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살전 5:16-18)
출처 : KTSM 최승호 묵상
1) 기쁨
“항상 기뻐하라”(16)
최근에 대학 동기가 자살했다. 교수였는데 퇴직 후에 아주 의욕적으로 살려고 했던 친구였다. 작년 말에 함께 남한산성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자살했는지 의아했다. 장례식장에서 그의 아들의 말을 들어보니 최근에 췌장암 판정을 받고 우울증에 빠졌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살하다니. 나름대로는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결단한 듯하지만, 자살은 남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큰 상처를 입히는 죄악이다.
종종 신앙이 깊어 보이는 분들에게도 우울증이 생긴다. 우울증은 단순히 우울한 것을 넘어서는 병이다. 세상의 컬러가 모두 흑백으로 보이는 고질병이다. 치료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극복 못 할 병은 아니다. 우울증은 치료가 어렵지만, 예방은 쉽다. 나는 우울해지려는 형제들에게 바울이 권한 이 말씀을 예방약으로 제시한다. '항상 기뻐하라'
기뻐할 일도 없는데, 뭘 기뻐하란 말인가? 세상적으로 보면 우울할 일이 많다. 경제적인 면, 가족의 병, 자녀 문제, 배우자 문제, 직장 문제, 게다가 답답한 사회 문제들... 그런데 기뻐하라고? 정말 공허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라면 기뻐해야 한다. 기뻐하는 일이 곧 '믿음'이다. 성도에게는 기뻐해야 할 일이 정말 있기 때문이다. 영생 얻은 것 …. 이게 기쁘지 않다면 당신은 믿음을 잃은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음을 기뻐하자. 우리는 정말 택하심을 받은 존귀한 존재다. 나는 요즘 형제들이 창세 전에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 믿어지니까 다르게 보인다.
성령께서 내게 계심을 기뻐하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자. 아무리 사회가 어둡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희망이고 기뻐할 일이다. 물론 어떤 자에게는 이런 말들이 저 멀리서 들리는 운동장의 함성처럼 공감이 안 될 것이다.
기뻐하는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우울의 영을 싸워서 물리치고,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믿음이다. 물론 성령 충만하면 그런 노력 없이도 그냥 기쁨이 충만해진다. 오, 나는 성령 충만의 그 느낌을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냥 기쁨이 충만하고, 뭐든지 받아줄 넓은 마음이 된다. 세상의 거센 파도가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충만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늘 그런 상태에 머무르게 하지도 않으신다. 우리가 메마른 땅에서도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바라신다. 성령 충만의 느낌이 사라진 시기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는 자가 진짜 믿는 자이며, 칭찬할 만한 자다. “나는 기뻐서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기뻐하는 자가 되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2) 기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17)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쉬지 않고 중얼거리며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것은 마치 경찰이 무전기를 늘 켜놓은 상태로 다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성도에게 기도란 호흡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숨을 안 쉬는 것보다 쉬는 게 쉽듯이 기도는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쉽다.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언제라도 수시로 기도할 수 있다면 그는 훨씬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이 시험을 볼 때 온 마음을 집중해서 풀었다. 시험 보는 도중에 주님을 묵상할 순 없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에 닥치자, 주님께 지혜를 구했다. 기도는 이렇게 수시로 이루어진다. 설사 오락을 즐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시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항상 하나님과 연결된 무전을 켜놓고 살자.
3) 감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8)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앞에 말씀하신 모든 명령일까, 아니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일까? 어차피 다 순종해야 할 말씀인데, 그렇게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는 자도 있겠지만, 일단 정확한 해석을 하자면, '이것들'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단수로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즉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다. 종종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행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하나님의 뜻을 언급하면서 권한 말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이고 또 하나는 "범사에 감사하라"이다. '범사'란 말 그대로 모든 것(every thing)이다. NIV는 모든 상황(all circumstances)이라고 번역했다. 좋은 상황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다.
최근에 CBS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목사가 자기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덜컥 여자친구에게 임신시켰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자신은 자녀교육과 부부관계에 대한 가정사역을 하는 사람이라 성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교회를 사임했다.
자신은 이틀에 한 번씩 하루 5시간씩 신장 투석하는 사람이라, 새로운 교회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왜 이렇게 악재가 겹치는가? 그러나 성도들이 용서해서 다시 사역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우울했다. 이런 상황도 감사해야 하는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그런 상황까지 포함한다.
흥미로운 것은 십 대 아들이 낳은 손주가 재롱을 피우자, 이 목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그 웃음이 건강을 가져왔다. 결국 몸이 회복되고 사역이 생기를 얻게 되었다. 십 년도 넘어야 얻을 수 있는 손주의 기쁨을 아들이 당겨서 가져온 셈이다. 사람이 어떤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설사 그것이 그의 잘못과 허물 때문일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을 감사할 수만 있다면 그는 우울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고난 자체를 감사할 순 없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감사할 수 있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어떤가? 일단 감사하자. 처음에 모깃소리 같았던 감사가 우렁찬 소리가 될 때 비로소 하늘이 열리고, 선하신 하나님의 빛이 내게 비침을 보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믿는 자는 결과가 해피엔드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처음부터 감사하는 자일 것이다. 감사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영생과 죄 사함과 택하심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범사에도 감사합니다. 제가 느낌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