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통합
삼림 파괴로 피니언 소나무의 열매가 식량원에서 사라졌고,
차코의 건축물에서 피니언 소나무 들보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판단하건대
사람들은 다른목재를 구해야 했다
차코 아나사지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숲, 정확히 말하면 거의 80킬로미터 떨어지고
차코캐니언보다 해발 이 300미터 정도가 높은 산까지 기어 올라가
폰테로사 소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끌 만한 가축이 없었다.
따라서 320킬로그램에 가까운 통나무 20만개를 산에서 끌고 내려와
다시 차코캐니언까지 먼 거리를 끌고 가야 했다. 순전히 인력으로!
홀리오의 제자, 네이선 잉글리시 (nATHAN eNGLISH)는
훌리오, 제프 딘. 제이 케이드 등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연구에서,
차코 아나사지 사람들이 큰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를 어디에서 구했는지 한층 더 정확히 밝혀냈다.
차코 지역에서 가능한 세 지역을 찾아냈다.
캐니언에서 거의 같은 거리에 있는 세 산맥, 즉 추스카 산맥, 샌머테이오 산맥, 그리고 샌패드로 산맥이 었다.
차코 아나사지 사람들은 산맥 중 어디에서 그 목재를 구했을까?
세 산맥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같은 종(種)에 속하고 겉보기에도 똑같이 생겼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네이선은 스트론튬의 동위원소를 사용했다.
칼슘가 화학적으로 매우 유사해서 칼슘가 함께 식물과 동물에게 흡수되는 원소인 스트론툼은
원자 무게에서 약간 다른 동위원소 형태로 존재하며,
자연계에서는 스트론튬 86과 스트론튬 87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스트론튬 86에 대한 스트론툼 87의 비율은 돌의 연령 및 돌의 루비듐 함유량에 따라 달라진다.
스트론툼이 루비듐 동위원소의 방사성 붕괴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 산맥의 칩엽수들은 스프론튬 86에 대한 스트론튬 87의 비율에서 뚜렷이 달랐다.
네이선은 차코의 여섯 유적지에서 나이테를 기준으로
974년에서 1104년 사이에 베어진 52조각의 나무 샘플을 조사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나뭇조각 중 3분의 2가 추스카 산맥의 것이었고,
나머지 3분의 1은 샌머테이오 산맥의 것이었다. 요컨대 샌페드로 산맥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러 해에 걸쳐 세워진 건물은 한 해는 추스카 산맥에서, 다음 해에는 샌머테이오 산맥에서 구한 나무를 사용했고,
같은 해에 세워진 여러 건물들은 당연히 한 산맥의 나무만을 사용했다.
아나사지 문명의 수도이던 차코캐니언이 먼 거리에서 조직적으로 나무를 구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두 가지 환경 문제로 차코캐니언 내에서 곡물의 생산이 줄어들고 목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아나사지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나름대로 찾았기 때문에 캐니언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1029년부터 건축이 활성화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이런 증가세는 우기에 뚜렷이 나타났다.
많은 비는 많은 식량 생산을 의미했고, 인구가 증가면서 그만큼 건물도 늘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차코캐니언 북쪽 기숡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푸에블로 보니토아 같은 '그레이트 하우스(Great House)'들,
그리고 지붕들보를 지탱하기 위해서 북쪽 절변 면에 판 구멍들이 인구가 증가했다는 간접적인 증거들이다.
그 구멍들은 그레이트 하우스들 사이로 절벽 아래에 집들이 줄지어 세워졌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편 협곡의 남쪽 기슭에서도 수백 채의 작은 집터가 발견되었다.
캐니언에 얼마나 많은 사랆이 살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눈란거리이지만 많은 고고학자가 5,000명 이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큰 건물들은 성직자 이외에 상주하는 사람을 두지 않았고,
농부들이 계절적으로 제식을 지내는 일종의 성소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차코캐니언에서 큰 건물 중 하나에 불과한 푸에블로 보니토에만 무려 6,000개의 방이 있었고,
말뚝 구멍들은 캐니언 전체에 집이 세워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캐니언에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들도 적지 않다.
이스터 섬이나 마야의도시들을 다룬 부분에서도 지적했듯이,
인구규모에 대한 이런 논란은 고고학에서 흔히 부딪치는 문젰거리이다.
인구가 얼마였든 간에, 캐니언의 인구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차코캐니언의 외곽으로 일종의 위성 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인구가 분산되었다.
그 정착촌들의 건물들은 비슷한 형태를 띠엇고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방사형의 도로망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이런 외곽의 정착촌들은 변덕스레 내리는 빗물을 담아두기 위한 자체의 댐을 건설했다.
어떤 저지대에는 폭우로 물이 넘쳐 흘러도,
고작 1.5킬로미터 밖의 저지대에는 한 방울의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지지대마다 비가 많이 내랠 때 빗물으 저장해두려고 댐을 쌓았다.
그런 축복을 받은 곳의 사람들은 시를 뿌리고 밭에 물을 대서, 그 행는 넉넉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잇엇다.
그리고 남은 식량은 그 해 비가 내지지 않는 다른 정착촌들의 사람들에게 공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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