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
일단 그 규모와 크기에 다시 놀랜다. 신라 시대 가장 오래된 비석인 냉수리 비석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포항 신광면사무소 마당에 옮겨져 있는 국보를 찾아가서 마주한 순간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실망한 적이 있다. 이에 비해 광개토대왕 비석은 엄청 크다. 길이가 길어서 요즘 100 톤 크레인으로 들어야 할 거라고 누군가 얘기한다. 하긴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비는 장수왕 3년 서기 414년에 세워진 것으로, 포항 냉수리 비석(신라 지증왕 4년, 503년)보다 90년 정도 앞선 것이다. 탑골공원에 서있는 원각사지10층 석탑처럼 보호를 위해 각을 세우고 유리로 덮어놓았다. 석굴암처럼 출입을 제한하지는 않지만, 보호각 내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광개토대왕(391-413). 그가 만주와 한반도를 호령하던 때,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어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4세기에서 5세기는 흉노와 훈족, 북위를 세운 선비족, 고구려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 쪽이 강하면 다른 쪽은 밀리는 게 역사나 자연이나 다 같은 모양이다. 현재 통일 중국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그 옆에 있는 나라들의 생존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에서 느꼈던 웅장함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가이드 말로는 장수왕릉보다 네 배는 더 큰 규모라고 한다.(장수왕릉의 기단이 33 미터, 광개토대왕릉의 기단이 63 미터) 하지만 안에 넣어두었던 자갈돌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돌로 쌓은 단도 다 허물어졌다. 다시 복구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 계단을 타고 널방으로 들어간다.
축축한 내부에는 돌널이 놓여 있고, 함께 묻혀있을 부장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무덤 위에서 사방을 살펴보지만, 구름이 가득하고 비오는 날씨라 주위에 볼 게 별로 없다. 아쉬움이 크다.

입구 기념품 가게에서는 광개토대왕비 축소 모형을 판매하고 있다. ㅅ 사장은 여지없이 흥정의 기질을 발휘하여 여려 개를 깎아서 사온다.
첫댓글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던 시절입니다... 또 다시 그런 중흥기를 맞아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