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은 미국에서 가장 축제로 지키는 감사절입니다
감사절이 시작된곳으로 안내합니다
보스톤 시의 건물에 자물쇠를 단 특이한 건물 소토리지 건물
미국의 감사절의 유래가 된 메이플라워호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영국의 국교에 반기를 든 청교도(Puritan 또는 Pilgrim Fathers)들이
박해가 심해지자 1620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이 180톤짜리 작은 배 메이 플라워(May Flower)를 타고
63일간의 긴 항해 끝에 12월 11일 아메리카 대륙 플리머스(Plymouth)에 상륙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천신만고 끝에
플리머스에 도착한 것은 9월이 었다.
농사를 지을 기회도 없이 그들은 그 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질병으로 44명이나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경건 생활의 유지를 위해
그들은 자주 금식하며 자기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초에 대해 너무나도 견디기 힘이 들자
그들의 마음은 계속 울적해졌고 박해를 각오하더라도 고국으로 돌아가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때 한 번 더 금식하며 기도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때 한 점잖은 노인이 벌떡 일어나서 말하기를
우리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
어렵다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자비로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들은 어려운 시련을 통하여 점점 더 강한 사람들이 되었고,
논과 밭은 처음보다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강에서도 더 많은 물고기가 잡혔고, 숲에서도 더 많은 사냥을 할 수 있었으며,
우리들에게 이젠 공기도 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들 외에도 우리들의 아내들은 건강했으며
자녀들은 부모의 말씀에 잘 순종했고
우리들은 이제 우리들이 소망했던
시민권과 종교의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라고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설파했다.
이 노인은 말하기를 이제 우리의 일이 힘드니
우리가 금식함으로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고,
힘든 일을 극복하고 자유와 함께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의 축제를 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1621 가을 그들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1년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동안 자기들을 도와준 인디안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축제를 벌렸습니다.
당시의 행정관이었던 William Bradford가
그날을 감사의 날로 정하였고
매년 인디안들을 초대하여 감사의 축제를 열었습니다.
1621 브렛포드가 지정한 이 감사절은
그 후 미국국회에서 국경일로 정하여
1789년 초대 대통령 조지 위싱톤이
11월 26일을 Thanksgiving Day로 선포했고
그 후 링컨 대통령이 11월 4째 목요일로 개정공표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감사절에 칠면조와 호박을 먹는 풍습은
그때 초대받은 인디안들이 야생칠면조와 호박을
선물로 가지고 온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처럼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인디언들과 함께한 나눔의 축제요/ 축제의 예배였던것입니다.
청교도들이 가졌던 정신은
3가지로 집약할 수 있는데
첫째 신앙, 둘째 노동, 셋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청교도들은 신앙제일주의로 미국 땅을 개척했습니다.
미국의 지성인들이 염려하는 것은 요즈음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청교도 정신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타락되어 있으나 아직도 미국을 지탱해 나가는 것은
이 청교도정신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왕정 정치이기는 하나 기반이 잡혀있고
경제적으로도 질서가 잡혀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황무지와 같은 땅, 배고픔, 개척의 어려움,
인디안들의 위협 등을 각오하고 신대륙을 향해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바로, 그리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로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개척정신입니다 (노동)
생소한 땅에 상륙한 청교도들은 막막한 대지,
우울한 정글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을 해가며 그들의 앞에 부디 치는
숫한 고난과 투쟁하면서 내일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긴 항해 끝에 미국 땅에 겨우 도착하였을 때
몸은 지치고 육신은 병들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추위와 굶주림으로 동료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앉아서 속수무책 한탄만 하면서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힘이 진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고, 그들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열심히 노동하는 그들에게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씨를 뿌려 가꾸고,
사냥을 해서 짐승을 잡아, 살은 먹고 가죽은 옷을 해 입었습니다.
지혜를 연마하여 식물과 동물의 섬유를 취하여 직조를 만들었습니다.
어린아이도, 노인도 함께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노동해 가며 개척했습니다.
나는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도와줄 것이 없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3. 셋째로 청교도들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소유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신앙하고 노동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서양 푸른 바다에 풍랑으로 죽을 생명을 살려 주셔서
신대륙에 정착 할 수 있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을 감사했고,
부지런히 일한 후에 맺은 열매를 들고 감사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심고 가꾸는 노동은 했지만
자라나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신 것은
하나님인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든 것입니다.
특히 역경에서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들의 특색입니다.
밤낮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밤낮 궁상만 떠는
사람에게는 노래와 감사가 없습니다.
기쁨과 감사는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근거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1. 우리는 먼저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임마누엘 간트는 말하기를 “세상에 은혜 모르는 것 이상 나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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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 슈타인의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첫댓글 아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