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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해부도를 그린 사람은? |
1. 세계 최초로 인체를 해부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1번의 답은 “모른다”입니다. 원시 시대에 누군가가 재미로 시체를 가져 와서 해부를 해 보았는지, 아니면 고대 그리스의 누군가가 해부를 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수천년 전에 중국이나 한국의 조상들이 해부를 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해부를 했다 안했다를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모른다가 정답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의학자 헤로필루스(Herophilus, 기원전 330-320년 사이에 태어나서 265-250년 사이에 사망)가 인체 해부를 했다는 사실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그 이전에 누가 해부를 했는지, 또 헤로필루스가 얼마나 자세히 해부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2번의 답도 아직까지는 “모른다”입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들 중에 소설가 이은성이 쓴 미완의 명저 『소설 동의보감』을 읽으신 후-이 소설은 “집념”, “동의보감”, “허준” 등의 제목으로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김무생, 서인석, 전광열 등 세 명의 탤런트가 허준 역을 교대로 맡아가며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었음-애제자의 인체에 대한 지식을 넓혀 주려고 자신의 몸을 해부할 기회를 주고자 차가운 온도에 의해 부패하지 않는 장소인 경상남도 밀양 소재 얼음골에 인체 해부에 필요한 도구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난 스승의 유언에 의해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스승의 몸을 해부함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상 인체를 처음 해부했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허준이 최초로 해부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전에 누군가가 먼저 인체해부를 했다는 이야기일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허준이 정답이 아닌 이유는 허준이 스승의 몸을 해부했다는 근거가 아무 곳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이은성이 무슨 근거로 그와 같은 내용을 소설 속에 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허준이 해부를 했다는 증거는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동의보감 첫 권에 실린 <신형장부도>를 가리키며 허준이 해부를 한 다음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해부를 한 후에 그린 해부도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동의보감은 수많은 참고문헌을 토대로 씌어졌으며, 『만병회춘』이나 『의학입문』 등의 중국의서에는 <신형장부도>와 유사한 해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그림은 다섯 개의 대표적인 장기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어서 실제와는 많이 다르므로 해부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 그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신경이나 혈관 등의 작은 구조물은 무시하고, 큰 장기를 중심으로 대충 뱃속을 한 번 들여다본 사람이 그린 정도에 불과하므로 해부학적 지식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해부도도 아니고, 실제로 장기의 위치나 크기를 보더라도 해부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 그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신형장부도>의 그림이 중국의서에 나타난 해부도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인체를 대하는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 중국의서를 참고로 하여 허준 등 조선시대 의학자들이 자신들의 인체관을 토대로 약간 변형하여 그린 해부도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해부를 누가 제일 먼저 해 본 사람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알 수가 없습니다. 3번의 답은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 1470~1550)입니다. 외과학의 발전과 매독에 대해 뛰어난 업적을 남긴 그는 10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하여 그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조직을 처음 발견하였으며 간, 막창자와 그 꼬리(cecum과 appendix) 등에 관한 자세한 서술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베렌가리우스가 활약한 시기는 중세가 끝나고 근대에 접어드는 시기였으므로 종교적 영향력이 전보다 약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금기시되었던 인체 해부가 지역에 따라 어느 정도 허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베렌가리우스는 수많은 인체 해부를 통해 지식을 축적한 다음 1521년에 발간된 자신이 저술한 책에 인체 해부도를 그려 놓음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로의 해부도를 남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인류 최초의 해부도를 남긴 사람이 베렌가리우스이기는 하지만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 또는 “해부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은 1543년에 『인체의 해부에 관하여』를 저술한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베렌가리우스의 해부학 지식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최고의 의학자라 할 수 있는 갈레노스(Galenus Galenos, Cladius Galenos, 130?~201. Galen이라고도 함)는 실험과 관찰에 의한 의학을 강조하면서 실험동물을 해부하여 얻은 해부학 지식을 인체에 그대로 응용했으므로 틀린 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세 내내 그의 학문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1000년이 넘도록 그의 학문을 비판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르네상스기가 지나고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도래하면서 인체해부와 같은 오랫동안 금기시된 일들이 조금씩 가능해지게 되자 여러 의학자들이 갈레노스의 의학을 비판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베렌가리우스는 갈레노스가 전해 준 지식에 잘못된 것이 있다는 점을 직접 발견해 놓고서도 갈레노스의 학문에 틀린 점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깨닫지 못한 채 갈레노스의 의학에 의심을 품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학자로서의 한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가 후대에 낮은 평가를 받게 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베렌가리우스의 이름을 처음 듣는 독자들도 중세의 만능탤런트라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해부도를 그렸다는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몰연대를 보면 아시겠지만 베렌가리우스의 해부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상을 떠난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해부도가 먼저가 아닐까요? 우리에게 미술가로 알려진 중세의 팔방미인 레오나르도는 의학의 발전에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해부학을 공부하여 전술한 해부도를 남긴 것을 비롯, 심장 박동 및 혈액순환에 관한 생리학적인 개념을 정립하여 훗날 하베이(Willium Harvey, 1578~1657)가 혈액 순환을 입증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액체 왁스를 인체의 공동(구멍, 강)에 주입시켜 그 부피를 측정하는 등 모두 7,000쪽 분량의 의학에 관한 기술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후세의 어느 역사가는 “레오나르도 시대에 적당한 보존제만 공급될 수 있었다면 그는 더 훌륭한 해부학적 업적을 남겨 의학발전을 진일보시킬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을 정도입니다. 회화와 조각 등에 뛰어났던 그가 인체해부를 실시한 이유는 인체의 밑바탕이 되는 구조물들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인체의 구조를 나타내는 해부도를 남기게 했을 뿐 아니라 각 구조물들의 기능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술을 남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해부도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00년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바람에 해부학 발전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으므로 유럽인들은 공식적으로 베렌가리우스의 해부도를 최초의 해부도로 취급하고 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가 베렌가리우스의 해부도보다 앞섰다는 기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설명에서나 발견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직지심경이나 무구정광다라니경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 것이라 주장하지만 서양인들은 이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필자는 역사에 관심을 지닌 유럽인들과 토론의 시간을 가져 본 결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나 직지심경,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시기적으로 먼저였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역사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므로 “최초”에서 제외시키려 하는 그들의 논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역사관이 옳은 것이지, 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인지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전에 그려진 해부도는 없을까요? 이를 비롯하여 중국에는 해부도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해부도에 나타난 인체 내부구조가 실제와 많은 차이가 있고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서양인들은 이를 해부도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으며, 베렌가리우스 이전의 서양 해부도도 그와 같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즉 베렌가리우스가 그린 해부도부터 그런대로 받아들여줄 만한 해부도라고 취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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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대 예병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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