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대 성전(聖殿)
3. 티베트의 포탈라궁(宮) 히말라야 산록(山麓)의 불교국가
신비한 포탈라궁전 / 문성공주•송첸캄포왕•브리크티공주 / 티베트 지도
<1> 불안한 국제정세(國際情勢)
최근, 불안한 국제정세가 과거의 악몽(惡夢)을 되살아나게 한다.
잔인(殘忍)의 극치 무슬림 테러집단인 탈레반 일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결국 미국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거머쥐는데 떠도는 SNS 동영상을 보면 천인공노할 그들의 만행은 치를 떨게 한다.
거기에 잇달아 중국의 자치주(自州)인 티베트(Tibet)가 자주독립을 선언했다고 하는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배후가 바로 탈레반(Taliban)이라는...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거기에 아울러 우리나라의 정세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철없는 북한의 김정은은 수시로 핵실험을 하는가 하면 엄청난 양의 화학(化學)무기와 생물학(生物學) 무기도 비치하고 있다고 하니 탈레반의 정권탈취 과정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또 어떤 짓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든다.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잠시 되돌아보면 무슬림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首長)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에 의하여 미국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세계무역센터, WTC)과 미국무성(美國務省, Pentagon)이 납치된 민간 항공기에 의해 피폭(被爆)되는데 그 인명피해가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의하여 쑥대밭이 되었던 진주만(珍珠灣, Pearl Harbor) 공격 때보다도 더 많았다고 한다. 몇 년 전이었던가, 맨해튼의 피폭현장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의 추모기념물(追慕記念物)들을 나는 둘러보며 가슴이 쓰리던 기억이 새롭다.
또, 당(唐)나라는 6대 황제인 현종(玄宗 685~762)은 양귀비(楊貴妃)에 빠져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시안(西安/長安)의 여산(驪山) 밑 온천 화청지(華淸池)에 화청궁(華淸宮)을 짓고 양귀비와 노닥거리다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휘말리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데, 훗날 그 이야기를 중국 시인 백거이(白樂天)가 칠언고시(七言古詩) 120구(句) 840자(字)로 쓴 것이 바로 장한가(長恨歌)이다. 나는 2011년에 중국 시안(西安) 일대를 관광하고 화청지(華淸池)에서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이 연출한 거대한 스케일의 장한가 공연도 관람했는데 보는 내내 과거 중국의 아픈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니 밀려오는 비감(悲感)함을 지울 수가 없었던 기억도 난다.
<2> 중국의 소수민족들
중국은 한족(漢族)을 포함하여 56개 종족(種族)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좀 규모가 큰 종족들의 집단거주지 30여 곳을 자치주(自治州)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장황하여 종족 이름은 생략하고 자치주(自治州)의 숫자만 열거해 보면,
깐수성(甘肅省) 2개, 구이저우성(鬼州省) 3개, 쓰촨성(四川省) 3개,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尔自治區) 5개, 윈난성(雲南省) 8개, 지린성(吉林省) 1개, 칭하이성(靑海省) 6개, 후난성(湖南省) 1개, 후베이성(湖北省) 1개 주(州)인데 지린성(吉林省)의 자치주가 바로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沿邊朝鮮族自治州)이다. 이것을 미루어 보더라도 중국대륙은 너무나 많은 나라가 있었고, 분쟁이 난무(亂舞)했었음을 짐작케 한다.
<3> 티베트(Tibet) 약사(略史)
예전에는 티베트(Tibet)를 동양에서는 토번국(吐藩國)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티베트는 히말라야산맥을 끼고 있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강대국이었는데 AD 6세기경, 토번국(吐藩國)은 33대 왕이었던 송첸캄포(松贊干布)에 이르러 주변국들을 평정하고 전성기(全盛期)를 맞는다.
그 이전, 중국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였던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활약으로 토번을 정벌하여 안서사진절도사(安西四鎭節度使)로 임명되며, 이어 허텐국(和闐國)을 정벌하는 등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이후 토번의 세력이 강대화되면서 당(唐)에 압력을 넣어 울며 겨자 먹기로 문성공주(文成公主)를 볼모(인질)로 보내게 된다.
문성공주(文成公主)는 평민 출신으로 궁중에 들어갔는데 당(唐)의 2대 황제인 태종(太宗-李世民)의 눈에 띄어 문성공주(文成公主)로 책봉되고 후궁이 되었는데 23세 되던 해 토번의 강압으로 송첸캄포(松贊干布)의 제 2비(妃)로 보내지게 되었고, 당시 송첸캄포의 제 1비(妃)는 8년 전 먼저 맞아들인 네팔의 공주 ‘브리크티’가 있었다.
미색(美色)과 아울러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문성공주(文成公主)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티베트 왕비로 시집을 가면서 부처님(釋迦牟尼佛)을 모시고 가서 사당을 지어 모시고, 곧이어 티베트 대왕궁인 포탈라궁을 짓자고 독려하여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브리크티 제 1비가 시작하여 짓던 티베트 제1 사원인 조캉사원(大昭寺)의 건립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는데 현재 티베트 제1 성지(聖地)로 꼽히며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다.
문성공주(文成公主)는 브리크티 제1 비와 함께 불교포교에 힘써 티베트불교의 모태(母胎)가 되었음은 물론, 중국의 발전된 문화를 전파하여 티베트의 문명화(文明化)를 앞당긴 인물로 평가된다.
티베트의 옛 사원에서 발견된 1.400년 전의 고문서에서 5만 년 전에 태평양 한가운데 있었다는 전설상의 대륙 무(Mu) 대륙에 관한 기록도 있다고 하니 당시 토번 왕국의 문화도 상당히 발전했던 모양이다. 당시의 티베트 영토는 지금 중국의 칭하이성(靑海省)과 쓰촨성(四川省)까지 포함한 엄청난 면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언제나 티베트를 중국의 땅 일부(一部)로 보고 그들이 독립국임을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었다니 티베트의 비극이라고 할 것이다.
<4> 티베트(Tibet)의 비극
1949년, 중국은 마오저뚱(毛澤東)이 이끄는 공산주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에 의해 통일이 되면서 마오저뚱(毛澤東)은 티베트를 중국의 영토 일부로 보고 1950년 10월,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6.25)에 몰려있을 때, 티베트에 진입하여 기존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합병(合倂)에 성공한다.
1954년, 티베트의 종교(티베트 불교) 지도자였던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지방정부(地方政府) 주석(主席)으로 공식화되자 중국은 서둘러 인도와 협상을 통해서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강제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1959년 3월에 티베트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 중국 정부군과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게 되자,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다름살라(Dharmsala)로 피신하여 망명정부(亡命政府)를 세우게 되는데 암암리에 인도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후 인도와 중국의 사이가 껄끄러워지는 계기가 된다. 중국은 인정하지 않지만, 티베트 망명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이때 티베트인 희생자가 8만 6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티베트 합병과정에서 벌어진 숱한 티베트 승려들의 무자비한 살상행위 등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59년 폭동 때에도 신성한 사찰이나 포탈라궁에서도 서슴없는 살상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특히 가슴 아픈 사실은 이후, 중국은 지속적(持續的)으로 비구니(比丘尼:女僧)들을 집단으로 공공연히 성폭행(性暴行)하여 불결한 몸으로 부처님을 모실 수 없어 결국 승복을 벗고 환속(還屬)한 여성 스님들도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 정부에서 경제활동에 나서야 할 여성들은 적고, 여인들이 중(比丘尼)이 되어 수도(修道)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끌어내어 경제활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중국은 얼토당토않은 죄목을 씌워 모진 고문을 하여 정신을 잃게 하기도 하고, 멀쩡한 여승들을 잡아와 약물을 이용하여 정신을 잃게 하고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또, 티베트 문화말살(文化抹殺) 정책도 이루어져 티베트어 사용금지, 모든 간행물(교과서 포함)에 티베트문자 사용금지 등도 시행하다가 국제 여론에 밀려 다시 일부는 허용하기도 하고....
2008년 3월, 독립운동 49주년이 되던 해에도 또다시 승려(修道僧) 등 600여 명이 봉기(蜂起)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중앙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다가 80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고 한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장(首長)은 티베트불교의 종정(宗正) 달라이라마인데 현 달라이라마는 제14대 달라이라마로 세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실제로 현대 세계의 종교 지도자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가 인도(印度) 다름살라(Dharmsala)에 망명 중인 달라이라마(首長)라고 한다.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합병된 후,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름살라로 가기 위해 중국 공안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출발하여 보름 이상이나 걸리는 히말라야 설산(雪山)을 넘다가 수많은 동사자(凍死者)가 나오기도 했다는 슬픈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