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 시평
상처는 밤마다 돌이 되어 돌아왔다
— 전민 시인의 「밤과 같이」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의 내면에도 폐광廢鑛 같은 시간이 있다.
낮 동안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세상을 건너가지만, 밤이 깊어지면 오래 닫혀 있던 내면의 갱도가 조용히 열린다. 잊었다고 믿었던 상처들이 눅눅한 돌벽처럼 되살아나고, 말이 되지 못한 질문들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숨을 쉰다.
전민 시인의 「밤과 같이」는 바로 그 가장 깊고 적막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고독을 토로吐露하지 않는다. 외려 상처를 견디며 자기 존재의 벽을 한 장씩 쌓아 올리는 인간의 은밀한 노동을 보여준다. 짧은 시 안에 존재의 불안과 자기 건축의 철학이 묵직하게 응축되어 있다.
“사람들과 헤어져 / 처음으로 나를 맞는다”라는 첫 구절은 서늘할 만큼 깊다.
우리는 늘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고 믿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은 드물다. 관계와 역할, 체면과 언어 속에 가려진 채 살아가다가, 모두가 떠난 밤에야 비로소 자기 존재의 맨얼굴과 조우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라는 표현이다. 평생 자기와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사실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역설이 이 짧은 문장 속에 스며 있다.
이어지는 “차디찬 바위 위에 / 오두막이 앉은 새처럼”이라는 이미지는 이 시 전체를 떠받치는 중심축이다. 오두막은 인간 삶의 은유다. 그러나 그것은 견고한 집이 아니다. 바람 한 번에도 흔들릴 듯 위태롭고 외로운 존재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앉은 새처럼”이라는 표현이다. 집인데도 정착의 감각보다 떠돌이의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 잠시 날개를 접고 머무는 임시의 기착지인지도 모른다. 전민 시인은 이 한 장면만으로 존재의 덧없음과 불안을 동시에 그려낸다.
둘째 연으로 들어서면 시는 더 깊은 내면의 동굴 속으로 침잠한다.
“캄캄한 주위가 / 동굴처럼 조금씩 뚫려 올 때.”
이 표현은 매우 독창적이다. 보통 어둠은 닫히고 막히는 감각에 가깝다. 그러나 이 시에서 어둠은 오히려 “뚫려 온다.” 밤은 차단이 아니라 개방이다. 바깥의 빛과 소음이 사라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자기 내부의 깊은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은 환한 낮보다 어두운 밤 속에서 더 선명하게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존재다.
시는 갑자기 육체의 감각 속으로 뛰어든다.
“양 겨드랑이 가렵다.”
이 문장은 낯설고도 생경하다. 마치 소설가 이상의 「날개」 속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오래 갇혀 있던 존재가 비상飛翔을 예감할 때 나타나는 미세한 떨림에 가깝다.
전민 시인의 이 표현 또한 그렇다. 존재가 변화하려 할 때, 영혼은 먼저 가려움으로 반응한다. 아직 날개는 완전히 돋아나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이전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 생경生硬함 때문에 이 문장은 더욱 강렬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 하나가 인간 존재의 깊은 변화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죽지 빠진 한쪽 날개”는 처연하다. 이미 상처 입고 꺾인 존재의 형상이다. 화자는 묻는다. 새 날개가 돋아나는 것인지, 아니면 남은 날개마저 내려앉으려는 것인지.
이 모호模糊함은 인간 삶의 본질과 닮아 있다. 희망은 때로 절망의 얼굴을 하고 오고, 절망 또한 또 다른 시작의 문턱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무너짐과 회복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셋째 연에서 시는 존재의 방어 방식으로 나아간다.
“나는 내 차지한 / 이 조그만 공간을 / 수없이 밀려 닥치는 / 물음으로 틀어막으며.”
놀라운 것은 화자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자신을 지탱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확신으로 삶을 버티려 한다. 이 시는 질문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완전한 해답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무너지지 않고 계속 묻는 일에 더 가깝다. 질문은 불안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숨결이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가장 깊은 자리다.
“날아오는 돌팔매를 주워 모아 / 밤과 같이 / 몇 조각의 답으로 / 성을 쌓는 석수장이가 된다.”
여기서 돌팔매는 세상이 던지는 상처들이다. 비난과 고독, 실패와 외면의 돌들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들을 피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외려 주워 모은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기 삶의 성을 쌓는다. 바로 이 역전의 상상력이야말로 전민 시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상처를 폐기하지 않고 존재의 재료로 바꾸는 인간.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다시 세워가는 인간. 그래서 화자는 마지막에 “석수장이”가 된다. 그것은 영웅의 이름이 아니다. 밤마다 묵묵히 돌을 다듬으며 자기 존재를 완성해 가는 사람의 이름이다.
이 시에서 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밤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짓는 시간이다.
세상이 던진 돌들을 주워 침묵의 벽돌로 바꾸는 시간이다.
전민 시인의 「밤과 같이」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절제된 침묵 속에는 오래 견딘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의 깊이가 스며 있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사람은 자신에게 날아온 상처들로
자기 삶의 성을 쌓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