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에는 복서 스타일로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4명의 톱 파이터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나열해 보면 제롬 르 반나, 마이크 베르나르도, 마크 헌트, 그리고 마지막 선수가 레이 세포입니다. 네 선수는 K-1 무대에 데뷔한 이래로 서로 밀고 밀리는 여러번의 경기를 치루게 되며, 서로에게 경쟁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중 다른 선수들과의 대전에서 유일하게 무패를 기록한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레이 세포입니다. 카드게임에서 조커(Joker)의 패로 비유하면 적절할까요, 세포의 공식 닉네임은 슈가풋(Sugarfoot)입니다. 파이터 시절 매우 좋아했던 복서 '슈가' 레이 레너드('Sugar'Ray Leonard)에서 슈가를, 그리고 아래 체급에 비해 빠른 발기술을 가진 것에 착안하여 슈가풋으로 이름 지어졌다 합니다.
무패의 킥복서에서 K-1 파이터로 거듭나다.
레이 세포는 1971년 2월 15일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세포가 처음 입문한 무술은 학창 시절에 접하게 된 쿵푸였습니다. K-1의 앤디 훅, 제롬 르 반나등과 마찬가지로 세포도 브루스 리(이소룡)과 재키 챈(성룡)이 주연한 무술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무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련을 시작한지 5년 여의 시간이 흐른 후 킥복싱을 비롯한 격투기 경기에 참가를 하기 시작합니다. 89년 처음 링에 올랐고, 몇 년이 지난 93년 즈음에 전문적인 파이터로서 활동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세포는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완전한 킥복서로 변신, 무패 가도를 달리며 파이터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네덜란드 메지로 짐의 강자였던 '안드레 마나트'를 꺽고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세포는 18전 18승의 화려한 기록을 배경으로 K-1에 진출하며 일본이라는 거대한 격투 시장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그러나, K-1은 세포에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오세아니아 최고의 킥복서로서 자부심은 96년 K-1 첫 데뷔전 상대였던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KO 패배를 당하면서 단번에 깨지고 맙니다. 첫 패배는 세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뒤돌아보면 이 패배는 세포가 성장하는데 하나의 약이 되었고, 자만은 곧 패배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K-1 최고의 펀치력을 가진 제롬을 쓰러뜨리다.
세포의 진가를 보여준 경기는 97년 4월에 열린
브레이브즈(BRAVES) 대회였습니다. 당시 제롬 르 반나는 파워풀한 경기 덕분에 차세대 기대주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롬과의 경기에서 세포는 자신의 최고의 무기인 부메랑 훅을 보여주었고 그 훅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팬들에게 알리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경기는 K-1 역대 최고의 역전극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세포는 경기 초반에 제롬의 파워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제롬의 라이트 훅에 다운을 뺏깁니다. 경기는 제롬의 승리겠구나 라고 생각한 그때, 세포는 제롬의 턱에 정통으로 훅을 날립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제롬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눈 흰자를 드러냈습니다. 링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제롬은 KO 당한 상태에서 코를 골았다고 합니다. 즉 제롬은 완벽한 실신 KO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일단 다운을 뺏은 제롬은 방심을 했고 그런 기세로 들어오는 타이밍에 날린 세포의 훅은 상대의 힘을 이용한 완벽한 카운터 훅 이었습니다. 그 이후 세포의 훅은 '부메랑 훅'으로 불리게 되며, 노가드 전법과 함께 세포의 필살기로 사용됩니다. 참고로 '부메랑 훅'은 호주의 원주민들의 무기였던 부메랑(boomerang)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온 두 괴물의 K-1에서의 맞대결
98년 그랑프리에서는 앤디 훅에게, 그리고 99년에는 샘 그레코에게 패배하며, 많은 아쉬움을 느꼈던 세포는 2000년 K-1 그랑프리 결승에서 무사시를 초살 KO 시키고 뒤이어 시릴 아비디도 KO 시킨 후, 천적 후스트와 결승전을 갖지만 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2000년 준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고 명실 상부한 K-1 초 일류급 선수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세포의 주특기를 말하자면 단연 부메랑 훅 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기는 '노가드 전법'으로 경기 중 팔을 축 내리고, 특유의 제스처로 상대의 도발을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포가 경기하면서 웃기 시작하면 그건 데미지가 쌓이기 시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데미지를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괜찮다는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가드를 내린 후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시늉을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른 선수들도 따라하기 시작한 이 모습이지만, 이런 모습이 가장 빛이 났던 경기는 마크 헌트와의 경기라고 생각됩니다.
[사진] 2001년 후쿠오카 대회에서 세포와 헌트의 노가드 상태에서의 도발 장면
세포(마오리족)와 같은 뉴질랜드 출신인 마크 헌트(사모아인)는 2001년 K-1 그랑프리 챔피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은 그 해 그랑프리에 레이 세포가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K-1 그랑프리에 가는 티켓을 두고 세포와 헌트는 후쿠오카에서 열린 패자 부활전에서 붙었습니다. 이 경기는 K-1 사상 최고로 꼽히는 경기중 하나입니다. 펀치 공방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헌트가 노가드로 얼굴을 내민 채 때리라고 도발하고 세포는 열심히 때리지만 헌트는 꿈쩍도 안합니다. 그리고 세포도 역시 노가드로 때리라고 하고 둘은 열심히 때리다가 마지막에 볼에 키스를 합니다. 서로 상대에게 반했다고 할까요(?) 관객들은 이런 두 괴물의 경기를 보고 열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경기는 판정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세포가 판정승을 하긴 하지만 눈 뼈 골절에 의해 헌트가 대신 올라가게 됩니다. 헌트는 다음 경기에서 아담 와트를 가볍게 KO시키고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게 됩니다. 마오리족과 사모안이 얼마나 괴물인지 알려주었던 이 경기는 세포의 진가를 보여준 경기이기도 합니다.
[사진] 2002년 그랑프리 준결승에서 만난 어네스트 후스트
2002년 천적 후스트와 세 번째 경기를 치루다.
레이 세포는 경기 중 상대적으로 부상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내용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만을 보면 많은 아쉬움을 느껴졌습니다. 2002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피터 아츠를 판정으로 누르고, 8강전을 통과한 세포는 원래대로 하면 후스트를 쓰러뜨린 밥 샵과 준결승전을 치룰 예정이었지만 샵의 부상으로 인해 후스트가 대신 권리를 이어받아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세포와 샵의 경기는 이 대회에서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카드 중에 하나였고, 샵은 후스트와의 경기에서 다운을 당할 만큼 격전을 치뤄서 세포로서는 싸우기 쉬운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2번의 패배를 안긴 후스트에게 다시 한번 패배를 기록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2000년에 이어 2002년에도 후스트가 그랑프리에 4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하는 조연이 되버렸습니다. 그리고 2003년 다섯 번째 맞이하는 K-1 그랑프리 결승전에서는 2000년 그랑프리에서 아주 가볍게 KO 승을 거두었던 무사시에게 판정패하고 말았습니다. 다리 부상과 컨디션이 악화된 상태에서 붙었기에 실력으로 졌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부진한 경기를 보여주어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사진] 2003년 그랑프리 8강전에서 무사시를 도발하는 레이 세포
K-1과 MMA 두 마리 토끼를 노리다.
2003년은 세포에게는 무척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단순히 그랑프리 대진표를 봤을 때, 피터 아츠만 이기게 되면 바로 세포의 우승이 가능해 보였으나 최악의 컨디션 때문에 8강전에서 무사시에게 패하며 최고의 기회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또한 같이 트레이닝하며 데이트를 즐겼던 프로복서였던 여자 친구와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세포는 지금 무언가 새로운 변신을 꾀해야 할 때라 생각됩니다. 요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MMA로의 진출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호이스 그레이시와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그에게서 그라운드 기술을 전수 받고 있는 세포는 조만간 프라이드, 혹은 K-1에서 새롭게 개척하고 있는 K-1 MMA 경기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31일 친동생인 로니 세포(Rony Sefo)가 프라이드에 등장하여 타무라 키요시와 접전 끝에 역십자 꺾기로 패하고 말았지만 레이 세포라면 MMA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 생각됩니다. 수많은 K-1 팬들을 흥분시키며 경기 내내 그의 이름을 외치게 만들었던 노가드 전법과 이후 폭풍처럼 몰아치는 펀치 러시로 기억되는 레이 세포가 2004년에는 K-1에서 첫 우승을 하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K-1 이든 MMA 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모습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수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던 2001년 마크 헌트와의 경기처럼 다시 한번 팬들을 감동시키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진] 2003년 월드그랑프리 결승전을 하루 앞둔 레이 세포와 함께..
현재 레이 세포는 같은 K-1 파이터인 동생 로니 세포(Rony Sefo)와 함께 미국에서 세포 파이트 아카데미(Sefo Fight Academy)를 운영하며 뉴질랜드에서의 패션 모델 활동에 이어서 미국에서는 영화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레이 세포(Ray "Sugarfoot" Sefo)
K-1 그랑프리 1998 베스트 8
K-1 그랑프리 1999 베스트 8
K-1 그랑프리 2000 준우승
K-1 그랑프리 2002 베스트 4
K-1 그랑프리 2003 베스트 8
뉴질랜드 크루저급/ 헤비급 킥복싱 챔피언
남태평양 크루저급 킥복싱 챔피언
WMTF 세계 L.헤비급/ 헤비급 킥복싱 챔피언
ISKA 세계 L.크루저급/ 슈퍼 크루저급 챔피언
WKBA 세계 슈퍼 헤비급 챔피언
클릭 정의진의 이종격투기
첫댓글 최고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눈뼈 골절이라니 넘 아쉽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