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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Haeparang Trail)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면서
너와 내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총 길이 770km의 걷기여행길이다
2010년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해파랑길을 선정하였으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해파랑길을 하러 갈때가 되면
날씨가 예외일 수는 없다
이틀전 보니 전국적으로 비예보~~
에구구 또 빗속을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부담감이 앞선다
출발 하기전날 다시 일기예보를 보니 비는 오지 않는다는....
다행으로 생각하고 오랫만에 지인분들과 동행한다
호미곶에 도착하니
바람이 태풍급으로 분다
광장을 빠져나가
팔각형 등탑
1908년 건축한 것으로 높이 26.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로
기초에서부터 등탑의 중간부분까지는 곡선을 그리면서 폭이 점차 좁아지는 형태이다
다른 고층 건물과는 달리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벽돌만으로 조적한 것이 특징이며
특히 고대 그리스 신전양식의 정교한 박공지붕과 오얏꽃 문양천장 장식으로
예술적 가치가 독보이는 등탑이라고 한다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쉽다
15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고
작년 2월10일 혼자 종주했던 호미반도해안둘레길을 역으로해서
그때의 좋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멋졌던 흔적위에 다시 흔적을 얹어 보기로 한다
세차게 부는 바람과
쾌청하게 맑음은 아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봄 같으다
많았던 갈매기들은 어디로.....????
해맞이전망대는 패스한다
바닷속 돌 같지 않은 돌들이 엄청 많다
호미곶면 대보리
대보리는 남쪽으로는 강사리, 서쪽으로 구만리와 경계를 이룬다
한내와 번디기의 일부, 그리고 ‘장기벌내’ 가에 형성된 자연부락으로
공공기관이 밀집한 호미곶면의 중심지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천의 ‘대’와 보천의 ‘보’, 각각 앞 자를 따서 ‘대보’라 칭했다
한내는 1592년 남평문씨와 김해김씨가 하천을 이용해 농업을 이루면서 개척됐다
한내골에는 약 30년 주기로 대홍수가 발생했다고 하여 조선 말엽부터 ‘대천’이라 불렀다
이러한 연유로 1973년 대보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대보들은 수리안전답으로 변했다
벌내·보천은 1624년 경주최씨, 진양하씨, 남원양씨가 개척한 마을로 ‘장기벌내’에 속한다
3성비가 있는 제당은 포항시 민속신앙 유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조선시대 나라에서 내린 가선대부 효자 하세만의 정효각과 하상천의 순효각이 있다
하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호미기맥의 고금산과
장기갑 등대는 일제 탄압 100년의 풍파를 견뎌낸 현장이기도 하며
국립등대박물관, 해맞이광장, 상생의 손, 영원의 불, 연오랑세오녀상, 새천년기념관 등이 있다.
불종골은 임진왜란 당시 마을에 불이 나면 종을 울렸던 곳이라 하여 불렸는데
일제강점기에도 소방용 종각이 있어 ‘종로’라고도 했다
약 200년 전, 이성용 선비는 ‘신동’이라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기벌내, 근대의 대보2리였으나
행정구역 개편 시 대보3리로 분동했다
돌문어를 형상화한 대보항등대
지난번 호미반도둘레길할때는 저 방파제를 갔었는데
아쉽게도 출입금지라 해 놓았다
멋진 트릭아트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인데.....
살아 있는 것일까....???
구만리
호미곶의 끝자락에 해당하며 장곡 봉수대가 있었던 봉화봉 북쪽의 마을이다
고대 선인들이 오래전부터 살았던 곳으로 추측되나
조산 말엽인 1890년, 경주이씨와 김씨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구만리란 이름이 붙은 연유는 범꼬리 부위 지형이 굽이친 곳
거북이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 하여 ‘귀만’, 구릉지가 많다고 하여 ‘구만’이라 불렸다 하기도 하고
1453년 계유정난 때 역적으로 몰려 수양대군에게 살해당한 영의정 황보인의 손자 서를
충복 단량이 항아리 속에 숨겨 이곳까지 도망 와서 보니 앞이 바다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그만 가게 되었다'라는 데서 유래한다는 등 다양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섭슬 끝의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백미3말을 못 먹고 간다’는
목장보슬말의 유래가 있어 ‘섭슬골’이라고도 한다
고대 농경사회를 이룬 구만들은 포항시 ‘유물산포지’로 지정돼 있으며
매년 ‘보리누름’이라는 문학제도 이어진다
영일군 동해면에 속하다 이후 구룡포읍을 거쳐 호미곶면으로 편입되었다
보내·벌내·보천은 북쪽 어귀에 형성된 마을로 ‘영일벌내’에 속한다
예부터 서당이 있었고 이후 1924년 보명사립학교, 1939년 심상소학교가 설립됐으며
현재는 대보초등학교가 있는 교육의 중심지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보항의 어업기지로 정어리기름 공장이 많았으며 북 방파제도 있다
정족·솥발이개는 1590년 망씨 부인이 일으킨 마을로
농촌 부엌에 있는 솥같이 생긴 지형의 발 부분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정족(鼎足)으로 불렸고 웅굴개는 솥발이개 북쪽 해안에 있었던 작은 마을로
전설이 서린 웅굴('우물'의 사투리)이 있어 웅굴개라 불렸다
큰개는 웅굴개 북쪽 해안마을로 계곡 및 구릉의 차가 커
‘큰개’라 불렸고 풍랑과 유속이 심한 교석초가 있다
마고 할멈의 전설이 있으며 갑신정변의 주인공인 김옥균의 왼팔이 수장된 곳이다
구포는 해안에 풍파가 심해 고기(청어)가 자주 밀려 나오는데
까꾸리(갈고리의 사투리)로 끌었다 해서 까꾸리개라고도 한다
해안 낭시 끝에는 일제 침략의 흔적인 쾌응환 조난 기념비가 있다
주변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바뀌는 악어, 물개, 거북이 변신 바위와
독수리바위의 전설이 있으며 영일만의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곶의 서편마을은 ‘앞구만’이라 하여 낙조와 기암절벽
한 창파 포구에 경치가 장관이라 하여 ‘분월포’ 또는 ‘부느리개’라고 불린다
신동은 198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큰 마을 남쪽에 새집들이 들어서면서 ‘신동’이라 부르고 있다
한반도 지형상 호미곶의
호랑이 꼬리 끝 부분을 알리는 항로표지시설 등표라고 한다
파도가 이쁘게 이쁘게 수 놓는....이 시간 이 순간에만 볼 수 있는 특권이다
구만2리항과 등대
호미반도 끝자락에 있는 작은 어항이다
독수리바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석조 계단에서는 입구를 지키는 돌사자 석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석상을 '소맷돌'이라고 하는데 자연이 만든 호미곶 바다계단 길에도
마치 소맷돌과 같이 계단 옆을 지키고 있는 독수리바위가 있다
지역 주민들은 이 바위를 두고 부리를 벌린 독수리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독수리바위'라고 불러 왔으며 독수리바위와 해 질 녘 풍경의 조화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게 할 만큼 뛰어난 절경을 뽐낸다
독수리바위는 자갈이 굳어져 만들어진 역암과
모래가 굳어져 만들어진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미숲해맞이터 조성 표지석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자'란 슬로건과 함께 결성된 ‘영일 호미수회(迎日虎尾樹會)’에서 세운 표지석이다.
바람을 피해 양지바른 구만2리항에서 점심을 먹는다
거센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대고
호미반도해안둘레길(호미 둘레길) 안내판과
월보 서상만 시비(月甫 徐相萬 詩碑)
나 죽어서
나 죽어서 분월포에 가야 하리
천천히 걸어서 대동배로 가든지
호미곶 등대불빛 따라가다
보리능선 질러가는
구만리 밖 내 사라질 빈자리
거기 찰박찰박
바닷물도 달빛을 끌어당겨
비백으로 출렁이는 곳
다 떠나고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아도
저녁이면 치자빛 노을을 품고
덧없이 홀로 앉아
밤하늘 芬月(분월)을 무시로 안아보는
나 꼭 돌아가 그곳에
늙은 그림자 비탈에 뉘일터
서상만 시인은 1941년 호미곶 구만리에서 출생
다소 늦은 나이에 문단에 문단에 등단하여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풀잎’, ‘불혹’ 등이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출입통제
태풍 '힌남노'로 인하여 데크로드가 파손되어 당분간 출입을 통제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빠른 시일내에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회하는길이 없어 그대로 진행한다
거대한 바위 ....사람 얼굴모양이다
남미의 칠레 이스터섬(Easter Island)에 있는
모아이석상 얼굴과 닮았다고 하여 '모아이상 바위'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뒤돌아 보고
자연이 휩쓸고 흔적
태풍 피해가 심했던 것을 고스란히 보게 되니 안타까움이다
대동배항 등대
대동배리(大冬背里)
영일만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대동배마을’과 ‘장천마을’이 있다
학달비산의 유래와 ‘구룡소의 전설, 그리고 ’학달비의 팔경‘의 풍광이 있는 곳이다
대동배는 신라시대 ‘동을배곶(冬乙背串)’이라 칭해 봉수대의 이름으로 사용됐다
1664년, 조정의 관리인 김상구(호 이필)가 이곳에 정착해 작시한
'동해순토학달비라(東海舜土鶴達飛)'는
시구에 연유해 처음에는 학달비(鶴達飛)라 했다
마을의 형상이 먼바다에서 보면 날아가는 학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다
또 1679년 박현섭이라는 어부가 마을뒷산이 달비 같다하여
‘한달비(大達飛)’라 부르다가 1914년 대동배로 통칭했다
여름에는 천연기념물 제371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마치 황금비가 내리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며, 노암식수, 구룡소 등의 명승지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돈이 흔해 개가 지화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생길만큼 부촌으로 일본 유학생이 많았다
장천은 250여 년 전 원주원씨, 제주고씨, 달성서씨가 들어와서 마을을 형성했다
장곡(노루골)에서 흘러내리는 긴 하천의 이름에 연유하며 ‘장천’ 또는 ‘장내’라 하였다
또한 양지(흥해)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 물을 길어 가기도 했는데
물맛이 좋아 ‘정천’이라고도 하다가 1914년에는 ‘대동배’로 통칭했다
해안 갯바위에 쌓인 갈매기 분이 백옥 같아 붙어진
옥바위, 땅버들· 해당화가 자생하는 기암절벽의 풍광이 절경이다
약 300년 수령의 팽나무 제당은 포항시 민속신앙 유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동제 때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무언가를 건지고 있다
미역이었구나
대동배1리마을을 지나
데크계단을 오르면 구룡소전망대이다
오르면서 내려다 보고
구룡소(九龍沼)
호미곶면 대동배는 한반도의 최동단지역 호랑이 꼬리인
호미반도권에서 매우 경치가 좋은 곳이다
옛날에는 '동해안의 영일만에서 매우 경치가 좋은 곳이며
'학달비(鶴達飛) 마을'이라 불리었는데
바다에서 보면 대동배 마을의 형상이 마치 학(鶴)이
날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조용히 굽이돌아 이루어진 아늑한 포구의 노적암
서쪽 300m 지점에는 동을배봉이 우뚝하게 선 해안 절벽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용 아홉 마리가 등천했다는 전설이
고려 충렬왕 때부터 전해지고 있는 구룡소가 있다
높이 40~50m 정도, 둘레 100여 m의 움푹 패어 있는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기암절벽으로
용이 살았다는 소(沼)는 맑은 바닷물이 드나들고
바닥이 평평한 곳에 깔린 여러 형상의 바위에는
에메랄드빛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웅장함과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뚫어진 9개의 굴이 있으며
그중에는 5리가량의 깊은 굴도 있어
유명한 도승들이 그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파도가 칠 때 굴의 입구로 흰 거품과 같은 바닷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마치 용이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듯하고 물을 뿜어낼 때 우렁찬 울림소리는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아 이 구룡소(九龍沼)를 아주 신성한 곳으로 믿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에서 기우제나 풍어제, 출어제를 지내기도 하고
굿을 할 때도 있으며 이곳을 구룡소, 용추, 용수리, 용치미기라 칭한다
지나 온 곳을 뒤돌아 보고
오늘 코스의 최고 오름길
구룡소전망대
물속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미역을 따시는~~
하나씩 선물로 받고
한잎 먹어보니 억수로 짜다....ㅎㅎㅎㅎ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해안길
작년에 왔을때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었는데....
누가 이렇게 조각을 해 놓았을까......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몽돌이 참 이쁘다
발산리(發山里)
동해면 흥환리 북쪽, 호미곶면 대동배리 남쪽에 자리 잡은 어촌마을로
1리인 '발산'과 2리인 '여사' 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발산(發山)
봄이 되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골짜기에 꽃이 만발한다고 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하는데
지형이 바랑처럼 생겼다 하여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도 한다
남동쪽 홍환리와의 경계지점에 있는 봉우재에는 옛 발산 봉수대 터가 있고
동쪽 골짜기에는 발산 못이 있다
80년 역사의 발산 교회가 있으며 이 마을 주민의 약 80%가 이 기독교 신자이다
여사(余士)
신라가 망한 후 한을 품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
모두가 선비 행세를 하며 살았다고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인데
마을 입구에 선돌이 있어 이 마을 역사를 말해준다
호미곶면 강사리와 경계를 이루는 봉오재(180m)에는 옛 사지 봉수대 터가 있다
마을 뒷산 어부 보안림에 1992년 천연기념물 371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발산2리항
한여름에 피는 노란색의 모감주나무꽃과
봄에 피는 흰색의 병아리꽃나무꽃은
겨울이라 설명만으로 대신한다
장군바위가 보인다
태풍 피해를 입은 해안길따라서~~
조금 가다보니
아무도 해안길을 안 걷기에 도로로 올라서서
도로 따라 걷는다
그리고
발산1리 등대가 보이는 곳에서부터는
사진은 더 이상 찍을 수 없는 일이.....????
산악회 버스가 주차 해 있는 하선대간이주차장까지
찍지 못한 사진은 호미반도해안둘레길 할때 찍었던 사진을
꺼내 보기로 하고 마무리를 한다
**
그동안 해파랑길 하면서 매번
해안가가 아닌 일부 도로를 걸을때면
1도 여분이 없는 갓길이 늘 위험하여 불안불안 했었는데
오늘도 갓길없는 도로를 걸을땐 차들이 쌩쌩 달려서 겁이 났었다
무엇보다 본인 자신들이 항상 조심하여 걸어야 할 것임을 절실히 느낀
1년전에 왔을때의 느낌하고는 좀 다른 풍경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은 해파랑길이었다
함께 하신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풍휴게소 차안에서 본 해넘이
2023. 2. 19(일)
첫댓글 안타까운 일이 현실로 되었네요
저도 이번 구간은 최대한 해변으로 걸어는데
흥환2리 방파제가 지나서 지겨워서 도로1km 걷어는데 바로 후회했습니다
해변으로 갈것을~~
쓰레기가 많아서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
꽃피는 3월 해파랑길 기대됩니다
좋은 사진과 부연 설명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사진에 마을마을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소개해 줘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천천히 자서히 보았어요.
멋진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애쓰셨어요 늘 풍부한 설명과 함께 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 감사
멋진사진 수고 많으셨어요~~~~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