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와 꼭 닮았지만 짧고 수직으로 자란 송곳니가 다르대요
페커리
지난 3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아기 동물이 태어났어요.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벌름거리는 콧구멍, 가느다란 발과 발굽이 영락없는 아기 돼지 같았어요. 하지만 이 동물은 돼지가 아닌 페커리(peccary)입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아메리카부터 멕시코를 거쳐 미국 남부까지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어요.
페커리는 소·말·기린·돼지 등과 마찬가지로 발굽이 있는 동물이에요. 그중에서도 페커리는 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에요. 멧돼지는 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에 퍼져 나갔고 나중에 사람들이 가축으로 길들였죠. 반면 페커리는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간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 잡고 살게 됐어요. 그래서 멧돼지와 페커리는 사는 곳은 다르지만 같은 집안의 친척뻘이라고 할 수 있어요.
페커리가 멧돼지와 확실히 다른 점은 송곳니예요. 멧돼지의 송곳니는 큼지막하게 자라고 갈수록 옆으로 휘고 입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페커리의 송곳니는 크기도 작고 수직으로 자라요. 페커리는 생김새와 사는 곳에 따라 세 종류가 있는데, 이번에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것은 목도리(Collared) 페커리입니다. 목 주변에 하얀 테두리가 있어 마치 목도리를 한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페커리는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입니다.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는 종종 무리의 다른 어른들이 약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대요. 사회적인 동물인 만큼 다양한 소리로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해요. 꿀꿀대거나 킁킁거리기도 하지만, 이빨을 따닥따닥 부딪치기도 해요.
페커리는 멧돼지와 식성도 비슷해요. 뭐든 골고루 먹는 잡식성이랍니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기도 해요. 맹수가 자취를 감춘 우리나라에서는 멧돼지가 대장 노릇을 하면서 도시 한복판까지 내려오는 바람에 119 구조대가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페커리는 재규어·퓨마 등 천적들이 좋아하는 사냥감이기 때문에 늘 이들을 피해서 숨어다녀야 해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오히려 맹수를 상대로 들이받고 이빨로 공격하는 등 용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페커리는 생태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진흙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해 숲 속 곳곳에 웅덩이를 만드는데, 여기에 개구리들이 알을 낳아요. 페커리는 또 식물의 씨앗이 널리 퍼지도록 돕는 역할도 해요.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여기저기 똥을 누면서 먹고 소화되지 않은 씨를 퍼뜨리거나 빳빳한 털에 달라붙은 씨앗들도 곳곳에 떨어뜨립니다. 이렇게 다른 동식물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페커리를 '생태계의 기술자'라고도 부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