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루는 중국의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작년에 황학루와 등왕각을 다녀왔고 악양루는 2007년에 답사를 다녀온 바가 있다.
당시에는 연구소의 카페가 개설되지 않아서 글을 올리지 못하였다.
마침 이번 주에 악양루를 읽었으므로 늦었지만 한번 올려본다.

악양루 입구. 범중엄의 <악양루기>에 있는 구절을 따와서 파릉승상(파릉군의 빼어난 경치)이라는 액자를 달아놓았다.

악양루 전경. 아래 위 현판 글씨가 우에서 좌로 서로 다르다. 악양루 역시 몇 차례나 허물어지고 복원하고 하였을 텐데 그래도 옛날 모습에 가장 가깝게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황학루와 등왕각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을 정도였으니.

황학루는 원래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주유가 수군을 훈련시킬 때의 지휘부로 당시에는 열군루(閱軍樓)로 불리던 것을 당나라 현종 때 악주자사였던 장열이 처음으로 지었다. 범중엄이 <악양루기>를 쓸 당시에는 그의 동료였던 등종량(滕宗諒: 자는 子京)이 중수하였고, 그의 청에 의하여 천고의 명문인 <악양루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악양루와 범중엄의 <악양루기>, 소순흠이 쓴 <악양루기>, 그리고 소속(邵餗)이 쓴 전서 현판 글씨가 4절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악양루에는 소순흠이 쓴 <악양루기>의 필체나 소속의 전서 액자는 볼 수가 없고 모택동이 쓴 두보의 시만 남아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다음은 모택동이 초서로 쓴 두보의 <등악양루>이다.
〈登岳陽樓〉杜甫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그리고 다른 층에는 빠질 수 없는 범중엄의 악양루기를 이렇게 써놓았다.

<악양루기>에는 천객소인(遷客騷人: 귀양객과 우수의 정서가 깃든 작품을 지어내는 시인)이 흐리고 비가 오는 광경과 맑고 개인 날의 광경을 보고 느낀 심회를 잘 묘사해놓았다. 우리가 갔던 날은 빗방울이 몇 방울씩 듣던 흐린 날이었다. <악양루기>에서 원산(遠山)이라 했던 동정호 안에 있다는 군산(君山)이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하늘과 물이 하나의 빛을 이루는 수광접천(水光接天)의 모습은 이런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골재 채취를 하는 바지선과 배들만 왔다갔다 했다.

입구에서 악양루까지 가는 도중에는 조대별 규모와 모양을 가늠할 수 있는 미니어처를 만들어 놓았는데 송대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게 복원해놓았다. 3대 누각에 모두 이런 미니어처들이 있었는데 규모로 치면 옥외에 전시한 이곳 악양루의 것이 가장 컸다. 사람 키보다 컸다.

악양루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범중엄과 등종량을 모셔놓은 쌍공사.

범중엄과 등종량의 청동 좌상

두 사람을 표현한 석각부조

소장님과 함께
악양루기는 첨부파일로 올려놓습니다.
악양루기.hwp
첫댓글 천하의 명문과 소상한 뒷얘기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악양루기를 읽고 보니 엊그제 다녀온 듯 합니다.고이 간직하신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들 잘 봤습니다.
지붕이 건물을 들고 하늘로 날아오를 둣합니다.
그걸 비첨(飛簷, 또는 檐)이라 하는데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지요. 반면에 일본은 모두 칼 같은 직선만... 그러고 보면 그 중간에 위치한 우리네 처마의 완만한 곡선미는 정면에서 봤을 때 시각적으로 양쪽 끝이 처져보이지 않는 선에서 그치죠. 정말 정말 멋진 곡선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