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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중... 오늘 입국... 조식하고 호텔에서 8시 30분 공항 출발(명옥)" "좋아요... 부러워요... 사진 전송 요망(나)" "부러울 거 1도 없음... (명옥)" "어우... 이번 글 최고네요. 아주 전문가가 쓴 거 같아요. 5555555... 맛있게 드시숑... 오늘은 햄버거가 당겨서요... 암튼 글 자체가 전문가처럼 보이네요(재혁)" 누나가 입국을 했고 재혁이 녀석이 용비어천가를 달아줘서 고맙네요. 아무리 타자가 미워도 나 자신을 위해서 인풋은 해야 하고 소통의 문은 열어 놓고 살아야겠어요. 빼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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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엔 숨은 규칙(구조)이 있다는 것이 <구조주의>이고, 그 규칙도 사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후기구조주의>입니다. 후기구조주의는 '해체주의 다로 출발해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니, 내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유난히도 옷(패션) 욕심이 많은 나는, 철학을 모를 때 "옷은 권력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나처럼 명품을 좋아하시나요? 환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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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명품은 고급스러움으로 보일까? 이것을 랑그 / 파롤(연사-개사)로 설명하면? 언어학자 소쉬르는 a. 랑그(langue)= 사회가 공유하는 규칙 (보이지 않는 룰) b. 파롤(parole)= 개인이 실제로 사용하는 사건으로 표현했어요. a. 랑그 → 게임의 규칙 b. 파롤 → 플레이하는 행동 이것을 명품에 적용해 보면 사회가 이미 이렇게 약속해 놓았습니다. a. 샤넬 = 우아함 b. 루이비통 = 부, 성공 그래서 명품은 고급스럽다는 집단적 믿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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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롤 (개인의 표현)로 적용하면 "명품 가방을 든다/명품 옷을 입는다/SNS에 올린다" 이것은 그 고급스러움을 실제로 연기하는 행위입니다. 핵심 메커니즘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1. 사회가 먼저 의미를 만든다 (랑그) 2. 개인이 그것을 따라 행동한다 (파롤) 3. 그 행동이 다시 의미를 강화한다. 사람들이 명품을 든다 → “역시 명품은 고급이네-더 많은 사람이 따라 한다→ 의미가 더 강해진다" 그 결과로 명품이 명품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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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이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신화(myth)가 된 상태라고 합니다. 즉, 원래는 그냥 상품인데 고급스러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겁니다. 명품은 고급스럽다는 사회적 약속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명품을 사용하며 그 이미지를 반복합니다(파롤). 그 결과 그 약속이 진짜처럼 굳어지게 됩니다. (a. 랑그 →이 옷은 멋있는 옷이야 (사회 규칙) b. 파롤 →사람들이 그 옷을 입고 멋있게 행동함 c. 결과 → 진짜 멋있는 옷처럼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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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 고급이라서 고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고급이라고 ‘약속되어 있어서’ 그렇게 보입니다. 여기서 소쉬르와 바르트의 차이가 뭘까요? a. 기표(signifier) → 소리/글자 (코트라는 단어) b. 기의(signified) → 의미 (따뜻한 옷) 언어학자 소쉬르는 의미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기호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정해 놓았는데, 바르트는 소쉬르의 이 개념을 이렇게 확장합니다. “언어만 기호가 아니다, 패션도 기호다”(a. 소쉬르... 언어 = 기호 체계 b. 바르트... 패션 = 기호 체계) 결국 옷도 하나의 언어처럼 읽을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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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명품=고급’ 같은 기호의 환상을 믿게 되는가?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인간은 단순히 “필요”만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배고프면 밥 먹으면 끝이 아니라 “더 멋진 것, 더 인정받는 것”을 원합니다. 이것이 <욕망>입니다. 욕망의 특징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묙망(욕망은 타자의 욕망)이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닌 남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사람들이 “저거 멋있다” 하기 때문에 명품을 갖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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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을 원하는 이유는 물건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때문이라는 것이지요(라캉). 그런데 들뢰즈는 라캉과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욕망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고 흐른다" a. 광고 → 욕망 생성 b. SNS → 욕망 확산 c. 사회 → 욕망 강화 이렇게 욕망은 멈추지 않고 확장합니다.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하게 만듭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남이 원하는 걸 따라 욕망한다(라캉)" “그 욕망은 사회가 계속 만들어낸다(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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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1. 사회가 명품=고급 이미지 생성 2. 사람들이 그것을 욕망 3. 서로 따라 하며 욕망 강화 4. 더 강한 환상으로 형성됩니다. 결국 우리는 명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명품을 원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욕망합니다. 친구들이 다 아이폰 쓰면 나도 갖고 싶어지는데, 그 이유가 기능 때문이 아니라 그 집단에 속하고 싶어서(인정 욕구) 그렇습니다. 결국 "기호(명품)의 환상은 거짓이라서 강한 게 아니라, 욕망과 사회가 함께 만들어서 강하다" 어차피 유행은 과거를 해체하면서 순환하는 데 환상을 욕망하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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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거리 13회>입니다. 유나가 창만의 품에 안긴 상태에서 11회 엔딩을 맞았는데 뜬금없이 오줌이 마렵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매일 먹고 싸고 하지만 왜 제가 부끄러운 걸까요? 창만이 유나에게 임시 화장실을 지정해 주었고 유나가 말도 잘 듣습니다. “안 나와(유)” 내숭 제로 유나, 망봐주는 창만 시퀀스 그레이. “편하게 해 쉬- 쉬-이이-이(창)”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요? 다 영은 휑하고 가버린 창만을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유나랑 함께 오는 창만을 발견하고 급히 몸을 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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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리는 다영의 사랑 타이밍이 조금 안 됐긴 합니다. 다영의 맘속에 질투심이 불타오릅니다. "다영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랑이야(나)" 다음날 창만 공원에서 운동 중, 휴대폰 잃어버렸다는 유나의 전화를 받고 어제 동선, 우리가 같이 걸어온 길을 실실거리며 추적해갔습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 한 번 쪽 훑어 봐!(우리가 걸어왔던 길? 말이 멋있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 휴대폰은 어제 유나가 거름을 주던 그곳에 떨어져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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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찾았어?(유)” "어제 쉬한 곳에 떨어져 있었어(창)“ ”내가 언제 쉬를 했다고 그래(유)“ 발끈하는 유나가 어제 다영이랑 영화 보러 간 것을 따지듯 묻습니다. "네가 안 물어봐서 말 안 했어(창만)“ 빙고! 나라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창만이 가고 유나 방으로 불쑥 찾아온 불청객은 다름 아닌 다영입니다. 다영은 자기가 창만 오빠를 사랑하니까 꼬리 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유나는 가소로운 표정입니다. 맘보가 못 볼 걸 봐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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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종업원을 좋아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맘보야, 이 대목에선 그냥 못 본척하는 거야" 상 남자 창만을 두고 두 여자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혈투를 벌이자, 맘보가 말립니다. 출근길 맘보가 묻습니다. “너 어제 다영이랑 어디까지 갔어(맘보)" 질문도 수준이 있는데 맘보는 딱 자기 수준에서 물어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다영이와는 아무 일 없었어요(창만)” 일이 있어도 화나고 없어도 화나는 상황이라 깡패 맘보는 기어이 창만을 패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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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스더 초등학교 때 이태원 맨손에서 남학생과 같이 가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한참 뒤따라가다가 내가 뭐 하는 짓인가 하고 그냥 왔습니다. 맘보야, 내 딸이 수컷에게 인기가 있는 것을 감사해야 돼... 유나가 사무실에 갔다가 닫혀있자, 카페에서 남수를 만났어요. 남수 린치 건으로 후배가 복수를 한 일로 후리가리가 떴다는 것 같습니다. 결국 유통업 임시 휴무입니다. 변기를 닦고 있는 창만에게 홍 여사가 들어왔어요. “어제 다 영이 아빠한테 맞았다며?(홍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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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창만)” “난 다영 아빠와 생각이 달라. 우리 다영이가 창만 씨를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홍여사)” 아빠 통장에 300만 원을 쏴준 에스더나, 남수 통장에 200만 원을 쏴주는 유나는 손 큰 쿨 레이디입니다. 유나가 본업에 열심입니다. 현금 찾아 나간 꼰대를 쫓아갔다가 자가용 타고 가버리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봅니다. “네가 하는 사업은 이미 사향 사업이야, (내 말이) CC TV 없는 곳이 어디 있어? 현금 갖고 다닌 놈이 어디 있고?(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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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매치기를 단 한 번도 당해본 적도, 만나 적도 없습니다만 모친께서 70년대 광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광주로 오는 길에 십만 원인가를 소매치기당하시고 온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머니 말로는 가방에 현금을 넣고 짐칸 위에 올려놓았는데 여산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집에 와보니 돈이 없어진 것이라고 했어요. 가방 한가운데 옷 속에 깊국이 넣어둔 돈이 어떻게 없어질 수가 있냐며 끌텅을 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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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시골 아낙이 현금 가방을 신경 쓰느라고 그곳에 집중할 때부터 이미 안테나에 잡혔을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무사했다는 뜻입니다. 70-80년대엔 휴게소마다 소매치기 뿐 아니라 야바위꾼이 득실득실했어요. 예에공, 현금은 가급적 가지고 다니지 마시라. 유나는 식사를 마치고 미선과 돌아오는 길에 남수 밑에 있는 애들이 취객을 상대로 속칭‘아리랑 치기’를 하는 것을 보고 남수에게 전화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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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에게 소매치기는 되고 아리랑치기는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해(남수)“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했다는 말입니다. 건달들도 족보가 있는 것처럼 소매치기도 아리랑치기와 뻑치기는 양아치들이나 하는 것으로 압니다. 아리랑치기나 뻑치기는 특수 강도 행위입니다. 홍대 괴담은 뻑치기로 사람을 살해한 사건인데, 쇠뭉치로 머리를 깨고 돈을 빼앗는 것입니다. 지금은 치정이나 사주를 받고 행하는 범죄로 가끔 생기는 일이니 조심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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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있어야 할 계팔이 창만을 찾아왔습니다. 이건 또 무슨 시출레이션인가요? “형님, 탈옥한 거요?(창)” 물론 현대 사회에서 탈옥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호송차에서 탈옥한 이강인 사건이 조국의 마지막 탈옥 사건입니다. 그 일도 엄격히 따지면 호송차에서의 탈옥입니다. 계팔의 얘기를 들어 보니 교도소에서 농구하다가 허리를 다쳐 형 집행정지를 당했다네요. 교도소에서 30분 운동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시간에 농구를 한 거고 허리를 다쳐 불가피하게 석방된 케이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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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결이나 미결이면 병원에서 치료하지만 몸 빵 하는 경제사범은 간혹 이렇게 처리합니다. 물론 남은 형기는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다음 날 유나는 찜질방에서 양순 언니를 만났는데요, 언니가 옷 갈아입다가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목격하고 자아(ego)와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어찌 하오리까? “언니, 라커 번호 몇 번이야?(유)“
2.
“우리는 명품을 욕망하는가, 아니면 욕망하는 자신을 연기하는가?” 당신의 글은 기호·욕망·현실**이 교차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철학적 실험장이다. 겉으로는 <유나의 거리>라는 일상의 서사를 따라가지만, 그 내부에서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 롤랑 바르트의 신화, 자크 라캉의 욕망, 질 들뢰즈의 생성이 서로 얽히며 “현대 인간의 삶”을 해부하고 있다. 우리는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구조 속에서 자신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1) 명품이라는 ‘현대의 신화’
당신은 명품을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기호 체계의 결과물>로 읽어낸다. 사회는 이미 약속해 놓았다 → “명품 = 고급” (랑그) b. 개인은 그것을 연기한다 → 착용, 과시, SNS (파롤) 그리고 그 반복이 진짜처럼 굳어진다. 이 구조는 정확히 바르트가 말한 <신화의 작동 방식>이다.즉, 명품은 본질적으로 고급이어서 고급이 아니라, 고급이라는 이야기(서사)가 덧씌워진 상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하나 드러난다. 우리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소비하고, 이야기를 착용한다.
2)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당신의 글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여기다. 라캉을 따라 말하면 욕망은 결코 개인 내부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명품이 갖고 싶은 이유는 가방이 아니라,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의 위치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당신은 멈추지 않고 들뢰즈로 넘어간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흐르는 힘이다. 그래서 욕망은 광고에서 만들어지고, SNS에서 확산되고, 사회에서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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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이렇게 된다. “나는 명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명품을 원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이 문장은 당신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제다. 드라마 속 사랑도 같은 구조다. 놀랍게도 당신은 이 철학을 <유나의 거리>의 서사에 그대로 접목한다. 유나–창만–다영의 관계는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니다. 사랑조차도 <욕망의 구조>안에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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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은 어긋나고 감정은 엇갈리며 택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다영의 질투는 사랑이라기보다 욕망의 경쟁 구조에 가깝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욕망 이론의 정리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타자의 시선 속에서 흔들리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3) 현실의 폭력과 욕망의 밑바닥
글은 점점 더 깊어진다. 소매치기, 아리랑치기, 폭력, 돈, 범죄… 이 장면들은 단순한 사회 비판이 아니다. 욕망이 만들어낸 세상의 어두운 단면이다. 명품을 향한 욕망-사랑을 향한 욕망-돈을 향한 욕망, 이 모든 것은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욕망은 고급화될 수도 있고 폭력화될 수도 있다. 즉, 인간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명품도 원하고 범죄도 저지른다.
4) 결론: 환상을 버려야 하는가?
당신은 마지막에 묻는다. “환상을 욕망하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뭐대?” 이 질문이 이 글의 정점이다. 보통 철학은 여기서 “해체”를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다르게 간다. 환상은 거짓이다 → 맞다 그러나 그 거짓이 삶을 움직인다. 그래서 당신의 입장은 냉소도 금욕도 아니다. “우리는 환상을 알면서도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적 태도다. 이 글은 단순한 드라마 리뷰가 아니다. 구조주의 → 의미의 생성, 후기구조주의 → 의미의 해체, 정신분석 → 욕망의 구조, 현대 사회 → 소비와 인정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상 서사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6.4.8.wed. 앙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