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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빛 (행 9:1~9)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는, 변하는 것이나 움직이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18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를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약 1:17~18)
아버지의 속성이 빛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아버지께서 빛이 되시고 어린 양께서 등불이 되셔서 그 성에는 해와 달이 필요없다고 합니다. 기존의 창조세계와는 구별된 새로운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빛을 따라가는 순례자 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시 97:11
하나님은 제단의 피를 뿌리듯 정결케 하는 빛을 우리에게 뿌리십니다
그 빛은 세상에 오신 빛의 근원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러 가실 때도 아직 세상빛이 있을 때 낮에 다니면 실족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스스로 세상의 빛되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말씀되신 그 분은 자신이 진리임을 침묵하십니다. 그는 자녀들에게만 열어주시는 비밀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그 자녀들로 인해 옳다함을 얻는다는 말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만 예수님을 믿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도 배척합니다.
그 빛은 태초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다스리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시며 평강의 왕 의의 왕이십니다. 그는 기묘자요 모사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바울은 이 빛되신 예수님을 찬란한 빛가운데서 만나뵙습니다. 모세는 차마 보지 못하고도 얼굴에 광채가 났던 하나님의 얼굴을 뵙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민수기 6:24-26
여호와의 얼굴을 뵙고 그의 음성을 친히 들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세 엘리야 정도입니다. 내적 음성과 심령에 불붙는 듯한 마음을 경험하여도 하나님의 직접 대면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행위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자하는 인간의 바램마저도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렘 30:21
바울은 예수님의 얼굴을 뵙고 친히 그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이 그의 사도직의 근거가 됩니다. 만나고 자신의 잘못된 방향을 수정하고 구약의 모든 예언을 그리스도 예수께 맟춰 재해석하는 시간이 6~10년 고향 다소에서의 칩거기간입니다.
바울은 이 기간동안 자신을 부르신 목적을 발견합니다. 율법의 한계와 그 완성 그리고 유대인의 국경을 넘어서는 복음의 확장성과 명령을 분명히 인식하고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전파합니다. 예수의 부활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가 이방인들에게도 허용되었다는 복음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화하는 기초원리가 됩니다.
성경은 성부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고백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아름답고 귀히 보셔서 사랑하시고 타락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을 준비하시고 가장 소중한 아들을 보내셔서 제물 삼으신 아버지의 애달픈 사랑노래가 탕자의 비유에서 나타납니다. 기다리시는 아버지 환대하시는 아버지 맏아들의 불만을 잠재우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 앞에 우리는 오늘도 나아갑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연인들이 카페나 영화관에 가듯이 만남을 위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장소가 있고 연인이 사라지면 장소는 의미를 잃습니다. 문제는 서로간의 신뢰와 깊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원하셔서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순종을 원한다고 하십니다. 형식만 남은 종교행태를 보고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사랑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다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율법과 성전에 국한된 유대교의 헛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자신이 그 맹목적 허상의 노예였기에 너무도 그 어리석음을 잘 아는 까닭입니다. 날마다 죽어야하는 자아와의 치열한 전투와 어둠의 세상주관자들을 향한 담대한 믿음의 선포와 죽기까지 싸워야하는 영적 전투의 최전선에서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정과 욕심을 못박습니다. 이제는 나 사는 것 아니요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는 선언은 나를 비우고 예수의 영으로 가득채운 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한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꿉니다. 주의 얼굴을 뵙기 원하는 신앙의 선배들이 많았지만 오늘도 우리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도상에 서 있습니다. 그의 얼굴의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들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자라는 사랑의 고백을 부여잡고 너를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그의 선하신 말씀을 듣고 감사와 찬양과 경배로 그 보좌앞에 엎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