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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7.9.8. 22:00 – 2017.9.10. 21:40
코스: 가평역-수리봉-송이봉-깃대봉-매봉-우정고개-우정봉-연인산-명지3봉-귀목봉-강씨봉-민둥산-견치봉-국망봉-신로봉-도마봉-도마치고개-석룡산-화악산-촉대봉-촛대봉-몽가북계-물안산-보납산-가평역(약 100km)
1.
친구여!
가을의 기운이 물씬 감도는 구월이 종주 시즌이 도래함을 알리는 시그널처럼 자내 곁에 왔으니 자네 마음이 싱숭생숭하겠구먼. 종주산행을 즐기는 자네에게는 이젠 장거리 종주를 한 판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아닌가 생각하네. 멋진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 보게나.
하지만 시기마다 가보야 할 산이 있듯이, 가선 안 되는 산도 있다는 걸 자넨 알고 있나? 종주 산행은 특히 그렇다네. 산 좋고, 물 좋은 곳, 거리가 그닥 멀지도 않으면서 산의 난도는 강원도급인 곳, 한북지맥, 화악지맥, 연인명지지맥이 이어지는 곳, 100km-120km의 가청종주, 가평환종주, 청평환종주 등 종주 코스가 즐비한 곳, 그래서 가평은 늘 구월과 함께 늘 오버랩되는 곳이지. 이번에 갔다 온 곳이 바로 거기고, 지금부터 할 얘기도 그런 얘기라네.
2.
수도권20산 이후 장거리 산행은 잊고 살았다. 야간 산행도 4월 8일 황산벌 종주 이후 처음이다. 지금 누리는 안락한 껍질을 깨는 게 두려워서 힘든 산행을 기피하다가 석수 대장님 열정에 이끌려 100km산행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종주대가들로부터 수도권20산(120km),영남알프스 실크로드보다 힘들다는 말도 들은 바 있고, 5월에 있었던 J3 산행에 참가한 위크엔드님 말씀도 그렇고, 그러니 그날 이후 내 마음은 불안모드! 가고 싶은 데, 갈 능력이 안 되니,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반도 어디냐? 반이라도 갔다 오자”라는 “가평반종주”란 신조어를 만들어 신청하였다. 그 후 단 두 번의 연습산행, 강북오산과 검단지맥이 고작이었으니, 부담감이 커서 특히 지난 주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해야 하겠다.
지난 8일 금요일 밤, 가평역에 이번 종주에 참가할 12분의 종주꾼들이 모였다. 석수대장님,행복총무님을 위시하여 전국 트랭글 등산 3위 노루굴님, J3,무한도전,그린의 익스트림 종주에 자주 참가하시는 산달림님, 그린 종주계 전설이신 ,기흥읍장님과 당산님, 백두대간의 전문가 섬그늘님, 설태와 지태를 혼자 해낸 알사탕님, 수도권26산 여성 완주자 라일락3님, 올해 수도권16산과 20산과 가평환종주 완주 경험자이신 위크앤드님 참가신청하신 하얀머리님(자연속 카페에서 잘 알던 분이라, 반가운 만남을 기다렸으나 이루지 못했다.)은 오시지 않았다. 한 분 한 분 대단한 종주꾼들이시다. 역앞 닭갈비 집에 하산 시 환복할 옷들을 맡기고, 저녁을 못 드신 분들로 인해 편의점에서 시간을 지체하다 거의 열 시 반 넘어서 출발했다. 날씨는 선득한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산행하기에 좋은 날인 것 같다. 도성고개에서 자봉자를 만나 두 병을 받을 계획으로 물은 세 병 지참했다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야간 산행 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들머리 찾기인 것 같다. 각 팀마다 들머리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대장님이 알고 있는 들머리, 위크엔드님이 가본 들머리, 산길샘 들머리가 다 다르다.5월에 이어 두 번째 가평환종주에 참여하는 위크엔드님을 길라잡이 삼아 들머리 찾아가기로 했는데, 이 역시 수월치는 않았다. 가평체육관 뒤쪽 수리봉 오르는 입구에서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간단한 설명 후 출발. 아차! 사진 찍는 것도 잊고 서둘러 수리봉으로 향한다. 석수대장님이 들머리에서 사진 안 찍은 것은 최초의 일 아닌가? 모두들 그만큼 긴장한 탓인 듯하다.
원래 가평환종주는 석수대장님께서 7월 7일(금)-9일(일)에 계획한 종주였지만 출발일에 장맛비가 억수로 내렸기에 이날로 연기된 행사였다. 만약 그날 종주를 강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강행했다면 “Rain and Tears are the same.”(아프로디테스 차일드,“레인 앤 티어스”)처럼, 내리는 빗물이 흐르는 눈물이 되지 않았을까?
제 1구간: 수리봉-송이봉-깃대봉-매봉(14.2)03:37분경
처음에는 완만한 경사의 수풀길을 오르게 된다. 하지만 수리봉 가까이부터 덤불로 뒤덮여, 야간이라 송이봉 가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산길샘과 트랭글에서 수리봉 위치가 달리 나오고 각각 표시된 길은 수풀로 막혀 있었는데 용케 노루굴님이 길을 찾았다. 가평군에선 길고 큰 네모난 모양의 “가평 백패킹 100”이란 화려한 행사 시그널을 코스에 따라 나무에 걸어놓기만 했지 길을 정비하는 작업은 전혀 하지 않아, 우리가 마치 수색대원처럼 우거진 풀에 덮힌 길을 찾아 나가야 하니, 알바와 기섭둥절할 일의 연속이다. 거리는 짧아도 속도는 제대로 나지 않고 길은 계속 구불구불 오름길이니 힘이 많이 든다. 특히 깃대봉 가는 길이 멀고 험한데, 깃대봉에서 얼마 안 되는 매봉 가는 길을 찾을 때, 붉은 깃발을 따라 가도 길이 잘 연결이 안 되었고 마치 주변을 빙빙 도는 느낌과 바위를 오르내리는 일이 정말 고역이었다. 초반부터 힘이 많이 든다. 02:00로 예정됐던 매봉 도착이 벌써 두 시간 정도 넘어서 네 시가 다 되간다. 뭔가 처음부터 꼬이는 예감이 심상치 않다.
제 2구간: 우정고개-우정봉-연인산(21km지점)(06:31분경)
벌써 가져온 물이 많이 소진된 분들이 많았다. 도성고개 자봉자를 만날 때까지는 물 구할 곳이 없기에 우정고개에 도착해서 고개 좌측 개울로 내려가 물 떠오는 분들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매봉에서 내려오는 길이라 다소 수월했지만 우정고개부터는 계속 치고 올라간다. 특히 우정봉이 암릉 위에 있기에 암릉을 오르는 것이 힘겹지만 길을 찾느라 헤매는 일은 없었다. 벌써 6시간째 산행이라 졸음이 오는 분들이 많아 10분간 자고 가는 걸로 했다. 오버나이트 마운틴 크라이밍의 매력은 먼동 트는 새벽을 맞는 기분인데, 그 기분은 마치 과거 애청곡인 “모닝 해즈 브로큰 라이크 더 퍼스트 모닝...”(캣 스티븐즈, 모닝해즈브로큰)“이란 노래가사처럼 새롭고 경이로운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기분에 비유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얼마만에 맛 보는 새벽산행인가? 연인산 가는 길에 먼동이 트고 조붓한 길섭엔 사람의 키보다 더 큰 이슬 머금은 잡풀들이 터널을 이루듯 서서 세차하듯 우리 온 몸과 머리까지 시원한 이슬로 문질러 주니 온몸이 다 젖었다. 아침 세수할 일이 없게 됐다. 파란 과남풀들이 자주 보인다. 벼이삭이 열린 것처럼 보이는, 물가에 많은 벼과 식물인 줄의 군락도 곳곳에 보이고, 칡넝쿨은 가지로 사람의 몸과 목을 걸고, 산초와 찔레나무 같은 가시돋힌 나무들에 손과 팔이 찔리기도 했다 .연인산 올라가서 드디어 함께한 분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벌써 세상이 환하다. 자봉자들과 만날 시간을 다시 계산해 보니 우리가 더 늦을 것 같다. 대장님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제 3구간: 아재비 고개-명지3봉-귀목봉(27.8km, 09:10)
명지3봉이 워낙 까탈스럽기에 거기 오르기 전 아재비 고개는 통상 쉬어가는 곳인데, 쉬지 않고 바로 명지3봉으로 오른다. 저기가 끝인가 싶으면 아니고 또 저기 올라가면 끝나겠지 하지만 아니고를 한참 반복한 후 명지3봉에 오르니 사방에 산 사이 구름 끼어 있는 모습이 일망무제로 조망된다. 이런 모습을 좀 오래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다시 귀목고개로 방향을 더위잡고 힘겹게 귀목봉까지 올라갔다. 통상 내려가는 길이나 평평한 길에서 힘을 다시 얻어, 다시 오를 때 그 힘을 써서 수 많은 봉우리를 넘는 법인데 가평의 산길이 힘든 이유는 내리막 구간이나 평지 구간이 적어서 체력을 회복할 기회가 적은데 점점 더 까탈스러운 봉우리를 계속 올라야 하니 일찍 힘이 빠지는 것 같다.그나마 태양이 아직 강렬하지 않아서 다행인데, 낮에 명지, 귀목봉을 오르는 일은 수렴동 선배님 말씀대로 초죽음의 길로 느껴질 것 같았다.
제 4구간:오뚜기 고개-강씨봉-도성고개(33.61km, 11:37)
“귀목봉부터는 내리막이니 힘든 거 다 끝났다” 라고 대장님이 말씀하셨지만 산에서 하는 말 다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이란 거 알면서도 그말을 믿게 된다. 오뚜기령에서 휴식을 취한 뒤에 배고픔, 목마름 참아가며 자봉팀 만난다는 희망을 품고 다시 걷는다. 군대생활할 때 간절히 휴가를 꿈꾸게 했던 아래 노래처럼
/설레움에 내 마음은 벌써/도성고개로 달려가고 있네 자봉 생각에/
모두가 반겨주네/ 도성고개 자봉산우님들(물레방아-순이 생각 개사1978)
강씨봉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유일하게 잡풀 정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높낮이가 잦아 힘들다. 게다가 날이 더워졌다. 지금까지 최선두에서 힘차게 리딩하시던 “내 나이가 어때서” 대장님도 여기서부터 아주 힘들었다고 하셨다. 힘들 때 늘 나오는 래퍼토리가 늘 느즈막히 오는 행복이 총무를 도마에 올려놓는 험담 농담이다. 그러면 행복이 총무님도 질세라 대장님 멀리 있을 때 들으라는 듯 맞받아친다. 옛날 장소팔-고춘자 만담 한 토막을 보는 듯 하다. 두 분의 사이는 마치 톰과 제리같다. 요게 박카스가 되어 한 바탕 웃고 걷는데 강씨봉에서 자봉팀 두 분이 마중 나와 저 아래 근사한 잔치상이 준비됐다고 알려주신다. 힘이 난다. 상상만으로도 팍팍한 현실을 감내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대편에 오르는 딴 분들도 격려를 해 준다.그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 산객인데..우릴 마라톤 선수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식사야말로 정말 대사다. 먹는 사람을 몰라도 차리는 사람은 정말 힘든 게 식사자리 아닐까? 상상 이상의 풀밭의 식사가 준비되었다. 최초로 자봉을 제시한 먼추억, 선택님께 감사드리며 이분들을 도와 자발적으로 이 오지까지 도와주러 오신 네 분들(예청,청명투,긍정적철인,카운셀링님)께도 자연스럽게 존경과 감동의 마음이 우러난다. 돼지족발, 오리고기, 낙지볶음, 김밥, 햇반, 뭐니 뭐니 해도 입담 좋으신 먼추님의 남자는 조개, 여자는 고추 많이 먹으라는 격려의 농담 들으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게 배부르게 먹었다.
제5구간: 민둥산-견치봉-관음봉-도마봉-도마치고개(49.3km, 18:00)
점심 많이 먹고 싸주신 식량까지 받고 물 보충해서 올 때보다 더 뚱뚱해진 보따리 메고 덤불로 길이 인멸된 민둥산을 올라가는데 안 좋았던 몸이 밥을 먹으면 회복될 줄 알았는데 회복이 안 된다. 원래 “환종주는 좃도 무리데스” 라고 사양하고 반종주에 참가하겠다고 했으니 계획대로 도마치까지 가는 반종주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가던 대장님 행복이 총무도 몸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특히 대장님은 그 아침 이슬 때문이 아니고 점심 이슬이 때문인 것 같다.가동이 잘 되던 엔진이 갑자기 느려진 듯했다. 두 분을 두고 혼자 먼저 간 일행을 향해 수색대원처럼 풀숲을 헤치며 올라가는데 발걸음 무거워 진도가 안 나간다.걷는 게 아니라 온몸을 던지며 가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견치봉 못 가 먼저 간 노루굴님 일행을 만났지만, 먼저 보내고 뒤따라가다 오늘 도마치까지 최고의 컨디션으로 주파한 섬그늘 갑장님을 만났다.그 역시 식사 후 체력이 떨어져 쉬고 계셨다. 갑장마저 두고 먼저 오르다 보니, 섬그늘님이 웃통을 벗고 마치 수호지의 영웅 노지심 모습으로 빠르게 좇아와서 앞질러 간다. 담배를 끊은 뒤에 예전의 전성기 모습을 되찾으신 것 같다.반종주 얘길 듣고 참가의사를 밝혔다. 견치봉 가다가 이번엔 라일락삼님의 코치 역할을 하시는 읍장님을 만나 네 사람이 함께 키 큰 숲길의 연속인 신로봉, 도마봉을 찾아 자연히 함산하게 되었다. 노지심 갑장이 내가 중탈하면 자기도 중탈하겠고, 가면 함께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또, 가평역에 가서 션한 맥주를 실컨 마시자는 유혹성 제안도 한다.나는 도마치고개에 가서 그때 컨디션 보고 최종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 정성스런 자봉을 받고 종주를 그만두는 것이 꺼림칙하기도 했고, 개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온 노력이 매몰비용으로 처리되는 것도 그렇고 해서이다.
한 구간도 쉬운 구간이 없다는 것이 이 종주코스가 난도 상으로 꼽히는 이유일 것 같다. 도마치 고개까지 가는 길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내려오니 벌써 6시 컴컴해 지기 직전이다. 선두팀은 5시에 내려와 푹 쉬고 있었다. 내려오자마자 백숙으로 식사를 하고 나서 계속 갈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눠졌다.18분 중 6분만 남고 다들 가평역으로 간단다. 갈 적 마음은 다 같았는데, 올 적 마음은 다 같을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몸은 조금 회복됐지만 선두팀을 좇아가기에 보속이 너무 느려서 민폐가 되지 않을까 망설이다 또 다른 갑장인 당산님이 가시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계속 갈 사람에 끼게 됐다.
제6구간: 석룡산-화악산 북봉-촉대봉-촛대봉-홍적고개(72.3km,08:18)
도마치고개에서 석룡산 가는 데만 무려 3시간이 걸렸다.19:30분 출발해서 22:38분에 도착했다. 그만큼 길 찾기도 어려웠고 길이 험했기 때문이다. 검단지맥 때부터 이번까지 발군의 등력을 보여 준 선두대장이신 노루굴님 고생이 많았다. 석룡산은 조무락계곡에서 쉽게 가본 기억이 있기에 가기 쉬운 곳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는 길도 순 바위투성이길에다 도마치에서 가는 길 찾기도 쉽지 않아 여러 번 알바를 해가며 겨우 도착했더니 옛날과 다른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석룡산까지만 어려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화악산 북봉 가는 길역시 석룡산에 질세라 가파른 돌길을 몇 번이나 더위잡고 기어오르듯 올라가길 반복하였다. 부대에서 비치는 환한 불빛은 출발지점부터 가까이서 보이던데 좀처럼 거기에 닿기는 힘들었다..홍적고개까지는 모두 함께 가자는 약속으로 선두대장 노루굴님-2번 나-3번 산달림-4번 청명-5번 위켄드-6번 당산님 순으로 걸었다. 중간에 20분 눈을 붙이고 추위에 몰려 다시 일어나 이러구러 하며 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다들 가장 졸리는 순간에 가장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 촉대봉 가는 길을 찾는 게 장난이 아니다.화악터널 지나 무슨 기관 건물 정문을 통과해서 올라가는 매우 긴 꼬불꼬불한 언덕길 정상에서 그 아래 계곡을 통해 촉대봉에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길 어디에 하산지점이 있는지 몰라 우왕좌왕 30분 이상의 시간을 지체한 뒤에 산길샘에 나온 지점을 겨우 찾아 길 없는 길에 길을 만들며 급경사진 길을 내려가는데, 길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산길샘만으로도 확인이 어려워 노루굴님 앞세우고 내가 산길샘 보며 알려준 대로 길이 보이면 갔다가 아니면 다시 돌아와 찾고 다시 가보고를 반복하며 가려니 시간은 엄청 가고 떼어 넘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 암중모색, 진퇴양난의 한탄과 짜증만 나온다. 이러다 왠지 실패하는 것이 분명한 듯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 온다. 좌우튼 가평환종주 최악의 지점이 여기가 아닐까 한다. 알바와 암중모색을 반복하다 겨우 촉대봉 정상에 닿고 나니 두 번째 귀한 밤이 다 가고 벌써 아침이 되었다.
이어서 이름이 비슷한 촛대봉을 찾아 인증하고 홍적고개를 향하다 뜻하지 않은 대형 알바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6분 중 네 분이 중탈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홍적고개 가는 길은 큰 바위를 올라타야 하는데, 바로 아래 돌아가는 길이 보이기에 만나겠지 하고 쉬운 길로 갔는데, 돌아가는 길은 그 바윗길 위에 있는 홍적고개 가는 길을 살짝 지나 그 아래로 급경사로 이어지게 되어 있고 그 밑에 가평군에서 걸어둔 붉은 깃발까지 걸려 있기에 안심하고 빠르게 내려가다 표지판을 보니 홍적고개란 지명이 없어 그때서야 산길샘을 확인해 보니 대형알바를 해서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종주 끝이기에 할 수 없이 홍적고개 갈림길을 찾아 30분 이상을 허비하며 올라오다 보니 마음도 상하고 체력도 고갈되어 그렇지 않아도 촛대봉에서 홍적고개까지만 가는 게 어떠냐는 의견과 끝까지 가겠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진 걸 겨우 설득해서 다 함께 가기로 했는데 여기서 깨지게 되고 말았다. 나와 위켄드,당산님만 계속 가겠다고 결정하고, 나머지 세 분은 정내미가 떨어져서 홍적고개로 끝내기로 하고 갈 사람을 위해 택시를 통해 물과 음료수를 구매하기로 했다.
홍적고개까지 4.4km 8시까지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홍적고개 하산길도 갈수록 밀림의 연속, 게다가 일기마저 불순해서 마치 비가 내리듯 심한 안개와 이슬로 온몸이 젖었다. 노루굴님과 나,청명님,산달림님은 08:20분경에 내려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두 분은 도대체 내려오지 않는다. 배터리가 떨어져 전화를 해 볼 수 없는 상황이다. 09:00경쯤 택시가 와서 물품을 놓고 두 분을 기다리다, 나머지 세 분은 택시를 타고 떠나셨다. 이윽고 두 분이 왔는데 분위기가 끝낼 분위기였다. 당산님이 발바닥이 아파서 완주를 포기하겠다고 하자 위켄드님도 같이 그러겠다고 하시다 “나는 무조건 간다. 시간이 안 되면 몽가북계까지 가서 거기서 하산하겠다”라고 하니 의리의 사나이 위켄드님이 혼자 보낼 수는 없다 라고 하며 나와 함께 가고 당산님은 택시를 불러 타고 가셨다.이 때 시간은 09:30.
제 7구간 몽가북계-물안보(95km.21:40)
마지막 구간 몽가북계 가는 길은 잘 알고 있는데 물안보 가는 길은 한번 가봤기에 gps가 꼭 필요했다. 또 누군가는 이 기록을 남겨 대장님께 전해야 했기에 위켄드님께 사정해서 배터리를 제가 쓰기로 하고 산길샘을 다시 살렸다. 그러고 보니 위켄드님도 배터리를 다 쓰게 되어 등을 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젠 어두워지기 전에 보납산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위켄드님 걸음이 심상치 않다.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걷는 것 같아 내가 계속 말을 시키며 갔다. 속으로는 이 상태라면 잘해야 몽가북계까지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면 계관산까지만 가서 헤어지자라고 제안했더니 “내가 거기까지 갈 거라면 왜 가겠다”라고 했겠느냐라며 의지를 보인다. 큰 감동과 용기를 얻는 말이었다.
북배산까지 힘들지 않았다. 너무 힘든 길을 많이 걷다 보니 북배까지의 길은 오히려 감솨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종의 과부하의 원리인 듯하다. 계관산에 들어서자 이번 산행 중 가장 크고 넓은 밀림지대가 전개된다. 풀숲들이 인간이 지나갈 영역까지 모두 차지한 채 왕성하게 생장한 모습으로 장애물처럼 앞을 끊임없이 막아댄다. 그길을 헤쳐가다 서로 이산가족이 되어, 나는 계관산도 못보고 그냥 지나친 후 “그린,그린” 날 찾는 애타는 소리를 듣고 다시 하나가 되어 물한보 이정표가 있는 곳에 오게 되었다.이미 숲에 묻혀 길이 다 사라져 버렸다. 산길샘이 가리키는 길은 이미 막혀 뚫고갈 수 없는 길이 되어 한참 망설이다 희미한 길 한 줄기를 발견해서 가보니 연결이 되었다. 혼자 왔다면 당연히 포기하고 계관산에서 하산했을 텐데...위켄드님과 함께 와서 다행이었다. 여기서부터 계관산같은 밀림이 계속되면 어쩌나, 완전히 숲 속의 미아가 되어 밤새 방황하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을 하면서 계속 전진하다 보니 화악지맥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산길샘이 가리키는 길 방향과 일치한다. 여기서부터는 사람이 다니지 않았는데도 길상태가 예상보다 좋은 편이라 힘은 떨어졌지만, 갈만은 했다.
물안보 구간은 한번 가봐서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여기가 가평 종주코스의 하이라이트가 될 만할 정도로 아주 난도가 높은 코스가 아닐 수 없다. 방심하면 다 왔다고 하는 순간에 실패로 끝나기 딱 좋은 곳이다. 시간은 저녁이 다가와 하산, 전철, 옷찾기의 압박이 심해지는데 물안산 가기 전까지 까칠한 무명봉을 아마 열댓개는 넘어야 하는 것 같고, 게다가 물안산 입구에 이르는 길은 딴 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깃발이 걸려있는 곳은 아주 좁은 미로같은 큰 밀림을 찾아 통과해야 겨우 월두봉 밑 긴 밧줄 타고 내려가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서 온 만큼 더 가야 채석장으로 쓰이던 물안산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 힘은 다 떨어졌지만 전철 끊기기 전에 닿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어둠 속을 부산하게 걷고 걸었다. 숲 속에 해는 일찍 떨어지는데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는 무명봉과의 싸움을 다 넘겨서 어두컴컴한 시간에 물안산을 힘겹게 오르다 채석장같은 성벽에 다다랐을 때 산길샘 길 방향에 따라 채석장 바위를 올라갔더니 그 방향으로 갈 수도 없고 계속 찾다가 이번에도 이산가족이 되어 소리소리 그린을 외쳐도 위켄드님을 찾을 수가 없어 무척이나 당황했다.
빌린 배터리도 이미 소진되어 캄캄한 곳에서 30분 헤매다 겨우 만나 위켄드님 경험에 따라 흐미한 등 하나에 의지해서 보납산 가는 마지막 여정3.3km를 시작한다. 시간은 이미 20시를 넘겼다. 위켄드님이 나만 믿으라 해서 나는 등 없이 그 뒤를 따라 위험한 돌산을 넘고 넘어 내려갔다. 보납산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겨운지 한 걸음 걷는 게 고역이다. 오늘따라 보납산 정상에도 불이 켜 있지 않았다. 겨우 정상에 도착해 휴대전화로 사진만 두 장찍고 휴대전화를 후라시 용도로 변경하여 가장 빠른 길로 하산했다. 택시를 부르려고 길가에 나갔다가 우연히 차안에 있던 동네청년을 만나 그들의 호의로 닭갈비집까지 타고가는 행운을 얻었으나 아뿔싸 또 다른 현지인으로부터 불벼락을 맞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전철 시간 알아보고 막차까지는 여유가 있어 옷을 찾고 막국수라도 한 그릇 먹자고 했는데 영업이 끝나 문을 닫혀있고, 밖에서 보니 사장님이 tv를 시청하고 계셔서, 창가를 두드려 뜻을 전했더니 막 화를 내며 문 열고 나와 우리 짐을 막 던지면서 문전박대하기를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이렇게 영업방해하는 산악회가 무슨 산악회냐?”“전화한 사람이 어째서 사죄 전화 한 통 없느냐” 등등 사장님 부인까지 합세해서 매도하는데 우린 사정을 얘기할 수도 없어 무조건 고두사죄하고 전철시간 핑계 대고 나욌다.
비 내리는 거리 맞은 편 편의점에 가서 찬 맥주를 사서 한 모금 마시는데 입맛이 쓰다. 맥주조차 입에 안 맞는다. 전철시간이 10시 19분이라 맥주 한 모금하고 부리나케 뛰어가 전철을 타고 가다 행복이총무님께 기록을 보내고, 좀 졸다보니 청량리에 도착하여 인사할 겨를도 없이 1호선, 3호선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서울 전철역 밖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이 비도 눈물과 같을까? (“Rain and Tears are the same.”) 그런데 맛이 좀 다르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보니 몸 군데군데에 두드러기가 잔뜩 돋아나있다.어릴 때 이후 두드러기는 처음인 것 같다. 뭘 많이 먹었는데 원인을 모르겠다. 몸상태도 안 좋고, 50시간 가까이 땀에 전 화학물질로 된 등산복과 등산화, 합성가죽장갑과 스틱자루를 쥐고 있었던 데다, 극심한 운동에 서울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엄습, 이산가족의 고통, 밀림수색의 스트레스 등등으로 내 육체에 많은 짐을 지웠구나.그러고도 긴장하여 잘 몰랐다는 게 신기하다. 자다가도 가려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지금은 병원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회복 중이다.
3.
친구여!
내 장황하고 너절한 그날의 기록을 읽어 보았는가? 읽으면서도 그날 내가 겪은 고통이 느껴지던가? 내가 겪은 고통을 보고 자네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그렇게 말하진 않겠지? 왜 의미 없는 일을 고통스럽게 사서 하느냐고, 미친 짓 그만하라고, 그러다 건강을 해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왜 노동하듯 무식하게 산행하느냐고? 중독이네? 이런 질문은 내게도 늘 따라다니는 고민이지. 내가 왜 이 짓을 계속하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되곤 했지. 또 여기에 대한 답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다만 산행 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 옛날부터 히말라야는 신들만이 사는 이상적인 곳이라고 여겨지다 누군가의 무모한 도전 끝에 신들의 거처 정상이 서는 일이 생기자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물밀 듯 가는 현실의 일이 되지 않았나? 무모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의 심정을 직접 겪어본 적 있는가?
현실적이고 영리한 사람들은 이 계절에 절대로 가평에 가서 그런 미친 종주를 하지 않네.그러나 재미보다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겐 이런 무모한 도전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들더군.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에겐 예방적 의지와 향상적 의지가 있다고 하는데, 향상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의미있는 영역이 개척되는 것이지. 가까운 것,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멀리 있는 것,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좌절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 나처럼 현실에서 이룬 것 하나 없는 사람도 남들에게 무가치해 보이지만 나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뭔가에 도전해서 거기서 힘을 얻으면서 자기만의 가치를 실현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 면에서 우리 “내 나이가 어때서”대장님은 향상적 의지가 강하신 분인 것 같아.늘 모험적인 새 코스를 개발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길로 인도하곤 하지. 적당히 살방살방 산행하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계속 그렇게 반복되면 즐겁지만 공허함도 아울러 느껴지지. 단맛만 맛보고 살면, 단맛도 짜증을 유발하지 않는가? 그래서 살방산행 결심하다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힘든 종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求)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부대낄 때“(유치환, ‘생명의 서’)
가평에 와서 무모한 도전을 해 보게나.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글 하나고 이글을 가름하겠네. 친구여 이번 가을에도 의미 있는 종주의 추억을 많이 만들게나.
“돌아갈 수 없을 땐 돌아보지마. 그게 미친 짓을 완수하는 미친 자의 자세야.” (정유정,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2017,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