꽁초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나는 '이쯤해서 이 녀석을 비워줄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관두었다. 나는 철야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일을 해야했다.
시간은 흘렀고, 폐가 아려왔다.
기관지에는 가래가 그득한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나는 지금까지 나의 철야에 동행해준 말보로 레드와 지포 라이터를 서랍속으로 퇴장시키고, 대신에 말보로 라이트(Malboro Light)와 불티나 일회용 라이터를 입장시켰다.
내가 굳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자면 우선 점점 아려오는 폐에는 자극이 덜한 비교적 순한 담배가 필요했고, 또 불을 키고 끌 때마다 뚜껑을 여닫아야 하는 지포 라이터 대신에 간편하게 사용가능한 불티나를 입장시킴으로서 추가 노동의 번거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데에 있었다.
아무래도 그 편이 철야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될 듯 싶었다.
나는 말보로 라이트를 입에 물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에게는 바로 전자(前者) 이야기에 등장한 남자와 같은 아내는 없다.
아내라는건 애시당초 없었다.
애인이란건 있었지만 그녀는 나와 3년쯤 만나던 해 내가 골수 애연가라는 사실을 끝내 용납하지 못하고 나를 떠나버렸다.
뭐, 상관은 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사람은 만나면 어떻게든 헤어지기 나름이었고 담배는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이야기에는 남자의 아내와 같은 엑스트라는 없다.
하지만 나의 눈 역시 그 남자와 마찬가지로 붉게 충열되어 있어고 머리는 산발에다(이런것들은 구지 보지 않아도 느낄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알수 있다) 넥타이와 셔츠 역시 풀어헤쳐진 상태였다.
결국에 나는 직접 커피를 타 마시기로 했다.
내가 마시려는 커피는 MacCoffee라는 촌스러운 이름에 미제 인스턴트 커피였다.
이것은 맛있지도 않지만 그다지 맛이 나쁘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물만 적당히 부어주면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생각만은 접게 해주는 그런 류의 커피였다.
나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커피잔을 내려놓고 타이핑을 해나갔다.
단지 내가 남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왼손에 커피잔을 들고 오른손에는 담배를 들고있었다는 것과 커피를 마시고 한 모금의 담배를 빨아마셨다는 것과 타이핑할때 역시 나의 입엔 담배가 물려있었단 점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이봐, 어울리지가 않아."
여러분 쪽에서 또렷한 쉰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철야와 커피 말이야. 전혀 어울리지가 않아."
장내는 서서히 그리고 점점 빠르게 술렁이기 시작했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후에도 장내를 감싸고 있는 자욱한 연기 때문에 목소리의 주인공을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수 없었다.
"그렇지, 보이지가 않겠지."
목소리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고 나는 양손으로 연기를 휘저어 가며 여러분에게로 다가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러분중에서도 특히 나이가 많은 편에 축하는 노인이었다.
그리고 노인은 전자의 남자의 이야기에서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던 유일한 사내였기도 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제 커피잔이 머그잔이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제가 선택한 커피가 인스턴트 커피였기 때문입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 그런것 과는 틀려. 근본 부터가 틀렸어. 자네는 이 연기가 보이는가?"
노인이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물었다.
"물런 보입니다. 헌데, 이 연기와 저의 철야와 커피는 무슨 관계 입니까?"
"그렇다면 설명하지."
노인은 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모두 자네의 전에 보았던 남자의 이야기에서 남자가 커피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진한 감동을 얻었네."
노인은 남자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듯 지긋이 눈을 감고 말했다.
"남자는 커피 한잔으로 철야의 고통과 피로를 잊고 오직 일에만 전념하려는 마음이 깊게 묻어났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철야와 커피라는 것은 굉장히 멋진 조합이구나 하는것도 느낄수가 있었지."
"저, 그렇다면 노인장, 저는 어땠길래 이렇게 질책하시는 겁니까?"
내가 조용히 물었다.
"자네는 아니었어. 자네의 커피는 자네가 줄곧 들고 있었던 담배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네. 자네는 무의식 중에 담배에게 매달리고 있었지. 마치 엄마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는 어린아이 처럼 말이지. 자네의 모습은 처참해 보였네. 커피 역시 그렇네. 자네가 마신 커피는 담배 맛을 향상 시키는 식료품의 행위밖에 하질 못했지. 자네는 대량의 니코틴이 흡수된 자네의 몸에 카페인을 쏟아부었지. 철야가 주는 피곤함, 대량의 니코틴, 그리고 카페인......그건 누가 봐도 최악이거든."
노인은 험,험 거리며 쉰 목을 가다듬었다.
"이봐, 자네와 그 남자는 똑같이 노력했어.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거지. 우린 자네에게서 동정밖엔 느끼지 못했네. 니코틴이라는 기둥에 묶여 한없이 몸부림 치고 있는 자네에겐 말이야."
여기까지 들은 나는 넋이 빠져버렸다.
"책상을 봐주겠나? 자네가 철야하던 자네의 책상 말이지."
나는 힘없는 걸음으로 아까의 철야 흔적이 남아있는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내 철야의 잔상들이 고스란이 남아 있었다.
담배 갑들은 널브러져 있었고, 나의 재떨이는 단 한개의 꽁초가 들어갈 자리조차 없어보였으며 재떨이 주변에는 재떨이로부터 떨어져 나온 몇개의 꽁초들과 재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키보드 위에도, 마우스 패드 위에도, 담뱃재는 나의 책상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봐 나는 목이 다 쉬었어. 이것은 자네 이야기에서 자네가 피워댄 담배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 이 곳엔 부녀자와 아이들도 있지. 자네가 피워댄 담배 연기 때문에 기침 정도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어. 하지만 우린 자네의 이야기를 존중했고 또, 자네의 이야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관지가 간지러울 때마다 코를 막고 참았지.
노인장의 말에 여러분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의사를 내비췄다. 여러분 중에는 간혹 분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
"자, 어떤가? 자네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결말을 보여 주겠나?"
노인은 돌연 표정을 바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것은 분명 뭔가 기대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넋이 빠져버린 후였기 때문에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런 나의 이런 침묵은 노인장의 기대를 조금씩 묵살 시켜 버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침묵은 계속됐다.
조금 뒤 노인장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서 장내의 문을 열고 나갔다.
노인장은 나가기 전에 '언젠가 자네의 멋진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날이 왔으면 좋겠군.' 이라는 말을 남겼다.
노인장이 나가자 여러분은 한,두명씩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자 장내에는 겨우 3명의 여러분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 3명의 여러분이 나에게 동지애를 느껴 위로하고 싶어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는 흡연자라는 추측을 해봤다.
그것은 쉽게 짐작할수 있는 것이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도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장외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있었다.
나는 혼자가 됐다.
슬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런 넋이 빠졌으니까 슬프다는걸 느끼지 못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서랍을 뒤져 내가 가장 애용하는 켄트 슈퍼 라이트(Kent Super Light)를 한 갑 찾아냈다.
비닐포장을 조심스래 벗겨내고 은박지를 뜯고 담배 갑의 오른편 제일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녀석을 끄집어 내어 입에 물고, 성냥을 이용해 불을 붙혔다.
내가 성냥을 선택한 이유는 그냥 왠지 이런 분위기에는 성냥이 어울릴것 같아서 였다.
그저 허탈함은 이렇게 달래면 되는 것이다.
담배란 녀석은 내가 혼자일때 언제나 곁에 있어준다.
결코 날 버리는 일이 없다.
지금 나는 추한 꼴을 하고 바짝 마른 입술을 이용해 이 녀석을 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 않는 녀석이 이 녀석이다.
"어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장내에서 분명히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작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임을 나는 알수가 있었다.
"여기야, 네 손안. 정확히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있지."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고 나는 무심코 내 오른손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엔 담배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기웃 거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어이, 나야 켄트."
순간 나는 오른손에 미세한 진동을 느끼면서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나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 지기 시작했다.
"조금 놀랐나 보군, 뭐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목소리는 계속해서 지껄였고 그때마다 미세하지만 오른손에서부터 전해지는 정확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무생물이 말을 한다는 데한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지만 소리를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면 넋이 빠진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할지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담배, 네가 말하는 거니?"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키고 정체불명의 목소리에게 물었다.
"그냥 담배라고 하지말지? 나는 켄트야 그것도 슈퍼 라이트, 그래서 우린 켄트 슈퍼 라이트만이 가질수 있는 넘버의 바코드를 소유하고 있지."
목소리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모든게 뒤죽박죽이 된것 같았다.
역시 아무리 넋이 빠진 상태라고는 해도 말하는 무생물을 만난다는 것은 받아 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4.6.0.2.3.1.1.7, 이게 내 바코트 넘버야."
켄트는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켄트 슈퍼 라이트의 바코드 넘버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용건이 뭐야?"
나는 켄트에게 다그치며 물었다.
"급하네? 뭐, 상관은 없어. 난 단지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을 몇가지 일깨워 주기위해 입을 열었을 뿐이야."
켄트는 계속 너스레를 떨었다.
"좋아. 들어 보자, 그게 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거."
"난 네 녀석을 좋아하지 않아. 뭐, 별로 네 녀석에게 이쁨 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
켄트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는......너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어."
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켄트는 내 오른손 사이에서 경쾌한 진동을 일으키며 웃어 제꼈다.
그건 어떻게 들으면 비웃음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 흥미가 생긴듯 '우선 그 이유가 듣고싶다.' 라고 했고 나도 이왕 넋이 빠진이상 그에게(느끼는 사람에 따라 그녀가 될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켄트는 얌전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간간이 자신의 불씨 부분을 발갛게 빛내곤 하였다.
무슨 원리를 이용해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난 내 이야기를 진진하게 들어주는 켄트가 조금은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녀석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해졌기 떄문에 나도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너, 역시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어."
켄트가 말했다.
나는 굉장히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약간 흥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야, 넌 착각하고 있어. 이제부터 내가 이야기 해도 되겠지?"
켄트는 정중하게 물었고, 나 역시 켄트가 하고싶은 말이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는 없다.
"잘 들으라고, 일단 난 네가 생각하는 네 친구가 아니야. 나는 매춘부(賣春婦)와 같지. 뭐, 비슷해."
나는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켄트가 이런말을 할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왜, 왜지? 넌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잖아? 그것만으로도 넌 내 친구가 아닌가?"
내가 흥분하며 반문했다.
"바보녀석. 그래, 난 지금 네 곁에 있지. 네 이야기를 듣던 모든 사람들이 네 곁을 떠났어도 난 네곁에 있지."
켄트는 자신의 불씨를 어느때보다 발갛게 빛내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네 녀석이 나를 돈을 내고 사왔기 때문이지. 말했듯이 나는 매춘부와 같아. 네가 나를 필요로 하면 돈을 내야해. 너에게 돈이 없다면 나는 결코 네 녀석 곁에 있을수 없어."
나는 괴로워 졌다. 켄트의 말을 인정할수 없는 것이다.
"이봐, 너는 굉장히 싸. 매춘부와는 비교할 수 없지. 넌 고작 2000원 정도 이니까. 그러니까 날 속이려 하지마."
나는 힘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좀 더 비싸져야해."
켄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나는 피식 거리며 웃었다
"뭐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올리려는 건가?"
"이봐, 정신나간 소리는 하지마. 내 존재가치가 올라간다 해서 나에게 남는건 아무것도 없어."
"그럼 뭐야? 알수 있게 말하라고."
나는 짜증을 냈다.
"좋아. 보라구, 난 굉장히 싸.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나를 구입하는건 식은죽 먹기지. 그래서 사람들은 힘이 들때나 기쁠때나 언제나 나를 찾아. 언제나 말이지. 그건 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가 맞지 않아? 나는 널 좋아해. 당연한거 아니야?"
"역시 네 녀석은 바보군."
켄트는 킥킥 거리며 웃었다.
"잘 생각해봐. 난 네가 기쁘건 슬프건 언제나 별 상관은 없지. 하지만 네 녀석이 날 찾을때면 언제나 난 녀석의 몸에 일정량의 독을 주입하는데도? 알게 모르게 죽어가는 거지, 네 녀석은 말이야! 그런데도 나에게 고마워 하지."
켄트는 계속해서 킥킥 댔다.
"그리고, 병에 걸려버리면 나를 원망해. 나를 저주하지. 이건 굉장히 열받는 일이거든? 모두 나의 가격이 싸니까 좀 더 나를 쉽게 접하고 흡입하다 중독댄다. 그리고 병에 걸리면 나를 원망한다.....이건 구역질이나는 일이야."
켄트는 이번에는 씁씁하게 웃었다.
"네 녀석은 인간이 싫나?"
나는 어느정도 켄트를 이해할것 같았다.
"뭐, 꼭 그렇지는 않아. 우린 결국 네 녀석들 덕분에 제 임무를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네 녀석들 입속의 니코틴 냄새는 싫어하지."
"뭐라고? 니코틴 냄새가 삻다고? 너는 니코틴 그 자체 인데도?"
담배가 니코틴 냄새를 싫어한다니. 그건 좀 우스운 말이었다.
"이봐, 니코틴은 나의 변 이다. 변 말이야! 너는 너의 변 냄새를 좋아하나? 물런 그럴리 없겠지. 너도 분명 너의 창자속에 엄청난 양의 변을 가지고 있고 또 가끔씩 그걸 보기도 하겠지만 결코 좋아하진 않겠지. 아닌가?"
첫댓글 좋은 글이다~^^ 주변에 담배피는 사람들에게 알려줘야겠어요. "더러운놈 똥 좀 그만먹어!! 뱉으라고!"
평가 감사해요..저도 담배 많이 줄였어요..^^ 열심히 끊어야죠! 아잡!! -_-
멋져요!! 음 나는 어느 작가가 쓴줄 알았네요. 음음 멋져요 정말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