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추일작(秋日作)
송강 정 철(松江 鄭 澈. 1536-1593)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속 빗줄기는 밤새 대나무 숲을 울리고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 풀벌레 소리 침상 가까이 가을을 알리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 어찌 머무르게 하랴
白髮不禁長(백발불금장) 백발 자라는 것은 막을 수 없네
이 시는 제목이 ‘우야(雨夜)’로 된 판본도 있다. ‘雨夜’는 비 내리는 밤이라는 뜻이다.
* 鄭澈(정철, 1536~1593) :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계함(季涵)이며 호는 송강(松江)이다.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김인후(金麟厚)와 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에게 학문을 배웠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에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서 최영경(崔永慶)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들을 추방하였다.
대구(對句)로 구성된 이 시의 제1구와 제2구는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소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얘기한 것이다.
밤중에 대숲에 후득이는 빗소리가 마음에도 서늘하였을 터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환절기임을
직감하였을 텐데, 다시 어디선가 풀벌레의 울음소리까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이렇게 소리만으로 무더웠을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할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기뻐함직도 하건만, 그리하여 그 기쁜 뜻을 담아 가을과 관계되는 좋은 일을 후속시킴직도 하건만,
시인은 이를 말하지 않고 느닷없이 흐르는 세월과 그 세월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무상감(無常感)을 얘기하였다.
가을이 와서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가는 세월이 안타깝다는 뜻이 더 크게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환절기만큼 세월이 가고 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기도 없다.
해설 참조: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