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좁쌀 한 알
이영백
씨 중에 가장 작은 씨앗은 “겨자씨”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겨자씨를 일상 생활에서 잘 볼 수 없다. 우리나라 쌀·보리·콩·조·기장 등을 오곡이라 부르는 데 이 중 조는 껍데기를 벗기고 음식 해 먹으려면 “좁쌀”이라 하여 “조”자에 “ㅂ”이 추가되어 “쌀”과 합성어가 된다. 좁쌀 한 알!
조는 우리나라 1963년에 대량생산 이후부터는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해에 나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서당 다니면서 집안의 소소한 농삿일하던 시절이다. 그 때는 오늘날과 달리 저수지가 없어서 날이 가물면 거개가 천수답이라 오로지 하늘이 내려주는 비만 바라보던 시절이다. 한해오면 논농사가 어렵다.
1963년 그 해 기다리던 비는 오지 않았다. 마침내 6월 21일 전후 하지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면 모내기는 할 수 없다. 그 해는 참 많이도 가물었다. 봉천답을 가진 우리 집에는 하늘의 비만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조 씨앗을 뿌리기 위해 창고에서 씨앗을 끄집어내었다. 황소에 쟁기 매워 골을 타는데 바닥 깊이까지도 물기가 없어서 흙먼지가 마냥 날린다. 조의 씨앗을 파종하였다.
조는 모내기시기를 넘긴 하지 이후 6월 하순에 파종하여도 잘 자란다. 조는 발아 후 열흘 정도 지나면 뿌릴 때 많이 뿌려서 조밀나면 솎아준다. 또 북돋아주기와 김매기를 함께 실시하고, 그 뒤 열흘 간격으로 2, 3회 실시한다. 고르게 잘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마침내 덩달아 풀이 자라면 조밭을 매야한다. 조밭매기도 논보리 밭이나 마찬가지로 꼭 같이 매 주어야 한다. 조밭매기 힘들다.
잘 자란 조의 줄기는 둥글고 속이 알차며 잎의 길이는 길고 무성하다. 이삭은 실하게 자라서 생산량이 많아진다. 조도 다 자라 익으면 베다가 타작하여야 한다. 열매는 작지만 둥글며 노란색을 띤다. 껍질을 벗긴 좁쌀도 역시 노랗다. 조밥을 해도 똑같이 샛노란 색으로 보기에는 아주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이를 밥해 먹으면 몇 숟갈만 먹어도 밀리고 만다. 날 가문 해는 조밥으로 때운다.
어렸을 때 좁쌀과 보리쌀을 섞어 밥을 하면 “조밥”에 숟가락이 안 가고 저절로 “보리밥”에 숟가락이 먼저 가고 만다. 날은 가물어서 벼농사가 안 되어 조가 구황작물로 연명하게 된다. 좁쌀로 밥하여 콩고물이나 팥고물을 묻혀 조 떡을 해 먹었다. 이도 조금 먹으면 또 밀리고 만다.
노란 작은 좁쌀 한 알을 얻기까지 농부는 비가 오도록 기다렸다. 마음 졸이었던 것과 함께 힘든 밭매기를 한다. 작고 노란 좁쌀 한 알을 얻었다.
크기를 빗대어 작고 좀스러운 사람이나 물건을 “좁쌀”로 비유한다. 흔히 나이 어린 조무래기 친구를 비유적으로 “좁쌀친구”라고 하였다. 좁쌀 한 알!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