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야기
힘내라, 장군이!
박재현
“자린고비의 딸과 토목공이의 아들이 결혼을 했으니까, 자린고비와 토목공이는 사돈이 된 거지.”
“사돈이 뭔데요?”
성준이가 해맑게 웃으며 묻는다. 중 3 녀석이 ‘사돈’의 뜻을 모른단다. 그것도 그들의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서로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하면 그 부모들끼리는 사돈이 되는 거야.”
“아!”
커다란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성준이가 고개를 주억댔다.
계속해서 설화의 한 대목을 읽는다. 토목공이의 부인이 며느리의 살림 솜씨를 눈여겨보다가 종지에 간장을 가득 담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며느리를 나무라는 부분이다. 교과서에는 토목공이와 토목공이 부인, 그리고 새 며느리가 장항아리 옆에 서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그것을 보고 성준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토목공이가 여자예요?”
순간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성준이는 초등학교 시절, 촉망받는 야구선수였다. 주니어 국가대표까지 했다고 하니 실력이 제법 뛰어났던 모양이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고 심하게 사춘기 열병을 앓으면서, 감독님께 대들고 연습도 제멋대로였던 모양이다.
결국 2학년 말 야구를 포기하고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어려서부터 운동만 하고 교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탓에 성준이가 3학년 공부를 따라가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기초적인 개념 이해는 물론 기본적인 어휘도 알지 못했다. 아마도 성준이에게는 매 수업 시간의 강의가 전부 외국어나 외계어로 들렸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강의를 여섯, 일곱 시간씩 듣고 있자니 제풀에 지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3월 초만 해도 수업을 들어보려 애쓰던 성준이가 4월 들어서면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고, 무단결석과 지각, 조퇴를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키 184㎝에 마른 체형, 긴 팔다리와 흰 얼굴에 여학생들이 따르기 시작하면서 겉멋이 들고, 건들거리는 태도까지 보였다. 수업 시간에도 보란 듯이 엎드려 자고, 깨우면 책상을 밀쳐내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일도 잦았다. 가수가 되겠다고 기타를 배운다, 학원을 다닌다, 야단을 떨었지만 뭘 꾸준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불러서 이야기를 하면 별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결국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늘 제멋대로 하곤 했다. 하긴 점점 학교에 나오는 날이 적어져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느닷없이 성준이가 찾아왔다. 부모님과 의논하여 방학동안 연기 학원에 다니고 있다면서,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자신의 내신 성적으로는 진학이 어려우니 2학기 중간고사를 잘 볼 수 있도록 선생님이 개인지도를 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솔직히 10월 중순에 원서를 써야 하는 예고의 경우 2학기 중간고사만 남겨 놓은 시점에서 최대한 내신 성적을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예고 진학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전기 특성화 고등학교는 물론, 후기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도 낙관할 수 없는 성적인 데다, 성준이의 노래와 연기 실력도 별 믿음이 가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고 찾아온 녀석을 내칠 수도 없는지라, 날짜를 정해 서 방과 후에 함께 공부를 해 보기로 하였다.
다음 날 성준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걸어 와, 성준이 모든 교과 담당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개인지도를 부탁했고 정말 진지하게 예고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그 결심이 얼마나 가겠냐며, 조금 번거로우시더라도 며칠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약속을 한 날, 성준이는 모범생 친구의 책을 열심히 베꼈다며 자랑스럽게 교과서를 내밀었다. 정말 빼곡하게 메모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고 적은 것은 거의 없는 듯했다. 맞춤법이 틀린 곳도 많았고, 전혀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적혀 있기도 했다.
넌지시 몇 과목이나 개인지도를 받기로 했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시간이 없다고 거절하셨고, 영어와 수학은 아예 포기를 했기 때문에, 국어, 역사, 기술 가정, 과학 네 과목만 공부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날짜를 겹치지 않게 잡았으니, 국어는 수요일에 배웠으면 좋겠단다. 연기가 정말 하고 싶은지 물으니, 학원 선생님이 외모가 훌륭해서 가능성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셔서 자신감이 생겼단다.
“요즘은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뮤지컬 노래를 배우고 있어요.”
성준이 잔뜩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와, 나도 그 노래 좋아하는데. 그럼 ‘노트르담 드 빠리’의 내용은 다 아니?”
“아니요, 지금은 ‘대성당들의 시대’를 배우고 있다니까요.”
“…….”
도무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성준이가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있는 걸까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슬쩍 물었다.
“성준아, 연기보다 모델 활동을 먼저 시작해 보는 건 어때? 넌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라 잘 할 것 같은데.”
“아니요, 전 열심히 공부해서 예고에 가고, 연기자가 될 거예요.”
단단히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성준이와의 공부였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거라는 각오는 진작에 했다.
먼저 설화가 무엇인지, 설화에는 신화, 전설, 민담 같은 것들이 있다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성준이가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민담은 그냥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돼. 할머니나 부모님이 어릴 때 들려주신 옛날이야기 있지?”
“아니요, 없어요.”
“옛날에 옛날에 어떤 바닷가 마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 어느 날 할아버지가 고기를 잡다가 아주 커다란 잉어를 한 마리 잡게 되었어. 뭐 이런 얘기 말이야.”
눈만 껌뻑거리는 성준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살려 달라는 잉어를 살려 보내 준 할아버지가 어떤 복을 받게 되었는지를 열심히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설화 속에는 당시의 권선징악적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음을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불쌍한 잉어를 구해 준 할아버지처럼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얻게 되지. 그럼 ‘자린고비 이야기’에서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시는 게 교훈이겠죠.”
“…….”
“전우치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유리병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잖아. 그렇게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특성을 ‘전기성’이라고 해. 이런 전기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장면에는 또 어떤 게 있을까? 전우치가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아주 신기한 일을 또 뭘 했지?”
“자린고비 이야기?”
“…….”
그 무렵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속에 ‘장군이’라는 중학생이 등장하는데, 그 아이는 서울대에 가려고 신림동 가는 버스 번호를 챙겨 두고, 공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10분 전에 배운 ‘반포지교’를 ‘반포지구’라고 할 만큼 맡아 놓고 전교 꼴등을 하는 처지다. 진지하게 공부의 의지를 불태우지만, 영수증의 ‘계’를 보고 ‘우린 게를 먹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난감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성준이를 개인적으로 가르쳐 본 교사들은 ‘장군이’의 현신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말 진지하게 배우려 하지만, 너무 아는 것이 없고, 앞뒤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니 이해나 수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장군이’는 드라마 대본을 외우는 신기한 재능을 지녔지만, 성준이에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듯했다.
결국 성준이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예고를 포기하면서 성준이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진로와 관련하여 10명의 강사를 초빙하여 각자 관심 있는 강사의 강의를 듣도록 했었다.
그날 체육교육과에 다니고 있는 졸업생 형의 강의를 들은 성준이는 연기 대신 체육교육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반계 고등학교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열심히 공부해 보기로 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성준이의 수업 태도이다. 며칠 못 갈 거라던 선생님들의 예상을 깨고, 성준이는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오늘까지도 졸지도 않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몇 쪽을 펴라는 지시도, 어디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라는 지시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옆의 친구 것을 훔쳐보며 따라 한다. 문법 단원이라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면서 열심히 적고 칠판과 눈을 맞춘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 대견하기도 해서,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성준이를 불렀다.
“성준아, 오늘 수업한 거 잘 모르겠지?”
“네.”
“자음동화, 음절의 끝소리 규칙, 이런 거 원래 어려워서 다른 친구들도 잘 몰라. 한참 더 공부해야 조금씩 알 수 있을 거야. 모르는 얘기 듣고 있기 힘들었지? 졸리지는 않았어?”
“좀 힘들기는 한데요, 그래도 괜찮아요.”
“성준이가 열심히 수업 듣는 모습이 정말 예뻐서 칭찬해 주려고 불렀어. 나 솔직히 네가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며칠이나 가겠나 생각했었어. 미안해. 내가 널 잘못 본 것 같아. 이렇게 꾸준히 수업 듣는 거 진짜 힘들거든. 그런데 그걸 해 내는 걸 보니까, 넌 뭐가 됐든 큰일을 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
정말 그건 내 진심이었다.
“감사합니다.”
성준이 얼굴을 붉혔다.
“지금은 잘 모르는 것도 자꾸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알게 되고, 그 조금이 쌓이면 다음 공부가 더 쉬워지고, 그렇게 익숙해지는 거야. 정말 더디겠지만, 천천히 지치지 말고 해 보자.”
“네. 근데 저 고등학교 어디 갈까요?”
“우선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만드는 게 급해. 지금 98.4%인데, 98%정도가 늘 커트라인이었거든. 95%정도까지는 올려놓아야 안심할 수 있지, 지금은 위험한 상황이야.”
“95%까지만 올리면 덕수고등학교 갈 수 있어요?”
성준이 잔뜩 기대에 차서 물었다.
해 보자, 성준아. 남보다 열 배는 더디겠지만, 그래도 우리 해 보자.
힘내라, 우리 장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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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한대부중 국어 선생님. 진로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