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 교육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교사들은 갑작스러운 수업 변화에 적응하느라 허덕였다.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 혼자 남아 온라인으로 수업 듣는 걸 불안해했다. 한편 코로나19는 기존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원격교육, 화상회의 등과 같이 첨단기술 사용의 물꼬가 트이면서 우리는 삶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학생들은 원격수업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으며,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경험했고, 재택근무가 끝났더라도 여전히 많은 업무를 비대면·원격으로 진행하고 있다.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케 한 첨단기술, 편리함 이면의 한계도 드러내
이처럼 코로나19 위기는 첨단기술을 통해 기존에 불가능하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물론 같은 수준의 팬데믹은 아니었지만, 메르스나 사스 등 다른 질병들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현재만큼의 디지털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거나, 현존하는 기술을 활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코로나19 위기가 닥치기 이전에 우리는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감히 쓰려고 하지 않았다. 기술에 대한 이해나 상상력이 부족해서 막연히 관행을 따른 것인지, 권력 관계나 이해타산 때문에 혁신을 마다했던 것인지···.
반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러한 첨단기술이 가진 한계 또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의 질 저하다. 국어나 수학 같은 인지적 영역의 교육은 원격수업을 통해 실행이 가능하지만, 모든 과목과 교육과정이 화면 내에서 잘 실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공간이 아닌 사이버 공간의 제약은 사회성을 키우거나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국내에는 유네스코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 소속의 학교 530여 개가 있다. 이 학교들은 코로나19로 대외활동이나 체험학습이 제한되면서 세계시민성이나 문화다양성, 지속가능발전 관련 교육 진행이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학생들은 놀이를 통해서도 배우는데, 화면만을 통한 교류로는 뇌의 균형 있는 발전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의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드러난 것은 사회계층 간 격차의 확대다. 소득의 불균형은 디지털 장비를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의 차이로 이어진다. 정부에서 저소득층에 기기를 지원해 주고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최신기술은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한편, 이에 대한 적응을 어려워하는 노인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발달장애 아동들은 원격수업 등 온라인 학습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가정 내 학습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이어주지만, 때로는 심각한 디지털 격차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첨단 디지털 기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활용과 관련해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가능한 것과 곧 가능해질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고,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바람직한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컴퓨터만 해도 예전에는 엄청난 부피를 차지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으나 이제는 핸드폰으로, 스마트워치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AI)만 해도 활용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데, 유네스코에서도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AI 윤리에 대한 논의를 주요 의제로 추진하고 있다.
개별 교사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교육 현장
앞서 언급했듯 코로나19로 교육의 질 저하가 크게 우려되고 있다. 교육의 질 문제는 교육 정책을 논의할 때 꾸준히 언급돼 왔다. 초·중등 과정 학생 수나 이수율 같은 수치들과 달리 교육의 질은 측정하기도 어렵고 국가 간 비교는 더욱 어렵다. 최근 평화, 세계시민성, 지속가능발전 등 사회정서적 역량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수립할 때도 이에 대한 학업성취도 측정지표는 마련하지 못했다(대신 교과과정, 교사훈련 정도 등 간접적인 지표를 채택했다). 2000년부터 실시된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도 2018년부터 겨우 세계시민성 역량에 대한 측정지표를 넣기 시작했다.
흔히 교육의 질을 이야기할 때 교사의 역량을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현재 제도교육은 전문적 역량을 갖춘 교사가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교실 형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교육 현장 최일선에 있는 교사의 능력에 따라 수업의 질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다. 교사들이 연수 기회 및 교육 자원의 제공 등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처우가 좋은 편에 속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충분한 교사훈련이 제공되지 못하고 교직에서 얻는 소득이 낮아 교사들이 교육에 온전히 전념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또 하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교사집단이 노동자들이며 이익집단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교사집단은 교육의 혁신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집단이면서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교사들이 이기적이고 발전을 거부하며 기득권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육 현장이 개별 교사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교사들이 스스로 역량을 키우고 유지·향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다는 뜻이다.
교육청이나 다른 교육기관들이 교육연수, 교안, 학생 체험프로그램 등 교사에게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나, 교사가 이를 스스로 준비하고 기획해야 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이미 많은 교안이나 학습자료가 공유되고 있지만, 사회의 변화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자료의 유효기간이 점차 짧아지다 보니 유네스코학교 교사들만 해도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교사들은 본연의 업무가 수업이지만 학교 운영이나 학생 관리, 행정 업무 등 수업 외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각보다 많다. 수업 외 업무가 많아지면 수업 준비나 학생에 대한 개별적인 대응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교육의 질 하락과 학생들의 학습 기회 축소로 이어진다.
교육의 미래와 평생교육
유네스코는 지난해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교육의 미래 보고서)」을 발간했다. 이는 2050년에 대비해 국제사회가 만들어갈 교육의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72년 「존재하기 위한 학습: 교육 세계의 오늘과 내일」, 1996년 「학습: 그 안에 담겨 있는 보물」 등을 통해서도 국제사회에 교육 의제를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학습이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인권으로서의 양질의 교육 보장, 공공재와 공동재로서의 교육 제공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 NGO, 기업, 연구기관 등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 중 특히 평생학습에 대한 강조와 기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평생교육은 ‘평생에 걸쳐서’라는 명칭과 달리, 주로 청소년기에 읽고 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중노년층에 대한 문해교육이나 간단한 직업교육, 취미생활 수준을 조금 넘는 교양강좌 등 상당히 제한적으로 진행돼 왔다. 교육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제도교육(학위를 받는 교육)이 주가 되고 평생교육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교육’을 대부분 청소년기, 청년기에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마치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것처럼 자녀교육에 사활을 건다. 교육행정가나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중요하고 좋은 것들을 모두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교과과정을 계속 개편하고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짧은 기간에 인생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 기술을 가르치려다 보니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능력과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며 성장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도교육을 받는 기간은 일생을 놓고 보면 고작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삶 전체적으로 보면 엄청난 교육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이스라엘, 유럽 등 일부 국가들의 경우 수많은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을 1년 유예하는 ‘갭 이어(gap year)’를 가지면서 본인의 관심 분야를 찾아간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러 유럽국가들은 대학개혁을 통해 학문과 대학의 서열화보다는 다양한 교육 기회의 제공에 노력하며,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특별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활동 이후 학업에 복귀하는 만학도들이 있지만, 방송통신대나 사이버대에 치중돼 있다. 많은 사람이 퇴직 이후에도 경제활동 등을 계속하기 원하지만 정작 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실정이다.
유네스코는 학습이 평생에 걸쳐 일어나며,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제도교육 이후 성인교육’이 아닌 ‘제도교육을 포함한 평생교육’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지식과 정보와 기술이 이렇게 빨리 변화하고 축적되는 시대에, 학교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평생학습이라는 시점에서 학교교육을 바라본다면 그 대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지식과 정보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지식과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지역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또한 책임 있는 세계시민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경계를 넘어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교육은 백년대계다. 이번에 구성되는 국가교육위원회와 그 전신인 국가교육회의는 당장 시급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넓고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구성됐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을 위협하면서 한때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코로나19도 여러 장기적 과제의 하나일 뿐, 이로 인해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우리의 교육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됐지만, 이것만이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대신 우리는 교육을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