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넷 선율처럼 미려한 후드로 승부
국내시장 50% 장악 … 일본 공략 세계 5대 업체로 도약 꿈꿔
평택공장에서 3차원 부품설계 교육을 받는 하츠의 직원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2D9D2F4CBBACE64C)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강남구민회관.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가 되면 중년의 신사들 수십명이 차에서 내린다. 손에는 하드케이스로 된 가방을 들고 있다. 연습실에 도착한 이들은 가방 안에서 악기를 꺼낸다.
이건상 한양대 부총장(유포니움), 안한성 안흥상사 회장(클라리넷), 이순우 전 상사중재원장(트럼펫), 권영길 롯데항공화물 사장(알토색소폰), 권문용 전 강남구청장(호른), 김형철 제일화재 사장(호른), 황정규 동부지원 수석부장판사(플루트), 이수문 하츠 사장(클라리넷)이 눈에 띈다. 연습곡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비롯해 비발디의 ‘사계’, 오페라 ‘아이다’ 서곡, 비틀스 메들리, 사운드오브뮤직 등. 클래식에서 뮤지컬, 팝,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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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경기시니어앙상블 멤버들. 경기고 출신 음악애호가들이다. 몇몇 전문연주가를 제외하곤 대부분 아마추어들이다. 하지만 실력은 프로급. 상당수는 경기고 밴드부 출신이며 나머지는 나중에 입문한 케이스다. 이미 수십년 동안 악기를 다뤄왔다. 전체 멤버는 약 60명.
이수문 하츠 사장(58)은 경기중학교 밴드부 시절부터 불기 시작했으니 클라리넷 연주경력이 40년을 넘는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재학 중에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를 불었고 군대생활 중에는 베트남 근무를 자원해 파월사령부 군악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중학교 때부터 연극활동도 해 왔다. 연극 한 편 준비하려면 최소한 두 달 정도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도서관보다 연극연습실에서 살 때가 많았고 고교, 대학 재학 중에도 연극활동을 해 왔다.
음악과 연극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와 〈겨울나그네〉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는 대학졸업 후 보루네오통상, 한샘, 현대종합목재를 거쳐 88년 하츠를 창업(당시 사명은 한강상사)한 뒤 기업경영에 몸담으면서도 음악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 없었다. 낮에는 레인지후드를 만들고 밤에는 청바지로 갈아입은 뒤 뮤지컬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명성황후는 그가 윤호진 단국대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짜낸 작품. 극단 에이콤을 탄생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명성황후> 등의 공연이 있을 때 그의 역할은 뜻밖에도 ‘기도’다. 멜빵바지를 입고 손님들을 안내하는 게 그의 몫이다.
음악이건 연극이건 일단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하면 열정을 갖고 하는 기질은 기업경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하츠를 창업해 부엌용 레인지후두 분야에서 최대 업체로 발돋움시켰다. 레인지후드는 요리할 때 음식냄새와 연기를 흡수해서 배출하는 기기.
1990년부터 레인지후드를 시장에 내놓은 이 회사는 98년 약 30%의 점유율로 업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더욱 점유율을 높여 현재 레인지후드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고급제품인 데코후드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다.
이사장은 처음에는 외국 유명제품을 수입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섣불리 양산라인을 구축했다가 실패할 경우 타격이 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처음 들여온 제품은 독일 보쉬의 레인지후드. 평균 가격이 15만원선으로 당시 유통되던 최고가 제품보다 3배 정도 비쌌지만 생각보다 잘 팔렸다. 이에 자신을 얻어 90년 파주에 양산라인을 구축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보쉬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형태였다.
“완제품 수입에서 부품수입조립, 완제품 생산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갔지요. 이 과정에서 보쉬의 도움이 컸습니다.”
보쉬의 지원도 있었지만 스스로 기술개발에 노력한 것은 물론이다. 하츠는 96년 업계 최초로 회사 내에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뒤 해마다 매출의 3%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하고 있다. 전직원의 10%에 해당하는 25명이 연구인력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학기술원, 인하대 등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제품을 기획할 때 성능은 독일 수준, 디자인은 이탈리아 수준, 관리는 일본 수준으로 세웠다. 아무리 국내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심하다 해도 절대 가격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품질로 싸운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제품의 품질은 세계 정상급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자만하지 않았다. 특히 소음이 적으면서 강력한 성능을 지닌 소형모터의 국산화가 과제였다. 부가가치가 가장 큰 핵심부품인데다 이 부분의 성능이 개선돼야 명실공히 세계 정상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 생각해낸 것이 산학협동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을 찾아가 연구원들을 설득해 1년 6개월 동안의 공동작업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디자인은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 홍익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양영완 교수를 고문으로 초빙해 미적 감각이 뛰어난 후드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하츠는 최근 기존 레인지후드에 비해 소음이 훨씬 적고 공기 흡입 및 배출 능력이 뛰어난 신제품 ‘플래티넘 후드’ 시리즈를 내놓고 시장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후드 표면을 세라믹 코팅으로 처리해 간단한 물세척만으로도 기름때를 벗길 수 있으며 24시간 연속 환기, 공기정화 등 친환경적인 기능도 추가했다.
하츠는 최근 주택환기시스템, 빌트인가전시스템 분야에 잇달아 진출하며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주력인 레인지후드 시장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것.
주택환기시스템은 이미 5년 전부터 연구해 온 분야. 고층아파트가 증가하면서 공조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요구도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층 주택의 경우 소음과 먼지, 강한 바람 탓에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환기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츠는 건설사와 제휴해 초기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각오다. 연간 시장규모가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다 가정마다 맞춤형으로 설계, 시공을 해야 하다 보니 대기업이 직접 뛰어들기도 어려운 시장이다.
때마침 건축 관련 법령도 바뀌어 신축아파트의 경우 주택환기시스템을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시장환경도 유리하게 조성돼 있다. 올해 주택환기시스템의 매출목표는 지난해의 3배인 60억원으로 잡고 있다.
“제품을 직접 생산하기보다 외부의 요소 제품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는 작업에 중점을 둘 방침입니다. 홍익대 및 인하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지요.”
하츠는 해외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주요 공략대상으로 선정한 국가는 일본. 까다로운 시장이지만 세계적인 레인지후드업체들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데다 시장규모가 매우 커 품질만 뒷받침되면 매력적인 곳이라고 이사장은 판단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해에는 ‘일본 홈 앤드 빌딩쇼’에 참가하는 등 이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3~4년 후에는 일본시장의 5%를 점유하겠다는 목표다.
하츠는 이 같은 신규사업 강화와 해외진출을 통해 매출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목표는 800억원. 지난해의 721억원(당기순이익 45억원)보다 11% 늘어난 것.이사장은 “현재 하츠는 레인지후드 분야에서 세계 7위권이지만 몇 년 내 5위권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 밑바탕엔 자사제품을 모차르트 작품처럼 명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q
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약력 : 1948년 완주 출생. 66년 경기고 졸업. 73년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및 보루네오통상 입사. 75년 한샘 입사. 85년 현대종합목재 이사. 88년 한강상사 창업 및 대표이사 취임(2001년 사명을 하츠로 변경:현) △수상: 71년 대한민국건축:사진전 국무총리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