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7대 대선 기간 중 위기에 몰린 박정희 진영은 악랄한 전라도 분리 공작을 시작한다. '신라출신의 경상도 대통령', '문딩이가 문딩이를 안찍으면 누가 찍나'부터 시작해서, 경상도에 '호남인이여 궐기하라'라는 유언비어를 돌려 호남인 이외의 사람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의 단결을 유도했다. 전라도는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꽁꽁 뭉쳤으니 타지역 사람들은 전라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식으로 전라도를 버린 것이다.
다음달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포스터가 화제다. 데일리서프라이즈의 기사에 의하면 그 포스터에는 "전라도 새끼가 깡패밖에 할 게 더 있냐?"라는 카피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어 네티즌 비난의 소리가 거세다고 한다. 난 그 영화 홍보기획사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단지 현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그저 그 카피가 내 해묵은 상처를 건드렸을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포스터를 보면서 고개를 떨구겠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을 뿐이다.
전라도를 알게 되는 순간 우린 진실 앞에 서게 된다. 근대화, 산업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이면에 가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자기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통치술의 일환으로 전라도를 버리고 내부식민지로 이용해먹었다. 마치 미국의 영광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 흑인이라는 내부식민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택시기사는 말했다. “그러니까 이 게(지역감정) 사람 죽이는 거라니까. 내가 군생활할 때까지만 해도, 호남사람, 영남사람 이런 거 없었거든? 그때 내 쫄따구 중에 대구 놈 있어도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아 근데 이게 79년에 서울 올라오니까 전라도 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는 거야. 미쳐버린다니까.”
이 게 우리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공작의 결과다. 그리고 80년에 전두환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광주를 고립시키고 시민들을 학살한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자신들의 처절한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언론에 분하고 절통해서 언론사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그러나 전라도 고립은 더욱 고착화 됐다.
서울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들을 수 없다. 전라도 사람들은 무슨 어학의 천재라도 되는지 경상도 싸나이들이 절대 못 배우는 표준말을 잘도 배운다.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려면 그저 주먹판, 빈민촌이나 가야할 것이다. 이미 포기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시민이 되려는 재일한국인이 일본어를 ‘일본인처럼’ 해야 하는 것같이 정상적인 서울시민이 되려는 전라도 사람들도 전라도말을 잊어야 했다. 전라도 딱지는 천형이니까.
아이들에게 “너 학교가면 부모 고향이 서울이라고 그래”라고 가르쳤고, 그 아이들은 자라서 본적을 옮겼다. 그 부모와 아이들은 남한테 자신의 고향에 대해 함구한다. 어느 빈소에서는 장의사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져 친척들이 소동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도 누가 쫌스런 짓을 하면서 역겨운 행동을 하는데 마침 그가 전라도 출신일 경우 혼잣말을 하신다. “하여튼 전라도는...”
말은 때론 비수가 된다. 나에겐 그 비수가 그냥 눈에 보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박혔으리라. “당신은 전라도 출신이니까”, “저 사람은 전라도 사람이니까”. 어쩌란 말인가. 전라도에서 태어난 게 죄인가. 부모가 전라도 출신인 게 죄인가.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얼마 전 핸드폰 입시부정 사건이 터졌을 때도 모 정당 인사가 ‘광주학생’ 어쩌고 하는 망언을 한 바 있다. 그 만큼 사람을 지역으로 가르고 특히 전라도라는 지역을 특이지역으로 구분하는 게 무의식에 박힌 것이다. 박정희는 성공했다, 지나치리만큼. 누군가 인터넷에서 지역차별에 울분을 토하면서 ”좋은 인물이라면 그 출신이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사회교과서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나에겐 그 문장이 절규로 들렸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견도 마음대로 얘기 못한다. 그저 지나가듯이 슬쩍 던지고는 상대방 눈치를 살필 뿐이다. 고향을 안 밝히고 정치얘기를 하던지, 고향을 밝히고 정치얘기를 안 하던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타지역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전라도에 이런 딱지를 붙여서 국민일반으로부터 분리한 다음, 일제가 우리 조선에게 했듯이 전라도에 산업발전을 막으면서 전라도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IMF 때 호남은 큰 피해가 없었다. 망할 기업이 별로 없으니까. 경상도엔 삼성자동차 같은 말도 안 되는 공장까지(그 공장부지는 자동차 공장을 지을 조건이 안 된다) 억지로 억지로 세워놨지만 호남에서는 아직까지 산업화 이전 시대극의 야외 촬영을 하고 있다. 세트가 따로 필요 없다나. 국가는 전라도의 산업경제를 억눌러 그 곳의 청년들을 도시로 유인했다. 그 청년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국부를 창출해냈으며 곳곳에 빈민촌을 형성했다. 호남선을 타고 올라와 서쪽으로 가면 구로공단, 동쪽으로 가면 588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국회의원이 막상 지역구에 들어가서 놀랐다는 말을 했다. 34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위아래가 확연히 갈린다는 거다. 아래는 전라도, 위는 경상도. 경부고속도로와 호남의 고속도로를 달려 본 후 분노하지 않는 자는 청년이 아니다. OECD 회원국 대한민국은 경부고속도로에만 있다. 호남길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남루하다. 타지인에겐 의분할 일일 뿐이지만 당사자들에겐 가슴의 한이다.
어느 사회고 주류편입이 원천봉쇄된 집단은 어둠의 길을 걷는다. 마치 재일한국인에 야쿠자계와 빠찡고계에 진출했듯이 70년대말 이후 깡패계는 전라도 사람들이 장악했다. "전라도 새끼가 깡패밖에 할 게 더 있냐?"라는 카피는 거짓도 아니고 폄하도 아니고 진실이다. 어떤 진실인가? 우리가 저지른 죄의 진실이다. 박정희, 전두환과 더불어 우리는 모두 가해자다.
지역차별은 우리 국민들의 각각의 주체성이 모인 보편주체인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반인륜 범죄다. 우리 공동체 전체가 박정희의 범죄에 가담한 거다. 독일인민이 히틀러의 범죄에 연대책임을 지고 반성하듯이 우리도 공동체의 이름으로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반성과 시정은커녕 아직도 가해자, 학살자들의 정당에 표를 주는 시민이 있다. 아직도 그 정당을 고쳐 쓰자고 떠벌리고 다니는 지식인들이 있다. 내 눈엔 그들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보이는데, 공부 많이 했다는 교수 나리들 눈에 그 피가 안 보인단 말인가.
기본으로 돌아가자. 너무나 분명한 사실. ‘지역차별은 범죄다’, ‘지역감정은 최우선적으로 해소돼야 할 우리 공동체의 제일 과제다’, 이 것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지역구도는 망국의 덫이다. 애들 왕따 욕할 일이 아니다. 어른들부터 반인륜적 내부식민지를 혁파해야 한다. 저 비수가 꽂힌 선량한 가슴들을 두고 무슨 선진국 운운이란 말인가. 듣자하니 경제성 때문에 호남 고속철도가 지연되고 있다던데, 호남개발은 경제논리가 아닌 ‘정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린 인간이니까. 짐승이 아니니까.
하재근 / 작가, 칼럼리스트
첫댓글 잘읽었습니다..제 생각은 남탓보다는 호남인 스스로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이 영남인 들의 문제이고 열린당 한나라당의 현실이 잘 말해주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조그만 땅가지고 못난놈들...이죠.
호남인 스스로 뭐가 문제입니까? 전국민이 문제지. 호남인 스스로의 문제라는 게 대충은 짐작이 가는데 호남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영남 스스로도 가지고 있고 또한 틀린것을 알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내밥그릇 뺏길까봐.. 좀 심하다면 죄송하지만서두
지역감정을 일으키고자 퍼 온 글이 절대 아닙니다..현실적으로 전라도가 경상도 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점이 많이 있습니다..정치인들이 만약 정치적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이용했든 안했든 관계없이 전라도, 경상도 지역을 떠나서 같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선입견 없이 서로 협동하고 존중하여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이루어 나가자는 뜻이었습니다.....
호남인 스스로의 문제라고 하는건...몇명이서 한넘 죽도록 패고나서 '니가 힘이 없으니 맞는것이다' 고 말하는거와 비슷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