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 統營三道水軍統制營 ]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조선 후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해상 방어 총사령부의 터로, 1998년 2월 20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1603년(선조 36)에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운 이후, 1895년(고종 32)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세병관을 제외한 건물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통제영은 1593년(선조 16)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직제를 새로 만들어 전라좌수사에게 이를 겸임하게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삼도수군통제영’으로 통칭되며, 약칭은 ‘통영’이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고, 전란이 끝난 뒤에도 거제도 오아포(烏兒浦), 고성현 춘원포(春元浦) 등지로 옮겨 다니며 제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1603년(선조 36)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통제영을 두룡포(頭龍浦: 현 통영시 문화동)로 정한 이후, 이곳에다 터를 닦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1605년(선조 38) 음력 7월 14일에는 여황산 남쪽 기슭에 객사인 세병관(洗兵館),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후 1678년(숙종 4) 제57대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영문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높이 1장 반(약 4.6m), 둘레 1만 1730자(약 3.6㎞), 성가퀴 707개 규모의 평산성(平山城)을 쌓았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의 통영성에는 4대문(大門)과 2암문(暗門) 그리고 3포루(鋪樓)가 있었고, 세병관을 위시하여 100여 개의 관아가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강점된 뒤 세병관을 제외한 대·소 관아 100여 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렸고, 그 자리에 학교, 법원, 검찰, 세무서 등이 들어섰다.
1975년 이후에 세병관 및 주변 지역을 정비하고, 199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유구를 확인하였다. 통제영 건물 중 현존하는 것은 2002년 보물로 지정된 세병관 뿐이며,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受降樓) 1동이 있다. 수항루를 지나 우측에는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두룡포 기사비(頭龍浦 記事碑)가 있고, 좌측에는 매표소 및 관리사 건물이 있다.
통제사 내아인 운주당(運籌堂), 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건물이 들어섰다. 통제사 집무실이던 백화당과 각종 물품을 납품하던 공고(12공방, 선자방) 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들어섰다.
그 밖에 파취헌, 분뇨정 지역에는 충렬여자중학교와 충렬여자상업고등학교가 들어서는 등 대부분의 지역에 공공건물이 들어섰고, 주변 일대는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남파랑길 29코스 트레킹중 삼도수군통제영을 경유하게 되면서 담아본 장면들이다. 충렬사는 코스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잠시 시간을 내어 다녀 왔으며 두곳 모두 아침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관람 전 시간이라 입장 불가 하였지만 친절한 관리인 덕분에 두 곳 모두 관람 할 수 있어 이곳에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통영 충렬사(統營忠烈祠) 충렬사는 1973년 6월 11일 사적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인 1606년(선조 39)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1) 이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어명을 받아 건립한 사당이다.
충렬사(忠烈祠) 현판은 현종 임금이 1663년에 내린 사액 현판으로 문정공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1670년에 제51대 수군통제사 김경이 동재와 서재를 지었고, 1681년에는 제60대 수군통제사 민섬이 충렬묘비(忠烈廟碑)를 세웠다.
충렬묘비는 각 면이 평평하게 손질된 길쭉하고 네모진 형태이다. 비문은 1614년 좌의정 이항복이 지었던 여수 ‘이충무공 대첩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현재 충렬사는 사당을 비롯하여 동재, 서재, 경충재, 숭무당, 비각, 전시관, 강한루 등 건물 17동과 5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충무공을 비롯한 휘하 장병의 위령을 위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는 탄신기념제, 그리고 한산대첩축제, 고유제를 전통 제례의식으로 봉행한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부터 관청의 지원이 중단되자 지방주민들이 뜻을 모아 ‘충렬사 영구보존회’를 조직하여 향사 및 관리를 해 왔으며, 1951년에는 ‘재단법인 통영충렬사’를 설립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1695년(숙종 21)에 수군통제사 최숙이 경충재를 증축하여 서당을 개설하고 지방민의 자제들을 교육했으며, 같은 해 최숙의 뒤를 이은 통제사 김중기가 숭무당을 창건하고 장교 3인을 차출하여 사무 · 관리를 담당하도록 하는 한편 통영시 산양읍에 소재하는 연대도를 사패지로 받아 전답을 마련하여 사당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1795년 정조 임금이 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를 발간하게 하고 어제(御製) 제문을 하사했으며, 1840년에는 이충무공의 8대손 이승권 제172대 수군통제사가 강한루와 영모문을 세웠다.
조선시대 후기인 1868년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에도 통영 충렬사는 보존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