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동네로 야채 장사가 옵니다.
“각종 야채가 왔어요!”
파, 마늘, 시금치, 상추... 를 트럭에 실고 조용한 산골마을을
긴장시키는 마이크 잡은 야채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입니다. 아니, 왜 이 시골에서 야채를 사란 말인가? 잘못들은 건 아닐까! “각종 야채
삽니다!”를 “팝니다!”로 잘 못 들은 건 아닐까? 귀를 새워 봅니다. 분명히 사라고 합니다. 세상천지가 밭이고 텃밭인데 눈만 돌리면 마늘밭이고
양파 밭인데 마늘을 사고, 양파를 사서 어떻게 하라고, 이 시골동네서 그런 걸 사 어떻게 하라고 사라고만 하는가? 처음엔 이유를 몰랐습니다.
관찰과 집중연구 끝에 얻은 결론은 사야겠구나! 입니다. 밭도 많고 각종 체소 밭도 많으나 시골은 연로하신 어른들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고 농사를
지을 수 있기엔 힘이 부친다는 것이 첫째의 결론이고, 그렇다면 이 많은 밭의 마늘과 파는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집안의 식구들을 위한 식탁용
재배가 아닌 시장 도매상에게 팔기위해 생산중인 대량제품이란 것이 두 번째 결론입니다. 이제는 이런 이유로 시골은 각종 야채가 더 귀해졌습니다.
그래서 야채 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을 돌며 사라고 하고, 사야만 하는 시골이 됐습니다.
옛날 같으면 집안 울타리 안에는 식탁에 오를 채소류들을 가꾸는 텃밭이 집집마다 있었고 식구들의 호미질 속에서
가지, 오이, 상추, 고추, 부추, 파, 마늘등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먼 밭에는 땅이 더 필요하거나 집중으로 재배할 감자, 고구마, 콩, 배추나
무 등이 파종되었고, 이 밭에서 생산된 것들은 식구들 먹을 것을 제외 하고는 도회지로 나가 집안 가용을 솔솔히 돕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골은 텃밭이 있어도 묵밭으로 잡초만 무성하거나 넓은 마당도 시멘트로 발라 흙을 볼 수도 없는 게 태반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밥상에 오를
야채류가 고기보다 귀해진 세상이 됐습니다. 도회지의 넘쳐나는 야채나 각종 과일은 하우스 속에서 제초약, 화학비료, 기름으로 속성 재배된
것들입니다.
시골은 도시인의 귀향처입니다.
요즘 귀농, 귀촌의 꿈으로 도시 소농학교를 다니거나 농사 교육을 받는 분들도
많아지고 이런 분들을 위한 귀농학교도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2013년 작년만 해도 3만 가구 넘게 시골로 귀농이나 귀촌하였고 그 수는 날로 늘어
날거라 합니다. 이들 귀농 초보자들은 시골에 내려와 땅에 거의 모든 작물의 씨를 뿌립니다. 마치 농업기술센터 작목반 감독처럼. 지나가시다 밥상보
같이 조금 조금씩 수많은 야채류가 심어진 밭을 보시거든 이제 ‘막 손에 흙을 묻힌 겁 없는 귀농 초보생의 텃밭이구나’ 생각하셔도 틀림이 없을
겁니다. 경험 많은 농사꾼은 이렇게 식탁보 만들듯 얼기설기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기계에 의지해 최대한 빠르고, 많은 양을 거둘 단일 작물로
승부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와 사정으로 야채를 팝니다가 아닌 각종 야채 삽니다! 가 돼버린 시골입니다.
삽니다!
산다는 마이크 소리도 들려옵니다.
뭘 산다는 것인가? 또 귀를 새워봅니다.
고물, 고장 난
세탁기, 컴퓨터, 농기계...를 산다고 합니다. 이러 것들만 산다는 게 아닙니다. 염소도 산다고 합니다. 개 삽니다! 는 내놓고 말 못합니다.
개장수 되기 싫은 까닭에. 왜 염소인가는 계속 연구와 관찰 중에 있습니다. 이런 시골에 고장 난 세탁기, 냉장고, 컴퓨터, 각종 전자제품이
그렇게도 많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대의 고물장수가 마을을 돌고 있는 것인가? 며칠 전에는 여성 고물차도 돌더군요. 중간 연구 결과는
이렇습니다. 먼저 연로한 노인 분들이 옛집을 혼자 지키며 사시다 도회지 아들, 딸집으로 마지막 몸을 의탁하기 위해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어
아끼던 세간 용품을 내놓는 경우이거나, 하늘나라 가실 때 누구도 욕심내지 않는 살림들이 주인 따라 집 밖으로 나서게 된 이유일거란 생각입니다.
또는 우습고 흐뭇한 일로 연유된 경유입니다. 어느 날 옆집 박 씨 영감네 딸이 세탁기를 새로 장만해 주었고 이를 본 김 씨 영감님이 그날 밤
전화를 걸어 "나는 필요 없다만 박 씨 딸이 이러고 저랬단다. 나는 필요 없다" 이런 이유로 김 영감님 댁으로 더 큰 세탁기가 다음날 들어와
옛날 고물 세탁기가 나왔을 거란 중간 연구 결과입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옛집을 이사람 저 사람에게 세주었고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살다가 몸만
빠져 나간 이유일 겁니다. 저도 시골집을 세 얻어 내려올 때 이 집에 남겨져 있던 엄청난 세간살이들을 며칠간 불로 태웠고 고물 산다는 고물차
목소리가 반가워 차를 불려 세운 적이 있습니다. 제발 사지 마시고 그냥 깨끗하게 다 가져 가시라 했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옷, 신발, 이불,
그릇, 미싱, 농짝, 책들. 그리고 거미줄과 먼지덩이들. 사람 살았던 흔적들이 그렇게나 많고도 많더군요.
시골집을 구하기 위해 몇
집을 둘러 볼 때도 어김없이 창고나 헛간에는 주인 잃은 살림들이 가득 먼지에 쌓여 있었습니다. 치위도 치워도 끝이 없을 사람 살았던
흔적들...그 사람 살았던 흔적을 사겠다고 고물차는 동네를 매일같이 돌고 있습니다. 사라는 것들 팔고, 사겠다는 것들 애껴야 하는데 그 반대의
시골이 됐습니다. 울타리 안에 있던 각종 야채는 귀해지고 살림들은 고물차에 가득히 실려 사람 살았던 흔적들 동네 어귀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눈 뜨면 어느새 오늘 가득 실고 떠난 고물차 십리도 못가고 돌아와 또 산다고 사겠다고 마이크 소리를 높이거나 동네 이장님 목소리가
들려 올 겁니다. 누구네 집, 몇 년 전 서울 아들네 집 간 할머니가 또 하늘로 가셨다는 방송, 고물 사요 고물 사, 야채 왔어요. 야채 와
방송
이런 소리 들리지 않은 아침 이였음 좋겠습니다.
그냥 꽃만 피고 지는 산골 이였음 좋겠습니다.
-"이 시상 많은 일 중에서
내 식구 밥해 믹이는 것은
일도 아니여“ - 어매의 그 마음인 양
순정한 밥상보
<전라도닷컴>
첫댓글 독창적이면서 논리적인 연구발표
이심전심으로 동감합니다~
오래 계신 분들은 덤덤 하겠지만 저에는 참 이상한 일이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어느 틈샘도 산들바람님을 거역못하네요....
뜸새가 겁나게 많은디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