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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월드에서 "천이틀밤"에 올린 글인 사라졌다. 다시올린다.
아마도 1907년에, "창조적 진화" 100주년을 생각하여 정리한 글이다.
아래 전체글의 파일이 있다.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 1907) 3장
벩송(1859-1941)
제3장 생명의 의미: 자연의 질서와 지성의 형식
Bergson, L'evolution creatrice, pp. 187-272. PUF, 1991[1941 (1907)], P. 372
[벩송은 3장에서 종래의 이원성이 물질과 지성의 대응(실은 비대칭이지만)관계를 논한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식은 또 하나 있다. 직관과 행동이다. 물질과 지성이 아퀴나스의 사물과 지성의 일치 이래로 데카르트의 사유와 연장, 칸트의 오성과 현상, 헤겔에서 개념과 현상의 일치로 변질되었을 뿐이다. 앵글로색슨 철학은 물자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언어의 불가사의로 갔다. 그럼에도 스토아를 잘 보지 못했다. 그 철학은 합리성의 강조를 지성의 한계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은 다른 인식이 있고, 생명인식과 사물인식의 비대칭을 강조한 것이다. 벩송을 비합리라고 하는 사람들은 좁은 이성에 갇힌 것이다. 벩송에서 합리성은 두 인식 사이의 혼합(mixte)에 있기 때문에 저들의 철학보다 폭넓고 깊이도 깊다. 그래서 표면이 아니 심층, 지성의 분석보다 총체적 경험의 철학의 길을 열었다. 여기 제3장은 두 개의 질서는 하나의 유동하는 존재의 두 속성이라 표현할 수 있다.(40ULG)]
[단행본의 목차]
제3장 생명의 의미: 자연의 질서와 지성의 형식
생명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의 관계 (187 -201)
철학적 방법.(La méthode philosophique)
제기된 방법의 표면상 선결문제의 오류 (cercle vicieux apparent)
역전된 방법의 실재상 선결문제의 오류 (cercle vicieux réel) [이 두 가지 오류를 주목]
물질과 지성의 동시적 발생의 가능성 (201-221)
물질에 내재한 기하학
지성의 본질적 기능
무질서 관념의 분석을 토대로 한 인식이론 (221-238)
질서의 상반된 두형식
류의 문제와 법칙의 문제
무질서와 두 질서
창조와 진화 (238 -271)
물질계
생명의 기원과 운명
생명과정과 진화운동에서 본질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
인류애(L'humanité).
신체의 삶과 정신의 삶 (Vie du corps et vie de l'esprit)
[단행본 상의 소제목]
제3장 생명의 의미: 자연의 질서와 지성의 형식
[생명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의 관계 (187 -201)]
따라야 할 방법(La méthode à suivre) 187-193 방법의
선결문제 오류(cercle vicieux) 표면상 193-195
과학과 철학(Science et philosophie) 195-201
[물질과 지성의 동시적 발생의 가능성 (201-221)]
지성과 물질성(Intelligence et matérialité) 201-209
기하적 질서 (L'ordrre géométirque) 209-212
기하학과 연역(Géométrie et déduction) 212-214
기하학과 귀납(Géométrie et induction) 214-217
물리적 법칙들(Les lois physiques) 217-221
[무질서 관념의 분석 (221-238)]
무질서의 관념(L'idée de désordre) 221-227
류들과 법칙들(Les genres et les lois) 227-232
무질서와 두 질서(Les désordre et les deux ordres) 232-238
[창조와 진화 (238 -251)]
물질의 이상적 발생(Genèse idéale de la matière) 238-251
[진화 (251-271)]
진화의 의미 (Signification de l'évolution) 251-271
[전집의 목차]
제3장 생명의 의미: 자연의 질서와 지성의 형식
생명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의 관계 (187 -201)
따라야 할 철학적 방법.(La méthode philosophique)
방법의 선결문제 오류(cercle vicieux) [두 가지 오류]
과학과 철학
물질과 지성의 동시적 발생의 가능성 (201
물질에 내재한 기하학적 질서
지성의 본질적 기능
기하학과 연역
기하학과 귀납
물리적 법칙들
무질서 관념의 분석 (221
질서의 상반된 두 형식: 류와 법칙(genre et lois)
무질서와 두 질서
창조와 진화 (238 -271)
물질의 이상적 발생(Genèse idéale de la matière)
생명의 기원과 운명 (Origine et destination de la vie)
생의 도약(L'élan de vie)
진화에서 본질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L'essentiel et l'accidentel dans l'évolution)
반성의 진행(La marche à la réflexion)
인간의 의식, 진화의 목표(La conscience humaine, but de l'évolution) .
정신의 삶(La vie spirituelle) [* 편집자는 베르그송의 ‘신체적 삶’을 뺏다]
[*아래 정리는 위 세 가지 목차를 종합하여 우리에게 맞게 소제목을 재배치한다*]
*** 깡길렘(Georges Canguilhem, 1904- )은 「창조적 진화 제 3장 분석 I」에서, 베르그송의 사유 분절(문단 나누기)이 매우 분명하다고 하면서 도식적으로 구분을 한다. 그 구분은 네 단계이다. Ⅰ. 독창적 철학 시도: 지성과 물질의 동시 생성(187-193); Ⅱ. 베르그송의 방법에 대한 옹호 (193-201); Ⅲ. 지성과 물질 관계(201-238); Ⅳ. 물질과 생명(238-271). [ 깡길렘의 주석I (Commentaire I)은 Ⅰ과 Ⅱ를 주석II(Commentaire Ⅱ)는 Ⅲ을 다루고 있고, IV는 계속한다고 했으나 다루지 않았다.] ***
제3장 생명의 의미: 자연의 질서와 지성의 형식 187-271
§1. [중 제목] 생명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의 관계 (187 -201)
§1-0. 지금까지의 논의의 정리
187 [제일장의 핵심 단어] 흐름(flux)
187-2 [제 2장의 핵심 단어] 하나의 토대(un fond unique). 의식일반(conscience en général)은 우주적 생명(vie univeselle)과 공연적(coextensif)이다. (ES 8, MM 128)
[로베르 사전에: 보편적, 전반적, 우주적이란 프랑스어로 universel(s), -elle(s)이다. 그런데 유니베르살(universal)이란 형용사는 사전에 없다. 그럼에도 복수 보편자(universaux)란 단어는 있다. 후자의 보편자에는 다섯 개념(류, 종, 차이 또는 종차, 고유자, 우발자(le genre, l'espèce, la différence ou différence spécifique, le propre et l'accident)이 있다.]
187-3 [제 3장의 주제] 지성의 발생과 물체(corps)의 발생에 관한 시도이다. ... 지성성과 물질성은 세부적인 면에서 상호 적응에 의해 구성되었을 것이다.
§1-1. 따라야 할 철학적 방법 (La méthode philosophique) {따라야 할 방법 188-193}
[자아, 세계, 신의 관점은 심리학, 우주발생론(cosmogonie), 형이상학이란 용어로 바뀌어 있다.]
188 [심리학, 우주론, 형이상학의 공통주제] 심리학, 우주론, 형이상학은 본질적인 것에서 지성이 부여됨으로서 시작한다.
188-2 [심리학] 인간 행위의 중요한 선이 물질 세계 속에서 우리가 분간한 것과 같은 일반 방향을 구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향을 제시하는 순간부터, 지성을 부여한다. [이런 논의는 MM에서 이루어 졌다]
189 [우주론] 스펜서(Spencer)의 우주 발생론(cosmogonie)에서도 물질을 단번에 받아들이고 있다. ... 우리의 지각은 사물자체라기보다 사물에 관한 우리의 가능한 행동의 도식(dessin)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우리가 보기에 물질을 관통하여 그려진 선들은 우리가 순환한다고 말했던 선들과 동일한 것이다.(189)
... 본능이 지시를 따르는 것은,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성질을 구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대로 지성은 가장 천박한 형식이라도[어린이라도] 물질에 물질을 작용하게 한다. ... 정신은 지성으로 규정되고 다시 말하면 구별된 개념으로 규정되는 운동이 마찬가지로 물질을 서로 서로 외재화하는 대상들로 쪼개는 방식으로 이끈다. 의식이 지성화하면 할수록 물질은 점점 더 공간화한다. (190)
190 [형이상학] 형이상학도 마찬가지로 작업한다. 사람들은 지성을 압박하여 지성의 정수(원리)에로 데리고 갔다가, 빈 것으로 있을 정도로 매우 단순한 원리 속에서 다시 지성을 끌어낸다. [그래서 지성의 기원을 탐구하지 못한다.] ...
피히테(Fichte)는 사유를 집중화의 상태로 간주하고, 그리고 그 사유를 실재에서 확장한다. 스펜서(Spencer)외적 실재로부터 출발하여 그 실재를 지성에서 만나게 한다. 그러나 이 두 경우는 직접적 시각에 의해 그 자체적으로 파악하거나, 거울 속에서처럼 자연 속에서 반사에 의해 깨닫게 된다.(191)
191 [자연의 제일성(unité)을 인정하는 경우] 어떤 철학자는 무기물에서 출발하여 유기물로, 어떤 철학자는 생명을 먼저 제시하고 무기물로 하향방식을 설명한다. 첫째 가설은 복잡성의 정도의 차이[기계론]이며, 두 번째 가설에는 강도의 정도 차이[소박한 목적론]인데, 말하자면, 자연 속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다.
191-2 위의 사색으로부터 두 개의 (상관적이고 보충적인) 확신이 있다. 하나는 자연이 하나이다(la nature est une)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성의 기능은 자연을 완전히 포용하는 것이다.(191-192) ... 어떤 이는 지성이 잡을 수 있는 것은 실재 자체라고 하고, 다른 이는 실재의 환영(fantôme)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성이 파악하는 환영이든 실재이든 파악할 수 있는 것의 총체로 간주된다.
192 따라서 철학의 과장된 신임이 개인적 정신의 힘에서 설명된다. [철학이 행해야 할 것은] 전체에 대한 하나의 통일적 시각을 취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에 있다. (192)
192-2 우리가 요구하는 철학은 좀더 겸손하고 또한 스스로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이다. (192) [우리는 베르그송이며, 개선 보완의 철학은 생성의 철학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의 발전 생성에 대한 철학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 지성은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에서 제시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192) .
.. 활동하는 것,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 실재와 접촉에 들어가는 것, 심지어 실재를 살아가는 것, 이것들을 완성할 작업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인간 지성의 기능이 있다. ... 우리가 몸담고 있는 생명의 대양에서(PM 225)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것을 열망한다(aspirer). (192) ... [지성은 부분으로 위치를 정하고 고착되고 응고되는데 비하여] 철학은 전체 속에 새로이 녹아들기 위한 노력이다. 지성은 자신의 원리에 다시 흡수되면서, 자신의 고유한 발생을 거슬러서 다시 산다. ... [이런 거슬러 올라가는, 즉 생명의 방향으로] 시도[인격성]는 필연적으로 집단적이고 점진적일 것이라. ... 끝내는 우리 속에 인류성을 확장할(dilater) 것이고, 인류성 자체를 넘어서게 되는(se transcender) 것을 획득할 것이다. (193) [집단적이란 인민의 노력이며 점진적이란 느리지만 진보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류성(인격성)을 점진적으로 넘어서는 (초월하다는 의미는 천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조건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 즉 인격과 사회가 인류의 삶을 개선할 것이다.(40UMA)]
[생명의 대양에서, 즉 들뢰즈가 말하는 미친-생성에서, 베르그송의 열망 대신에 들뢰즈는 욕망한다(désirer)로 바꾸어 놓았다. 열망이든 욕망이든 플라톤의 이데아의 직관과는 다르다. 이데아의 직관은 스토아의 전복을 생각하라.(40ULH)]
§1-1-A 선결문제 오류(cercle vicieux) 표면상 193-195
[순환논증의 두 가지 오류(193-201) 주에서 첫 번째 지성에 의한 지성의 파악(193-195)]
193 이 방법[벩송방법]은 정신의 가장 뿌리깊은 습관들을 자신의 적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악순환의 관념을 암시한다. [악순환을 일반인은 악순환인 줄 모른다. ㅎ ㅎ]
우리를 주어진 것의 순환 속에 가두어 놓는 일이야말로 추론의 본성에 속한다. 그러나 행동이 이 순환을 깨뜨린다. (193) [추론의 본성은 한계내의 함수이기에 순환이다. 이미 디오게네스가 거북이를 데려오라고 한 것은 행동이 지성의 한계를 깨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본능(직관)이다.]
194 우리는 지성이 더 광대한 실재로부터 분리(détacher)되었으나, 둘[실재와 지성] 사이에 단절은 결코 없었음을 보여주었다.(194) [2장에서 분화되었으나 단절을 없고, 본능도 실재와 단절된 적이 없다. 또한 지성과 본능사이에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충적 관계이다.]
지성을 ...핵(noyau)에 비교했다.(194) [핵, EC 178에서도]
이 핵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유동체(fluide)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단단한 땅과 [유동적인] 물 ..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할 줄 알게 되면, 그 때 당신은 수영 작동방식과 보행의 작동방식이 서로 관련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194)
사물들을 거칠게 취급해야하고(brusquer), 그리고 의지의 작용에 의하여 지성을 지성의 밖으로 밀고 가야 한다. (195)
195 그러므로 이 순환논증의 오류는 피상적이다(apparent). [지성을 지성 밖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것은 지성의 순환이다. 밀고 나가면 다른 인식(본능 직관)과 합류해야 할 것이다.]
§1-2. 과학과 철학(Science et philosophie) 195-201
§1-1-A 선결문제 오류(cercle vicieux) 실재상 195-201
[학문의 제일성(unité) 속에 선천적 능력(지성)의 가능성 195-201
195-2 물리학과 화학은 무기물질을 다루며, 생물학과 심리학은 생명의 표출(manifestation)을 다룬다. 그때 철학자의 임무는 분명히 제한된다(circonscrite). (195)
자연과 인간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이의 표면상의 유비(apparente analogie)에 속지 않도록 하자. (196)
원리의 문제들을 철학에 맡기는 것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 철학을 과학 위에 놓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점점 철학으로 하여금 취소할 수 없는 선고(재판 판결)을 기껏해야 더 정확한 용어로 작성하는 서기국(cour d'enregistrement)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고 만다. (196) [지성의 판결은 이미 만들어진 판결에 문장으로 다듬는 역할이다. 분석철학이 교통정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과학이 이미 교통정리를 했다. 도로의 넓이를 규정하자고?]
199 선천적으로(a priori) 단위(학문의 제일성)을 제시함으로써 시작하는 것이 ... 실재적 순환논증의 오류이다. ... 먼저 선천적 통일성을 먼저 놓고 시작하면 .. 모든 경험을 과학에 , 모든 실재적인 것을 순수 오성에 맡김으로서,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통일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199)
196 실증과학은 순수 지성의 작품이다. (196) [루소 이래로 정치경제학은 본능(의지를 포함한)의 작업이다. 인간 삶의 질에 대한 논의는 지성과 다른 차원의 길(계열)이 있다. 사회체(socius)의 문제는 지성의 한계를 벗어난다. 조직의 생산에서 잉여가치는 수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생산의 측면보다 배분의 측면에서 보아야하고, 그리고 소비의 문제에서 보아야 한다. 왜 소비인가? 그것은 사회체의 욕망양식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40UMA)]
지성은 무기물질에 적합하게 되어 있고, 그 때문에 무기물질에 관한 물리학과 형이상학은 서로 매우 근접해 있다. .. [이런 형상론의 형이상학은] 철학은 선험적으로 인식의 단순한 통일성과 자연에 대한 추상적 통일성의 교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197)
197 이 때부터 철학은 만들어졌다. 그 철학자는 독단론과 형이상학적 회의론 사이에서 더이 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197-198)
[무기물과 생명체의 경계가 없는 경우] 형이상학적 독단론이, .. 다른 한편 회의론 또는 상대주의가 나타난다. (198)
무기체과 생명체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것으로 시작하자. 우리는 무기물을 자연적으로 지성의 틀에 들어가고, 생명체는 인위적으로만 그 틀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C 199)
[무기체와 생명체를 가르고서 시작하면] 오성은 자기 속에서 무기물질의 영역 안에 있다. .. [오성이 절대에 접근한다고 말하지만] 과학이 무기물질에 대해 가진 것과 같은 영향력을 생명체에 대해서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발(accident)일 뿐, 사람들이 말하듯이 운수(chance) 또는 협약(convention)일 뿐이다.(200) [PM 6장, 「형이상학입문」에서 외부로부터 실재 즉 절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순수 지성을 넘어서려는(transcender)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우리는 이 실재성 속에 더욱더 완전하게 위치하게 될 것이다. (200-201)
§2. 물질과 지성의 동시적 발생의 가능성 (201-221)]
§ 2.-1. 지성과 물질성(Intelligence et matérialité) 201-209
§2.-2. 기하적 질서 (L'ordrre géométirque) 209-212
§2.-2-A 기하학과 연역(Géométri et déduction) 212-214
§2.-2-B. 기하학과 귀납(Géométri et induction) 214-217
§2.-3. 물리적 법칙들(Les lois physiques) 217-221
§2.-1. 지성과 물질성(Intelligence et matérialité) 201-209
201 자,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 자신의 삶에서 우리가 느끼는 가장 내면적인 점을 탐구해보자. ... 우리는 순수 지속에 있게 된다. ... 감정이 깊고 또한 그 일치가 완전하면 할수록 우리가 다시 위치한 생명은 지성성을 넘어서면서(dépasser) 지성성을 다시 흡수한다. (201)
[실재적 지속의 의식] 상태는 말하자면 지성성을 ‘잠세태로’(en puissance) 포함한다. 그러나 그 상태는 지성성을 넘쳐나며(déborder), 불가분적이고 새롭기 때문에 그것과 공통분모로 측정할 수 없다(incommensurable). (201) [DI 90에서 ‘잠세태로’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이다.]
201-2 만일 이완이 완전하다면, 더 이상 기억도 의지도 없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로워 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절대적 수동성으로 떨어지는 일도 결코 없다는 것이다. (202).
이완의 한계(limite)에서 ... 더 이상의 실재적 지속은 없고, 무한정적으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성(instantané)만 있다. 거기에 물질이 현존하는가? 아마도 전혀 그렇지 않다. (202) [미친 생성, 플라노네네 아이티아가 물질은 아니다. 진동만이 있다고 해야하나? 그것이 어떤 것으로 등장하는 것이 물질 또는 물체일 것이다. ]
[물질의 존재] 물질을 분석하면, 요소적인 진동으로 분해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존재는 두 번째 방향으로 심리적 존재는 첫 번째 방향으로 기운다.(202) [이 두 경향은 다음에 설명한다.]
202 한편으로 정신성(spiritualité)의 근원에, 다른 한편으로 지성성과 함께 하는 물질성(matérialité)의 근원에는 상반된 두 방향의 과정이 있을 것이다.(202)
202-2 우리의 전 인격성은 한 점에서 끊임없이 미래를 잠식하면서 미래 속에 개입하는 한 첨단(une pointe)에서 집중화된다. 거기에서 자유로운 생명과 자유로운 행동이 있다.[물질과 기억 고깔의 뾰쪽 점에 비유. MM 180]
행동 대신에 꿈꾸어 보자. 우리의 자아는 단번에 흩어진다. 그 때까지 우리에게 전달해 준 불가분적 충력(impulsion) 속에서 그 자체[자아] 위에 모아져 있던 우리의 과거는 수천의 추억들로 분해되고, 이 서로서로 외재화 한다. 추억들은 침투하기를 거부하고 더욱더 응고된다. 우리의 인격은 이렇게 해서 공간의 방향으로 다시 내려온다. (202)
우리의 인격은 그렇게 해서 공간의 방향으로 다시 내려 온다. 게다가 그것은 감각 속에서 끊임없이 공간과 나란히 진행한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깊이 고찰한 점을 여기서 길게 말하지 않겠다”(EC 203)
203 [너비(étendue)와 이완(détente)의 관계] 물리학을 전도된(inverti) 심리학이라고 가정해 보자.
정신은 이 공간[정신이 돌아 다니는 공간]의 함축적(implicite) 표상을 자기(정신)의 일어날 수도 있는 이완(détente éventuelle) 즉 가능한 확장(extension possible)과 동일한 감정 속에서 가지고 있었다(avait). 정신은 공간을 사물 속에서 재발견하지만, 만일 상상력이 풍부하여 정신의 자연적 운동을 역 방향으로 극한까지 밀고가보면, 사물이 없이도 공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03)
..우리의 기하공간과 사물의 공간성은 동일한 본질이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상호 작용과 반작용에 의하여 성립한다. (203-204)
공간과 물질은 낯설지 않다.(204)
204 공간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곳에서 다루었다.[DI II장] 여기서는 물질에 대해서 다룬다.
사람들은 결국 모든 원자들이 상호침투하고 있으며, 그것들 각각이 세계를 채우고 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주). 그러한 가설에서 원자나 보다 일반적으로 물질점은 정신의 단순한 시각(simple vue)일 뿐이다.(204) [아톰을 입자가 아니라 장(유동, 생성)으로 보는 경우이다]
(주)Faraday, A speculation concerning electric conduction(Philos. Magazine, 3esérie, vol. XXIV). (전기 유도에 관한 한 관점)
물질은 공간 속에 절대적으로 너비로 된(étendue) 것은 아니지만, 공간 속에 펼쳐져 있다(s'étendre)는 것이 아니라면 무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204)
205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선험적 감성론」의 경우에... 너비라는 것은 다른 물질적 속성들[열 색깔]과 비교 할 수 있는 물질적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 정신은 자신의 힘만으로 공간 개념을 사변(spéculer)하면서 선험적으로 형상(도형)을 자르고, 선험적으로 형상의 특성을 결정할 것이다.
205-2 칸트의 지적대로 ... 생명체와 공기처럼, 지성은 공간성과 떨어질 수 없다. ... 우리의 지각도 이 분위기를 통과하면서 미리 기하학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 물질이 지닌 가지적인 것은 우리[가 만든] 작품이다. (205)
[칸트에 대한 반박] 칸트는 물자체(chose en soi)를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한다.(205) ... [칸트의 경험론의 인식이론에 대한 반박은 결정적이다. 하나는 물자체의 인식을 부정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이성의 범주를 만들었다. 베르그송이 보기에 전자는 말되지만, 물자체를 다루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후자는 물자체의 경험적 다양성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점이다. 그 조작을 베르그송은 돌발적 신(Deus ex machina)라고 한다. 데카르트의 신이 보증자의 신인데 비해, 칸트는 자기가 착한 만큼이나 착한 신의 개입이 있다는 것을 바랐다.]
206 칸트 비판론의 지도적 이념은 공간을 우리 지각능력의 이미 만들어진 형식으로 전제한다. - 이것은 돌발적 신의 개입(Deus ex machina)인데, 이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왜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인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206)
[즉] 감각적 다양성이 어떻게 공간에 적용되는가는 문제가 나온다. ...
[예정조화가 아니라면] 결국, 정신이 사물에 따르거나, 사물이 정신에 따르거나, 사물과 정신 사이의 신비스런 일치를 가정하는가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207) [유물론, 관념론, 평행론, 베르그송은 다른 차원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207 네 번째가 있다. 칸트가 생각지 못한 점[두 가지], 우선은 그가 정신이 지성을 넘어선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이다) 그가 선험적으로 시간을 공간과 동일한 방향 위에 놓으면서 지속에 절대적 존재(existence absolue)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7) [베르그송사상에서 지속은 존재의 근원이자 절대 존재이다.]
이 해결책은 지성이 정신의 특수한 한가지 기능으로 본질적으로 무기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 지성과 물질은 서로 점진적으로 적응함으로서 하나의 공동형식에 도달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적응은 아주 자연스럽게 실행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의 지성성과 사물의 물질성을 동시에 창조하는 것은 동일한 운동의 동일 한 반전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다른 특수한 한 가지 기능은 생명의 직관적 인식이다. 결국 물질의 하강과 지성의 물질 적용은 같은 길이다. 의식의 상승은 (본능과 공감의 인식으로) 생명의 길이며, 영혼의 상승은 핵으로 집중이 아니라 확장이기 때문이다.]
207-2 이런 관점에서 한편으로 지각이, 다른 한편으로 과학이 물질에 관해 우리에게 주는 인식은 어쩌면 가까운 것(approximative)으로 보이지만, 상대적인 것은 아닌 듯하다.(207) [데카르드의 사유와 너비는 서로 근사치이다. 즉 이들은 꼭 맞는 대칭은 아니지만 근사한 값을 제공하기에 인간에게 이롭고 또 유용하다. 그래서 플라톤의 에이도스와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의 관계는 아퀴나스와 데카르트를 거쳐, 칸트의 범주와 감각적 다양성, 헤겔의 개념과 현상에 이르기까지 인간 지성에 대한 표면상의 순환의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지각은 [행동이 요구에 따라] ..물질을 분할하며... 우리의 과학은 수학적인 형식을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물질의 공간성만을 더욱 강조한다.(207)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리고 이런 정도에서, 과학은 협약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협약성은 말하자면 사실에 속하는 것이지 권리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는 실증과학이, 그 과학이 타성적 물질의 고유한 영역에 머물기만 한다면, 실재성 자체에 근거하고 있다. (208)
208 과학적 인식도 [실재 자체에 근거하는 한] 계속 발전한다. 반대론 인식론은 무한히 어렵게 된다. .. 왜냐하면, 사유의 카테고리를 규정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유의 카테고리를 생성하게(engendrer) 해야한다. (208) [들뢰즈가『철학이란 무엇인가(1992)』에서 철학이 개념의 생산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과 관련하여, 정신의 자신의 고유한(sui generis) 노력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진보하기 보다, 오히려 공간화로 내려가면서 외적 공간의 퇴행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208)
.. 형이상학의 임무는 오히려 반대로 물리학이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물질을 그 기원으로 되돌려놓고, 되돌려진 심리학(psych. retournée)일 수 있는 우주론을 점진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물리학자와 기하학자에게 실증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심리학적 용어로 규정되어야 할 진실한 실증성의 반전되거나 또는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길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retourner) 가는 것이 반대(inverse) 방향을 말한다.]
§2.-2. 기하적 질서 (L'ordrre géométirque) 209-212 [기하적 질서209-219]
209 수학의 경탄할 말만한 질서 [플라톤의 놀람]... 완벽한 조화[라이프니츠, 칸트, 라플라스], ... 수와 도형에 내재하는 논리[데카르트], .. 결론에의 확실성[비유클리트 이전],,,
[209 물론, 수학의 감탄할 만한 질서, 수학이 다루는 대상들의 완전한 일치, 수와 도형에 내재하는 논리, 동일 주제에 대하여 우리의 추론이 다양하고 복잡하더라도 우리가 동일한 결론에 되돌아가게 된다는 확신감 등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은 실증적인 현상적 특성들에서 부정의 체계를 보기를 주저할 것이며, 진실한 실재성 앞에(présence) 있는 것보다 오히려 부재(absence)를 보는 것을 주저 할 것이다. ... 질서를 확신하고 또한 감탄하는 우리 지성은 대상의 물질성과 공간성에 이르는 동일한 운동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37ou38]
210 시인이 내게 자신의 시를 읽어 줄 때, ... 나는 그의 영감에 공감한다. .. 이제 내가 주의(attention)를 늦추고 긴장된 것을 이완(détente)시키기만 하면 그 때까지 의미 속에 잠겨있던 소리들은 나에게 그 물질성 속에서 하나 하나 구별되어 나타난다. ... 꿈의 방향으로 더 밀고 나가보자. 문자들이 서로 구분되고 상상의 종이 위에 얽히어(entrelacée) 열지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나는 문자들이 음절에 맞춰... 교착(entrelacement)의 정확성, 행렬의 놀라운 질서에 감탄할 것이다. (210) [수학의 질서와 언어의 질서]
[[210 시인이 자신의 싯구를 읽어 주는 경우, ... 시인의 영감에 공감하며, 영감과 꼭 마찬가지로, 불가분의 작용인 연속적 운동으로 영감을 따른다. [영감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어보면, 지금까지 의미 속에 잠겨 있던 음(sons)들이 구별되어 하나 하나 물질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구절(phrase)은 어휘(mot)로 어휘는 음절(syllable)로 그리고 철자(lettre)로, 이 철자가 구조주의의 음소(phoneme)에 해당한다.] 꿈의 방향으로 훨씬 멀리 나아가 보다 철자들은 서로서로 구별되고, 상상의 종이 위에 펼쳐지고 서로 얽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레이몽 루셀의 철자 바꾸기, 들뢰즈의 루이스 케롤의 꽁트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한편으로 공간 속에 연장(extension)과 다른 한편 우리 수학이 거기서 발견하는 경탄할 만한 질서(주1), 이 두 경우에서 부분들의 무한한 복잡성과 부분들 사이의 완전한 배열은 단번에 이루어진 반전에 의해서, 즉 중단이라는 반전 다시 말하면 실증적 실재성의 축소에 의해서 생겨난다.] 37ou38]
아마도 두 경우에 이런 차이는 있을 것이다. 즉 단어들과 문자들은 인류의 적극적 노력에 의해 발명된 것인 반면, 공간은 두 항이 주어지면 [두 항이]제거된 나머지(Zero, 또는 여집합)가 있듯이 자동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원주)
(원주) 우리의 비교는 플로티누스가 지칭한 로고스(λογος)의 내용을 전개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플로티누스의 로고스(λογος)는 생성시키고 형상화하는 힘, 즉 영혼(ψυχη psyche)의 일면이거나 단편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플로티누스는 이따금 그것을 논증(discours)으로 말하기도 한다. 더 일반적으로 이 장에서 우리가 연장(extension, 확장)과 팽창(distension, 이완)사이에 세우는 관계는 어떤 면에서 플로티누스가 가정하는 것과 유사하다.(라베송이 그것에서 영감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는 너비(étendue)를 근원적 존재의 역전(inversion)이 아니라 그 본질의 약화, 그 마지막 단계 중 하나라 말하고 있다. (특히 Enneades IV iii 9-11, III vi 17-18을 보라). 그러나 고대 철학은 이로부터 수학에 대해 어떤 결과들이 생겨날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플로티누스도 수학적 본질을을 절대적 실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 철학은 지속(durée)과 연장의 매우 외적 유비에 의해 속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지석을 연장처럼 다루고, 변화를 불변성의 타락으로, 감각적인 것을 지적인 것의 타락으로 간주하였다. 그로부터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보여줄 것처럼 지성의 참다운 기능과 중요성을 오해하는 철학이 나오게 된다. (211)
[[(주1) 한편으로 플로티누스의 로고스(logos)는 생성시키고 형상화하는 권능(puissance)이며, 영혼(psyche)의 한 측면 또는 조각이다. 다른 한편 플로티누스는 가끔 로고스를 담론(discours)처럼 말한다. ... 연장(extension)과 이완(distension)의 관계는 플로티누스가 설명하는 너비(l'etendue)와 닮았다. 플로티누스의 너비는 근원적 존재 반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의 약화 또는 과정의 최종 단계의 하나라고 한다(Enneade IV, iii. 9-11; III, vi 17-18) 고대철학은 지속과 연장사이의 외적 유비에서 속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속을 연장처럼 다루고, 변화를 불변성의 정도의 약화로 생각하고, 감각적인 것을 지성적인 것의 타락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철학은 지성의 실재적 범위와 기능을 잘못 인식하였다.]]
211 우리 지성의 모든 조작은 기하학이 그러한 조작의 최종적 완성인 것처럼 기하학을 향하고 있다. (211)
우리의 공간에 대한 표상에 내재하고 잠재적인(latente) 기하학은 지성의 큰 원동력이고, 지성을 나가게 하는 힘이다. (212)
[정신적 긴장(tension)과 물질적 이완(détente)의 대립에는 대칭이 없다(dissymétrie). 즉 긴장의 이완(팽창)과 신체의 너비(étendue) 사이의 연속성이 물질의 확장(extension)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이완(distension, 팽창)과 연장(extension)은 의식상태와 공간성의 관계이며, 이 유비적 추리가 내재적으로부터인지, 외적으로부터인지에 따라 인식론의 경향은 달라진다. 내재성은 상향하는 운동으로 후자는 하향하는 운동으로 벩송은 규정한다. / 결국 영혼의 긴장(난바다 또는 불, 즉 인격성 또는 인류성)에서 개인의 영혼으로 이완, 신체의 너비, 물체의 연장, 물질성으로 키질하듯이 퍼지는 것이다. 여기서 퍼짐 자체를 지속(시간)으로 보면 벩송의 관점이 나온다.]
§2.-2-A 기하학과 연역(Géométrie et déduction) 212-214 [연역법, 212-214]
212 연역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공간 속에서 도형을 그리는 바로 그 운동이 도형의 여러 성질(qualité)을 낳는다. (212)
경험이 그 관념을 암시하는 다른 모든 개념들은 부분적으로만 선천적으로(a priori) 재구성될 수 있다. ... 연역은 크기에 관해서가 아니라, 성질에 근거한다.(212) [개념들의 상위 개념은 관념이다. 개념들은 선천적으로 구성된 일반관념과 닮았다. 그것은 구성적이지 생성적이 아니다. 응결된 개념은 지성이 구성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과학적 기하학 이전에 자연적 기하학이 있으며.. 행동으로 외화된 지성은 반성적 지성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그 문제들을 해결한다.(212-213) [플라톤의 메논편에서 노예가 직선을 안다는 예. - 여기서는 직선으로 되돌아 오는 원시인의 예]
Bastian, Le cerveau, Paris, 1882, vol. I. 166-170.
.... 지성의 입장에서 보면, 공간에서부터 기하학을 그리고, 그 기하학으로부터 논리를 자동적으로 생기게 하는 것은 선결전제의 오류(pétition de principe)이다. 반대로 공간이 정신의 이완(detente) 운동의 궁극적 항이라면 사람들은 논리와 기하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공간을 부여할 수 없다. 이 논리와 기하는 공간적 순수 직관에 의해 궤적의 끝에 있는 것이다. (213) [순수 공간(espace)은 지성의 사유 공간이며, 물리적 공간(etendue)은 물질적 성질을 띤 것으로 차원이 다르다.]
213 그러나 심리과학과 도덕 과학에서 연역이 미치는 힘의 범위는 미약하다. ... 연역이 도덕적 사실에서 형이상학적으로만 성공하였고 즉 도덕학이 자연학으로, 내가 번역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공간적 기호(symbole)로, 겹쳐질 수(transposale) 있는 그 정도에서만 성공하였다. (214) [이 표현은, 도덕적 가설이 자연학(기하학)에 통용될 수 있는 것만큼, 또는 종교적 기복이 자연에 덧 씌어져 겹쳐질 수 있는 만큼만, 철학사에서 자연학을 이해해 왔다. 지성이 다룰 수 있는 만큼만 자연(기하)을 이해해 왔다. ]
정신[철학사의 이성]의 순수 작용은 ... 정신[이성, 벩송의 지성]의 영역 안에서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신은 곧바로 두루마리 끝에 있다[=더 이상 할말이 없다]. (214) [여기서 정신은 1830년대까지 이성의 상층작용을 지칭한다. 즉 형상론에서 자기 정합성의 추구이다. 헤겔처럼 절대정신 다음에는 더 이상할말이 없다. 생성론은 전혀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연역이 공간 속에 또는 공간화된 시간에서 전개되는 한, 단지 가게 내버려두면 된다. [반면에] 바퀴에 막대를 가로지르는 것은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지속(la durée)이다. (214)
§2.-2-B. 기하학과 귀납(Géométrie et induction) 214-217 [귀납법, 214-217],
214 연역이 공간적 직관이라는 암묵적 발판 없이는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귀납도 마찬가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14)
... 물, 남비, 풍로의 체계에서 열을 가하면 끓는다는 것은 반복이며, 그 요소들이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 어제의 체계와 오늘의 체계가 중첩되고, ...내일이 아니라 언제라도 완성될 것이다. (214) [동시적으로 배열되어 반복 된다.]
[그러나 형태(forme)는 하나의 이미지이고, 이 이미지가 아무리 묽고 투명하다고 하더라고, 우리의 상상력이 이미지에 대해 시각적 지각을 갖는 한, 말하자면 형태는 여전히 물질의 구체적이며 따라서 환원될 수 없는 성질을 구성한다. (DI 154)]
[이처럼 삼각형의 합동은 이전 삼각형과 나중 삼각형이 중첩된다. .. 공간에서 기하학적 필연성이 나온다. .. 결국 귀납의 법칙에서도 질적인 것도 양적으로 중첩될 수 있으며, 같은 조건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
... 기하학은 귀납법의 이상적 한계(극한)이자 연역법의 이상적 한계(극한)이다. 공간성이 그 극한에 이르는 운동은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연역 능력과 귀납 능력, 즉 전 지성력(l'intellectualité)에 위탁한다.(217) [극한에는 감각과 연관이 없는 영역으로 질이 모두 빠진다. 그래서 공간(espace)은 너비(étendue)가 아니다. ]
[기하, 연역, 귀납, 요약 217-218]
217 극한에 이른 운동은 정신 속에서 연역과 귀납의 능력을 창조한다. 그리고 사물 속에서 연역의 도움을 받아 귀납이 재발견한 “질서”를 창조한다. (217) [이 질서의 발견이 플라톤의 놀라움이다.]
... 지성은 같은 종류의 과정에 의해서 정신 속에 분석되어 있는 것처럼, 지성은 질서와 복잡성에 대해 일치하며, 그래서 지성은 거기서 재인식하고서 질서와 복잡성에 경탄한다(admirer). 그러나 경탄할만한 그자체적으로(en soi) 있는 것, 즉 경탄을 일으킬만한(admirable) 장점이 있는 것, 그것은 실재 전체가 불가분이며 전진하면서 완성되는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이다. (218) [여기서 두 가지 놀라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질서의 놀라움과 창조의 놀라움. 질서의 놀라움에 안주하는 것을 도망이라 하고 그 속에서 무의미(non-sens)의 즐김을 향유(juissance, masturbation)라고 하며, 창조 속에 의미(sens) 생산의 즐거움을 환희(joie)라고 한다. 들뢰즈는 전자에서 조증을 말하고, 후자에서 스키조를 말한다.]
.. 창조가 기분을 풀고, 이완되면, 수학적 질서가 요소들을 취급하도록 펼쳐지고, 이 요소들에게 결정론이 확고하게 결합시킨다. 이런 수학적 질서나 확고한 결정론은 창조적 작용의 중단(l'interruption)을 표현한다. (218)
§2.-3. 물리적 법칙들(Les lois physiques) 219-221 [물리적 법칙 219-221]
[동질성(homogénéité)과 동일성(Identité)의 성립 - 지속(창조, 생성)의 폐기]
219 물리적 세계의 특별한 법칙들은 이런 소극적(négative) 경향을 표현한다. 어떤 물리적 법칙도, 따로 떼어놓으면, 객관적 실재성을 갖지 못한다. 법칙은 어떤 각도에서 사물의 고려하고, 몇몇 변수를 고립시켜 측정의 협약적(conventionnelle) 단위(unité)를 적용하는 과학자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내재하는 근접하는(approximativement)의 수학적 질서가 있다. (219)
따라서 물리법칙이 지닌 수학적 형식 속에는, 사물의 과학적 인식 속에는 인위적인 것이 있다.1).
1)우리는 형이상학과 도덕(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에 발표한 르화(Le Roy)의 깊이있는 연구를 생각한다.
.. 측정한다(mesurer)는 것은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이며, 두 대상을 실재로 또는 관념적으로 서로 서로 몇 번이나 중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연은 중첩(superposition)을 생각하지 않는다. (219)
... 지성성과 물질성은 동일한 본성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생겨나며, 지성은 자연적으로 공간과 수학을 향하기 때문이다. (220).
220 수학적 질서가 물질에 내재하는 적극적(positif) 사실이라면, 우리들의 과학의 성공은 기적이 될 뻔했다.
... 수학적 질서는 조금도 적극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떤 종류의 중단(interruption)을 향해 스스로 가는 형식이다. 그리고 물질성은 진실로 그와 같은 종류의 중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은 우연적(contingence)이고 스스로 택한 변수와 관계가 있다. (220)
수학은 일반적으로 물질이 다시 떨어지는 방향을 나타낼 뿐이다. ... 물질도 마찬가지다. 오뚜기의 추와 같이 .. 물질도 기하의 추를 달고 있기 때문에 .. 어느 수학적인 틀 중의 하나로 되돌아간다. (220-221)
§3. 무질서 관념의 분석 (221-238)
§3-1. 무질서의 관념(L'idée de désordre) 221-227
§3-2.류들과 법칙들(Les genres et les lois) 227-232
§3-3. 무질서와 두 질서(Les désordre et les deux ordres) 232-238
§3-1. 무질서의 관념 221-227
221 그래도 ‘질서가 전혀 없을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고, 수학적 질서가 무질서의 정복이므로 실증적(positive, 적극적) 실재성을 지닌다는 생각은 존속한다. 이점을 천착해보면, 인식론에서 무질서의 관념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게될 것이다.(221)
.. 실재론과 관념론은 질서의 부재를 서로 서로 생각한다고 믿는다. 실재론은 객관적 법칙의 규제에 대하여 말할 때이며, 관념론은 오성의 조직화의 영향 하에서 감각적 다양성을 가정할 때이다. 따라서 질서의 부재로 이해된 무질서의 관념을 먼저 분석해야 할 것이다. 철학은 일상에서 그 관념을 빌어온다. [여기서 일상, 상식, 지성으로부터 빌려온 철학은 형상론의 철학이다.]
222 [철학이 빠지는 착각(illusion) 중에서 무질서의 착각] 착각의 원인은 임시적(provisoire)으로 표현하는 것을 결정적(définitive)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변의 영역 속에서 실행을 위한 과정을 옮겨 놓기 때문이다. (222) (참조 제4장, 297)
.. [부정에 대하여] ‘산문이 없다’는 표현은 산문에 고정된 나의 기대(attente)와 주의(attention)를 언어로서 표현한 것이다. ... 산문과 운문의 두 개의 부정.. 그것은 사이비표상(pseudo-représentation)이고 .. 이것은 사이비 문제(pseudo-probleme)로 나간다. 그 물음은 불합리(absurde)하다. 그럼에도 한편의 긍정은 다른 한편의 부정인 것을 잊고서 두 개의 공통의 것을 인정하려는 것도 불합리하다. (222-223)
223 그런데 두 개의 질서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 두 질서는 동일한 류 속에 대립자들이라고 해보자. 또한 무질서의 관념은 우리가 두 종류의 질서 중 하나를 찾는 동안 다른 것을 만날 때마다 우리 정신 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 해보자. (223)
.. 무질서의 관념은 생명의 흐름(courante)의 실행에서 분명한 의미(signification)를 지닐 것이다. .. 그러나 무질서의 관념은 어떤 질서의 부재를 다른 것(문제삼을 필요도 없었던)을 이용하여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두 질서 사이에, 마치 공중을 날아 다니는 공처럼 .. 도중에(en route) 또는 허공에(en l'air) 있을 것이다.- 이 비유는 무질서의 지위를 말한다] .. 두 개의 질서의 부재 또는 두 개의 한꺼번에 부재는 지각되지도 않고 생각되지도 않는 것, 즉 단순한 언어적 본질일 뿐이다. (223)
223-2 일상적으로 혼동하는 두 종류의 질서를 대립시켜 서로 구별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224 일반적으로 실재는 우리가 생각되는 정도에서 정돈[배열]되어 있다(ordonnée). 그러므로 질서란 주관과 객관 사이의 어떤 일치이다. 정신이 사물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은 두 개의 방향으로 진행한다. 한편으로 정신은 자연스런 방향을 따른다. 그 방향은 긴장의 형식으로 진보(progrès)이며, 연속적 창조이며, 자유로운 활동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자연적 방향을 역전시키는 것이며, 그 방향을 밀고 나가면, 연장(l'extension)에 도달하고, 외재화된 요소들의 상호 필연적 결정으로, 결국 기하학의 매카니즘으로 이끌고 간다. (224)
.. 후자에서는 관성(타성), 수동성, 자동주의를 상기하는데 비하여, 전자에서는, 목적 위에 또는 그 아래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목적성 주위에서 왕복하고 있다.(224) ... 첫 번째의 종류의 질서는 생명적인 것이고 의지에 의한질서이며, 두 번째의 질서는 무기물적인것이고 자동적인 것의 질서와 대립된다. ... 전자에는 베토벤의 천재적이고 독창적이고 예견 불가능한 심포니에 비유할 수 있고, 후자에는 수학적 예견을 할 수 있는 천체 현상의 경우이다.(225) [벩송의 웃음에서, 웃음은 자동적인 뻣뻣함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유동성과 생명성을 회복하는 소금이다. - 스토아의 유머는 관념에 사로잡혀 상층에 올라가려는 플라톤주의자들의 조증(maniaque)에 비해 현실에서 유쾌함을 지니려는 노력이다.]
225 그러나 제1류의 질서[생명질서]가 분명한 형태를 갖추는 것은 예외에 불과하다. (225) ... 생명체들은 .. 유전(le générique)의 전형으로[예외적으로] .. 이것은 생명적 질서도 물리적 질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 생명적 질서와 물리적 질서는 모두 우리의 경험을 반복하게 하며(répéter), 우리 정신으로 하여금 일반화하게(généraliser) 허용한다 (226)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에서 인용..].
.. 두 번재의 경우에서 물리적 질서는 동일한 구성성분들이 동일한 결과물을 낳도록 하는 기하학적 필연성을 전형이자, 이상적 극한[한계]으로 그리고 또한 기초로 삼고 있다. 반대로 첫 번째의 경우에서 생명질서는 어떤 것의 개입을 함축한다. 무한히 복잡한 근본적 원인들이 아주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어떤 것 개입이 동일한 결과를 얻는 방식으로 배열된다. (226).. (이미 제1장에서 나왔음)
.. 사람들은 물리적 질서와 생명적 질서의 차이를 전자는 동일한 원인들의 결합이 동일한 전체의 결과를 낳는 것으로, 후자는 원인들이 유동적이라 하더라도 결과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현일 뿐이다.(226-227) ... 동일 종의 개체 유사성(ressemblance)은 [물리적 질서의] 동일원인들의 동일합성의 결과로서 유사성(ressemblance)과 아주 다른 의미와 기원을 가질 것이다. (227) [생명 결합의 유사성과 물질결합의 유사성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전자를 유사성(ressemblance)으로, 후자를 상사성(similitude)으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의 관점에서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이 특성이 두 질서를 서로 접근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물질로부터 일반성, 생명으로부터 유사성을] 생명과 물질을 동시에 도식화하는 것은 자연의 일반 질서의 관념으로부터 유래한다. 이로부터, 무기물의 영역에서 법칙(lois)의 존재와 생명의 영역에서 류(genres)의 존재, 이 양자를 동일한 단어 지시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표상하는 우리의 습관도 여기서 유래한다. (227)
§3-2. 류들과 법칙들(Les genres et les lois) 227-232
[고대의 류와 근대의 법칙 227- ]
227 이런 혼동은 고대에서든 근대에서든 인식문제가 일으킨 난점들의 기원에 기인한다. 사실상 법칙의 일반성과 류의 일반성은 같은 말로 지칭되고 같은 관념으로 포섭되어 기하학적질서와 생명적 질서는 그 때부터 혼동되었다. (227-228)
... 류의 일반성은 고대사상에, 법칙의 일반성은 근대철학에 속한다. 이 양자에서 일반성의 개념은 외연과 내포의 통합한 애매(équivoque)한 개념이다. ... 실천 속에서는 두 항을 동일한 용어로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두 항(류와 법칙)의 외적인 유사성 덕분에 사람들은 두 항을 접근시키나, 사색의 영역에서 우리는 이 두 항을 동일한 규정에 넣어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228)
228 [고대 사상] 사실상 고대인들은 자연이 왜 법칙에 복종한는 가를 묻지 않고 왜 자연은 류에 따라 정돈 되는 가를 물었다. 류의 관념은 특히 생명의 영역에서는 객관적 실재에 대응한다. 거기서 류의 관념은 유전(heredité)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을 표현한다. (228)
지각은 행동에 대한 관심과 우리의 신체가 묘사하는 시발적(naissant) 상태의 반응들에 의해 인도된다. 이와 같이 지각은 실현되기를 바라는 잠세적 류(genres virtuels)들에 의해 인도된다. 주) MM 3장과 4장에서 (228) [잠세적 류들이란 일반적 관념을 가능적 행위에 실현에서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의 낙하를 설명하며, 높은 곳과 낮은 곳, 고유한 장소와 빌려온 장소, 자연스런 운동과 강요된 운동 등의 개념을 사용한다. 류의 본질은 물리적 운동도 성장하는 생물처럼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며, 유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 결국 고대사상에는 모든 물체는 유기체와 같은 개별성을 지니고, 물리적 우주법칙은 실재적 류들 사이에 실재적인 친근성의 관계가 있다고 표현했으리라. ... 그래서 고대인들이 물리적인 것을 생명적인 것으로 다소간 거칠게 표현하는데 그쳤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229) [벩송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을 의인관(擬人觀)적으로 사유했다고 말하고 싶어 한 것이다. 사실 신화는 이미 의관적 세계관, 현대심리학적으로 보면, 유아적 투사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을 인간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천체론을 참조
230 그와 같은 혼동은 근대인들에게도 나타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두 항의 관계가 전도되고(invertir), 류가 법칙을 따르고, 또한 학문은 하나라고 가정한다.(230)
..[케플러와 갈릴레오] 법칙이란 사물들 사이의 관계이며, 사실들 사이의 관계이다. ... 변화할 수 있는 양의 선택, 대상과 사실로 배분하는 자연 등은 이미 무언가 우연적인(contingent) 어떤 것이며, 협약적인(conventionnel) 것이다. ... 이런 작업을 하는 지성은 우리의 것도 당신의 것도 아니다.(230)
..[지성이] 특별한 개인의 것도 아니고, 비인격적으로 결과되었다는 점에서 비교(comparaison)이다. ... 법칙에 의해 형성된 경험은 비교에 의해 이루어진 경험이다. (230)..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 칸트(Kant)이다.(231) [오성을 비인격화와 협약으로 만든 것이다. 칸트의 오성이 틀을 씌울 수 있는 감각적 다양성의 경험은 실재자체의 경험이 아니라, 이 비교된 경험이다.]
231 혼동의 근원에 생명의 질서가 본질적으로 창조적인데, 우리에게 본질적인 것에서보다 우발적인(accident) 어떤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우발은 물리학과 기하학의 질서를 모방하고(imiter) 있다. (231)
[그러나 물리 현상과 다른] 전체로서 생명은 진화(évolution)이며, 부단한 변형(transformation incessante)이다. 여기서 생명체는 생물의 수탁자(dépositaire)다. ... 유전은 형질을 전할뿐만 아니라 형질을 변화시키는 도약(élan)도 전한다. 이 도약은 생명력 자체(vitalité même)이다. 그런 이유로 일반화의 토대가 되는 반복은 물리적 질서의 경우에 본질적이며, 생명질서의 경우에 우발적(accident)이다. 물리질서는 자동적인(automatique) 질서이며, 생명질서는 의지적(voulu) 질서이다.(232)
§3-3. 무질서와 두 질서(Les désordre et les deux ordres) 232-238
232 그런데 두 개의 질서(의지된 질서와 자동적 질서)가 뚜렷해지면 무질서의 개념의 애매성은 사라진다.
232-2 인식론의 근본문제는 과학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왜 사물 속에 질서가 있고 무질서는 없는가? [무질서가 질서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나다.] 우연(contingent)은 무엇에 관여하는가?
233 한 질서가 우연적(contingent)이며, 또 그 질서는 우리에게 반대 질서와 관련하여 우연적이며, 마치 산문이 운문에 관련하여 또한 운문이 산문에 관련하여 우연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233) [질서를 세우려고 하면 질서는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질서를 결여에 대한 첨가로 보는 고대와 감각적 다양성에 (법칙적)질서를 부여하는 근대의 사유형태가 나온다. 앞에서 제기한 산문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무질서의 관념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방에 들어가 ‘무질서’상태라고 판단할 경우...(233) [다른 질서에 비해 이 질서는 우연적인 것이다. 여기서, 방의 무질서에 대한 경우: 의지된 질서와 기계적 질서 사이에서 한 질서에서 다른 질서를 무질서라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두 번째 질서에는 무관심하며 단지 첫 번째 질서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두 번째 질서의 현존을 그 자체로 표현하지 않고 첫 번째 질서로 표현하면서 무질서하다고 말한다. (234)
무질서 관념과 아주 가까운 요행(hasard)의 관념을 분석하면 동일한 요소들을 발견한다.(234)
요행(hasard)의 개념: 룰렛과 기와장의 예, 어떤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발견한 찾아낸 원인이 기계적인 작용(mécanisme)일 경우에 요행이라 표현한다. 기계적 작용을 기대했는데 무질서하고 변덕스러운 의지 또는 법령(décrets 섭리)을 발견한 경우에도 요행이다. 요행은 두 가지 질서 중에서 하나를 기대하다가 다른 하나를 만날 경우이다. 그러나 요행과 무질서는 필연적으로 상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질서의 부재라는 것은 사실상 둘 다 의 현존이고 게다가 정신은 양쪽 어디에도 결정적으로 놓이지 않은 채 진동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35)
사물 속에든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 속에든 질서의 기체(substrat)로서 무질서를 놓는 것은 도대체 문제가 될 수 없다. 왜냐 하면 무질서는 두 종류의 질서를 함축하며 그것들의 조합(combinaison)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236).
236 그러나 우리지성은 훨씬 앞서간다. 단순히 나의 명령(sic jubeo)에 의하여 지성은 ‘질서의 부재’를 무질서라고 정립한다.
사람들은 비정합성이 실현된다거나 실현가능하다고 가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해봐야 소용없다.(236) [비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지성은 한 질서를 상정하고 있다. 한 질서만을 먼저 상정하는 것은 이미 선결문제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무질서(부조리)라는 것] 관심 없는 질서를 만났을 때 실망, 두 질서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주저, 어떤 의미 있는 어휘에 부정사를 접속시켜 만든 단순한 표상 일뿐이다. ...다름아니라 그들이 환원 불가능한 두 질서를 구별하여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236)
236-2 [우연(contingence)] 두 질서가 있다면 이러한 질서의 우연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질서 형식들의 하나는 다른 것과 관련하여 우연적이다.
있는 것은 기하적 질서와 생명적 질서뿐이다. 그리고 정신이 이 양자 사이를 주저함으로서 부조리의 개념이 있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무질서와 그 위에 질서가 추가된다고 하는 생각은 선결문제의 오류(pétition de principe)를 범한다. 왜냐하면 정돈되지 않는 것을 상상하면서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의 질서를 가정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두 개의 질서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237)
§4. 창조와 진화 (237 -251)
§4-1 물질의 이상적 발생(Genèse idéale de la matière)
§4-2 생명의 기원과 운명 (Origine et destination de la vie)
§4-1 물질의 이상적 발생(Genèse idéale de la matière)
[「물질의 이상적 발생」이라는 책 속의 소제목은 238-251까지로 되어 있다.]
237 이 긴 분석에서 실재가 긴장에서 이완으로, 자유로부터 기계적 필연으로 어떻게 역전(inversion)에 의해 이행하는가를 보여 준 것이다.(237) [자유에서 필연으로(DI 3장), 긴장에서 이완으로(MM 3장) ]
우리는 방금 우리가 그 결과들을 묘사한 역전에 대해 더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 원인의 중단이 결과의 역전과 같은 값어치를 갖는 경우, 도대체 너비를 이루기 위하여(s'étendre) 이완되어야하는(se détendre) 원리는 어떤 것인가?(238) [의식의 이완에서 너비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너비 또는 연장의 결과를 보고 나서야 의식의 이완을 설명하는 것은 인식론의 한계이다. 존재론(형이상학)은 반대의 길에서 생성하고 전개한다.]
238 더 좋은 말이 없어서 우리는 그 원리를 의식(conscience)이라 불렀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개인들의 의식 속에 약화된 의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 속하는 의식은 공간의 특정한 점에 위치하는 특정한 생명체의 의식이다. (238)
.. 회고적 관점은 .. 지성의 자연적 기능이다. 우리 의식이 자신의 원리와 일치하기 위하여 이미 만들어진 것(le tout fait)으로부터 분리되어 만들어 가는것(le se faisant)에 집착해야 한다. 그 자신의 방향을 바꾸어 틀어 놓으면, 보는(voir) 기능은 의지(vouloir) 작용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38)
우리가 자유의지 속에서 동기(motives 맘)와 동인(mobiles 몸)에 대해 다소간 명확히 의식한다. 엄밀히 말해 이들(맘 몸)이 행동으로 조직화되는 생성(devenir)의 과정도 얼마간 의식한다. 순수의지(pur vouloir, 쇼펜하우어 용어), 즉 물질 속에 생명을 전달하며 물질을 관통하는(traverser) 흐름(courant)은 우리에게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을 지나면서 스칠 뿐이다. (238-239)
.. 철학사가 증명해 주는 것, .. 직관이 생기를 불어넣지 않은 지속적인 체계란 없다는 것이다. 직관을 시험에 놓고, 또한 직관이 개념들로 굴절하고 다른 사람으로 전파하기 위하여 변증법이 필요하다. 변증법은 종종, 자신(변증법)을 넘어서는 직관의 결과를 전개시킬 뿐이다. [<] 사실상 두 가지 진행 방식은 반대 방향을 취한다. 관념들과 관념들을 연결하는 노력 자체가 관념들이 축적하고자 했던 직관을 소멸시킨다. [변증법을 받아들인] 철학자는 일단 직관의 도약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직관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개념들을 차례로 추진시키면서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곧바로 발판을 잃었음을 느낀다. 새로운 접촉이 필수적이게 된다. 사람들이 이루었던 가장 커다란 부분을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요컨대 변증법은 우리 사유에게 사유 자체와 일치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 - 단지 직관의 이완일 뿐인 - 에 의하면 많은 다양한 일치들이 가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진리만이 있다.[>] 요컨대 변증법은 우리 사유와 사유 자체[변증법]가 일치한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 - 직관의 이완에 불과한 - 의하여 많은 다양한 일치가 가능하다. (239) [사유와 실재 사이의 일치가 아니다. 사유와 실재의 일치는 이론과 실천의 일치를 의미한다.] [감성의 선험형식과 오성의 범주를 감각적 다양성에 일치를 가능하게 하듯이, 개념을 다양한 현실의 적용에 일치를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여기서 변증법은 개념들 사이의 일치를 만드는 것으로 오성의 형식이다. 이 일치는 정합적이다. 실재성 자체가 아니라 현상의 사실들(이미 이루어진 것들)과 개념들 사이의 일치, 이것이야 말로 물체성(물질이 아니라)의 생성(genèse)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으라는 창세기(Genèse) 설화는 물체와 개념의 성립의 동시성을 의미한다. 이 설화는 도구인의 설화의 절정이었다. 인간이 자연이라는 본성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1859년) 이후로 실재성과 관념성의 성립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정립하면서 일 것이다.(48RMG)]
.. 그러나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 직관이, 잠시 후에도 계속 될 수 있다면, 철학자와 그의 사유와 일치뿐만 아니라, 철학자 상호간의 일치를 보장할 것이다. 철학의 목적은 .. 자연과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va-et-vient)하는 것이다. (239-240)
240 의지 속에 우리 존재를, 즉 충력(impulsion) 속에 우리 의지 자체를 위치시킬 때, 실재는 영속적인 증가(croissance perpétuelle)하고 한없이 계속되는 창조(création)를 느끼고 이해한다. ... 발명을 포함하는 인간적 작품, 자유를 포함하는 모든 의지적 행위, 자발성을 나타내는 유기체의 모든 운동... 물론 그것은 형상(forme)의 창조들이다.(240) [자식, 과학 이론 발명, 기계발명, 예술작품, (인격적 삶)]
[개인으로서] 우리는 생명적 흐름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생명의 흐름이 물질을 실은 것 즉 실질 속에 응결한 흐름에 실려 옮겨가는 부분이다. (240) ... [베르그송이 공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분이라는 의미이다. 동인간 중심중의의 기본이 되는 동심원적 동연적이라는 수학적 의미와 본성상 다른 것이다.].
[창조적 작업에 대한 화가와 시인의 예] .. 왜냐하면 우리는 형태의 창조를 내부로부터 파악하며 매 순간 체험하고 있는데, 형태가 순수한 경우에 그리고 창조적 흐름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경우에 그것이 바로 물질의 창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40)
241 우주의 존재에 대해 널리 퍼진 불가사의(mystère) 한 것은 우주의 생성이 단 한번에 이루어 졌다든지, 물질 전체를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는데서 나온다. ... [이런 경우] 지속이란 없으며, 생명의 바탕자체라고 느끼는 시간 속에 자리를 점유할 수 없다.
... 이런 편견을 제거하고 창조개념이 더욱 분명하게되는데, 이때는 창조개념은 성장(croissement)개념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우주의 총체성에서 우주에 대한 것이 아니다. (241-242)
242 왜 우리는 우주에 대해 말할 것인가? 우주는 여러 태양계의 집합이다. ... 물리적 법칙이 우주 전체에 적용될 수 없고 ... 왜냐하면 우주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면, 끊임없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은 네 가지 법칙이 통일을 이루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만유인력, 전자기장, 원자의 약력, 강력.]
242-2 그러면 과학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에너지 저하의 법칙을 태양계 전체로 확장해보자.
첫 번째 법칙은 양적인 법칙이며 따라서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측정 방법에 상대적이다. 닫혀진 것으로 가정된 체계 안에서(242) 에너지 총량은 불변적이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은 무언가(quelque chose) 불변량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것이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은 일정량은 불변한다는 것이라기보다. ... 생성되는 모든 변화는 어디에서인가 반드시 상쇄되지(contre-balancé)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에너지 보존 법칙이 우리 태양계를 지배한다해도 그것은 계 전체의 본성보다는 이 세계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의 관계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243)
뒤엠(Duhem), L'évolution de la mécanique, Paris, 1905, p. 197 et suiv.
243 열역학 제2법칙은 이와 다르다. 사실상 에너지 저하의 법칙은 본질적으로 양에 관한 것이 아니다. (243)
열역학 두 번째 법칙은 카르노(Sadi Carnot 1796-1832)로부터 나오고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1882-1888)가 일반화하였다. .. ‘엔트로피’(entropie)라는 계산 가능한 양 개념에 도달한다. (243-244)
역주) 클라페롱(Clapeyron 1799-1864) / 클라우지우스는 1850년 두 가지 법칙, 하나는 일과 열의 등가성을 주장하고, 다른 하나는 열이 두 개의 온도차 사이에서 떨어질(낙하할) 때 일부는 일로 변환되고 나머지는 낮은 온도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 후자가 카르노의 원리이다. / 톰슨(William Thomson 1824-1907)은 1854년 클라우지우스의 두 번째 법칙에서 낮은 온도로 내려간 열은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만,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단순히 낭비된 것이라 했다. / 1865년 클라우지우스는 열이 더운 물체에서 찬 물체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엔트로피 증가, 즉 가용 에너지 손실로 표현했다. 클라우지우스는 1867년 열역학 제2법칙의 우주론적 결과인 열의 죽음(heat death)을 엔트로피 개념을 통해 전개했다.
이 법칙은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을 기호를 개입시키지 않고, 측정의 인위성 없이 가리켜준다는 점에서 물리학적 법칙들 가운데 가장 형이상학적 법칙이다. ... 우리 태양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풍부성과 다양성에 이바지하는 불안정성은 무한히 서로 반복되는 요소적 진동들의 상대적인 안정성에 자리를 양보한다.(244)
244 태양계 내에서 이 변화력(mutabilité)은 계속 줄어들어 간다. 변화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그것이 다른 어떤 곳에서 왔다고 가정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 어려움은 단지 후퇴하는 것일 뿐이다. (244)
[가정 하나]...우주에 포함된 변화력의 총량은 무한하다. - 증명 가능하지도 반박도 불가능하다. .. [가정 둘] 일반적인 불안정성은 안정성의 일반적 상태에서 나오는 것,.. 증대와 감소의 교대(alternative)는 끝없이 일어난다는 것... [현대물리학은 우주를 증대와 감소의 교대라 한다] ... 볼쯔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의 계산에 의하면 이 가설[증감]은 수학적 비개연성(improbabilité)으로 지니고 있다. (245)
볼쯔만이 에너지의 기원을 초공간적(extra-spatial) 과정에서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역할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생각에 에너지 기원은 바로 거기서 찾아야 한다. [초공간적이란 아마도 생명적인 것을 의미할 것이다.]
§4-2 생명의 기원과 운명 (Origine et destination de la vie) 246-251
246 너비 일반을 추상적으로(in abstracto) 고려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확장(extension)은 긴장(tension)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바 있다. 이러한 확장을 채우는 구체적 실재에 몰두한다면 어떨까? [확장의 내용물은 생명체이다. 생명체의 부피는 의식의 확장이다. 모든 몸은 의식의 확장인 셈이다.]
이제 실재성이 진행하는 방향은 이제 우리에게해체되는(se défait) 사물의 관념을 암시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물질성의 본질적인 특성의 하나가 된다. 그로부터 이러한 사물이 생성되는(se fait)과정은 물리적 과정과 반대 방향을 향하며 따라서 그것은 정의상 비물질적[생명적]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겠는가? (246)
(연장) [상승하는 무게의 개념] .. 구체적 실재성에 좀 더 가까이 있다면, 그 물질의 내부에 파고 들어가서 생물체를 고찰한다면... 결론이 더욱 강력할 것이다.
(생명의 기원과 운명)
246-2 생명은 물질이 내려가려는 경사를 그슬러 올라가는 노력이다. .. 생명이 순수의식 더하여 상위의식(supraconscience)이라면, 생명은 순수한 창조활동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에는 카르노 원리가 결정하는 바와 같은 물리적 변화들의 방향을 역전시킬(renverser) 수는 없다. .. 물질의 변화의 진행을 정지할(arrêter) 수는 없지만, 생명은 그 행군을 늦출(retarder) 수는 있다. (246-247) [우리나라에서 운명에 대해, 또는 죽음에 대해 말할 때, 천기이다.]
.. 생명은 낙하하는 무게를 들어올리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생명은 그 무게가 사실상 낙하하는 것을 늦추는 데 지나지 않는다(원주1).
(원주 1) 랄랑드(André Lalande) 유기체가 저항함에도 불구하고 만물은 죽음을 향해 행진한다. 전 우주에는 .. 죽어가고 있는 세계의 옆에는 아마도 태어나고 있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 개체의 죽음은 생명일반의 최대의 진보를 위하여 원했거나 또는 적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일어난다.(247)
248 예: 증기로 가득 찬 그릇, 수증기가 분출되어 나와 응고된 것,.. 이 응축과 낙하는 단지 무언가의 손실 중단 결핍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나 수증기의 일부는 잠시동안 응축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이 세계 내부에서 생명종들의 진화는 시원적 분출에 따른 최초의 방향을 공유한 것, 물질성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연속되는 추진력으로부터 잔존하는(subsister) 것을 나타낸다. 이런 비교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248)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 [생명의 노력] 팔들기를 생각해보자. 팔이 내려오는 것은 [물질 운동이다.] .. 해체되는 창조하는 동작(gest créateur qui se défait)을 본 따서(이마쥬를 모방하여) 우리는 물질에 대한 보다 정확한 표상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활동에서 반대된(inverti) 운동 속에 직접운동이 잔존하는 것, 즉 해체되는(se défaire) 실재를 통하여형성되는(se faire) 실재를 보게 된다. (248)
249 창조될 사물(chose)과 창조 할 사물을 생각하면, 창조의 관념은 모호하다. .. 사물과 상태란 그 생성(devenir)에 관한 우리 정신이 파악한 시각(vues)일 뿐이다. 결국 사물이란 없으며 있는 것은 행위(actions) 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
.. 예견 불가능한 형상은 예견 불가능한 운동에서 나온다.... 중심을 하나의 사물로서가 아니라 계속 분출하는 과정으로 보면, .. 이렇게 정의된 신은 이미 완성된 것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다만 끊임없는 생명이요, 행동이요, 자유이다. (249)
[이에 비해] 지성은 형성된 사물에 관여한다. .. 사물은 주어진 한 순간에 오성이 순간적으로 단절하여 구성한 것이다. .. 사실, 생명이란 하나의 움직임이며 물질성은 그 반대 움직임이다. 이 두 움직임은 단순(simple)하다.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은 불가분의 흐름(flux)이고, 물질을 관통하면서(traverser) 생명 존재들을 절단해(découper) 내는 생명도 불가분이다. 이 두 흐름에서 생명은 물질과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은 생명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고 있다. 거기서 두 흐름 사이에 타협안(modus vivendi)이 있고 이 타협안이 조직화(l'organisation)이다. (250)[조직화는 유기체(l'orgnisme)를 말하려 한다.]
감각기관과 지성은 상호 외재적 형태를 취한다. [지성의 눈으로]우리는 .. 도약의 단일성(unité de l'élan)을 부정한다. 도약의 단일성은 일반성을 관통하면서 개체에서 개체로 연결하면서, 생명체의 전계열로 물질 위에 거대한 파도의 흐름(courant)을 형성한다.
이미 만들어진 것만을 파악하고 밖으로부터 바라보는 지성[PM 6장]만의 눈이 아니라, 정신으로, 즉 의지가 자기 자신을 비틀 때(torsion, EP 282) 솟아 나오는 보는 능력[들뢰즈의 haptif]으로, 보도록 해보자. ... 떨어지는 꺼져 가는 불꽃탄의 조각(débris)들 가운데 마지막 불꽃탄이 열어놓는 길과 같은 어떤 것을 알아 맞출 것이다.(251) [조각과 같은 의미: EC Ch 2, 99 un o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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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화의 의미 251 -
§5-1 인류애(L'humanité). 251-268
§5-2 신체의 삶과 정신의 삶 (Vie du corps et vie de l'esprit) 268-271
§5-1 생의 도약(L'élan de vie)
§5-2 진화에서 본질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L'essentiel et l'accidentel dans l'évolution)
§5-3 반성의 진행(La marche à la réflexion)
§5-1 생의 도약(L'élan de vie) 251
251 우리는 생명진화에서 우발적인(accidentel) 것과 본질적인(essentiel) 것을 더 명확히 분간해야 할 것이다. (251-252)
252 생명의 도약(élan de vie)은 창조의 요구에 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창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물질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생명은 필연성 그 자체로서 물질에 가능한 한 많은 불결정성과 자유를 도입하려한다. [여기서 필연성은 플라톤의 아낭케(ananke), 플라노네네 아이티아(planomene aitia)와 같은 의미이다.]
252-2 고등동물의 감각운동체계- 신경계의 복잡성: 신경계의 복잡화는 .. 그것은 자동적 활동과 의지적 활동을 동시적 발달로 이루어진다. 전자는 후자에 적절한 도구를 제공한다. (252)
뇌는 그 교차로(carrefour)이다. .. 유기체는 점점 더 행동하는 기계처럼 되어간다. 그것은 마치 탄성체(caoutchouc)로 만들어져 매순간 완전히 형태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각각의 행동에 대해서 전체가 재구성될지도 모른다. [탄성체의 비유, 탄성고무(elastique)의 비유와 같다. 의식은 각각이 전체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MM)] 이 예로 아메바의 미분화 상태.. 아메바는 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형태 변형을 한다. (253).
[자유로운 활동을 위하여 ... 정확성과 다양한 효과성, 독립성을 위하여] ... 1. 동물활동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2. 가능한 한 유연한 물질을 매개로 다양하고 예견할 할 수 없는 방향으로 소비(dépenser)(252)
253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섭취된 양분에서 생긴다. 왜냐하면 양분은 일종의 폭발물(explosif)로서 이것은 스스로 축적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한 불똥만을 기다릴 뿐이기 때문이다. (253)
[태양 에너지] 누가 이 에너지를 제작하는가? .. 식물만이 진정으로 태양에너지를 끌어 모은다. (254)
§5-2 진화에서 본질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L'essentiel et l'accidentel dans l'évolution) 254
254 그러므로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전체는 그 본질적인 점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 다음에는 그 유연하고 변형 가능한 관(canaux) 속에 풀어놓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 관들의 끝에서 생명은 무한히 다양한 일들을 수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도약(élan vital)이 물질을 관통하면서(traverser) 단번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254)
[구체적 유기체의] 도약은 유한하고 기회는 한번밖에 없다. 도약은 장애물 전부를 극복할 수 는 없다. [물질을 완전하게 정복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모든 장애물을 넘을 수는 없다. 그것이 나타내는 운동은 때로 빗나가고 때로 분열되며 항상 방해에 직면한다.(254) 또한 유기체의 진화는 이러한 투쟁의 전개에 불과하다. (255)
[최초의 분화- 식물계와 동물계] 식물계와 동물계는 상보적임에도 서로 조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 그래서 생명은 서서히 축적하는 것과 갑작스런 사용이란 두 가지 역할을 동등한 힘으로 유지할 없었다. .. 이중경향과 물질의 저항의 결과로 생명은 .. 이중화(dédoublement)를 걷게 된다. 이 이중화에 다른 많은 이중화들이 잇따른다. 그로부터 진화의 분기(divergentes) 노선들이 적어도 그 본질적인 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255)
[류의 분기에 생겨난 개별 종] 종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간다. 그로부터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무수한 투쟁이 유래한다. 또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부조화(désharmonie)도 거기서 유래한다. (255)
255 진화에는 우연의 몫이 크다. 적응한 또는 발명된 모든 형태들은 우연적(contingentes)이다. ... 분기된 노선도 우연적이고, ... 장애물에 대해 정지와 후퇴도 우연적이다. 넓은 의미에서 적응도 우연적이다. (255)
단지 두 가지가 필연적이다. 1. 에너지의 점진적 축적, 2. 변화가능하고 비결정적인 방향으로 이 에너지를 탄성있는 통로(canalisation elastique)를 통해 그 끝에서 자유로운 작용(libres actes)을 하는 것이다. (256)
256 탄소와 질소가 아닌 다른 것이라면, ... 태양계속에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생명존재가 있음직하다. .. 결국 생명[현상]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모호한 생명력과 확정된 생명력 사이는 심리적 삶에서 꿈의 상태와 각성된 상태와 같다[MR 313].
256 생명은 본래 이산화탄소의 탄소에 눈독을 들일 필요가 없다. 생명에게 중요한 것은 태양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이었다.
... 탄소가 아니라면.. 조형적 물질의 특성적 요소도 아마 질소가 아닌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생화학은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 해부학도 생화학도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256)
지구와 다른 조건에서... 생명이 반드시 이른바 유기체 속에서 집중되고 정밀하게 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257)
사람들은 에너지가 저장되고 .. 흐르면서 다양한 노선들에서 소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비록 상상하기 어렵지만) 생명의 본질은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 이처럼 모호하고 희미한 생명성과 우리가 알고 있는 한정된 생명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우리의 심리적 삶 속에서 꿈의 상태와 각성의 상태 사이에 있는 차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257)
257 생명체의 계열과 항들이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했을까? 왜 단일한 약동과 무한히 잔화하는 단일한 신체에 새겨지지(imprimer) 않았을까? [이 도약이 무한정하게 진화 될 수 없었던 것은 왜일까?]
258 생명은 실제로 심리학적 질서이다. 상호침투하는 [심리, 생명]항들의 혼재된 다수를 발전하게 하는 것은 심리(le psychique)의 본질로부터이다.
그러나 순수하고 빈 통일성(unité)은 공간 속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은 수학 점의 통일성이다. 통일성과 추상적 복수성은 공간의 규정들 또는 지성의 범주들이고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 공간성과 지성은 서로가 모방하기 때문이다. (258)
나의 인격은 주어진 순간에 하나인가 다양(multiple)인가? 나는 다수적 단일성(unité multiple)이고 하나의 다수성(multiplicité une)이다.[PM 189] 통일성도 다양성도 외관이다. (258)
나는 전자(통일성)도 후자(다양성)도, 둘 다에 들어있지 않다. 비록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내가 나 자신의 심층에서 발견하는 이러한 상호침투와 연속성에 대해 근사적인 모방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하다. 그러한 것이 나의 내적 삶이며 또한 생명일반이다. 생명은 거대한 잠세성(virtualité)이며 수천 경향들의 상호침투(empiétement)이다.(259)
[오성이 한 것처럼] 개별화된 요소들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은 언어의 물질성이다. (259) [베르그송에서는 항상 과학 상식 언어는 같은 길을 간다.]
259 [예] 시의 전체는 [생명처럼] 영감이다.
[군체의 예 - 에퐁지]
세포들의 연합에 의해 개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오히려 개체가 분열에 의해 세포들을 만든 것이다.(260)
생명의 모든 영역에는 개별화와 연합화 사이의 균형이 있다. ... 유기체에서 개별화와 연합를 실행하는 예로서 적충류(Infusoire)가 있다. ... 생명의 도약은 순수한 단일도 다수도 아니다. 생명의 도약이 물질에 전해지면, 물질 때문에, 단일 또는 다수를 선택하지만 결코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 생명의 진화가 개별화와 연합화 - 이중적 방향을 취한 것은 우발(accident)이 아니다. 진화는 생명의 본질에 기인한다.
Serkovski, L'année biologique, 1898. p. 317.
Ed. Perrier, Les colonies animales, Paris, 1897.
Delage, L'Hérédité, 2e édit. Paris, 1903. p. 97. La conception polyzoique de etres, Revue scientifique, 1896, pp. 641-653.
261 반성의 진행도 본질적이다. 초의식(supraconscience)이 커다란 불꽃이고 그 파편(débris)들은 다시금 물질로 되돌아간다. ...
의식은 창조의 요구(exigence de création)이므로 창조가 가능한 곳에서 창조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생명이 자동주의에 강요되었을 때, 의식은 잠자고 있다. (262)
262 한 생명체는 하나의 운동중심이다.[MM 제1장] ... 의식과 두뇌의 상응: 하나[두뇌]는 구조의 복잡성은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각성의 강도를 지닌다.
263 원숭이와 인간의 비교
263-2 한정된 것과 무한정한 것, 닫혀진 것(le fermé)과 열려진 것(l'ouvert) 사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본성의 차이이다.
264 의식은 실재의 행동을 감싸고 있는 가능한 행동의 달무리(frange)와 공연적(coextensive)이다. ...갇혀 있는 동물과 달리, 인간의 경우에 [갇혀있게 하는] 연쇄고리를 끊는다(briser). 그래서 의식은 인간에서 의식자체를 해방하게 한다. ... [자유로운 활동으로] 자동적인 활동을 지배하게 하는 것은 두뇌이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 덕분이다. ... 사회생활의 덕택이다. [여기서 베르그송은 인간을 새로운 조직화의 경우로 생각한다] ...언어는 내재적 우월성에 대한 외부적 표시(signe)일 뿐이다.
265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진화의 항(le terme)이자 목표(le but)이다. ... 생명은 물질을 가로지르는 던져진 흐름(un courant)이다. 그러므로 어떤 계획(projet)도 설계(plan)도 없다. (265-266) (accidents différents)
266 베르그송은 생명을 하나의 커다란 파동(l'onde)으로 여긴다. 중심에서 원으로 퍼져가는 진동이 있다. 진동의 저 끝에는 저항이다 이 저항을 밀어낼 때 인간은 자유이다. [방해물(물질)의 저항에 밀리면 개체의 죽음이다] ... 좋다면 인간 또는 초인(sur-homme)이라 부를 수 있을 흐릿하고 모호한(indécis et flou) 존재가 스스로를 실현하기를 애썼으며, 그 도중에 자신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서 그것(실현)에 도달 할 수 있었다. ... [이 존재의] 진화는 어떤 거추장스러운 것[에너지 축적의 수고]의 짐을 덜었다.
267-2 그런데 [이 존재의 진화는] 소중한 것[직관]을 포기했다. ... 직관과 지성은 의식적 작업의 상반된 두 방향이다. 직관은 생명의 방향으로 걷고 지성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며, 물질의 운동과 일치한다. ... 다른 진화는 보다 지성적 또는 보다 직관적인 인류에 도달 할 수 있었으리라. [인류가 직관의 방식을 존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물질주의의 자본주의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으리라. 자본주의의 물질성은 지성의 인식을 토대로 하고, 이를 수용한 철학자(정치가)는 자신을 제외하는(자신은 영향을 입지 않는) 착각(선결문제의 오류)에 빠져, 타인을 물질처럼 재단한다. ... 직관은 희미하고(vague) 특히 불연속적이다. 수고스러운 매순간에, 거의 꺼질 듯하지만 점점 더 멀리서 되살아나는 등잔불(une lampe)이다.
268 [철학이 문제를 해결하려 덤벼들 것이다.] 정신적 삶의 통일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 직관 안에 자리 잡고서 그로부터 지성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성으로부터 직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5-2 신체의 삶과 정신의 삶 (Vie du corps et vie de l'esprit) 268-271
[소결론: 정신적 삶과 신체의 삶]
268-2 철학이 정신적 삶 속에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 정신주의의 이론의 잘못은 정신적 생활을 다른 것들과 분리하여 지상으로부터 되도록 높은 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그래서 신기루의 효과를 만들지 않았는지. ...
[269] 정신주의이론은 인격의 절대적 실재이며 물질에 독립적이라고 믿는 것은 이유가 있다. [다 맞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주의가 인간에게 자연계 내에서 특권적 위치를 부여하는 것, 동물로부터 인간 사이의 거리를 무한한 것으로부터 여기는 것도 이유가 있다. 정신주의가 자기 목소리에 귀를 닫지 않고 있다는 것도 이유가 있다. ... 영혼이 언제 어떻게 왜 우리 몸에 들어오는가? [정신주의 이론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 직관 철학은 신체의 삶을, 있는 바로 그곳에서, 정신의 삶으로 이끄는 길에서 보지 않는다면, 직관의 철학은 과학의 부정이 될 것이고, 조만간 과학에 의하여 쓸어 내버려질 것이다. ... 생명 전체는, 세계 속에 최초의 충력이 던져진 이래로, 생명은 상승하는 물결(flot)로 나타나고, 물질로부터 하강하는 운동은 반대의 방향이다. ... 생명의 흐름은 장애물을 밀어가며 자유롭게 통과한다. 그 장애물은 [그 흐름의] 진행을 무겁게 할 뿐이지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인류(humanité)가 있다.(269)...
생명의 흐름(courant)은 인간의 여러 세대를 가로질러 통과하면서 줄곧 개체로 세분한다. ... 인간의 영혼은 인류의 신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생명의 대하가 분할되어 이루는 작은 시냇물들이다. ... 의식은 본질적으로 자유롭다. 그것은 자유 그 자체이다. 의식은 물질에 올라앉아 있지(se poser sur)않으면, 그에 적응(adaptation)하지 않으면 물질을 관통할 수 없다. 적응을 우리는 지성성(intellectualité)이라 부른다. 지성은 행동하는 의식을 자연적으로 틀 속에 들어가게 하고, 그 틀 속에서 물질이 끼여있는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271] 한편, 아무리 작은 먼지라도 태양계 전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태양계와 함께 물질성 그 자체인 불가분의 하강운동 속에 끌려들어 간다. ... 모든 생물의 진화과정과 더불어... 그리고 인류 전체는 모든 저항을 물리치고, 많은 장애물과, 아마도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우리들 앞뒤 좌우에 [여럿이서] 질주하는 거대한 군단과 같다. (다발 119)
[작은 먼지라도 태양계 전체와 불가분의 관계 - 화엄의 세계와 같은 설명이다. 물질성으로 화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빛의 세계로 화하는 화엄의 세계는 생명의 대양(Océan)이다.] (옮, 24:41, 56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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