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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이야기 스크랩 쿠바 혁명 전의 음악
chemi 추천 0 조회 82 19.02.21 19: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쿠바 음악은 라틴아메리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쿠바 음악의 기본 리듬인 룸바(rumba)와 손(son)은 오늘날 범라틴아메리카 음악이 된 살사를 낳았으며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까지 이어졌다. 또한 쿠바 음악에서 단손(danzon) 그룹들은 20세기 상반기에 재즈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1950년대에는 맘보와 차차차가 유럽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심지어 현대 아프리카 음악(특히 콩고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Que rico bailo yo!"("How well I dance!")는 동부 리듬 밴드(Orquesta Ritmo Oriental)가 부른 노래로 쿠바 음악의 정신을 잘 형상화한 제목이다.

페르난도 오르띠스에 따르면 쿠바 음악은 사탕수수와 담배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었다. 사탕수수 대농장에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와 아프리카의 종교적·세속적 음악을 가져왔고, 담배 농장에는 구아히로(guajiro)라고 부르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출신 사람들이 데시마(10줄의 시가) 전통을 도입했다. 쿠바의 음악 전통은 이 두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했다.





흑인 노예들은 1522년부터 노예제도가 폐지된 1880년대까지 쿠바에 들어왔다. 아직도 많은 쿠바인들의 할아버지 세대는 노예생활 경험이 있다. 따라서 쿠바 음악에 아프리카의 의식과 리듬이 담겨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이것들이 스페인인 및 유럽에서 온 정착자들의 노래와 춤과 융합된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스페인인들이 왔을 때 쿠바에 거주하던 약 5만에서 10만 명의 원주민들이 남긴 유산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단지 마라카(maracas)라고 부르는 악기만이 전해질뿐이다.

1840년대 흑인 노예는 이미 쿠바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대부분 서부 아프리카(나이지리아, 가나, 토고, 카메룬, 베닌, 콩고)에서 왔다. 이들은 루쿠미(lucumi), 아바쿠아(Abaku'a), 콩고(Congo), 아라라(Arara)라는 전통 신앙을 가지고 왔다. 이 전통 신앙들은 쿠바에서 각각의 음악, 리듬, 의식을 발전시켰다. 아프리카에서 전래되어 쿠바에서 토착화된 대표적인 신앙이 산테리아(Santeria)이다. 산테리아 신앙은 아프리카의 신들을 -오리샤(orishas)라고 부른다- 숭배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 신앙만 산테리아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가톨릭 역시 산테리아 신앙의 형성과 발전에 일조하였다.

산테리아는 보통 여러 오리샤를 모신다. 산테리아 의식을 거행할 때 세 개의 꽁가(conga, 북의 일종)와 하나의 바따 드럼(bata drum, 북의 일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산테리아 의식의 참여자들은 오리샤와 일체감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은 일상에서 벗어나 영적인 경험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마치 굿판에서 신명나게 괭가리를 치고 하듯이 산테리아 의식에서도 신명나게 북을 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또께(toque)라고 부른다. 또한 일종의 사설(chants) 같은 것도 가미되어 영적인 경험을 고조시킨다.

산테리아 신앙의 이런 리듬이 쿠바 대중 음악의 heartbeat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프로쿠바 룸바(Afro-Cuban Rumba)>
룸바는 아프로쿠바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아바나와 마딴자스(Matanzas)의 항구에서 노동자들이 추기 시작한 춤이다. 룸바에는 와왕꼬(guaguanco'), 얌부(yambu'), 꼴룸비아(columbia)라고 부르는 세 개의 장르가 있다. 앞의 두 개는 일종의 커플 댄스이며 얌부는 보통 나이 든 사람들이 추던 춤이다. 꼴룸비아는 빠르고 격정적인 남성 솔로 댄스이다.

룸바 음악은 타악 연주 부분과 목소리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형적인 타악기 연주는 뚬바도르(tumbador, 꽁가 드럼에서 낮은 소리를 내는 북)가 하나 혹은 둘, 낀또(quinto, 꽁가 드럼에서 높은 소리를 내는 북으로 보통 리드 드럼), 빨리또(sticks beaten against the wooden body of one of the drums) 한 쌍으로 구성된다. 노래 부분은 리더(solo voice and quinto)와 화답자(코러스, 뚬바로드, 빨리또)로 구성된다.

룸바와 쿠바 손(son) 모두 끌라베(clave)라는 나무 막대기 한 짝을 사용하여 전체 악단을 조율한다. 'key'라는 뜻의 끌라베는 이 나무 막대기를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고 이 악기를 사용해 만들어낸 가락을 지칭하기도 한다. 와와(guagua), 마루가(maruga), 까혼(cajo'n) 등의 악기들이 끌라베 가락에 곁들여지기도 한다. 종교적 연주에서는 바따 드럼을 가미하기도 한다.

룸바의 기본 패턴은 아프로쿠바 음악의 전형을 보여준다. 서정적인 목소리 솔로가 길게 펼쳐지고, 화답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즉흥적인 창조가 가능하다. 룸바는 리드 싱어가 노래를 시작하는 도입부와 밴드 연주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춤이 시작되는 몬뚜노(montuno)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손과 융합된 손 몬뚜노(son montuno)야말로 살사의 기본 가락이 되었다.

룸바 곡은 보통 스페인어로 부르며 가사에는 다양한 주제가 담겨져 있다. 꼴룸비아의 경우 산테리아를 비롯한 기타 아프로쿠바 신앙에서 비롯된 사설이 중간에 삽입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스타일의 룸바는 쿠바 전역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수도 아바나에는 국립민속악단(Conjunto Folklo'rico Nacional)에 의해 연주되는 '토요일의 룸바'(Sa'bados de Rumba)가 유명하다. 또 아바나 옆에 있는 마딴사스 주의 트로바의 집(Casa de la Trova)도 방문할 만하다. 트로바의 집이란 일종의 지역문화센터인데 마딴사스의 트로바의 집에는 '마딴사스의 청년들'(Los Mu equitos de Matanzas)이라는 악단이 3대에 걸쳐 약 50년간 밴드를 유지하고 있다.



<단손, 차랑가, 차차차(Danzo'n, Charanga and the Chachacha')>
룸바와 손이 아프리카 전통의 핵심이라면 단손은 유럽인 정착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 바이올린, 금관악기, 티파니 한 쌍으로 구성된 표준악단(orguesta ti'pica)이 연주하는 단손은 보통 유럽 이주민들의 저택 내의 홀에서 연주되었다. 그러나 백인들의 집에서 일하던 흑인이나 물라토들이 이를 차용했고, 후에는 도시민들이 차용하면서 아바네라(habanera)로 발전하였다.

미겔 파일데(Miguel Failde)가 1880년대에 아바네라 장르를 확립했다고 한다. 아바네라는 1880년대 아이티, 도미니카에서 노예반란 후에 도망쳐온 프랑스인들의 콩트르당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콩트르당스contredanse: 17세기 영국의 농촌에서 유행한 쾌활한 2박자의 춤으로 컨트리댄스라고 하였다. 1710년경 프랑스에 전해져 콩트르당스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점차 민속적인 색채가 없어지고 사교적인 춤과 음악으로 세련되었다. 그후 독일·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 각국에 전파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4쌍 또는 8쌍의 남녀가 서로 마주 서서 춤추며, 음악은 4분의 2박자 또는 8분의 6박자로 8소절의 선율이 반복된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에도 이런 형식의 작품이 있다). 아바네라는 탱고의 형성에도 기여를 한 장르이다.

단손의 또 다른 선구자들은 안또니오 마리아 로메우(Antonio Mari'a Romeu), 호세 우르페(Jose' Urfe), 엔리께 호린(Enrique Jorri'n) 등이다. 이들은 아바나에서 활동을 했다. 아바나에서 단손이 형성되고 고착화된 시기는 뉴올리안즈에서 재즈가 형성되던 시기와 비슷하며 그 과정도 유사하다고 한다. 1930년대 단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악단은 Arcano y sus Maravillos이다. 이들은 꽁가 드럼들을 도입하고 마지막 부분에는 손에서처럼 몬뚜노(montuno)도 가미했다. 이로써 단손과 손이 융합되는 길을 열었다.

20세기초에는 또한 차랑가라는 장르가 단손에서 유래되어 형성되었따. 이는 프랑스식 차랑가라고도 부르며 금관악기를 바이올린, 플루트, 베이스, 피아노로 바꾸었다. '프랑스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20세기초에 아바나에서 유곽을 운영하던 프랑스 마담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랑가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아라곤 밴드(Orquesta Arago'n), Orquesta Riverside, Orquesta Ame'rica가 대표적이다.

Orquesta Ame'rica는 바이올리니스트 엔리께 호린이 만든 악단으로 1950년대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차차차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엔리께 호린은 최초의 차차차 곡이라 할 수 있는 La enga adora라는 곡을 작곡했다. 뉴욕에서 차차차를 대중화시킨 쿠바 밴드는 마치또(Machito), 뻬레스 쁘라도(Perez Prado), 띠또 뿌엔떼(Tito Puente), (띠또 로드리게스)Tito Rodri'guez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바나에는 요새에도 아직 옛날 차랑가 밴드가 있는데 아라곤 악단이 대표적이다. 이 악단은 플루트 연주가 리까르도 에구에스(Ricardo Egu"es)가 주도해왔다. 젊은 세대 중에는 깐디도 파브레와 그의 악단(Candido Fabre' y su Banda)과 차랑가 아바네라(Charanga Habanera)를 꼽을 수 있다. 차랑가 아바네라는 띰바(timb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최근의 살사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 띰바는 1990년대 말에 형성되었으며 쿠바 룸바와 아메리카 힙합을 융합한 것이다.

초기 단손과 차랑가도 손과 살사에 연결되면서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살사, 콜롬비아의 꿈비아(cumbia), 도미니카의 메렝게(merengue) 등의 기저에도 깔려 있다.




<손(The sound of son)>
손은 쿠바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백인 음악과 흑인 음악 융합의 상징적 장르이다. 오늘날에는 원초적 형태의 손, 브래스 밴드의 역할이 돋보이는 뉴욕 살사, 쿠바의 띰바(timba)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식의 손 가락을 볼 수 있다. 이런 형식들은 공통적으로 두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opening verse(or a developing set of verses)와 몬뚜노이다. 몬투노 부분에서는 싱어인 소네로(sonero)가 즉흥적인 노래를 하면 코러스가 화답하는 형식이다. 손은 끌라베 리듬을 축으로 하고 있다. 봉고(bongo', 북의 일종)들과 마라카들과 기로(guiro)들이 클라베에 화답하는 리듬을 자아내고, 베이스가 들어오고, 절정의 순간에는 뜨레스(tres: 세 쌍 여섯 줄의 쿠바 기타)가 하모니와 멜로디 파트를 담당한다.

초창기 가장 유명한 손 가수의 한 사람인 미겔 마따모로스(Migeul Matamoros)는 손이 오리엔떼의 산악지방에서 생긴 것 같다고 말들 하지만 손과 트레스가 정확히 어디서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19세기말 오리엔떼(동부 지방)는 아이티의 소요로 많은 피난민들이 들이닥쳤다. 이는 기존의 스페인 문화와 아프로쿠바 문화에 프랑스 문화가 섞이는 계기가 되었고 손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1880년대). 손은 1909년 오리엔떼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군인들이 아바나에 돌아오면서 소개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같은 해 오리엔떼 트리오(Tri'o Oriental)는 손을 아바나에 소개하였다. 이들은 뜨레스, 기타, 봉고, string bass, 노래 부르는 사람 2인(이들이 끌라베와 마라까를 연주를 겸했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바나 6중주(Sexteto Habanero)로 악단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 음반사들이 아바나 6중주단과 볼로냐 6중주단(Sexteto Bolon'a) 등의 음반을 취입했지만, 손은 1922년 쿠바에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되고 성공 가도를 걸었다. 미겔 마타모로스는 1920년대 로마의 손(El son de la Loma)으로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말에는 트럼펫이 첨가되어 7중주가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손에 스윙음악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유명한 7중주 악단으로는 국민7중주단(Septeto Nacional)이 있다. 이 악단은 1927년부터 이그나시오 피녜이로(Ignacio Pin'eiro)가 이끌었으며 'Echale' salsita'(Throw Some Sauce in It)라는 히트곡을 냈다('살사'라는 용어가 이 곡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피녜이로는 손과 쿠바 음악의 여러 장르를 결합시켜 구아히로-손(guajiro-son), 볼레로-손(bolero-son), 과라차-손(guaracha-son) 형식을 낳았다.

또다른 고전적인 손인 'El Manicero'(The Peanut Vendor)는 모이세스(Moises Simo'n)이 리따 몬따네르(Rita Montaner)를 위해 작곡했으며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으로 유럽에서 성공한 쿠바 음악이었다. 1930년에는 아스삐아수의 아바나 밴드(Don Aspiazu's Havana Orchestra)가 뉴욕에 손을 보급했다. 이 악단의 싱어는 안또니오 마친(Antonio Machi'n)이었다. 그는 느린 룸바 리듬으로 노래를 부르고 스테이지에서 댄서들과 룸바를 추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음반은 193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었고 안또니오 마친은 미국의 음악 차트에 들어간 최초의 쿠바 가수이기도 하다. 마친은 이후 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면서 손-볼레로(son-bolero) 류의 낭만적인 노래를 불러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했다.

20세기 중반의 손의 유명한 연주자로는 뜨레스 기타 연주가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Arsenio Rodri'guez)와 트럼펫 연주자 펠릭스 차뽀띤(Fe'lix Chappoti'n)을 들 수 있다. 로드리게스는 현대 아프로쿠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콩고계인 그의 음악은 집안 내력에 따라 콩고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왕성한 작곡 활동을 했으며 그의 밴드는 꽁가를 도입함은 물론 트럼펫을 하나 더 두었다. 또한 타악기도 늘리고 피아노도 첨가했다. 그의 밴드는 1940년대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였다. 로드리게스는 손의 구조도 바꾸어서 몬뚜노 부분을 연장시키고 이 부분에서 솔로 부분이 돋보이도록 했다. 로드리게스는 1951년 뉴욕으로 건너가 차뽀띤과 같이 활동했다. 이 시절의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는 호른을 첨가한 것이다. 이는 미국 스윙 밴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루벤 곤살레스가 이 밴드 출신이다.

아마 가장 중요한 밴드리더이자 손 가수의 한 사람은 베니 모레일 것이다. 그의 'Canto a mi Cuba'는 'Barbarian of Rhythm'으로 알려져 있으며 쿠바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베니 모레는 커리어를 시작하면서부터 미겔 마타모로스와 노래를 불렀고 멕시코시티에서는 재즈 경향의 밴드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다 1953년 쿠바로 돌아와 선구자적인 밴드를 결성했다. 그의 쇼맨십, 노래, 춤 등은 그를 최고의 인기가수로 만들었다. 베니 모레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손, 과라차 리듬, 느리고 로맨틱한 볼레로, 맘보 등등). 쿠바혁명 후 베니 모레는 혁명을 지지하며 죽을 때까지 활동했다. 1963년 43세의 나이로 그가 죽었을 때 10만 명의 쿠바인들이 장례식에 운집했다고 한다.

쿠바의 손은 1940-50년대 미국, 남미, 카리브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다. 미국에 룸바로 소개된 음악 중에서도 사실 많은 부분이 손이었다. 그리고 살사의 탄생에 가장 밑거름이 된 장르가 또한 손이다.


- http://users.senet.com.au/~jimmc/main/infolat.htm (라틴뮤직 악기)
- Fernando Ortiz, <>
- Samuel Feijo'o, <>
- http://www.weiv.co.kr/ (음악 웹진, 쿠바로 검색해볼 것)
- http://evocables.com/Biografias/Arsenio.htm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의 간략한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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