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사, 修善寺, 최익현 선생 추모비 있는 곳>
<국본사, 國本寺, 나라가 세운 절>
<하치만궁 신사>
대마도주 종의지가 천주교를 믿던 부인 <이마미야>와 아들<와카미야>를 입신시켜 제사를 모시다 후에 천신신사에 합사된 곳.
'마리아신사'라고도 하는데 이 곳은 겉으로 태재부 텐만궁의 <학문의 신>을 모시는 것처럼 위장하였지만 <소서 마리아>와 <예수>와<성삼위일체>를 동시에 제사지내는 신사이다.
<쓰시마 시청사>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덕혜옹주는 <내선일체> 상징으로 대마도주 손자인 종무지 백작과 1931년 동경에서 결혼 후, 시댁인 대마도에는 인사차 한 번 들렀다고 한다.
<金石城의 천수각, 야쿠라몬(樓門)>
대마도에서 가장 일본색이 짙은 건축물, 안쪽에 조선통신사를 위한 영빈관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국통신사지비>
통신사는 임진왜란 후 기유조약(1609, 광해 1년)에 의거하여 일본으로 보낸 외교사절의 명칭, 파견 횟수 12회. 일본에 머무는 동안 한시, 그림, 유학등 을 전수해줌.
제12회 때는 에도막부가 대외적으로 개방압력을 받고 체제붕괴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통신사 사절을 본국으로 들이지 않고 국경지역인 대마도에서 접대 후 귀국시켰다.
<야간에 본 하치만궁신사>
<만관교(万關橋), 만제키바시>
1896년 러시아 남하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과 최단거리 대마도 타케시키(竹敷)에 50척 해군함정을 정박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한 후, 목이 가장 좁고 수심이 깊은 만관세토(万關瀬戶)를 1987년 굴착시작 1900년에 완성했다.
일본은 조선에서 빼앗아 간 돈 <65만원>으로 조선 병탄 해군기지와 만관교를 건설했다.
<에보시타케, 대마도의 하롱베이>
360도 조망으로 107개 섬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찹쌀붕어빵, 150엔>
<와타즈미신사, 和多都美神社, 대마도 유일의 용궁신사>
1. 바다에 토리이(鳥居, 문)가 세워져 있는 이유: 바다의 신인 용왕이 수중 토리이를 통해 육지에 서있는 토리이를 통과하여 신전으로 들어왔다고 믿기 때문에
2. 토리이가 다섯 개인 이유: 인간이 5욕(식욕(食慾)ㆍ색욕(色慾)ㆍ재물욕ㆍ명예욕ㆍ수면욕)으로부터 해탈하라는 의미
3. 토리이가 김해 또는 서라벌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과거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도해궁이었다는 증거로 삼기도 한다.
<神話里 자연공원 캠프장>
<조선국 譯官使 殉難之碑>
1703년 부산서 출발한 선박 3척(역관사 108명)이 침몰하였는데 이 때 죽은 역관사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고국이 보이는 언덕 위에 순난지비를 세웠다.
<한국전망소(대)>
일제강점기에 대마도로 잡혀온 우리 선조들이 명절 때가 되면 고향땅이 보이는 이곳에서 망향의 설움을 달래던 곳이기에 부산이 보이는 언덕에 전망소를 세웠다.
<미우다 해변>
아름다운 일본100선 해수욕장에 선정된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