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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53구간(미시령-진부령)
1.산행코스 : 미시령 - 1시간30분 - 1,239m봉 - 1시간 - 신선봉- 1시간 - 대간령 - 3시간 - 진부령
0.미시령(1.3)~샘터(1.3)~상봉(돌탑)(0.82)~화암재(0.62)~신선봉(3.0)~대간령(3.4) ~병풍바위봉~마산봉(1.9)~흘리마을~백두대간종주기념공원~진부령
2.산행시간 및 거리 : 08:00, 16.3Km
3.산행 안내 : 속초모털-택시-미시령 출발(07:00), 진부령 도착(15:00)-원통버스-수원 도착
0.마산봉에서 알프스리조트 방향으로 급경사로 내려오다가 리조트를 지나 포장도로가 나온다. 안내판을 무시하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삼거리 보건지소에서 우측길 포장도로 가다보면 마지막 종주기념공원이 왼쪽에 있고 바로 돌아 내려가다보면 큰길 옆 진부령 광장에 도착합니다.
(바위 작품)
미시령-진부령 구간
(새로 조성한 급경사 도랑을 따라 오른다).
(샘터도착)
(상봉헬기장)
(유해발굴표지판)
(상봉 오르기전 알바 조심-왼쪽 흔적이 드문 무명 리본 숲길은 아님-급경사 로프가 있으나 다른 길임)
(상봉에서 급경사 로프길)
(신성봉 도착)
(대간령 도착)
(암봉 갈림길-암봉,병풍바위)
(마산봉)
마산봉 지킴이 개?
알프스리조트 옆길로 나오면 큰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삼거리에서 우측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가면 종주공원, 진부령표지석)
백두대간을 하며 느낀 작은 행복들이 오늘 산행으로 그 끝을 알린다. 대간 마지막 53구간(미시령~진부령)을 위해 속초항 근처 모텔에서 자는데 비는 새벽 2시가 되어서도 지루하게 내린다. 새벽 5시를 알리는 알람의 기계음에 습관적으로 일어나 슬픈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니 어찌된 일인지 비는 내리지 않는다. 잠깐 잠든 사이에 기상 상태는 바뀌어 있었다. 혹여 비가 내릴 것을 대비하여 우비는 있으니 다행히 7시경 해가 나서 급히 식당에 가서 해장국을 먹고 어제 미시령에서 타고온 고성택시를 불러 미시령에 도착,국공이 있는지를 살펴보니 다행히 조용해서 어제 봐둔 복구언덕 사이 도랑을 타고 급히 오르니 대간길이 나타났다.
오늘 산행은 남한 쪽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 구간’이다. 미시령에서 시작하여 정상에 통일을 염원하는 돌탑이 세워져 있는 상봉과 금강산 1만2천봉의 하나인 신선봉을 만난 후 대간령에서 금강산의 끝줄기이며 백두대간 남쪽 구간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에 올랐다가 흘리 마을을 통해 진부령으로 내려서는 구간이다. 하지만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는 비법정탐방로이기에 또다시 도둑처럼 담을 넘어 불법 산행을 해야 함이다. 우리 땅이지만 공단에서 비탐구역으로 막아 놓아 갈 수 없는 곳이 참으로 많았지만 오늘이 바로 멘탈붕괴적인 사고가 끝맺음을 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대간길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속초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어제 황철봉에서 내려온 산길이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 마지막 대간길이라서 한결 마음이 가볍고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한 백두대간의 산행이 끝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점차 실감이 난다. 고속도로와도 같은 등로를 따르다 숲으로 들어서니 등로 옆의 잡목에서는 몇 시간 전까지 내리고 있었던 빗물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나의 출현에 다리와 온 몸에 빗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비가 그쳤다고는 하지만 수중전을 예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단시간에 다리를 적시며 물은 바지를 타고 흐르기 시작하니 당황스럽다.
1차 전망대에 서니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설악의 위용을 세삼 느끼게 한다. 거대한 바위벽으로 금강산에 가지 못한 설움을 토하고 있는 것 같은 울산바위와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달마봉 그리고 구절양장처럼 펼치고 있는 미시령도로가 아련하고, 황철북봉과 황철봉의 너덜이 아직도 나를 숨 가쁘게 하는 것 같다. 화채능선에서 대청과 중청으로 이어지고 있는 하늘금은 보기만 해도 황홀하게 한다. 낮선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감동은 그 어떤 수사도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면서 또 다시 너덜길을 만난다. 익숙한 등산로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등로가 산행의 감흥을 한층 높이는 이곳이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했던 곳이란다. 너덜길로 등로가 표정을 바꾸는 곳에서니 오른쪽으로 신선봉이 조망되고, 앞으로는 상봉의 정상에 돌탑이 아련하게 보인다. 너덜길을 따라 상봉으로 이동하다 유해 발굴 현장을 지나 너덜길이 짧게 있었으나 리본이 드물어서 길 찾기가 힘들어 그만 알바를 하고 말았다.
상봉 밑 너덜길에서 왼쪽으로 안전한 길이 있기에 무심코 따라서 가다가 급경사가 있기에 내려서 한 참을 가다니 대간길이 선명하지 않아 이상해서 네비를 찾아 보니 엉뚱한길로 접어 들어 1키로는 온 듯? 다시 되돌아 오다보니 왼쪽에 큰 바위길이 보여 급히 올라 보니 상봉 탑이 보였다.
정성스럽게 쌓은 돌탑이 인상적인 상봉(1244m)에 닿았다. 마치 적진에 잠입하는 것처럼 소리 없이 1차 감시망에서 벗어나 안전지대인 상봉이 아니던가? 오늘 산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봉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신나는 일이자 행복이다. 상봉에서 인증도 하며 발걸음을 멈춘다.
상봉에서 잠시 물과 간식으로 보충하고 다시 살짝 위압감을 주는 내리막길 암릉에 로프를 타고 내려서는데, 밤새 내린 비로인해 젖은 바위와 등산화 바닥 역시 진흙으로 도배를 한 것과 같이 접지력이 떨어져 바위나 나무뿌리를 만나면 상당히 미끄럽다. 내리막 암릉에서 오른쪽으로 오른다. 등로를 따라 검은 전깃줄이 대간을 인도하고 있었다. 누가 설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보통 정성이 아닌 것 같다. 이 전깃줄은 신선봉을 내려설 때까지 한동안 계속되었고, 길이 혼란스러울 땐 이 전깃줄을 확인해 보면 될 것 같다. 신선봉을 보며 화암재에 닿았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마장터로, 우측으로 내려서면 금강산 화암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화암재를 지나 오름길이 이어지고, 신선봉으로 오르다 돌아보면 상봉과 암봉전망대는 물론 왼쪽으로 울산바위와 그 뒤로 화채봉을 품고 있는 화채능이 설악을 떠나는 철없는 산객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 같다. 고도를 높이면 신선봉으로 가는 너덜길과 다시 만난다. 이제 이런 너덜과는 이별을 고해야 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도 들고 외람스럽지만 친근감마저 든다. 너덜길을 따라 흘러가는 설악의 조망을 보며 조금만 이동하면 신선봉 앞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 신선봉 바로 아래 바위길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가니 신선봉에서의 조망은 압도적이다. 상봉과 암봉전망대 그리고 울산바위와 그 뒤로 화채능선을 따라 대청봉과 중청봉까지 조망이 되었다. 저 멀리 간성 방향으로 운해가 짙게 깔린 모습이나 가야 할 암봉과 병풍바위봉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봉이 조망될 뿐만 아니라 칠절봉과 군부대가 점령한 대간인 향로봉이 아련하다. 신선봉 구간은 따뜻한 봄날에 산행하면 지천으로 피어오르는 진달래의 향연이 기가 막힌다고 한다. 또한, 신선봉 정상 부근의 평지는 여느 산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곳의 나무들은 드센 바람 때문인지 거의 모든 나무들이 기형으로 생겼다.
미시령을 정점으로 설악산군과 금강산군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신선봉은 금강산군에 속하고 상봉은 설악산군에 속하는데 날씨 좋을 때 신선봉에서 금강산이 희미하게 조망된다고 한다. 신선봉과 마산봉은 금강산 일 만 이 천봉 중의 하나라고 한다. 금강산 봉우리 중에 첫째 둘째거나 제일 끄트머리 봉우리들이라는 것이다. 1만2000봉이란 ‘3000궁녀’처럼 상징적인 표현이겠지만 금강산이란 말이 어디 그냥 보통으로 흘려보낼 산 이름이던가. 낮선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감동은 나를 천재 시인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주체할 수 없게 한다.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신선봉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신선이 될 때까지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 즈음에 대간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떠나가는 나그네의 아쉬움이란 언제나 애절함이 묻어남이 아닌가? 그리움에 젖을 것 같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신선봉을 이제 자유롭게 나의 품에서 놓아준다.
신선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꺾어 대간은 이어지는 가운데 앞으로 가야 할 암봉과 병풍바위봉 그리고 마산봉이 조망되고, 그 뒤로 칠절봉과 군부대가 있어 갈 수 없는 대간 상의 향로봉이 아련하다. 대간령까지 고도는 지속적으로 내린다.
잠시 너덜길을 따르다가 등로는 육산으로 바뀌며 상당히 좋아지지만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러웠다. 헬기장에 닿으니 정면에 암봉과 왼쪽으로 병풍바위봉과 오른쪽으로 마산봉이 한층 더 가까이 닥아 와 나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또한 대간령에 가까워지면서 전쟁의 흔적인지 참호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시대의 아픔이 아직도 치유되지 못함을 여실히 느끼며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토성면 사이에 있는 고개인 대간령에 닿는다.
불법산행 하지 말라는 출금판이 이제는 낮선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백두대간을 하며 무수한 출입금지 판을 보고 산행을 감행했지만, 이제 비탐구역이 끝나고, 진부령까지 얼마 남지 않는 합법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대간을 하면서 숯 한 에피소드는 있었지만 국공에 의해 단속 한 번 안 당하고 대간을 마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좋다. 백두대간은 이 땅에 몸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랑이고 긍지이고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백두대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지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정책으로 인해 곳곳이 출입 제한 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숲을 보호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산을 사랑해서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태계의 주인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다. 자연의 주인 역시 자연 그 자체이며 숲의 주인 또한 숲 자체일 뿐이다. 사람 또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일원으로 숲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숲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한 몸이다.
그런데 관리공단은 사람과 숲을 떼어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숲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관리 방식이 잘못됨이 아닐까? 산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 더욱이 백두대간은 이 민족의 자랑거리요 자긍심의 원천이 되는 이 땅의 등줄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간령(새이령)
한때는 강원도 북부의 동서를 잇는 길, 다시 말해 영서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고성과 속초를 넘나드는 고갯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옛 영화는 온데간데없다. 사람 발길이 닿는 날보다 닿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진, 그리하여 철저하게 잊히고 묻힌 길일 뿐. 실선은커녕 점선 한 올조차 지도에 올리지 못하는 신세가 된 길, 새이령.
강원도 북부의 백두대간 고갯길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등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포장된 것은 1971년 한계령이고 뒤를 이어 1984년 진부령, 1990년 미시령이 포장되었다. 새이령(샛령)은 한계령 포장과 때를 같이해 길의 족보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인생살이처럼 길도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그것이 인간과 길의 운명이런가. 하지만 버려진 새이령 옛길은 결단코 서글프지 않다. 인간이 지나온 길에 역사가 남듯이 잊힌 옛길에는 숱한 나그네들의 애환이 보석처럼 숨은 채 남아 있는 법.
새이령이 옛길 그대로 남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길마저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관광도로로 전락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래, 그러니 새이령은 오늘도 어쩌다 발 디디는 인간을 웃음으로 반길 수 있는 것이다.
세이령은 민초들의 한, 그리고 보부상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그러나 지금은 찾는 이 거의 없는, 하지만 다시 찾고 싶은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길로서의 기능을 잃은 지 40여 년. 그 옛날 길손들은 새이령 길목인 창암마을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민가 몇 채만 드문드문 보이지만 번성했던 옛날에는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며, 산짐승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뜨거운 피가 용솟음 쳤던 곳이 바로 백두대간이 아니었던가? 이제 타는 목마름으로 근 일 년의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음이라 나의 발걸음에도 흥분이 살짝 되기 시작했다. 어찌 흥분이 아니 될까?
암봉으로 가는 등로는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는 가운데 국군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에 닿았다. 어제 미시령에 가까이 왔을 때 역시 국군 유해를 발굴한다고 하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까 싶었는데 못 담은 것이 아쉬웠는데.......
새이령을 지나 암봉, 병풍바위길이 있었으나 너무 지처서 우회, 아마 마산봉은 이제 근 2km정도 남았을 텐데. 힘겨워도 앞으로 가야만 한다. 마산봉만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대간은 내림 길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겠는데. 기어서라도 가야하는 나의 대간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다.
마산봉으로 가는 완만한 오름길을 다시 만났다. 된비알이 아니고 비스듬하게 고도를 높이고 있어 이런 컨디션이 아니라면 산행 속도가 제법 빠른 지점이지만 조금만 오르면 현기증으로 인해 갈 수가 없다. 왼쪽다리는 이제 아프지는 않더라만, 오름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산행에 대한 걱정은 해일처럼 번져온다.
이 길은 대간꾼들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인내하면서 제 모습을 지니게 되고, 걷는 이의 발아래 놓이면서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겸손으로 만들어 졌다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 상황은 처연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 가운데 병풍바위 갈림길에 도착했다.
암봉에서 거의 평지와도 같은 약 1km의 거리를 1시간 30분이나 걸렸으니 이건 산행이라고 할 수 없다. 대간령에서 마산봉까지 3km, 대간령~병풍바위봉~마산봉까지는 3.6km의 거리지만 지금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병풍바위가 지척에 있다 하더라도 도저히 갈 수 없어 병풍바위로 올라가는 등로만 슬픈 눈으로 처다만 보고 마산봉으로 바로 갈 수밖에 없음이다.
한동안 길은 평지를 유지하면서 마루금샘까지 간다. 다시 만나게 되는 마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름길 등로에 설치된 밧줄이 이렇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 본 일도 여기서 처음이었다. 현기증을 이기며 밧줄에 의지해서 힘겹게 고도를 높이니 검색을 하며 봤던 마산봉 3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긴다.
마산봉(1051m)만 올라가면 산행이 거의 끝났다는 안도감에 단숨에 올랐다. 대간령에서 서남쪽으로 마장터라는 옛날 장터가 있었다는 걸 보면 마산봉도 말(馬)과 관련 있을 듯하다.
마산봉!
현실적으로 남한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로서 금강산의 끝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금강산 줄기임을 느끼며 진정되지 않는 가슴 설렘을 여기서 느낀다.
이 산줄기 붙들고 산 흐르는 데로 흘러들면 금강산이 아니더냐? 남쪽의 산줄기를 걸으며 금강산 줄기를 만난다는 것에 묘한 흥분을 느끼게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함에 아쉬움으로 긴 한 숨을 쉰다.
마산의 정상에는 이 봉우리가 금강산 끝줄기라고 하지만 향로봉(1293m)까지 가야 사실은 남한 대간 길의 끝이지만 군부대 허가절차 등이 까다로워 대부분 진부령을 끝으로 삼을 수밖에 없음이다.
일출과 설경이 멋진 곳으로 알려진 마산 정상에서 알프스리조트 방향으로 진부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지만 건너 향로봉에는 운무에 의해 조망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분단의 아픔과 더불어 백두대간이 이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새삼 느끼며 마산봉에서 하산을 서두른다.
마산봉에서 내려와 이정표에서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물과 간식으로 채운다. 이젠 한결 마음이 편하기도 하지만 하산길만 남아서 심리적으로 평온함을 찾아서 그런 것 같다. 급경사를 내려오다가 중년의 세자매가 마산봉까지 간다며 미소를 지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오동통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니 엉뚱한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ㅋㅋ 알프스 리조트 방향으로 내려서니 스키장이나 콘도는 사용하지 않아 황량하다. 아쉬운 하산 길 곳곳에는 대간꾼과 산악회 등 리본이 잔뜩 걸려 있다.
우리 생전에 금강산 지나 백두산까지 갈 수 있을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어 스키슬로프가 나오고 스키리프트장을 거쳐 낙엽송지대를 내려온다. 낙엽송 지대가 끝날 즈음 길 왼편으로 알프스리조트 신콘도가 나오고, 이정표에 진부령정상이 4km 표시 방향으로 진행하여 콘도 뒷편 드넓은 마당을 지나 도로와 접한다.
이젠 힘이들어서 대간길을 찾지않고 포장도로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길따라 양쪽 옆에 한 때 번창했던 스키대여점,카페 등이 초라하게 폐업한 흔적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삼거리에서 친구가 힘들다고 소형소방차 근처로 몇 사람과 대화 끝에 진부령까지 동승을 부탁하니 못마땅하면서 태워 주었다.
조금 가다가 길 옆의 종주기념공원이 보여 급히 차를 세워 감사의 인사로 보내고 기념공원서 준비한 프랑카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도로 따라 KT기지국을 옆으로 진부령에 내려서며 산행을 마감한다.
백두대간의 끝인, 그리움 따스하게 품은 땅 진부령에 닿으며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곳이다. 남한 쪽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마루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을 지나 비무장지대 안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삼재령에 이르고, 북한쪽 백두대간은 무산(1,320m), 금강산 비로봉(1,638.2m), 풍류산, 두류산(1,323m), 재령산, 용풍산, 마유령, 노란봉, 마대산, 금패령, 동점령산(1,925m), 대각산(2,121m), 백사봉(2,098m), 북포대(2,289m), 소백산(2,173m), 대연지봉(2,359m)을 지나 2,750m의 백두산 장군봉에 이른다. 내 생애 끊어진 이 길을 이어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지만 ........
진부령!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이더냐.
산줄기는 이어져 있으나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
길은 이어져 있으나 머물러 그리움 가득 품게 되는 곳,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백두산 천지를 향해 흐르고 흐르던 백두대간이 끊어져 마루금 따라 걸어오던 걸음을 멈추어야만 하는 곳, 절절히 다가오는 분단의 아픔과 이어진 산줄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쓸어내리며 망연해지는 곳이 바로 그곳이 바로 진부령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리운 이름이 가족이란 단어다. 그런 가족들에게 나의 대간 완주를 신고하면서 근 일 년에 걸친 나의 백두대간 산행은 끝이 났다. 나의 산행 동반자인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와 고마움을 표하며 영원히 잊지 못 할 진부령을 가슴에 담고 떠난다.
마지막 힘겨운 산행을 제외하면 너무나 행복한 산행을 했다. 이제 나의 질주는 진부령에 닿으며 끝이 났다. 근 일 년 동안 대간이 있어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진고개~구룡령을 산행하다가 발 전체가 물집이 생겨 홀로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 온 만월봉~구룡령은 미답인 상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조항산- 대야산 구간에서 바위를 잘못 밟아 미끄러져서 팔을 다쳐 급히 밤차로 왔던 일.....
정확하게는 완주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빈 곳을 채워 주었던 백두대간이 있었기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제 백두대간을 대신하여 어떤 산행을 해야 할까?
대망의 백대간 종주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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