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시리즈 VIII. 경외의 대적들 (Adversaries of Awe)
1) 경외의 가장 큰 대적: 자기 신뢰
성경 : 렘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나’라는 이름의 신을 숭배하는 시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날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종교가 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너 자신을 믿어라",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다"라는 구호들이 세상의 복음처럼 들립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하나님의 능력보다 나의 경험, 나의 지식, 나의 열심을 더 앞세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며 자신들의 지혜와 군사력을 의지했던 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내 손에 쥔 모든 카드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다는 오히려 ‘자기 신뢰’라는 카드를 더 꽉 쥐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자아 숭배의 정체를 폭로하고, 참된 경외를 가로막는 자기 신뢰의 사슬을 끊어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육신의 팔을 의지하는 자의 비극
1) ‘의지’의 대상과 ‘떠남’의 결과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난 자의 상태를 아주 날카로운 단어들로 묘사합니다.
믿으며 (בָּטַח, 바타흐): 이 단어는 ‘자신의 무게를 전적으로 옮겨 싣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유한한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외가 하나님께 무게를 두는 것이라면, 자기 신뢰는 나 자신에게 무게를 두는 ‘경외의 전도’ 현상입니다.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זְרוֹעוֹ בָּשָׂר, 제로오 바사르): 직역하면 ‘육신을 그의 팔(능력)로 삼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바사르’(בָּשָׂר)는 인간의 유한함, 썩어 없어질 연약함을 강조할 때 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결국 썩어질 육신의 팔에 자기 인생의 운명을 거는 어리석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떠난 (יָסוּר, 야수르): 이 단어는 단순히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역하여 빗나가다’는 뜻입니다. 자기 신뢰는 중립적인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영적 반역입니다.
2)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는 ‘경험’과 ‘능력’이라는 세련된 우상입니다.
성도들이 여전히 자기 신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함정: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역시 내가 열심히 했어", "내 판단이 옳았어"라며 자신의 능력을 숭배합니다. 이것이 바로 ‘실천적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 나의 유능함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자기 신뢰: 가장 무서운 것은 신앙의 행위조차 자기 신뢰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기도하니까", "나는 이만큼 헌신하니까 하나님이 복 주실 거야"라는 생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바리새인적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찾으십니다.
3) 복음적 해석: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
자기 신뢰라는 강력한 우상을 깨뜨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의 뜻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주님은 육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의지가 되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자기 신뢰의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삶의 적용: 내 손의 고삐를 넘겨드리는 회개
1) 하나님을 ‘보조자’로 전락시킨 죄
하나님을 주인이 아닌 내 계획의 조력자로 이용하려 했던 죄를 회개합시다.
경험 숭배 회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의 과거 경험과 세상의 통계를 더 신뢰하며 결정했던 ‘교만함’을 회개합시다.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평소에는 내 머리를 더 믿었던 ‘무례한 신앙’을 고백합시다.
자기 의(Self-righteousness) 회개: 나의 도덕적 수준이나 종교적 열심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당당하려 했던 ‘영적 오만’을 회개합시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임을 잊고 남을 판단하며 스스로를 높였던 죄를 씻어냅시다.
2) 신앙의 본질: 경외는 ‘자기 파산 선고’에서 시작된다
신앙의 본질은 내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 무능함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함에 나를 던지는 것입니다.
경외는 ‘나’라는 신을 폐위시키고 하나님의 보좌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뢰는 우리를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메마르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자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어떤 가뭄 속에서도 청청할 것입니다(렘 17:7-8).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누리는 참된 부요함입니다.
결론: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의 건강입니까, 쌓아둔 재물입니까, 아니면 그동안 쌓아온 경력입니까?
그것들은 모두 ‘바사르(육신)’, 즉 썩어 없어질 팔에 불과합니다.
이제 자기 신뢰라는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새 옷을 입으십시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I am nothing). 주님만이 나의 전부이십니다(You are my everything)." 이 고백이 터져 나올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을 덮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이 앞서려 할 때마다 멈춰 서서 주님의 주권을 선포하십시오. 나를 믿는 저주에서 벗어나 주님만을 경외하는 축복의 자리에 머무는, 진정한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