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등여에서
다시 세속의 옷을 벗는다
별도 달도 퍼붓는 비로 사라진 밤바다
무수한 생애의 각성처럼
내 몸에 쏟아져내리는 빗속에
천둥 번개가 요동치는 태고의 엿등에
대를 들고 홀로 섰다
좋다
오늘 밤 초들물도 좋고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좋다
암흑천지 실눈을 뜨고
나는 뱀처럼
그윽히 수면을 기고 바닥을 핥으며
나만의 좌표를 찾을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는 신강수도 밤바다에
처연히 미끼를 꿰어 던진다
나만의 낚시를 하다
만조가 되기 전에 번쩍
번개 맞아 죽어도 황홀하리라
아, 세상여와 소리도가 우는 걸까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울부짖는 바다
울부짖는 섬들
너도 나도 짐승처럼 고독에 떨며
벌거벗은 바다가 된다
철저히 외로우니 살겠다
퍼붓는 빗속에 날아갈 것만 같다
그래, 이 너른 심연의 세계에
나는 잠기고 싶었다
알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바다
미칠듯 때리고 빠지는 저 파랑을 품고
이 밤 헐떡이다 고꾸라져도 좋겠다
고기 밥이 되어도 좋겠다
註
검등여 / 여수 남단 금오열도의 소리도 북서쪽, 검고 작은 간출암이다. 늙수그레한 선장과 구멍가게 영감, 밥집 아줌마까지 반겨주는 반도의 끝에서 쪽배를 타고 밤바다에 홀로 기어들었다. 끈적이는 늦여름, 퍼붓는 비와 천둥 번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벌거벗은 채 대를 꼬나쥐었다.
신강수도 / 안도, 금오도, 소리도 사이를 흐르는 세찬 물골에 배를 띄울 땐 잔뜩 주의를 기울인다. 현지 뱃사람들은 신갱잇도라고 부른다.
월간 바다낚시 202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