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대숲에 관한 시모음 1)
대나무 /김승기
조금 더 참아야 한다 꽃을 피우면 죽어야 하는 생명 전설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섬찍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날 어떤 변고가 일고 재앙이 덮칠지 모르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한 할 일이 많은 지금 침묵의 눈빛으로 늘 푸른 사랑으로 그대 앞에 서 있어야 할 뿐 아직은 꽃 피울 때 아니다
온 누리 가득 꽃밭을 가꾸는 하늘에 올리는 기도 풀리는 날 한낱 전설이었음을 말하리라 행복한 외로움으로 온몸을 떨었노라고 웃으면서 꽃으로 말하리라
※ 왕대 : 벼과의 상록성 활엽 목본 식물로 중국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집 근처에 재배하거나 또는 울타리로 심는다. 줄기는 녹색에서 황록색으로 변하고, 나무의 속이 텅 비어 있으며, 마디가 있어 마디마다 얇은 종잇장 같은 막으로 형성되어 있다. 잎은 넓은 피침형으로 가지 끝에 모여 달린다. 6~7월에 황록색의 꽃이 피고, 10~11월에 열매가 익는다. 5월에 돋아나는 죽순은 식용하고, 줄기는 죽세공품으로 이용하며, 한방에서 어린 순을「죽순(竹筍)」이라 하고, 잎을「죽엽(竹葉))」이라 하며, 진액을「죽력(竹瀝)」이라 하고, 겉껍질을 벗긴 후의 섬유질(속껍질)을「죽여(竹茹)」라 하며, 열매를「죽실(竹實)」이라 하여 약재로 쓴다. 일생을 통하여 60년 만에 단 한 번의 꽃이 피며, 꽃이 핀 다음에는 죽는 식물이다.
대나무는 /박만식
비어 있음으로 그 비어 있음의 고요함으로 댓잎의 수런거림을 다독이며 빨리 자람과 늦게 베어짐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꽃들의 배후에서 울음을 키우며 퍼런 달빛 벼르던 자객의 칼집이 되고 북망산천의 지팡이가 되어 바람 불고 비 올 적마다 괴로움의 마디 놀라움의 마디가 된다
밤이면 머리채를 붙잡고 뒤엉켜 있지만 서로 해코지하지 않는다 흙담과 장독대에 기대어 맨드라미도 보고 우물도 들여다보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이를 먹는 매끈한 삶인지라 이끼도 끼지 않는다
대숲에 서면 /정지원
사는 일이 꿈을 찢기고 지우는 길이었다면 서슴없이 겨울 대숲으로 오라 시퍼런 댓잎 사이로 불어오는 짱짱한 칼바람이 공공하게 언 몸뚱이를 후려치거든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라 연하고 부드럽게 올라오는 희망으로 제 속의 더러운 욕망을 모두 비워야 단단한 정신으로 울울창창 하늘을 찌르리니 굽고 뒤틀린 삶이 맨 처음 푸르게 꿈꾸며 찾던 길이 아니었다면 그대, 폭설이 세상을 뒤덮는 날 주저 말고 대숲으로 오라
대숲에 서서 /신석정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적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대나무 /배종대
속절없이 바람에 흔들린다고 말하지 말라
가없는 세월 마디마디 속 비우고 흔들리며 산다는 것이 내속에 들어온 생명 번데기 허물을 벗은 것
빈 것이 찬 것이며 찬 것이 빈 것인것을 비워있다 누워만 있으랴!
흔들림은 바람때문만이 아닐 진데 그렇다고 흔들린다고 말하질 말라
대숲에서 /상천 권병대
대숲에 들어서면 시선이 온통 하늘을 향한다.
걸어온 길이 멀거나 걸어가야 할 길이 남아 있어도 시선은 온통 하늘로만 간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대나무의 기개가 대견스럽다.
한 번쯤 굽힐 수도 있을 텐데 단 한 번도 굽히지 않은 올곧은 성정
대숲에서 저 하늘 끝까지 곧게 나아갈 이유를 찾은 날이다.
대나무 돗자리 /오정방
아름다운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나 화씨 90도를 훌쩍 넘어 100도를 육박하는 더운 여름 날씨 거실에 깔린 대나무 돗자리에 누워 막바지 한 여름을 즐기고 있다 등판은 물론 뱃속까지 다 시원하다 천정에선 세 날개 선풍기가 같은 방향으로 쉴새없이 돌아가고
4반세기 전 미국으로 이민 올 때에 10만원도 안주고 구입한 이 돗자리 죽竹부인은 마련하지 못했어도 이것 하나는 제대로 장만한듯 하다 해마다 뜨거운 여름철이면 융탄자 위에다가 이것을 펼쳐 놓고 그 위에 나 보란 듯이 벌렁 누워 시원한 고향산천을 주유하고 있다
대나무 숲에서 /박이도
대나무 두어 그루가 추위를 탔을까 외롭다 속삭이며 양지녘으로 옮아 서니 이웃에서 하나 둘 모여 살데 숲을 이루고 대통에 꿈을 키우며 살데 센 바람은 걸러내고 여린 미풍은 구름으로 풀어내며 대통으로 산소를 뿜어내데
때로는 쏴- 먼 바다의 함성을 지르듯 속을 비우고 올곧게 일어나라, 올곧게 일어나라 天聲을 지르데 아- 크낙한 우레소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서면 나는 세월을 뛰어넘어요 처음과 끝이 없는 永遠을 살아요
대나무 /권달용
곧은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려도 중심의 대 하나로 산다. 많은 가지들 중에서 중심의 대 하나는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많은 가지들이 옆으로 또 가지를 뻗는다. 그러나 모든 곤란을 마디로 맺으면서 대나무는 중심의 대 하나로 산다. 대숲바람을 키운다.
대나무를 보며 /시앓이 긴정석
욕심이 빈 가슴으로 살고 싶은데 속빈 대나무를 바람이 흔들듯 세상사가 흔들어 댄다
바람을 탓한들 누구를 탓한들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말없이 흔들리고 바르게 그 자리로 돌아오자
삶은 삶다워야 하고 사랑은 사랑다워야 하고
정직함이 삶에 뿌리 내리게 하고 성실함으로 신뢰가 싹트게 해 삶의 중심을 잡아가자
진실함으로 삶의 수평을 잡고 믿음직함으로 삶의 기초를 세우자
흔드는 바람이 잔잔해지는 날에 삶이 꽃피우며 아름다운 열매가 와주리
대나무 /이재봉
숲 속을 걸어가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대나무를 발견했다 그런데도 꼿꼿이 서 있는 게 아닌가 흙을 비집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뿌리와 뿌리가 서로 얽혀있었다 작은 대나무, 큰 대나무, 부러진 대나무들이 뿌리를 서로 공유하며 푸르른 대밭을 이루고 있었다
대나무 돗자리 /오정방
아름다운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나 화씨 90도를 훌쩍 넘어 100도를 육박하는 더운 여름 날씨 거실에 깔린 대나무 돗자리에 누워 막바지 한 여름을 즐기고 있다 등판은 물론 뱃속까지 다 시원하다 천정에선 세 날개 선풍기가 같은 방향으로 쉴새없이 돌아가고
4반세기 전 미국으로 이민 올 때에 10만원도 안주고 구입한 이 돗자리 죽竹부인은 마련하지 못했어도 이것 하나는 제대로 장만한듯 하다 해마다 뜨거운 여름철이면 융탄자 위에다가 이것을 펼쳐 놓고 그 위에 나 보란 듯이 벌렁 누워 시원한 고향산천을 주유하고 있다
대숲 흔드는 소리 /안수동
님이 보고 싶어 눈물나는 날에는 마음 안에 풍경소리 울립니다
바람 들면 드는 쪽으로 바람 날면 나는 쪽으로 고인 그리움 흔들려 제 몸 부딪혀 가만히 웁니다
해져서 뜬 자리 찾아 가는 밤이면 흐르고 흘러도 마르지 않고 채워 오는 강물 소리 되어서
님의 처마 끝에 매달려 행여나 잊고 잠든 님 깨울까 대숲을 흔들어 봅니다.
대나무 숲 길 /己貞 옥윤정
그 시절이 그리워 다시 안아 보는 순간 비워 놓은 가슴에서 나는 소리가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마디마다 걸어놓고 갔었지 추억을 한 곳 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뒤도 옆도 돌아 보지 않고 기다리는 그리움이 하늘에 걸렀네
너와 같이 걸어 보는 추억의 길 곧게 뻗은 가지 끝에 보이는 별빛은 해님의 선물이런가
하청 앞 바다 질투의 속풀이 철석 거리는 마음 이별에 서걱거리는 널 위해 하늘 높이 사랑을 매달았네
대나무처럼 /이산하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날카로운 창이 되고 끝을 살짝 구부리면 밭을 매는 호미가 되고 몸통에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고 바람 불어 흔들리면 안을 비워 더욱 단단해지고 그리하여 60년 만에 처음으로 단 한 번 꽃을 피운 다음 숨을 딱 끊어버리는 그런 대나무가 되고 싶다
대나무 /제산 김대식
나무가 아니고 풀이라면 어떠리. 풀이 아니고 나무라면 어떠리. 무엇보다 매끈하고 단단하면 되는 거지
언제나 속 비우고 욕심 없이 사는 삶 곧게 살면 되는 거지, 옳게 살면 되는 거지. 하늘 향해 부끄럼 없는 삶이면 족하지.
살면서 꽃피운 날 기억조차 없지마는 마디마디 삶의 고비 굳세게 넘겨왔지 살면서 소망하나 건강하면 되는 거지
이 세상 무얼 하던 혼자서는 힘 드는 법 더불어 사는 삶, 함께하면 되는 거지. 늘 푸른 희망 안고 바르게 살면 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