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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5권
23.8. 간탐연(慳貪緣)
대개 중생들의 미혹의 병은 나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그 단서가 되고 평범한 품류들의 삿된 미혹은 간탐(慳貪)이 그 근본이 된다.
그런 까닭에 선(善)은 털처럼 가볍고 악(惡)은 산처럼 무거우며, 복은 봄에 얼음처럼 적고 빈곤함은 가을 비처럼 많다.
육정(六情 : 六根)의 그물은 벗어나기 쉽지 않고 삼독(三毒 : 貪ㆍ瞋ㆍ癡)의 나루는 건널 방법이 전혀 없다.
몸이 무거워 항상 잠기는 것은 비유하면 강물 속의 고기와 같고, 날개 치며 날고자 하나 그 어려움은 천상(天上)의 새와 같다.
그리하여 계속되는 빈곤함은 다투어 핍박을 더하게 하고 면면히 이어지는 고통은 다투어 손해를 초래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날아다니는 부나비[蛾]가 불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타버리는 것과 같고
누에가 고치를 만들 적에 다른 것이 얽어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진실로 아끼고 탐내는 장애로 말미암아 죄를 받아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것이요,
보시는 바로 부자가 되는 원인으로서 항상 풍부하고 즐거움을 부르는 것이다.
『분별업보경(分別業報經)』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언제나 즐겁게 지혜를 닦으면서
보시를 실천하지 않으면
태어날 적마다 총명하고 뛰어나긴 하지만
가난하고 궁색하여 재산이라곤 없게 된다.
오로지 보시를 실천하는 것만 좋아하고
지혜를 닦지 않으면
태어날 적마다 큰 재산을 얻게 되지만
어리석고 암둔하여 지혜와 견해가 없게 된다.
보시와 지혜 이 두 가지를 모두 닦으면
태어나는 생마다 지혜도 있고 재산도 있겠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닦지 않으면
오랜 세월 동안 가난하고 또한 암둔하게 된다.
또 『섭론(攝論)』에서 말하였다.
“간탐하고 아끼는 것은 바로 많은 재물의 장애가 되고 질투는 곧 존귀(尊貴)한 것의 장애가 된다.
또 중생이 탐욕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여색과 재물보다 더한 것은 없다.”
첫 번째 여색을 사랑하면 허물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 앞에서 이미 진술한 것과 같으나 그 뜻은 같지 않으니, 지금 여기에서 다시 대략 설명할까 한다.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나찰(羅刹)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그런데 이 나찰의 딸이 아이를 낳기만 하면 낳는 대로 다 잡아먹고 나중에는 그 남편까지 잡아먹은 것과 같다.
나찰의 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여색을 탐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도 선근(善根)의 아들을 낳으면 낳는 대로 따라 다 잡아먹고 선근을 가진 아이를 다 잡아먹으면 다시 중생을 잡아먹으며, 그들로 하여금 지옥ㆍ축생ㆍ아귀의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성품이 좋은 꽃을 사랑하여 꽃 줄기에 숨어 있는 독사가 큰 걱정을 끼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곧 앞으로 나아가 그 꽃을 꺾는다.
그 꽃을 꺾다가 독사에 물려 목숨을 마치는 것처럼 일체 범부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다섯 가지 탐욕의 꽃을 탐하다 이 애욕의 독사가 걱정을 끼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곧 받아 취한다.
그렇게 받아 취하다가 곧 애욕의 독에 쏘여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재물은 곧 갖가지 번뇌와 죄업의 인연이 되지만 또 지계(持戒)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 동의 갖가지 선법(善法)은 바로 열반(涅槃)의 인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물도 오히려 스스로 버려야 하겠거늘 더구나 좋은 복밭에 보시하는 것이야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어떤 형제 두 사람의 일과 같다.
옛날 어떤 두 형제가 각각 열근씩의 금을 가지고 길을 가다가 도중에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자 형이 생각하였다.
‘나는 어째서 동생을 죽여 버리고 동생의 금을 빼앗지 못하는가? 이 넓은 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이 때 동생도 또 형을 죽이고 저 금을 빼앗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형제는 각각 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주고 받는 말이나 바라보는 눈길이 서로 달랐다.
그러다가 형제는 곧 다시 스스로 깨닫고는 후회하는 마음을 내었다.
‘우리들은 사람도 아니다. 금수(禽獸)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이면서 조그만 금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다니….’
형제가 함께 샘물 가에 이르자 형이 먼저 금을 물 속에 던져 버리니,
동생이 말하였다.
‘잘했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우 역시 물 속에 금을 던져 버리니, 형이 다시 말하였다.
‘잘했다. 정말 잘했다.’
형제는 서로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에 잘했다는 말을 했는가?’
각자 서로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 금 때문에 착하지 못한 마음을 내어 상대방을 위해(危害)하려고 했었는데, 이제 그 금덩어리를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잘했다〉고 말한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이 각각 그러하였으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항상 마땅히 악한 마음과 금 따위는 스스로 버려야 한다.”
또 『대장엄론(大藏嚴論)』에서 말하였다.
“나는 일찍이 들었다. 사위국(舍衞國)에서 부처님께서 아난(阿難)과 함께 넓은 들판을 가시다가 어느 밭 가에서 땅 속에 묻혀 있던 보물[伏藏]을 발견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큰 독사가 묻혀 있구나.’
아난도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것은 사나운 독사입니다.’
그 때 그 밭 가운데에서 어떤 밭갈던 농부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마땅히 가서 보아야겠다. 저 사문들이 무엇을 가지고 독사라고 말하였는지.’
그 농부는 곧 그곳으로 갔다가 순금 덩어리를 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문들이 말한 독사란 것이 바로 이 좋은 금덩어리였었구나.’
그리고는 그 금을 집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간직해두었다.
그는 과거에는 가난하여 옷과 음식도 공급받지 못했었는데, 그 금덩어리를 얻었기 때문에 아주 큰 부자로 바뀌어 의복을 마음대로 입고 음식도 마음대로 먹고 하였다.
왕가(王家)의 금사(禁司 : 현재의 경찰)는 그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을 괴상하게 여기고 조사하여 그 재산을 몰수하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그는 먼저 얻었던 금 덩어리를 다 쓰고서도 오히려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장차 사령까지 받게 되자,
그 사람은 큰 소리로 말하였다.
‘독사 아난, 악한 독사 세존.’
곁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그 사실을 왕에게 그대로 보고하였다.
왕이 그 사람을 불러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독사 아난, 악한 독사 세존〉이라고 큰 소리로 외쳐댔느냐?’
그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어제 밭에서 파종을 하고 있다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 악한 독사〉라고 하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제서야 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를 놓아주었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설 때였다.
사위성(舍衞城)에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바제(婆提)였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큰 부자로서 재산이 한량없이 많았고, 금과 은 또한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의 집은 비록 부자였으나 아끼고 인색하여 재물을 지키느라고 입지도 않고 먹지도 않아 음식과 의복은 매우 누추하고 거칠었으며,
또한 처자ㆍ권속ㆍ노비ㆍ복종(僕從)ㆍ친구ㆍ지식(知識), 그리고 여러 사문 등에게도 전혀 베풀어 주지 않았으며,
또한 삿된 견해를 일으켜 선근(善根)을 다 끊어버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식이 없어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엔 소유한 재산을 모두 관청에서 몰수하였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은 스스로 가서 그의 재산을 다 몰수한 뒤에 부처님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제장자는 오늘 목숨을 마친 뒤에 어느 곳에 태어났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바제장자는 옛 복은 이미 다하였고 새로운 업은 아직 짓지 않았으며 삿된 견해를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모든 선근을 다 끊었으므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제곡(啼哭)지옥에 태어나 지금 그곳에 있습니다.’
바사닉왕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제장자는 옛날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부잣집에 태어나 살았으며,
또 무슨 악을 지었기에 그렇게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이렇게 지극히 부유한 즐거움도 누리지 못했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구원겁(久遠劫) 전에 가섭(迦葉)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그 장자는 사위국 어떤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그 때 어떤 벽지불(辟支佛)이 그의 집에 나아가 걸식하려고 하였는데 그 때 그 장자는 곧 벽지불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고, 벽지불은 그 음식을 얻어 먹고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장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서원을 했습니다.
‘이런 선근을 지녀서 저로 하여금 세상마다 태어나게 되면 부디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말고 항상 재물과 보배가 많게 하소서.’
그러나 장자는 보시하고 나서 다시 후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아까 그 음식을 노비에게 주고, 저 까까머리 사문(沙門)에게는 주지 말았어야 했다.’
부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바제장자는 과거에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하고 발원한 공덕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재산과 보물이 많아 모자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 뒤에 다시 보시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그는 태어나는 곳마다 비록 부귀하기는 하였으나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이렇게 지극히 부유한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였으며, 그저 아끼고 간탐하여 재산을 지키느라고 스스로는 입고 먹지도 못하였던 것입니다.
또 처자와 그 권속들에게도 주지 않았고, 친구와 지식(知識)에게도 주지 않았으며 여러 사문과 바라문 등에게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인연을 듣고 만약 재물이 있으면 마땅히 보시하되 아끼고 인색하지 말아야만 하느니라.”
보시할 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제 손으로 받들어 주고 보시한 뒤에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나니, 능히 이와 같이 보시하면 한량없고 가이없는 큰 과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이다. 사위국에 어떤 장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난타(難陀)였다.
그는 큰 부자여서 재물이 많았으며 금ㆍ은 등 진귀한 보배와 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하인ㆍ의복ㆍ장식품ㆍ농토가 한량없이 많아 한 나라 안에 어떤 부자도 그보다 더 큰 부자는 없었다.
그렇지만 비록 그가 큰 부자이기는 했으나 신심(信心)이 없어서 간탐(慳貪)하고 질투하여 대문을 일곱 겹으로 만들고 각각 문지기를 두어 칙명을 내렸다.
‘어떤 사람이든 걸식하러 오거든 한 사람도 들이지 말라.’
집 뜰의 상공에는 철사로 성긴 그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은 새가 날아와서 곡식을 먹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으며, 사방 벽 담장 밑은 흰 찰흙으로 빈틈없이 발랐는데 그것은 쥐들이 구멍을 뚫고 들어와서 재물을 손상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오직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전단향(樹檀香)이었다.
그가 임종할 때에 아들에게 분부하였다.
‘내가 병이 들어 틀림없이 죽을 것 같다.
내가 만약 죽은 뒤에라도 우리 집에 간직하고 있는 재물을 함부로 써서 줄게 하지 말라.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 아무에게도 보시하지 말고 만약 결식하는 아이가 오더라도 한 푼도 주지 말라.
그렇게 하면 우리 집 재물은 일곱 대까지 넉넉히 유지할 것이다.’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에 다시 사위국 전다라(旃陀羅)의 집 장님 어머니의 뱃 속에 잉태되어, 그 또한 장님으로 태어나서 볼 수가 없었다.
장님 어머니가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사내 아이를 낳으면 나는 장님이라서 볼 수 없으니, 그 아이에게나 의지해야하겠다.’
그러나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장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갑절이나 더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게송을 읊었다.
아들도 눈이 멀었고 나 또한 눈이 멀었으니
우리 둘은 다 두 눈이 없다네.
이렇게 쇠약하고 쓸모없는 물건을 만나다니
나의 근심과 괴로움만 더할 뿐이네.
그 때 눈 먼 어머니가 아이를 잘 기르니, 나이가 여덟ㆍ아홉 살쯤 되자 혼자서도 다닐 수가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지팡이 하나와 식기 한 벌을 주면서 타일렀다.
‘너는 스스로 걸식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라.
꼭 여기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나도 또한 눈이 없으나 나 역시 걸식하면서 남은 목숨을 보존하겠다.’
이 눈 먼 아이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하다가 마침내 자꾸 가서 전단향의 집에 이르렀다. 그 집 문 밖에 서서 눈 먼 거지 아이라고 크게 외쳐댔다.
그 때 문을 지키던 사람이 성을 내면서 아이를 붙잡아 깊은 구덩이로 던져버렸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왼쪽 팔이 부러졌다.
또 그 아이의 머리를 때리고 구걸하여 얻은 음식을 모두 땅바닥에 버렸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매우 가없고 불쌍하게 여겨 달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눈 먼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기어 나와 지팡이를 짚고 눈먼 아들이 있는 곳에 가서 아이를 안아 무릎 위에 앉히고 그 아이에게 말하였다.
‘너에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이런 고통과 액난을 당한단 말이냐?’
아들이 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아까 전단향의 집 문 앞에 이르러 문 밖에서 구걸하다가 곧 어떤 악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와 같이 마구 때렸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때 그 사실을 아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재앙이다, 재앙이야. 난타장자는 목숨을 마치고 저 전다라의 집에 장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두 눈이 모두 멀어 볼 수 없었느니라.
그는 옛날에 지었던 업으로 한량없는 부호(富豪)가 되어 코끼리와 말과 칠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지금은 또 그것을 전혀 쓰지 못하는구나.
그것은 다 간탐 때문에 이 장님의 과보를 받은 것이니,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아비지옥(阿鼻地獄)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오후가 되자 비구 대중들과 더불어 성 안으로 들어가 인민들에게 둘러싸인 채 전단향의 집 문 앞의 그 장님 어린 아이가 있는 장소로 가셨다.
그 때 전단향은 부처님께서 문 밖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문 밖에 나와서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이 모이신 것을 아시고 또 전단을 보시고는 그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간탐과 질투는 한량없는 죄를 받는다.’
또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보시를 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을 것이고, 중생들로 하여금 유위(有爲)를 여의고 무위(無爲)의 도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전단향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하여 주시고자 하여 그 장님 아이에게 물으셨다.
‘너는 바로 난타(難陀)장자가 아니더냐?’
어린 아이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난타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 문답하자 대중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난타장자여, 마침내 이런 몸을 받으셨구려.’
그 때 전단향은 이런 일을 보고 또 듣고 슬피 울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구제해 주기를 바라고 죄의 뿌리를 뽑아 주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부처님과 스님들께 내일 자신의 집에서 공양을 받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튿날 부처님께서 식사를 마치시고 그를 위해 미묘한 법을 설하시자, 그 때 전단향은 수다원과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누구든지 재물을 쌓아두고도 입을 것에 자유롭지 못하고 게다가 보시까지 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가운데서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까닮에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보시를 실천함으로써 나고 죽음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부디 인색하고 간탐함으로써 끝없는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야하느니라.’”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셨을 때에 장로 가류타이(迦留陀夷)가 있었는데, 그는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증득하고서 발우를 들고 성 안에 틀어가 걸식하였다.
어떤 바라문(婆羅門)의 집에 이르렀을 적에 주인은 집 안에 없었고 그 부인 혼자서 문을 닫은 채 먹을 만들고 있었다.
가류타이비구는 곧 선정에 들어가 신통(神通)을 일으켜 문밖에 나아가 땅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 집 뜰에서 솟아나와 손가락을 튀겼다.
부인이 돌아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이 어느 곳으로 들어왔을까?
이 사람은 틀림없이 이 떡이 탐나서 여 기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가류타이에게 말하였다.
‘설령 눈을 뺀다고 하더라도 나는 결코 이 떡을 주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가류타이는 신통의 힘으로써 두 눈을 다 빼 버렸다.
부인은 다시 생각하였다.
‘설사 빠진 눈알이 밥그릇처럼 되더라도 나 또한 이 먹만은 결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곧 그 눈이 변하여 밥그릇처럼 되어버렸다.
부인은 다시 생각하였다.
‘설사 내 앞에서 거꾸로 선다 하더라도 나는 마찬가지로 이 떡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곧 그의 앞에서 거꾸로 섰다.
부인은 다시 생각하였다.
‘설령 당신이 만약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역시 이 떡만은 주지 않을 것이다.’
가류타이는 곧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 심상(心想)이 다 없어져서 아무런 지각(知覺)도 없이 되어 버렸다.
그 때 바라문의 부인이 붙잡고 잡아당겨 보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부인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항상 바사닉왕(波斯匿王)의 궁전을 다녔었고 바로 말리(末利)부인의 스승이기도 하다.
만약 이 비구가 우리 집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나면 우리 집은 크게 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곧 가류타이비구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다시 살아나기만 한다면 나는 당신이 구하는 이 떡 한 개를 드리겠습니다.’
가류타이가 곧 선정에서 나왔다.
부인이 그에게 떡을 주려고 살펴보니, 먼저 구운 떡은 좋은 것이라 아깝게 여겨 주지 않고 다시 그릇 가에 묻은 밀가루를 긁어모아 조그만 떡 한 개를 구웠다.
그런데 그것은 먼저 것보다 더 좋았으므로 다시 먼저 구운 것을 주려고 떡 한 개를 집어들자 다른 것까지 다 한데 달라붙었다.
가류타이는 말하였다.
‘자매여, 내게 얼마나 주려고 하십니까?’
그래서 떡 네 개를 집어들고 그에게 갖다주려고 하자 가류타이가 말하였다.
‘나는 이 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저 기원(祇桓)에 있는 스님들께 드리시오.’
이 부인은 전생에 이미 선근(善根)을 심었었기 때문에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정말로 떡을 탐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나를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에 와서 빌었을 뿐이다.’
그리고는 곧 그 떡 상자를 가지고 기원정사로 가서 여러 스님들께 보시하고 가류타이 앞에 앉았다. 가류타이는 그 인연을 관(觀)하고 부인을 위해 미묘한 법을 설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곧 그 자리에서 법안(法眼)이 깨끗해졌고 우바이(優婆夷)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곧 가류타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가류타이가 그를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자, 그는 깨끗한 법안을 증득하고 우바새(優婆塞)가 되어 마땅히 재력(財力)을 다해 아사리(阿闍梨)에게 공양하고 나아가 그 몸이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명하여 그 공양을 끊지 말라고 하였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迦蘭陀) 죽림(竹林)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때 목련(目連)이 어떤 나무 밑에 있는 한 아귀(餓鬼)를 보았다. 그 아귀의 몸은 불타오르는 기둥과 같고 배는 큰 산과 같은데 목구멍은 가느다란 바늘과 같으며, 털은 송곳이나 칼처럼 그 몸을 얽어매고 찔러서 온 지절(支節) 사이가 다 불에 탔다.
너무도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고 입술이 타고 입이 말라 개천이나 우물로 달려가면 물은 변하여 다 말라 버렸고 설령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 그 몸에 떨어지더라도 모두 변하여 불이 되고 말았다.
목련이 곧 그 업연(業緣)에 대하여 물었다.
아귀가 대답하였다.
‘나는 목이 너무 말라 당신에게 대답할 수조차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 보십시오.’
목련이 곧바로 부처님께 나아가 앞에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말씀드리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아귀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러한 고뇌(苦惱)를 받습니까?’
그 때 세존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해설해 주겠노라. 이 현 겁(賢劫) 중에 바라내국(波羅奈國)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는데, 그 부처님의 명호는 가섭(迦葉)이셨느니라.
그 때 어떤 한 사문(沙門)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뜨거워 목이 몹시 말랐었다.
그 때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의 이름은 악견(惡見)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는데, 그 스님이 거기로 가서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자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설사 당신이 목이 말라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끝내 물을 주지 않을 것이며 내 물이 줄어들 것이므로 가져 가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유고 그 때의 사문은 물을 얻어 마시지도 못한 채 그냥 길을 떠났다.
그 때의 그 여인은 마침내 더욱 간탐하는 마음이 생겨 어떤 걸인이 와도 끝내 물을 주지 않았다.
그 후 그녀는 목숨을 마치고 아귀의 세계에 떨어져서 그 업연 때문에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물을 주지 않았던 그 여자가 바로 지금의 이 아귀이니라.’
부처님께서 악한 소견에 대한 인연을 말씀하실 때에 비구들은 다 간탐하는 업을 버리고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를 증득하였는데, 어떤 이는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실천하였다.”
또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아라한인 승가야사(僧伽耶舍)는 큰 지혜가 있고 언사(言辭)가 맑고 또한 달변이었다.
그는 비록 일찍이 출가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도적(道述 : 須陀洹)을 증득하지는 못했다.
큰 바닷가를 거닐다가 어떤 궁전을 보았는데, 그 궁전은 칠보(七寶)로 장엄하여 광명이 특이하면서도 빼어났다.
승가야사가 식사할 때가 되자 곧 그 궁전으로 가서 게송을 읊어 밥을 빌었다.
배고픈 것이 가장 큰 병이요
모든 행(行) 중에 제일 고통스럽다.
이와 같은 법을 아는 사람이면
열반(涅槃)의 도를 증득할 수 있으리.
이 때 그 집 주인이 나와서 공손히 맞아들여 요를 깔고 앉으라고 하였다. 야사는 그 집 안에 있던 두 아귀를 보았는데, 그들은 벌거벗은 채로 몸이 검게 여위었으며 배고프고 목말라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몸과 머리엔 쇠사슬을 찬 채 각각 하나씩의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또 하나의 발우에는 향기로운 밥이 가득 담겨져 있었고 물이 가득 담긴 물병이 그 곁에 놓여 있었다.
그 때 집 주인은 그 밥을 가져다가 비구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대덕 스님, 부디 이 밥을 저 아귀에게는 주지 마십시오.’
그 때 비구(比丘 : 耶舍)는 그 아귀들이 배고파서 고달퍼하는 것을 보고 곧 밥을 조금 덜어서 그들에게 주었다. 아귀가 그것을 받아 먹자 곧 피고름을 토해내어 온 땅에 두루 흘러 그 궁전을 더럽혔다.
그 때 비구는 괴상하게 여겨 집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귀신은 무슨 인연으로 이런 죄보(罪報)를 받습니까?’
집 주인이 대답하였다.
‘이 귀신은 전생에 하나는 내 자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이의 아내였습니다.
저는 옛날에 보시를 많이 하여 온갖 공덕을 지었었으나, 저들 부부는 늘 성을 잘 내고 무엇이든 아까워하였었습니다. 저는 자주 그들을 타일렀으나 저들은 전혀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 서원(誓願) 했습니다.
〈이와 같은 죄업으로 틀림없이 악한 과보를 받을 것이요,
만약 그 죄를 받을 때에는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이런 고뇌(苦惱)를 받는 것입니다.’
또 조금 더 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어느 당각전(堂閣殿)이 갖가지 기묘한 것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여러 스님들이 가득 있었는데 혹은 경행(經行)을 하기도 하고 혹은 참선[禪思]을 하기도 하였다.
공양할 때가 되어 건추(揵椎)를 울리자 식당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그러나 공양을 막 마치려고 하였을 때 맛있는 음식들은 다 피고름으로 변하였고 곧 발우들을 가지고서는 모두 서로를 때려서 스님들의 머리와 얼굴이 깨지고 터지는 바람에 붐 위에 피가 흘러 내려 더러웠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는 음식을 아꼈다가 지금 이런 고통을 받는가?’
야사(耶舍)는 그들 앞으로 다가가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장로님, 우리들은 전생에 가섭부처님 때에 다 함께 한곳에 살면서 나그네 비구가 오면 모두 함께 화를 내면서 인색하게 굴며 음식을 감추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지금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간탐하기 즐거워하는 것을 도덕(道德)이라고 속이고
인색하고 각박하게 구는 것을 기업(伎業)으로 여겼네.
갖가지로 교묘하게 속일 생각만 했고
이익만을 구하는 마음 천 겹으로 둘러싸였었네.
지옥 속에 들어가 온갖 죄를 받으면서도
그 습기(習氣) 아직도 실천하고 있어서
교도(交刀 : 가위)로 살을 다 베어내니
백골(白骨)만 서로 연이어져 있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이 탐욕만 위하고 방자하게 굴었기 때문에
악한 세계에 더욱더 빠져 들어갔네.
그 세계에서 죄가 끝나 사람 세계에 태어나서도
남은 버릇 아직까지 그 몸에 배어 있네.
항상 승냥이와 이리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누가 그를 즐거워하고 가엾게 볼까나.
평생토록 이런 이치 깨닫지 못하면
완고하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웃음거리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