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원 신작소시집 * 「개떡·1」외 5편
개떡·1 | 박영원
솎음배추나 열무다발…
주섬주섬 있는 대로 짊어지고,
볏섬 같은 대광주리에
목뼈가 휘청대는 어머니 뒤를 따라
5일장을 누비던 보릿고개 시절엔
허기진 배 달래주던 꿀떡이었지.
용암처럼 이글이글 쏟아지는 땡볕,
가마솥처럼 푹푹 찌는 무더운 날
대광주리에 짓눌린 등줄기에선
해어져 젖가슴 드러난 적삼 위로
소금꽃이 만발했었지.
이제 고희고개에 걸터앉아
허우적대던 보릿고개를 돌아보며
가끔 꽁보리도, 밀기울도 아닌,
쌀로 빚은 별미 개떡을 먹을 때마다
목구멍엔 찝찔한 향수가 감돌아,
윤기 잘잘 흐르는 피자보다
대광주리에 짓눌려 휘어버린
소금꽃 등허리로 빚은
개떡이 그립다.
일곱 송이 연꽃을 품은 늪
어머니! 당신은 평생
일곱 송이 연꽃을 품은 늪이었습니다.
그 일곱 송이 연꽃 피우며
언제나 희로애락이 일렁이던 늪,
그 늪에 홀연히 몰아친 광풍으로
두 송이 연꽃이 하나씩 꺾이어
당신의 품을 떠날 때엔
그 늪은 펑펑 침묵만 흘렀지요.
몇 날 며칠 밤을 하얗게
어머니! 그럼에도 당신은
칠흑의 뒤뜰에 정화수 받쳐놓고
나머지 다섯 송이를 피우기 위해
밤이면 밤마다 소리 없는
가슴앓이 화산을 다독이셨죠.
어머니! 지금은
당신의 그 늪을 볼 수 없지만,
철부지 때 전혀 깨닫지 못했던
그 깊이와 그 의미를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아들 딸 손주를 키우면서…
어머니! 당신은
평생 자비의 늪이었습니다
잠시도 마를 날이 없었던
가슴앓이 시커먼 늪이었습니다
다섯 송이 연꽃 피우신.
우주
어머니!
당신은 바다이셨습니다.
아무리 거센 풍랑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당신은 오히려
요람 같은 가슴을 열어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주셨던
어머니!
당신은 하늘이셨습니다.
아무리 험한 먹구름과
뇌성벽력이 몰아쳐도
오히려 당신은
호수 같은 가슴을 열어
해맑은 미소가 되어 주셨던
바다를 봐도
하늘을 봐도
떠오르는 어머니,
달과 별을 봐도 생각나는
당신은 진정 위대한
우주이셨습니다.
어느 집들이
어느 날, 사전 예고도 없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간 글쟁이가 있었네.
너무도 뜻밖의 소식에 놀란 지인知人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의 앞에 모여앉아
송별의 아픔을 홀짝홀짝 달랬었네.
그러기로,
어언 반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그가 이사한 집에
오석烏石문패 하나 걸어놓았다기에
죽마고우 지인 몇몇이 찾아갔었네.
그런데, 그토록 다정다감하던
그 친구 버선발로 반겨 맞기는커녕,
도리 중방도 없고, 너와 한 잎,
이엉 한 조각도 걸치지 않고
세속의 때인 양 검정 문패 한 장만
잡초 속에 삐딱하게 던져놓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있었네.
떠날 때도 매정하더니
집들이 간 우정조차 저버리고
문전박대하고 있었네.
하도 속이 상한 우리들은
대홍수가 휩쓸고 간 폐총廢塚같은
그의 유택幽宅정수리쯤에
생전 즐기던 두꺼비 눈물 서너 잔 권하곤
누에 실 같던 그의
입담 한 번 듣지도 못하고
군침 도는 그의 먹새, 대작도 못하고.
잡초만 침묵하는 폐가廢家의 문패
‘얼굴을 만들야지’*를 뒤로 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왔네.
* ‘얼굴을 만들어야지’는 고 황도제 시인의 ‘얼굴을 만들어야지’라는 시 제목인데, 그
중 ‘어’자가 시비에 빠져있어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좀생이
새우는 작다 해도
수염 값 하지,
바다 주름 잡고.
멸치도 뒤질세라
뼈대 지키지,
골백번 죽어도.
여의도 좀생이는
하나도 없네,
수염도, 뼈대도.
시궁창 이전투구
흐느적대니
회膾감도 못되고.
가문 논 휘저으며
벼 즙만 빠는
거머리 흡혈귀.
네 마음 알지니
-달래에게
실오리 하나 없는
화촉동방에
물오른 달래야.
수줍음 상기되니
더욱 곱구나,
연분홍 네 유혹.
소월素月과
벽계수碧溪水는
몰랐던 게야
초경初經의 그 비밀.
벽계순 공산명월空山明月
뿌리치더니
파도 되어 울고.
소월은 산화공덕散花功德
한恨을 뿌리고
요절夭折한 것 보면.
달래야 참달래야,
달래나보렴,
내 마음 주리니.
박영원 시인
* 1941년 평택 출생.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1966년 전우신문(현 국방일보) 주관
全軍문예작품 현상공모 시 당선으로 작품 활동.
* 시집으로『사모곡』『세상사는 법』『그 날의 인연은』
『민주별곡』『엇박자의 조화』『몽상 피서법』등이 있음.
* 현 한국문협, 한국현대협, 우리시회, 민조시 회원.
* parkyw1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