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이야기] 담장 수놓는 선홍빛 여름꽃… 옛날엔 양반집에만 심었대요
입력 : 2019.08.09 03:00
능소화
뜨거운 태양도 아랑곳없이 고고하게 고개를 쳐든 선홍빛 꽃. 가느다란 줄기에 손바닥만큼 커다란 꽃들이 뚝뚝 떨어질 듯 탐스럽게 피었어요. 대체로 선홍빛이지만 때로는 분홍빛이나 빨간빛으로도 보이는데, 마치 꽃잎에 형광물질을 타 놓은 것처럼 색이 선명합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꽃을 피워내는 덩굴 식물, 바로 능소화(凌霄花·사진)랍니다.
능소화는 우리나라의 여름 풍경을 대표하는 꽃입니다. 담쟁이덩굴에 덮인 벽 사이에 줄기를 내리고 꽃비가 내리듯 드문드문 꽃을 피우기도 하고, 고즈넉한 한옥 담장 위에 피어나 '꽃담장'을 만들기도 해요.
▲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여름철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능소화이지만, 막상 이름을 보면 금방 뜻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능소화의 한자를 풀어 보면 '하늘[霄]을 능가하는[凌] 꽃[花]'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능소화의 생김새 때문에 붙은 이름 같아요.
능소화는 아주 높게까지 자라나요. 덩굴 식물인 능소화 줄기에는 '흡착근(吸着根)'이라는 독특한 뿌리가 나 있어요. 흡착근은 짧은 실을 여러 가닥 흩트려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요, 능소화의 잎이나 잎대가 퍼져 나가는 마디마다 붙어 있어요. 이 뿌리가 벽에 닿으면 딱 달라붙어서(흡착) 덩굴이 벽을 타고 자라날 수 있도록 강한 지지대 역할을 해 주지요. 이런 원리로 능소화는 높게는 10m 높이에서 꽃을 피워요.
능소화 꽃은 얼핏 보기엔 동그란 꽃처럼 보이지만 꽃잎 아래를 자세히 관찰하면 뾰족하게 한 점으로 모여들고, 꽃잎 끝은 넓게 퍼져 나팔처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이 뾰족한 부분의 꽃받침이 하늘을 향해 방향을 단단히 잡아 줘서 꽃봉오리가 하늘을 향해 피어나지요. 이 모습이 우리가 실제로 나팔 부는 것과 비슷해서 영어로는 '트럼펫 크리퍼(trumpet creeper·나팔 덩굴식물)'라고 해요.
능소화는 장마철부터 슬슬 피어나기 시작해 9월까지 한창입니다. 능소화는 벚꽃처럼 순식간에 펴서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아요. 이 시기 계속해서 꽃이 졌다 폈다를 반복하지요. 개화 기간 내내 싱싱하게 핀 꽃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봄에 피우는 다른 꽃보다 한참 늦은 여름에 꽃을 느긋하게 피워서인지, 아니면 꽃이 크고 호화로워서인지 옛날엔 능소화를 양반댁에만 심을 수 있는 '양반 꽃'이라고 했다고 해요. 평민들은 이 나무를 함부로 심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네요. 지금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담장과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요.
능소화는 꿀이 아주 많아 벌이 꿀을 빨아오는 '밀원식물'이에요. 지금은 벌이 활짝 핀 꽃에서 꽃밥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닐 시기입니다. 한때는 능소화 꽃의 꽃가루가 독성이 있다고 오해가 있었으나 최근 안전하다고 알려졌답니다.
최새미 식물칼럼니스트
출처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