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공중 들림 받은 아이
- 신성한 매실 758
아이는 최림이 놀라는 척해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 나야. 같은 선수.”
“왜 그런 말을 하지?”
최림의 말에 아이는 비아냥거렸다.
“날 여기 그래도 서 있게 할 거야? 걍,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하지.”
최림은 어이가 없었다.
“땍! 이런 쪼그만 게. 어디서 술타령이야!”
그런 최림을 아이는 노려보았다.
“쪼그맣다니! 이래 봬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을걸?”
“뭐?”
최림은 당돌한 아이의 말에 기가 찼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니!”
“난 그때 다섯 살이었어.”
“다섯 살?”
“그래, 그때가 1992년, 올해는 2024년 그러니 난 37살이야.”
최림은 그때까지도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때라니?”
“휴거때 말이야. 그 나라는 나이를 먹지 않거든.”
휴거란 말이 나오자, 최림은 섬뜩했다.
그리고 그때 스승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몇몇은 공중으로 올라갔다.」
최림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럼, 네가 휴거 때 공중으로 들림, 받았다는 말이야?”
“물론. 무려 32년을 그곳에 있다가 작년에 돌아왔는걸?”
최림은 그제야 아이의 말을 믿었다.
“그러니 빨랑 가. 나, 술 고프다 말야.”
말을 마친 아이는 최림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원룸 근처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아이는 소주 2병과 김치찌개를 시켰다.
주인은 혼자 와서 소주 2병과 잔 두 개를 청한 최림을 이상하게 봤다.
“누가 또 오십니까?”
“아뇨! 그냥 기분 좀 내려고요.”
최림은 말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깔깔.
아이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연신 웃었다.
“마셔. 아니 원샵!”
아이가 건배 제의할 때까지도 최림은 어리둥절했다.
겨우 최림이 물었다.
“네가 말하는 나라가 바로 ….”
“응. 천계야. 그분이 계신 곳.”
“휴거 때 일부가 공중으로 들림을 받았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아이는 연이어 소주와 안주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곳에 다시 온 거야?”
“그런 걸 새삼스럽게 왜 물어? 다 알면서.”
아이는 생뚱맞은 얼굴이었다.
“내가 뭘 안다고?”
“야! 세상 사람들은 날 볼 수 없어. 그런데 넌 날 봤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너와 나는 한패라는 거지.”
“한패?”
“적그리스도 퇴치!”
아이는 적그리스도란 말을 꺼내며 탁자를 쾅, 하고 쳤다.
그 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최림 쪽을 쳐다보았다.
“적그리스도? 그러니까 악령을 제거하려고 일부러 천계에서?”
“그런 셈이지.”
최림은 스승님과 자신 외에도 악령을 쫓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렇다면 오늘, 날 보러 온 이유가 뭐지?”
“그야, 너 혼자 애쓰지 말고 우리 조직에 들어와 함께 싸우자고 왔지.”
아이의 말에 최림은 또 놀랐다.
“조직이 있단 말이야?”
“그럼, 그날 휴거 때 올라갔던 사람 중 절반이 내려왔어.”
최림은 아이의 말을 들을수록 궁금점이 더해갔다.
“그렇구나. 그런데 넌 나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어?”
최림이 탁자를 바짝 끌어당겨 묻자, 아이가 화를 냈다.
“야! 너 자꾸 나더러 반말할래? 난 너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야!”
아이의 호통에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사내들이 힐끔거렸다.
헉!
최림도 땀이 삐질삐질 났다.
“알았어요. 누나 …. 누나라 부를 테니 빨리 이유나 말해줘 … 요.”
“진작 그럴 것이지. 자! 한잔 받아.”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최림의 질문에 대답했다.
“넌 … 이미, 예비된 자야.”
“예비? 어디서?”
“이게 또 말을 끊네. 어디긴 하늘나라, 즉 천계지.”
“어 … 그래, 미안. 계속해봐 … 요.”
“1987년 오대양 사건 때, 넌 엄마 배 속에 있었어.”
최림은 돌아가신 스승에게 ‘오대양’이란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황당한 말을 하자 내심 기분이 나빴다.
“그럼, 그다음 해에 내가 태어났다는 거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난 1997년생이야. 그런데 1987년에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다고?”
‘깔깔 ~.’
최림의 말에 아이는 웃었다.
“천국 나이랑 세상 나이가 같은 순 없지. 안 그래?”
“무슨 말 하는 거야?”
“어쨌든 넌 오랫동안 엄마 배 속에 있었어. 그 기간에 널 준비시킨 거야.”
“10년 동안이나?”
“천계는 10개의 천국으로 나누어져.
그중 마지막 천계, Seventh Heaven (제10 천국) 이 최종단계이고 거기에 신과 천사들이 살고 있지.
우린 10까진 안 되고 제5 천국에서 왔어. 어쨌든 모든 단계의 천국에선 10년이 1년이야.”
최림은 아이의 말이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아깐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다며?”
“그래, 네 육신은 엄마 뱃속에, 영은 그곳에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곳의 신과 천사들이 날 준비시켰다고?”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군. 넌 적그리스도 즉 세상의 악령들을 대적하기 위한 자로 예비되었지.”
최림은 탁자 위의 술을 단숨에 마셨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부터 악령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구나.’
그런데도 최림은 아이와 얘기할수록 궁금점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그때 오대양 사건과 우리 부모님과는 무슨 연관이 있지?”
최림은 질문을 던지면서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이유엔지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가 없을 때 성경을 펼쳐 들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어린 최림에게도 곧잘 성경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들어오면 멈추었다.
그때 최림은 아버지가 그런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넌 특별한 아이야. 그분이 널 너무 사랑하신단다.’
어머니는 최림에게 항상 이 말을 들려주었다.
그때 아이가 탁자를 세차게 쳤다.
쾅! 쾅!
“야! 무슨 생각해? 내 이야기 듣기 싫어?”
아이가 화를 내었다.
깜짝 놀란 최림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미안! 미안해. 계속해 봐.”
“원래 네 부모님은 오대양 직원이자 신도였어.”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신자였다고?”
“그래.”
아이는 최림의 놀란 표정과는 상관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믿음이 강하셨지. 하지만 천장에 올라간 32인에는 포함되지 않았어.”
그때 최림이 아이의 말을 막았다.
“난 오대양 사건이 뭔지 잘 몰라. 그러니 그것부터 먼저 설명해 줘.”
최림의 말에 아이는 잠시 턱을 괴었다.
‘오대양 사건’은 앞서 말한 대로 아래와 같았다.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가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였다.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던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았으며,
이 돈을 받으러 간 신도의 가족을 집단 폭행하고 3명을 살해한 후 잠적하였다.
그리고 범행과 조직의 전모가 공개될 것을 우려해 집단 자살극을 벌였다.
결국,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있던 오대양(주)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최림은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내 부모님은 당시 어디에 있었단 말이야?”
“공장 1층 구석에 다른 신자들과 모여있었지.”
“왜 부모님은 천장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야 간단해. 공간이 좁았으니까. 그래서 교주는 믿음 순으로 정원을 채웠지.”
“그럼 그 후엔?”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내가?”
“그래, 네 부모님은 사건 후 오대양이 사이비 종교인 줄 알아차렸어.”
“ …….”
“그래서 공장을 나와 지리산 산골로 들어간 거지. 그곳에서 10년 후에 널 낳은 거고.”
“그렇구나 ….”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거지. 네 엄마는 그래도 신앙을 유지했는데, 네 아빠는 그 길로 신앙이라면 이를 갈았어.”
최림은 그제야 아버지가 엄마와 그가 예배드릴 때 방해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오대양의 피해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모든 재산과 모든 것을 바쳤는데, 교주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시골로 들어온 거였다.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돼?”
아이는 말을 해놓고 싱글벙글하였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아까 말했잖아. 넌 우리 조직에 들어와야 해.”
“음 … 너희 조직은 어떤 사람들이 있지?”
“휴거 때 공중으로 들림을 받은 사람 중 훈련받은 자들이지.”
“예를 들면?”
“전직 목사, 신부, 해커, 무예 고수 등등 능력자들.”
최림으로선 놀랄만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