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개관
1. 야고보서의 명칭과 저자
본서의 헬라어 성경에서의 명칭은 사본에 따라 조금 다릅니다. 즉 어떤 사본에서는 ‘야코부’, 즉 ‘야고보의’라는 표제를, 또 다른 시내 사본들에서는 ‘야코부 에피스톨레’, 즉 ‘야고보의 서신’이란 표제를 붙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과 한글 개역 성경은 저자의 이름인 ‘야고보’(James)를 제목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일부 영역본에서는 이 서신이 특정한 지역이나 개인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을 대상으로 쓰인 서신임을 반영하여 ‘공동의’라는 말을 덧붙여서 ‘야고보의 공동 서신’(The General Epistle of James)이라고 했습니다.
본서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란들이 있어 왔는데, 우선은 본서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신약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여러 명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세베대의 아들 중에 하나로서 열두 사도 중 하나이며 요한의 아우인 야고보(막 1:19)와 또 다른 제자인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막 3:18),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로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된 야고보(막 6:3; 고전 15:7), 그리고 사도 유다의 아버지인 야고보(눅 6:16) 등이 그들인데, 이들 중에서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본서의 저자라는 견해가 가장 많이 지지를 받았고, 고대로부터 그에 대한 외증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에서 저자가 자신이 주님의 형제라는 단서를 제시하지 않음을 근거로 이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마도 본서의 저자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곧 주님의 형제요 자매(마 12:48-50)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와의 영적 관계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굳이 자기가 주님의 혈육으로서의 형제임을 역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본서의 기록 시기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공의회(A.D. 49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전기 기록설과 야고보가 A.D. 62년경 순교하기 직전으로 보는 후기 기록설이 있으나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내용 가운데 ‘교회’란 말이 없고 그 대신 유대인들의 집회장소인 ‘회당’이란 용어가 사용된 점과 ‘감독’, ‘집사’에 대한 언급은 없고 ‘장로’(5:14), ‘선생’(3:1)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음을 볼 때 이는 교회 직제가 발달하지 않은 기독교 초기에 기록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본다면 A.D. 49년의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의 A.D. 45-48년을 본서의 기록 연대로 추정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성을 가지며, 이렇게 볼 때는 본서가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에서 믿음에 따른 행함을 강조한 것이 혹 사도 바울에 의해 제기된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를 사람들이 오해하여 행함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반박하고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본서가 집필되었다고 가정하다면 A.D. 62년 야고보의 순교 이전의 시기로 기록 시기를 추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야고보서의 주제
본서는 시험 중에 있는 독자들을 격려하는 한편 믿음과 실천이 괴리된 이원론적 신앙을 바로잡기 위하여 기록된 서신입니다. 그런 가운데 1:1에서 수신자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1:1)라고 한 것을 근거로 본서는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 성도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파 구분은 기독교 시대 이전에 이미 사라졌으며, 본서 자체 내에서도 독자들이 유대인이라는 직접적인 언급도 없기 때문에 서두의 열두 지파를 꼭 문자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라는 말을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즉,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이야말로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이 땅에 흩어진 순례자(diaspora)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혹 본서의 저자가 주로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었을지라도 그 내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야고보서는 정경(正經)으로 인정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많았으며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에게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박대를 받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본서가 행함을 강조하면서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2:24)고 역설함으로써 기독교 구원론의 기초를 이루는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 즉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사상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행득의’(以行得義) 사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에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믿음과 행함의 균형 잡힌 신앙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초대교회에서는 이신득의의 교리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율법이나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님이 확정되자, 많은 기독교인들 가운데 입술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타성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의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대하여 저자는 믿음에 따른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올바른 복음적 신앙관을 확립하려고 했던 것이 본서 기록 목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본서는 이신득의를 강조하는 바울의 서신들과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서신들의 구원론을 보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본서는 구약의 잠언과 비슷하게 신앙의 구체적 실천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의 교훈적인 문장들이 나열식으로 이어지며, 또 자주 지혜를 강조하는 유사성 때문에 흔히 ‘신약의 잠언’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본서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불의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사회적 삶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룸으로써 ‘신약의 아모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무튼 본서는 오늘날에도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삶에서의 참된 경건의 실천이 없는 형식화된 기독교인들에게 경계를 준다는 점에서 소중히 묵상하고 연구되어야 할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야고보서의 구조와 내용
Ⅰ. 시험에 대한 격려와 교훈(1:1-18)
1. 시험(시련)과 인내(1:1-12)
2. 시험(유혹)의 근원(1:13-18)
Ⅱ. 온전한 믿음과 실천(1:19-5:20)
1. 말씀과 참된 경건(1:19-27)
2.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2:1-13)
3. 믿음과 행함의 관계(2:14-26)
4. 말을 삼가라(3:1-12)
5. 참된 지혜(3:13-18)
6. 겸손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4:1-17)
7. 불의한 재물에 대한 경고(5:1-6)
8. 인내와 기도(5: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