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4일 따뜻했던 오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모셔배움 시간 열었습니다. 당시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항쟁한 시민군이자 지금도 대형그림 등으로 오월의 정신을 기록하는 김상집 선생님을 모셨지요. 공교롭게 군 제대 직후 계엄령이 발생해 항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시민군이 되셨는데요. 당시 5.18민중항쟁 초반의 주요 구심이었던 녹두서점에서 윤상원 열사 등과 활동하셨습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1980년 5월 18일 이야기는 그보다 3일 전이었던 서울역 회군으로 거슬러갑니다. 대규모 집회를 위해 서울역에 모여있던 대학생들과 시민 약 20만명이 해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군부가 예의주시하는 상황에서 투쟁을 계속 전개했다간 더 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릴 수 있다는 일부 지도력의 판단이었지요. 그중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김상집 선생님은 당시 한발 물러났던 서울역 회군이 광주 학살의 빌미가 된 사건이라고 보셨어요. 서울역에서의 '투항' 이후에 광주를 제외한 어디에서도 싸우는 곳이 없었고, 유일하게 싸움을 이어가던 광주가 결국 군부의 목표물이 됐다는 것입니다. 한편 1987년 6월항쟁은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면서 시민들이 이기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김상집 선생님은 “만약 서울역에서 끝까지 모여 싸웠다면 군부가 광주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학살할 수 있었을까?“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선 우리가 알지 못했던 5.18민중항쟁 이전의 이야기, 어쩌면 의도적으로 숨겨지고 왜곡됐던 사건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무언가 가정한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매순간의 작은 선택과 판단이 어떤 구조적 힘 위에 놓였는지, 어떤 흐름을 만드는지, 그리고 서로 연결된 옆 생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차리며 사는 것. 그것이 옆에서 죽어가던 동지를 보며 항쟁에 함께했던 5.18 정신을 지금 여기서 계승하는 방법이구나 생각해봅니다. 동시에 이번 기행을 잘 갈무리하는 자세이자 뜻한 대로 살고 싶은 나와 우릴 아끼는 마음이구나 정리했어요.
김상집 선생님이 공안사범으로 수감 중이셨을 때 친한 형이었던 이학영 선배가 찾아와 시를 적은 쪽지를 몰래 전해줍니다. 이 시에서 5.18을 '전라민중혁명 무장봉기'로 표현한 것을 두고 김상집 선생님은 함께 수감됐던 다른 시민들과 논쟁했다고 합니다.
실패한 항쟁인데
혁명이라고 불러도 될까?
당장 사형당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혁명이라 부를 수 있냐는 것이지요. 지금은 5.18을 혁명으로 보시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그렇다”고 답하셨습니다. 5.18민중항쟁이 단 10일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1987년까지 7년간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1980년 5월에 요구하던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1987년 6월에 이뤄졌기에 이 기간을 통틀어서 보면 혁명이라고 하셨어요.
사람 한 명으로, 사건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 않지요. 오늘 내가 애쓰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때일수록 더욱 두터운 신뢰와 사귐으로 때마다 일상의 혁명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5.18민중항쟁을 통해 체념과 포기 대신 밝은 소망을 품고 끝까지 나아가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한 번의 외침이 아닌 삶 자체로 이어가는 운동을 통해 변화와 성숙의 때를 잘 맞이하고 싶습니다.
광주시민들이 마지막 항쟁까지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살피고 지켜주던 공동체성 때문이었습니다. 그 공동체성은 KSCF가 주도해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의 전남지역 구속자들이 만든 전남구속자협의회는 이후 광주•전남 운동권의 인적 연결망을 만들어 지역운동의 흐름을 새롭게 형성합니다. 한 예로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전남대 김상윤 선배님은 이후 녹두서점을 개설해 지역운동을 이어가는데요. 그분이 김상집 선생님의 친형이고, 이후 녹두서점은 5.18민중항쟁의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됩니다.
민청학련 구속자들은 이후에도 민주화운동, 농민운동, 기독교운동을 이어가며 광주의 청년, 학생, 노동자, 농민이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가고, 그 공동체성이 군부의 폭력에 무너지지 않는 5.18민중항쟁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김상집 선생님은 5.18민중항쟁 진상규명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청문회는 여러 차례 진행됐지만 여전히 국가가 공식 발표한 보고서 하나도 없다는 의미이지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5.18민중항쟁 앞에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은 여전히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데 말이지요. 광주시민들이 5.18 이전부터 옆 동지들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하며 서로 참된 관계로 살았다는 것을 떠올려봅니다. 그런 관계와 공동체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KSCF 동지들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그 뜻과 정신 일구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모셔배움이 끝나고는 전남대 KSCF 선배들이 저녁 식사를 대접해주셨어요. 5.18 당시 광주에 없었거나 일찍 빠져나왔던 케이 선배들은 어쩐지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계신 듯했습니다. 이런 자리에 마음 내어 오시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박관현 열사, 윤상원 열사를 학교 선후배, 형동생으로 기억하는 케이 선배들 보면서 5.18 광주시민들이 정말 절대공동체였음을 확인했어요. 더 조용히, 더 깊게, 그리고 더 따뜻하게 가까이 있는 이들과 평화 짓는 해원의 삶. 그런 오월의 정신 기억하며 절대공동체로 사는 우리 되길,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