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은혜 부처님 위신력 부처님 크신 공덕이 내 생명에 넘쳐나고 있는 것을 관한다.
우리 가족 우리 형제 우리 이웃 모두에게 넘쳐나고 있는 것을 관한다.
부처님의 은혜와 광명을 관하면 감사한 생각이 난다.
금강경 읽고 반야심경 읽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고 그리고 부처님의 광명이 내 생명, 내 집안, 내 사업에게, 내가 가는 길에 충만한 것을 항상 생각하니까 감사한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충만하고 감사하고 마음이 바뀌기에 운명이 바뀐다. 일이 바뀌고 잘되는 것이다. 밖에 있어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안에 있다. 안의 진리가 바뀌기에 밖이 바뀐다.
그래서 이렇게 염송하고 이렇게 부처님을 관하고, 그 관한 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서 감사하기 때문에 기도 성취가 되는 것이다...(중략)...
불광 수행은 첫째는 염송, 두 번째는 부처님의 무한공덕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은혜, 위신력, 그 공덕이 내게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믿는다. 믿고 감사한다.
세 번째는 삼독심을 버리는 것. 미움과 대립을 싹 쏟아버린다. 절대 미워하고 대립하지 않는다. 이유가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밝기 위해, 내 집안이 밝기 위해서, 내 나라가 밝기 위해서, 내가 밝고 내가 행복해져야 집안이 행복해진다.네번째는 반야심경 외고 보현행원품 읽고 보현행원을 행한다. 거기서 항상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찬탄하고 받들어 섬긴다...(중략)...
반야바라밀에서는 때 묻은 것, 때, 죄, 악, 이것을 무(無)라고 했다. 무, 때를 닦으려 애쓰지 마라. 때는 부처님이 무, 없다고 그랬다. 우리의 생각, 번뇌 망상이 그렇게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실로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이 깜깜하다고 그런다. 어떻게 삽으로 떠낼까 바가지로 퍼낼까. 아니면 빗자루로 쓸어낼까. (그런데) 어둠은 쓸어지지 않는다. 번뇌망상 닥아야 한다고 한다. 쓸어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번뇌 망상 어둠이라는 것이 적극적 존재가 아닌 것처럼, 적극적 존재가 아니라는 말은 어둠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다. 밝음이 없다는 뜻이다.
밝음의 부재가 어둠이다. 그렇게 때문에 어둠을 없애는 방법은 어둠을 한 바가지 두 바가지 퍼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불을 켜버리면 어둠이 없어진다. 불을 밝히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번뇌도 우리가 최승의 몸, 공덕의 몸, 지혜의 몸, 훌륭한 이 몸을 부처님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가리고 있는 것은 안개와 같은 번뇌 망상이다.
이걸 어떻게 없애느냐. 한 바가지 두 바가지 퍼내거나 쓸어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무다. 그렇게 알고 내게 있는 최승의 몸, 진실의 몸, 부처님 공덕 이걸 쓰라는 것이다.
빛을 밝히면 저절로 어둠은 없어진다. 번뇌망상을 끊으려고 안하더라도 내게 있는 부처님 공덕을 믿고 그것을 행하면 번뇌망상은 슬그머니 없어진다. 번뇌망상 하나하나를 떼어내고 쓸어내고 닦아내려고 그러지 않고 내게 와 있는 밝은 광명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쓰고 행한다.
밝은 등불을 드니, 내가 밝아지고 우리 집안이 밝아지고 내가 가는 곳마다 밝아지고 우리가 있는 세계가 밝아지는 것이다.
우리들이 반야바라밀 수행을 해서, 우리들 자신 가운데 깃들어 있는 부처님의 무한공덕장 세계, 이것을 믿도 이것을 행하는 사람, 이 사람은 하늘과 땅과 일체 신이 우러러본다.
1986년 7월6일 법문(BTN에서 방영된 것을 유튜브에서 녹취, 제목은 ‘반야의 지혜로 세상을 밝힌다, 금하당 광덕스님’)
첫댓글 법혜님의 큰스님 법문에 대한 감상(?) 댓글입니다
-다시 들어보는 큰스님 법문.
새롭게 다가옵니다.
많은 훌륭한 스승님들의 법문과도 사뭇 다르시다는 것도 새삼 느낍니다.
일반적인 수행이란것이 대개는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에
큰스님 법문과 보현행원품의 내용은
나와 남에게 동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수행따로 복덕 따로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수행과 일상의 구분이 없지요.
염불과 참선도 이미 이루어져 있는 완성된 곳을 지향하니 수행이 괴롭고 고단한 길이 아닐수 있어요. 억지로 지어내어 할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보현 선생님 늘 말씀하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수행이 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