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
오늘 SH 병원에 가서 두 달마다 하는 당뇨 정기검진을 받고 약도 지어왔습니다.
작년에 신축 개업된 이 병원은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인데, 재작년에는 반대 방향으로 15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피검사’를 하므로 공복이어야 하고, 1년 넘게 항암치료받느라 약해진 정맥의 핏줄을 찾기 힘들어, 주먹 쥔 손등에 바늘을 꽂아 피를 뽑는 것이 무척 불편합니다.
채혈 후 한 시간쯤 기다려서 면담한 의사 선생님이 혈당지수, 혈압, 간 지수 다 좋아졌다며, 약을 줄여서 처방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내과 과장이 처음 제 대장암을 진단했고, 수술은 같은 병원 외과 과장이 집도했습니다. 퇴원, 항암치료 뒤에 당뇨가 진단되어 이 내과 과장님께 진찰받고 있습니다.
약국에서 두 달 치를 조제했는데, 지난번 61,000원이던 것이, 이번엔 50,000원으로 11,000원이나 줄었습니다. 수박 한 덩이 사 먹어도 되겠다 싶어 즐거웠습니다.
이 나이에 건강이 좋아질 일은 없을 것이고, 더 나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렇게 기쁜 일도 생기네요.
하여, 수술 무렵에 썼던 글을 올려봅니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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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삼일 이재영
보호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 또는 법률적으로 ‘미성년자에 대하여 친권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두 아들의 아비인 나는 자식들의 당연한 보호자이다.
그동안 애들을 먹여 키우고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 보호자로서 결격사유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결혼 비용도 어느 정도 지원했으니 상당히 양호한 보호자 임이 분명할 것이다.
아내가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받을 때는 내가 아내의 보호자 역할까지 했었다.
나는 5년 전에 40여 년의 힘들었던 사회생활을 접고 은퇴했다.
지금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이나 쓰면서 소일하고 있는데, 하루에 열 시간가량을 훌쩍 보내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운동은 거의 못 하고, 아내가 함께 마트에라도 가자면 마지못해 짐꾼으로 동행할 정도다.
나는 위 십이지장 궤양으로 15년 가까이 단골 병원을 출입했다.
그런데 은퇴 후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좋아하던 술을 3년 전부터 서서히 끊었다. 원래 도수 높은 소주나 양주는 못 마시고, 순한 맥주는 꽤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그런데 술을 끊고 난 지금은 제사상의 퇴주잔만 마셔도 토한다. 상할 대로 상한 위장이 술을 거부하는 것 같다.
거기다 군에서 배운 담배를 40여 년간 계속 피워왔다.
은퇴할 무렵에는 하루에 두 갑, 40개비 이상을 피워대는 골초가 되었다.
온 방 안에 담배 연기가 배어 초등생인 손녀가 와도 할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1년 전에 자랑처럼 여기던 애연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처음엔 장남이 가져온 전자담배를 피우다가, 한 개비를 반쯤만 피우고 버리는 방식으로 두어 달 만에 뚝 끊었다.
이제는 술, 담배 다 끊은 양호한 할아버지, 아버지가 되어 가족 모임에서 자식들로부터 장하다는 칭찬까지 들으며 흐뭇해했다.
그러던 나는 열흘쯤 이어진 심한 설사 끝에 하혈이 있어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치질인 줄 알고 항문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가 치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틀 뒤에 대장 내시경 검사하면서 수술도 하자고 했다.
피 검사용 채혈을 하고, 배 속을 비우기 위해 먹는 설사약을 받아 왔다.
그런데 다음날 병원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피검사 결과 심한 빈혈이 있다며, 얼른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안고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택시 잡아타고 가기엔 어중간한 거리였고, 경황이 없어서 콜택시 부를 생각도 못 했다.
밤새 빈혈이 더 심해져 어지러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쉬엄쉬엄 가는 바람에, 거의 45분 만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 원무과 안내판을 살펴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내과에 올라갔다. 내과 원무과에서 내원 이유를 묻더니, 7개 내과 중에 제1 내과에 가보라고 했다.
제1 내과 앞 안내양의 지시에 따라 채혈실에서 채혈을 마치고 순서를 기다렸는데, 널찍한 대기실 의자에 수십 명이 앉아있다.
병원에 와 보면 웬 아픈 사람이 이리도 많은지 싶다.
차례가 되어 내과 의사의 진찰을 받았더니, 빈혈 지수가 6.6이라며 당장 입원해서 수혈하고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바로 입원했고, 이틀 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작은 용종(茸腫)을 세 개 제거했다.
그러나 4cm나 되는 큰 종양이 있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 전이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닷새쯤 지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고, 암세포가 50여 개의 림프샘 중에 30여 개에 퍼졌다고 했다.
대장암 3기로 추정되는데, 수술을 서둘러야 한단다.
그 병원은 종합병원이기는 해도 외과는 두 개밖에 없는 작은 병원이다.
그런 수술이 가능하냐고 내과 과장에게 물었더니, 마침 외부에서 대장 항문 분야에 경험이 많은 외과 의사가 초빙되어 제3 외과가 신설되었다고 소개했다.
밖에 나와 유심히 보니 병원 몇 군데에 제3 외과 개설 안내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있다.
적힌 내용인즉, 제3 외과 과장은 인천의 모 대학을 나와 대학병원 전임의, 강남 S 병원 전임의, H 병원 외과 과장을 역임한 대장 항문 분야의 전문의라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집이 가까우니까 이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의논이 되었고, 며칠 후에 담당 의사도 내과에서 외과로 이관되었다.
그런데 제3 외과 과장이 내 자식들을 오게 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장남은 44세로 초등 6학년 딸이 있고, 차남은 41세로 결혼 4년 차 맞벌이 부부다.
나는 아들들에게 문자로 현황을 자세히 알려주고, 이 병원에서 수술받겠다고 했다.
새로 온 의사의 경력도 괜찮아 보이며, 특히 새로 부임해온 병원에서의 첫 수술이라, 분명히 최선을 다할 거라는 생각을 전했다.
그러나 장남은 제 엄마에게 따로 전화해서, 큰 대학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며,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의 안산시에 K 대학병원도 있는데 왜 그러냐며 야단 난리를 쳤다.
아비에게는 제대로 말도 못 하면서 만만한 어미한테는 아주 닭 잡듯이 한다.
결국, 두 녀석이 주말에 함께 와서 수술 집도 의사인 외과 과장의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녀석들이 처음엔 몇 가지 미심쩍은 질문을 하더니,
내가 “의사 선생님, 수술에 자신은 있으신 거죠?” 하며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떨떠름하던 두 녀석도 마지못해 수술에 동의하고 말았다.
곧바로 수술 날짜를 확정하고 수술 동의서 사인 등 필요한 절차를 밟는데, 두 아들 녀석이 우리 대신 나서서 하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하릴없이 외과 앞 대기실 의자에 쭈그려 앉아 관망만 했다.
그때, 유심히 지켜보던 아내가 약간 떨리는 나직한 목소리로,
“아~들이 이제 우리 보호자가 되었네요.”라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나도 같은 생각이 들고 두 아들이 대견하게 여겨져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내와 내가 이제는 아이들 보호자에서 되레 부담을 주는 피보호자가 되었음을 실감하며, 초라한 노인네로 변해서 짐 덩어리가 된 내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처연한 심정이 되었다.
[ 2020년 3월에 ]
SH 병원 구 건물 - 대장암 수술받았던 병원임
SH 병원 현 건물 - 당뇨 정기검진 다님
첫댓글 2020년에 수술하셨나보군요.
정말 고생하셨고요,
든든한 보호자를 가지셨음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응원 드립니다.
네,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자식 농사 잘 지은 보람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 건강이 제일이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요. ㅎ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나이 들면 만성병 하나쯤은 갖고 살아가야 의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도 심한 혈관질환(심장)을 앓고 있습니다. 장기간 약을 복용하다
보니 이제는 부작용도 하나 둘 나타납니다. 저 또한 지난날 골초였습디다.
지금도 병원 문진표에 훈장처럼 따라 다녀요.
네, 뱃사공님. 님께서도 병원 단골이시군요.
저희 나이에 고만고만한 지병은 다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 못 해본 아쉬운 짓 없으면 천만다행이고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