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며칠 남지 않은 것을 보니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이 물러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이 말글 정책을 제대로 펼지 하는 걱정과 함께 잘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5년간 현 정권의 국어정책 추진을 되돌아보련다.
지난 11월28일 나는 우리 말글살이를 걱정하는 분들과 함께 우리말로 된 회사이름을 버린 KT와 ‘국민은행’이란 우리말 이름은 조그맣게 쓰고 KB란 영문을 크게 쓴 간판을 단 두 공기업을 상대로 ‘정신 피해 보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는 미국말글 상호와 간판, 지나친 미국말 숭배 풍조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를 바 로잡기 위해 법에 호소한 것이나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언제부터 왜 우리 말글이 이렇게 미국말에 밀려 죽게 됐으며 어쩌다가 우리 말글살이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멀리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노태우 정권 때에 싹이 터서 영어 조기 교육을 한다고 나선 김영삼 정권 때부터 자란 못 된 싹이지만 현 김대중 정권 때 이를 바로잡지 않고 방치해두거나 오히려 조장해서 더욱 심 해졌다. 그 증거로 지난 5년 간 국어 관련 사건 몇 가지만 따져보자.
첫째, 현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한자와 외국어 병용정책을 강행했다. 우리 국어 정책의 근 본은 한글 전용이다. 그러나 집권 초기 김종필 총리와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은 자리잡아 가는 한글전용 정책을 더 잘 추진해서 국어 위기를 넘길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말 글과 일본말글 등 외국말을 공문서와 도로 표지판에 병용하겠다고 했다. 제 나라 정부에 제 나라 말글을 살려달라고 문화인들이 삭발까지 하며 시위한 일은 우리 나라 역사상에도 처음 이고 세계에 유레가 없는 부끄런 일일 것이다.
둘째, 준비 덜 된 영어 조기 교육을 강행하면서 영어 공용어 정책까지 추진한 일이다. 영 어 조기 교육은 김영삼 정권 때 세계화 바람을 타고 얼렁뚱땅 정한 엉터리 정책이다. 그런 데 영어를 가르칠 만한 선생님과 시설도 없는 산간 벽지 학교까지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전국에서 모두 시행한 것이다. 거기다가 정부가 앞장서서 나라 곳곳에 특구를 만들고 영어 를 공용어로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니 영어 열병은 점점 더 깊어지고 거리엔 영어 상호와 간판이 늘어났으나 정부는 아무 걱정이 없다.
셋째, 나라에서 만든 국어 교과서와 표준 국어사전이 엉터리이고 국어 교육이 전보다 소 홀하게 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은데도 정부는 못들은체 하고 있다. 집권 초에 한자병용 정책 을 강행하면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고선 국회에서 그 법을 통과하지 못 하게 했다. 많은 국민들이 국어가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국어 교육보다 영어 교 육을 더 걱정하고 있다.
그 나랏말은 그 겨레의 얼이고 겨레 문화 창조의 중요한 무기요 도구다. 국어 교육은 모 든 교육의 기초로서 먼저 잘 해야 다른 교육도 잘 되고 문화가 발전하며 그 바탕 위에서 경 제도 튼튼하게 되는 데 영어 타령만 했다.
위 세 가지만 봐도 지난 5년 동안은 우리 말글엔 암혹기였으며 현 정권의 국어정책 평가 점수는 낙제점이다. 뒤늦게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국어가 위기라는 것을 느끼고 한글 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고 국어발전계획을 세우겠다고 한다. 다음 새 정권은 한글날부터 국경 일로 정하고 제대로 된 국어발전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말글과 함께 나라와 겨레도 불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