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팔식규거」가 이루어진 경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유식론」등이 비록 법상종의 소의론이지만 그 내용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대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에 규기가 현장스님에게 유식 법상종의 종취를 전반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간략하게 지어달라고 청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현장스님이 인도 호법논사의 견해에 의지하여 유식사상의 요지를 총망라하여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것이 유명한 저 「팔식규거」는 전5식·제6식·제7식·제8식의 네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문은 12구(句)의 게송으로 되어 있어 모두 48구절밖에 안되지만, 이 짧은 분량 안에는 「성유식론」등의 주요 교리들이 골고루 응축되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식의 이론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여, 이것을 알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팔식규거」도 역시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옛 주석서 중에 규기가 주해한 것이 있지만 그 또한 까다로운 점이 많아 이해하기가 곤란합니다.
그 뒤에 명(明)나라에 와서 선종(禪宗)의 감산 덕청(憨山德淸)스님과 지욱(智旭)스님 등이 이 「팔식규거」에 대한 주해를 했는데, 이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어서 널리 전해졌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해설하는 「팔식규거」는 바로 감산스님과 지욱스님 등의 주해를 주로 한 것입니다. 또 이해를 돕기 위하여 8식(八識) 중에서 각 식(識)에 대한 설명이 끝날 때마다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 나오는 해당 게송을 다시 그 뒤에 대응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육조 혜능(六祖惠能)스님이 8식에 대해 간략히 찬술한 사지송(四智頌)을 첨부하였습니다. 비록 법상종은 아니지만 심식설에 대한 선종 조사의 견해이므로 적지않아 귀감이 되리라 싶어 여기에 실었습니다. 이 육조스님의 말씀은 원래 「육조단경(六祖壇經)」가운데 있으나 여기서는 감산스님의 「팔식규거」에 대한 설명[八識規矩 通說]의 끝에 실려있는 것을 인용하였습니다.
(1) 5식송
5식(五識)은 전5식(前五識)을 말합니다.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우리의 심리상태를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의 8식으로 나누는데, 이 중에서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다섯 가지를 전5식이라 하고 의식을 제6식, 말나식을 제7식, 아뢰야식을 제8식이라고 합니다. 전5식은 우리의 심리상태에 있어서 정신활동의 전위부대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해설한 것입니다.
성경이고 현량이며, 세 가지 성품에 통하니
性境現量이요 通三性이니
전오식, 즉 감각작용은 경계로 볼 때는 성경(性境)이며, 실제 작용하는 면으로 볼 때는 현량(現量)입니다. '성경(性境)'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인식하는 경계를 성경(性境)·독영경(獨影經)·대질경(帶質經)의 세 가지로 나눈 것 중의 하나로, 이 성경에는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는 것과 같이 어떠한 분별이 조금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눈에 무엇인가가 비칠 때, 즉 수정체 안구에 무엇인가가 비치는 그 찰나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비춰진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검다, 푸르다, 좋다, 나쁘다 등의 분별을 하지만 이 분별은 이미 제6식인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지 전5식이 작용하는 바는 아닙니다.
전5식은 분별작용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량(現量)'이란 사물을 지각하는 방법의 하나로, 비판이나 분별을 떠나서 외계의 대상을 그대로 지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거울에 어떤 사물이 비칠 때 그 사물이 그냥 비치기만 할 뿐 거기에는 사량과 분별이 없듯이, 전5식은 외계의 사물을 직접 지각할 뿐이므로 당연히 현량의 성질을 갖는 것입니다.
'세 가지 성품에 통합' 이란 전5식의 활동영역이 선(善)·악(惡)·무기(無記)의 삼성에 두루 통함을 말합니다. 전5식으로 선(善)을 볼 때는 선이 비치고 악(惡)을 볼 때는 악이 비치며 선도 악도 아닌 중간 상태인 무기(無記)를 볼 때는 무기가 비칩니다.
이렇게 전5식은 선이나 악 또는 무기에 구애됨이 없이 모두에 통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선이나 혹은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전5식의 작용이 아니라 분별의식인 제6식의 작용입니다.
이와같이 전5식의 근본작용은 예컨대 수정체에 무엇이 비치는 그 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코 분별의식의 영역이 아니며, 성경과 현량이며 선·악·무기의 삼성에 통하는 것입니다.
안식과 이식과 신식의 셋은 두 지[二地]에 머무느니라.
眼耳身三은 二地居라.
전5식 중에서 안식·이식·신식의 세 식은 두 지[二地]에 한하여 작용한다는 것인데, 두 지는 삼계(三界)중의 욕계(欲界) 오취(五趣)를 뜻하는 잡거지(雜居地)와 색계(色界)의 초선(初禪)인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를 말합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여기가 바로 욕계인데, 욕계의 중생류를 분류할 때 흔히 오취(五趣) 즉 지옥·아귀·축생·인간·천(天)으로 합니다. 그리고 욕계 안에 있는 오취를 합하여 하나의 지[一地], 즉 잡거지(雜居地)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안·이·비·설·신의 5식이 전부 다 적용되지만, 안·이·신의 세 식만을 든 것은 색계의 초선(初禪)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색계에는 사선(四禪)의 구분이 있는데, 초선(初禪)은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이선(二禪)은 정생묘락지(定生妙樂地), 삼선(三禪)은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사선(四禪)은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로, 여기에서 말하는 이생희락지, 즉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에서는 무엇을 먹을 때 선열(禪悅)을 음식으로 삼기 때문에 안식과 이식과 신식만이 작용할 뿐 설식과 비식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색계의 초선천 위인 이선(二禪) 이상에서는 선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안식·이식·신식도 필요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전5식은 욕계 5취의 잡거지에서만 해당하고 색계 초선에서는 안식·이식·신식만이 적용되므로, 안식·이식·신식은 두 지에 머문다고 한 것입니다.
(상응하는 마음의 작용은) 변행과 별경과 선의 열 하나와 중수혹 둘과 대수혹 여덟과 탐· 진·치이다.
(편)行別境善十一과 中二大八과 貪嗔痴라.
유식에서는 심리작용을 모두51가지로 나눕니다. 여기에서는 바로 이 전5식과 상응하는 34가지 마음작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변행(徧行)이란, 모든 심식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데, 이에는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의 5가지가 있습니다.
별경(別境)이란, 변행처럼 모든 경우에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대상을 대할 때 발생하는 마음의 작용을 뜻하며, 이것에도 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의 5가지가 있습니다.
선(善)이란,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의 두 세상에 걸쳐서 자기와 타인을 이익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신(信)·참(慚)·괴(傀)·무탐(無貪)·무진(無嗔)·무애(無碍)·근(勤)·경안(輕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불해(不害)의 11가지가 있습니다.
대수혹(大隨惑)이란, 탐(貪)·진(嗔)·치(痴) 등의 근본번뇌를 따라서 생기는 20가지 수번뇌(隨煩惱)가운데, 일체의 오염심에 널리 상응하여 발생하는 방일(放逸)·실염(失念)·부정지(不正知)·도거(挑擧)·혼침(混沈)·불신(不信)·해태(懈怠)·산란(散亂)의 8가지를 말합니다.
중수혹(中隨惑)이란, 많은 수번뇌 가운데 다만 불선(不善)의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무참(無慚)·무괴(無愧)의 2가지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탐(貪)·진(嗔)·치(痴)를 합하면 무두 34가지가 됩니다.
5식은 동일하게 정색근(淨色根)에 의지하니,
五識은 同依淨色根하니
5식(五識)은 대응하는 5근(五根)에 의지하여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눈이라는 안근(眼根)이 없으면 안식(眼識)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근(根)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가지 속성으로 되어 있으므로 파괴될 수 있는 것이어서 부진근(浮塵根)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하여 정색근(淨色根)이란 우리가 볼 수는 없고 단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인데 감각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적인 속성을 말합니다. 무명(無明)의 껍질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홉 가지 연(緣)과 여덟 가지와 일곱 가지 연이 잘 서로 인접하느니라.
九緣과 八七이 好相隣이라.
아홉 가지 연(緣)과 여덟 가지, 일곱 가지 연이 서로 의지해 있다는 말은 전5식 각각이 그러한 조건하에서 작용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 연(九緣)이란 공(空)·명(明)·근(根)·경(境)·작의(作意)·분별(分別)·염정(染淨)·종자(種子)·근본(根本)을 말하는데 이러한 조건이 전5식의 작용에 두루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전5식 가운데 안식(眼識)은 이 아홉 가지 연이 전부 갖추어져야만 활동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이식(耳識)은 여덟 가지 연만 갖추면 됩니다. 왜냐하면 청각이 작용하는 데는 밝고 어두운 명의 연[明緣]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밝은 곳이나 어두운 곳일지라도 귀는 들을 수가 있으나 눈은 밝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아홉 가지 연이 모두 필요 하지만 이식은 여덟 가지 연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 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은 일곱 가지 연만 갖추면 됩니다. 왜냐하면 코와 혀와 몸이 활동하는 데는 장소인 허공(空)이나 명암인 명(明)이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제6식과 제7식과 제8식은 각각 다섯 가지 연관 세 가지 연과 네 가지 연만 구비되면 활동이 가능합니다.
제6식인 의식(意識)은 분별·근·명·공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 연인 경·작의·염정·종자·근본만 있으면 활동할 수 있으며, 제7식인 말나식은 작의·근본·종자만 있으면 활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근본(根本)이란 심식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아뢰야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8식인 아뢰야식은 작의·종자·근본에 경(境)을 하나 더 추가하면 활동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전5식 중에서 안식은 아홉 가지 연으로 생하고 이식은 여덟 가지 연으로 생하여 나머지 비식·설식·신식은 모두 일곱 가지 연으로 생하는 것입니다.
셋은 합하고 둘은 떨어져서 세상을 관하니
合三離二하여 觀塵世하니
'셋은 합한다' 함은 비식·설식·신식이 활동에 있어서는 무엇이든 간에 대상과 직접 접촉해야 비로소 가능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은 떨어진다' 함은 안식과 이식이 활동함에 있어서는 대상과 떨어져 있어도 가능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비식·설식·신식이 활동할 때는 코는 냄새와 접촉해야 하고 혀는 맛을 볼 수 있도록 물체가 닿아야 하고 몸은 촉각이 일어나도록 물건과 접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각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안식과 이식은 어떤 사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볼 수 있고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간결하게 표현하여 비식·설식·신식의 세 가지는 합하고 나머지 둘은 떨어져서 세상을 관한다고 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식과 근을 분별하기 어려우니라.
愚者는 難分識與根이라.
식(識)이란 분별작용하는 인식 주체를 뜻하는 것이고, 근(根)이란 인식을 발생하는 구조적인 감각기관 자체를 뜻하는 것인데, 이들의 차이는 매우 미묘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감각작용이 일어나는 상태 또는 작용은 무명에 가리워져 진실을 보는 지혜를 갖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쉽사리 이해될 수 없는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식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근(根)은 제8식의 상분에 해당되고, 식(識)은 제8식의 견분에 해당하므로 양자는 같지 않습니다. 또 그 작용도 엄밀히 따지면 둘 다 무분별이긴 하지만 식에서는 욕락(欲樂)의 마음이 일어나므로 다른 것입니다.
상(相)이 변하고 공(空)을 관하나 오직 후득지로 얻는 것이며,
變相觀空이라 唯後得이요.
이것은 전5식이 전환하여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이룸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래 전5식은 제8식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므로, 제8식이 전환하면 전오식도 따라서 전환됩니다. '상이 변함'이란 심식이 생길 때 세속 경계인 상분(相分)이 변한다는 말인데, 그 관찰(觀)한 바가 곧 공(空)해집니다.
이렇게 그 상(相)은 공하지만 그러나 공상(空相)을 떠나지 못했으므로 이것은 오직 후득지(後得智)로 얻어지는 것이며 근본지(根本智)의 작용이 아닙니다.
불지(佛智)에는 근본지와 후득지가 있는데, 근본지는 능히 진여(眞如)를 반연하고, 후득지는 다만 세속의 차별상을 요해할 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상분의 관찰이 공(空)함에 머무르는 차별상이므로 다만 후득지인 것입니다.
불과 중에서도 오히려 스스로 진여를 계회(契會)하지 않느니라.
果中에 猶自不詮眞이라.
과(果)는 불과(佛果)를 이루는 것을 말하고, 진(眞)이란 진여(眞如)를 말합니다. 불과를 이루는 것도 후득지에 해당하여 진여의 무분별을 연려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후득지 중에서 진여를 반연한다고 주장한 안혜(安慧)논사의 견해를 반박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원경지가 먼저 발생하니 무루(無漏)를 이루어
圓明初發에 成無漏하여
이것은 제8식이 전환하여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발생함을 의미합니다. 대원경지는 제8식인 아뢰야식이 청정하게 전환하여 불과(佛果)의 지혜가 열리는 경지를 뜻합니다. 이때에는 전오식도 따라서 전환하여 무루(無漏)의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됩니다.
즉 전오식은 본래 제8식인 아뢰야식의 상분(相分)에 의지하는 것으로 그 본체가 같은 것이므로 제8식이 전환하여 대원경지가 되어야만 전오식도 함께 성소작지가 되는 것입니다.
세 종류로 몸을 나투어 괴로운 윤회를 그치느니라.
三類分身하여 息苦輪이로다.
세 종류의 몸이란 대화신(大化身)·소화신(小火身)·수류화신(隨類化身)을 말하는 것인데, 대화신이란 크게 몸을 나투는 것이고, 소화신은 조금 몸을 나투는 것이며, 수류화신은 중생의 종류를 따라 몸을 나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종류의 몸을 나툰다는 것은 축생을 위할 때에는 축생의 몸을 나투고 남자를 위할 때에는 남자의 몸을 나투듯이, 각각의 종류에 따라 몸을 나투어 고해에 빠져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식은 인연을 따라 나타나는데 혹은 갖추기도 하고 혹은 갖추지 않기도 하니 파도가 물을 의지함과 같으니라.
五識隨緣現한대 或俱或不俱하니 如濤波依水니라 [大正藏 31 p. 60중 제15송]
이 글은 유식삼십송에서 전5식을 설한 것입니다. 아홉 가지연[九緣]을 갖추어 발생하는데, 아홉 가지 연을 다 갖추어야 일어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연(緣)을 갖추고 전5식이 제8식에 의지하여 활동하는 것은 마치 파도가 물에 의지하여 일어나듯이, 제8식과 불가분리의 관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